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4
43화. 주워들은 이야기“그건 안 되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대답.
그래도 나는 그 이유를 노군상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어째서 안 됩니까?”
“남궁 선생은 우리 학관의 기둥이자 얼굴이네. 자네 말고도 그와 대련을 원하는 지원자는 많아. 사실상 모두라고 할 수 있지. 그렇다고 모든 지원자를 남궁 선생과 대련하게 해서야 되겠나?”
“훌륭한 변명이군요. 미리 준비해 오신 겁니까?”
“이런 자리에 있으면 적당히 둘러대는 법만 늘기 마련이지.”
노군상은 맛없는 차를 홀짝이며 부드럽게 웃었다.
“어쨌든 남궁 선생과의 대련은 불가하네.”
단호한 말투였지만, 나는 쉽게 단념하지 않았다.
“영원한 건 없습니다. 학관의 일타강사가 계속 일타강사라는 법도 없죠. 장강의 뒷물결이 앞선 물결을 밀어내듯, 세대교체의 흐름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내 말에 노군상이 찻잔을 내려놓고 껄껄 웃었다.
“자네가 남궁수를 제치고 새로운 일타강사가 될 거라 이건가?”
“불가능할 거라고 보십니까?”
내가 여유롭게 웃으며 묻자, 노군상도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니.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하네.”
“…….”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더더욱 안 되는 것이고.”
“그 말씀은 제가 남궁수와의 대련에서 이기지 못할 거란 뜻입니까?”
“흐음. 글쎄…….”
노군상이 팔짱을 끼더니,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나는 지금 노군상의 머릿속에서 나와 남궁수가 가상의 대결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경지에 이른 고수들이 종종 하는 심상(心象) 수련의 일종.
잠시 후, 눈을 뜬 노군상의 입가에 짓궂은 악동 같은 미소가 그려졌다.
“재미있군.”
나는 그 결과가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이겼습니까?”
“알려 주면 재미가 없지.”
“상관없습니다. 저도 결과를 알고 있으니까요.”
“오호라?”
이건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나는 노군상이 나를 파악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숨기고 있으니까.
노군상은 마치 손주의 재롱을 지켜보는 할아버지처럼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자네의 상대는 이미 정해 두었네. 이제 와서 바꿔 줄 순 없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된다는데 어린애처럼 계속 떼를 쓸 생각은 없었다.
노군상이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자네는 일타강사가 되고 싶나?”
“예. 그러려고 청룡학관에 온 것이니까요.”
“자네가 생각하는 일타강사란 무엇인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평소 나의 생각을 말했다.
“무공을 가장 잘 가르치는 강사입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훈련생, 아니 학생들과 조직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겠죠.”
과거 혈교에서는 그런 용어가 없었지만, 만약 있었다면 나는 분명 혈교 최고의 일타강사였다.
수천 명의 훈련생이 내 손을 거쳤고, 그중에는 훗날 이름을 날린 고수도 여럿 있었다.
내 거침없는 대답에 노군상은 모호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일정 부분 동의하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네.”
“무엇이 다릅니까?”
그 순간, 노군상이 현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르치기만 잘한다고, 또는 단순히 무공이 강하다고 일타강사가 될 수는 없네. 예를 들면 자네의 외조부는 어떤가? 그만한 검객은 무림을 다 뒤져도 쉽게 찾을 수 없네. 부관주의 도법 또한 무림일절이지. 하지만 청룡학관의 일타강사는 남궁수 한 명뿐이야. 그 이유를 알고 있나?”
그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남궁수는 젊고 잘 생겨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지 않습니까. 물론 저도 그렇고요.”
“……헐.”
내 반박에 노군상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괴상한 소리를 냈다.
이 양반이 나한테 뭔가 가르침을 주고 싶은 것 같은데…… 마음대로 안 되자 답답한 모양이다.
결국 노군상이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뭡니까? 일타강사가 되는 비법이 따로 있습니까?”
“내가 그걸 어찌 아나?”
“……예?”
“그걸 알면 내가 일타강사를 하고 있었겠지.”
“…….”
이 양반이 지금 나랑 장난하나.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노군상은 스스로도 멋쩍은 듯 내 시선을 피하며 애먼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라네. 자네는 분명 능력 있고 자신감 넘치는 청년이야. 일타강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해. 하지만…… 그것만으로 일타강사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
“서두르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게. 나는 자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어. 그러니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 아니겠나.”
자리에서 일어난 노군상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주변에서 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하는지 알고 있으나, 나는 청룡학관의 과거의 명성을 되찾길 바라는 사람이네. 그런 내 눈에 자네는 오랜만에 보는 뛰어난 인재야.”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를 보면 남궁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 닮았어.”
“대체 어디가….”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남궁 선생은 별로 좋아하지 않네. 물론 그 친구도 학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겠나?”
노군상이 조금은 흐려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나는 면접장에서부터 나에게 호의를 베풀던 노군상의 모습을 떠올렸다.
노골적으로 나를 싫어하는 남궁수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고, 시범 강의 때도 내 실력을 부각시켜 주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 직접 나를 찾아와 이렇게 긴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학관 내의 정치적인 이유인가? 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서 남궁수를 견제하려는?’
그러나 고작 그런 이유라고 하기에는, 눈앞의 노고수는 너무 대단한 인물이었다.
“관주님. 저한테 이렇게까지 잘해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노군상은 뒷짐을 진 채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타강사가 되기 전에, 먼저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잔소리라네.”
“…….”
나는 잠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가만히 있었다.
노군상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안하네. 술 한 잔도 마시지 않고 너무 떠들었군. 이만 가 봐야겠어.”
나는 노군상을 객잔 밖까지 배웅했다.
걷는 내내 그와 나눈 대화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만 들어가 보게나. 친우들이 또 늦는다고 걱정하겠군.”
“알아서 잘 마실 놈들이니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좋은 친우들이니 아끼게. 자네 걱정을 많이 했어. 그럼 내일 보세나.”
“……관주님.”
달빛 아래로 휘적휘적 걸어가던 노군상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좋은 선생이 되라는 말씀……. 굳이 제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강요할 생각은 없네. 자네의 선택인 것이지.”
잠시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노군상은 한동안 내 표정을 살피더니 피식 웃었다.
“내일도 기대하겠네.”
“예.”
“다음번엔 맛없는 차 말고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세나.”
“미리 좋은 술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고개를 꾸벅 숙였다가 들자, 노군상은 홀연히 나타났던 것처럼 홀연히 자취를 감춰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몸을 돌려 객잔으로 돌아왔다.
‘좋은 선생이라…….’
나는 혈교에서 첫 손에 꼽히는 무공 교관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선생, 스승, 혹은 사부라고 불려 본 적이 없었다.
훈련생들은 대부분 나를 교관, 교두, 악마, 마귀, 원수, 개새끼 등으로 불렀다.
순간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 녀석들도 나를 사부라고 부르진 않았지.’
무림 정복을 위한 혈교의 비밀병기로 키워진 네 명의 아이.
내게서 네 사부의 무공을 배운 그 녀석들은,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인격이 말살되고 명령에만 복종하는 훈련을 받았다.
나는 마뇌의 감시 아래에서 그 아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쳤다.
-교관님!
-교관니임!
-……교관님.
-교관……님.
어차피 훗날 혈교에서 탈출할 생각이었기에, 나는 그 녀석들에게 정을 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훈련생보다 더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일타강사가 되기 전에, 먼저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잔소리라면 어떤가?
아까 노군상과 대화를 나눌 때 불쑥 그 녀석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가르치던 악마 같았던 내 모습을.
-교관님.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잠시만 쉬면 안 될…….
-쉬고 싶다고? 어차피 뒈지면 평생 쉴 텐데, 그렇게 만들어 줄까?
-교, 교관님! 저 팔에 감각이 없습니다.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아아아악!
-아픈 걸 보니 멀쩡하네? 한 번만 더 엄살 부리면 아예 부러뜨려 주지.
-교, 교관님…… 제발…….
-지금 단체로 반항하나? 당장 일어나 이 새끼들아!!
-……교관님. 저희가 포기하면 어떻게 되나요?
-너희 말고도 교에 대체할 인력은 차고 넘친다. 폐기된 후에 버려지겠지.
-…….
-오늘 배운 것 중에 더 궁금한 건 없나?
-…….
-좋아. 그 눈빛이다. 이제야 좀 쓸 만해졌군.
아무리 떠올려 봐도 영 좋지 않은 기억들뿐이었다.
“……젠장. 술이 다 깨는군. 점소이!”
객잔으로 돌아온 나는 점소이에게 독주 한 병을 달라고 한 후, 내 방으로 가는 길에 병째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나보고 좋은 선생이 되라고?”
혈교에서는 누구도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고수들을 키워 낸 교관이었다.
혈교에서는 그것이 최고의 가치였고, 나는 경쟁자들에게 늘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나는 지금의 남궁 선생은 별로 좋아하지 않네. 물론 그 친구도 학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겠나?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남궁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제법’이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녀석에겐 과거의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물론 나만큼 거칠게 학생을 다루지는 않겠지만, 생각하는 방식은 과거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내게, 노군상은 다른 방식은 없느냐고 묻고 있었다.
“……다른 방식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내 방문 앞이었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술 냄새가 진동했다.
“앗? 형니이임~ 또 어디 갔었어요~”
방바닥에서 개헤엄을 치고 있던 악연호가 날 보더니 몸을 벌떡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휘익!
나는 옆으로 한 걸음 움직여 악연호를 슬쩍 피한 후, 검지와 중지를 모아 검결지를 만들어 녀석의 견정혈을 노렸다.
“!!”
그 와중에도 절정고수라고, 내가 혈도를 노리자 악연호도 몸을 돌려 본능적으로 반격했다.
파바바밧!
손가락과 손바닥이 부딪치고, 권과 장이 어우러지며 우리는 수십 합을 교환했다.
“……형님?”
“이제 술 좀 깼냐?”
나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악연호에게 씩 웃어 준 후, 의자에 기대어 입을 헤 벌리고 자는 명일오에게 빈 술병을 던졌다.
따악!
……피하거나 막을 줄 알았는데 이마에 제대로 명중했다.
“아악! 어떤 새끼야!”
이마가 뻘겋게 부어오른 명일오가 벌떡 일어나더니 씩씩대며 주위를 둘러봤다.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형님?”
“잠 깼으면 나가서 몸이나 좀 풀자.”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객잔 뒤쪽에 있는 마당으로 나갔다.
푸른 달무리가 달 언저리에 구름처럼 뿌옇게 맺혀 있었다.
옛 생각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밤.
나는 그 뿌옇고 흐린 달을 올려보며 말했다.
“이건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다.”
“…….”
“옛날, 한 남자에게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친 제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제자들에게 정을 붙이지 않았어. 제자들이 무공을 완성하는 날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거든.”
“…….”
“남자는 그걸 알면서도 제자들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아주 혹독하게 가르쳤지. 제자들은 인성이 말살된 채 하루하루 강해졌고, 결국 무공을 완성하는 날이 되었다.”
눈을 감으니 한 명 한 명 얼굴이 떠올랐다.
겁 많던 소년·소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른이 되었고, 다양하던 표정은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남자는 살기 위해 도망쳤다. 꽤 오랫동안 준비한 계획이었지. 하지만 계획은 중간에 틀어졌고, 도망치던 남자의 앞을 제자들이 가로막았다.”
살기조차 없었다.
단지 명령에 의해 나를 죽이려 하던 무표정한 얼굴들이 있었다.
“남자는 자기 손으로 제자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의 곁엔 동료들이 있었고, 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나는 침묵했고, 궁금증을 참지 못한 악연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다음엔 어떻게 됐나요? 남자는 도망쳤나요? 제자들은 모두 죽었어요?”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았겠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 라고 주워들었다.”
“이상한 이야기네요.”
“이상한 이야기지.”
스르릉.
나는 월영을 뽑았다.
무극검의 기수식을 취했다가, 녹림십팔식을 펼쳤다가, 빙월신녀의 보법으로 하늘로 뛰어올라 광마의 초식으로 달을 찔렀다.
네 명의 사부가 내게 남긴 무공, 내가 옛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무공들을 연달아 펼치며 나는 밤새 그들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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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우리는 마지막 실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청룡학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