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42
441화. 기선 제압 (2)
공포에 질린 털북숭이의 사타구니가 축축하게 젖어 들자, 장걸과 구길이 코를 손으로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오줌이나 지리는 겁쟁이가 정말 거령채 소속이라고?”
“그런데 뭐가 이렇게 약해?”
염라채. 거령채. 호문채.
현 녹림을 삼분하는 가장 강한 세력들로, 이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방금 팔다리를 부러뜨린 산적들은 그들이 아는 거령채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약했던 것이다.
급기야 그들은 산적들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형님. 이놈들 그냥 근처에서 영업하는 잡배들이 거짓말하는 것 아닐까요?”
“함정!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무슨 함정인데?”
“그거까진 잘 모르겠지만……. 거령채가 이렇게 약해빠졌을 리가 없잖습니까! 거, 녹림의 자존심이 있지!”
장걸과 구길은 아무튼 거령채가 아닌 것 같다며 꿇어앉은 털북숭이와 그 뒤에 산적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아직 자신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그리고 백수룡의 살기를 정면에서 마주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둘이었다.
‘뭐야 이 미친놈들은……!’
아직까지 그들의 정체가 염라채라는 것을 모르는 털북숭이는 속으로 울컥했지만, 감히 따지고 들지는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괜히 나댔다가 더 맞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거령채가 맞을 거다.”
녹의수사가 발라당 드러누워 배를 드러낸 늑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녀석들은 아까부터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은호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저렇게 짐승들을 길들이는 것은 거령채의 특기지. 그 비법을 다른 산채와 공유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은 적이 없다.”
녹의수사는 그렇게 말하며, 무릎을 꿇고 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털북숭이와 그 앞에 껄렁한 자세로 쪼그려 앉아 있는 백수룡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사형께서 어련히 잘 하시겠지.’
괜히 녹림투왕의 직전제자가 아니다.
웬만한 산적보다 공갈과 협박에 능숙한 백수룡이라면,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를 캐낼 터였다.
“오줌이 많이 마려웠나 봐?”
“죄, 죄송합니다…….”
“고개는 들고 대답해야지. 뒈지고 싶어?”
“아, 아닙니다!”
털북숭이 앞에 쪼그려 앉은 백수룡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친근하게 웃으며 털북숭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럴 수도 있지. 마려우면 싸고, 배고프면 처먹고, 손님이 오면 죽이고 빼앗는 게 거령채의 호걸들이잖아? 안 그래?”
“……아닙니다. 저희는 거령채가 아닙니다.”
털북숭이는 백수룡의 살기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도, 자신들의 정체는 부정했다.
상대는 이미 눈치를 챈 것 같지만, 자신의 입으로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채주가 알면 난 죽는다.’
거령채주에게 오랫동안 각인된 공포 때문이었다.
성격이 포악하기로 유명한 거령채주는 배신자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살아 돌아간다고 해도, 거령채주가 자신을 죽일 것이다.
그것도 바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수십 일 동안 잔인하게 고문한 후 죽일 터.
실제로 다른 산적이 그렇게 죽는 걸 본 적도 있었다.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낫지.’
털북숭이의 표정에 체념이 어렸다.
하지만 상대의 그런 감정 변화를 읽지 못할 백수룡이 아니었다.
“여기서 나한테 죽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
“…….”
피식.
백수룡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털북숭이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모두가 백수룡이 털북숭이를 무자비하게 폭행할 거라고 생각했다. 녹의수사만이 조금은 다른 기대가 어린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스윽.
백수룡은 털북숭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그는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털북숭이의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소곤소곤.
처음에는 눈을 감고 체념하던 털북숭이의 얼굴이 갈수록 굳더니, 감았던 눈을 부릅뜨고 오들오들 떨었다.
“그, 그것만은 제발……!”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털북숭이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해지더니, 중간부터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고, 결국에는 엉엉 울면서 자신들의 정체를 모두 인정했다.
“맞습니다. 저희는 거령채의 산적들입니다! 흐어어엉! 제발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대협!”
“그거야 네가 협조하기에 따라 달렸지.”
털북숭이의 어깨를 손으로 짚은 백수룡이 씩 웃었다.
“자, 처음부터 하나씩 해 보자. 너희들 말고 몇 명이나 데려왔어?”
“그게…….”
털북숭이는 자신이 아는 대로 전부 이실직고했다.
형산을 포위한 산적들의 규모와 전력, 위치가 술술 흘러나왔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업는 공갈협박 능력이었다.
“뭘 어떻게 한 거야?”
“때리거나 고문을 한 것도 아닌데…….”
장걸과 구길은 질린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고, 녹의수사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사형이시구나.’
녹의수사는 저런 공갈과 협박은 녹림투왕에게 배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궁금해하는 장걸과 구길에게, 백수룡이 털북숭이에게 한 협박을 조금만 들려주었다.
“사타구니에 삼매진화로 불을 붙여서 산 정상까지 함께 데려갈 거라고 하시더구나. 천천히 태워서 못 쓰게 만든 후에, 거령채주에게 데려가 여기까지 길 안내를 해 주어 고맙다고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면 어찌 될까 궁금하다던데.”
““미친……!””
장걸과 구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거나 말거나, 녹의수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내렸다.
“역시 배울 게 많은 분이구나.”
* * *
형산 자개봉(紫盖峰).
사파 회합이 열리기로 약속된 축융봉의 동쪽에 위치한 봉우리로, 지금 그곳에는 녹림의 두 거물이 접촉하고 있었다.
“슬슬 늙은 서생 놈도 올 때가 되었는데.”
칠 척 거한이 호피가 깔린 바위에 앉아 있었다. 철탑을 연상시키는 체격과 거대한 구릿빛 근육은 어마어마한 신력을 짐작게 했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거한의 주변에는 맹수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보통의 맹수보다 곱절은 컸다. 집채만 한 대호와 흑곰, 독수리가 거한에게 다가와 애교를 부렸다.
“그놈들, 살이 실하게도 올랐군. 요즘 몸이 허해서 그러는데, 한 마리만 잡아먹으면 안 되나?”
거한의 반대편에서 입맛을 다시는 사내의 외모도 범상치 않았다.
온몸에 털이 수북하고 팔이 기형적으로 긴 것이 원숭이를 연상케 했는데, 히죽 웃을 때마다 두꺼운 입술이 비죽 올라가며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거한이 불쾌한 듯 인상을 쓰며 경고했다.
“내 맹수들을 건드리면 네놈 쓸개를 산 채로 뽑아낼 줄 알아라.”
“야박하긴. 친구한테 그깟 짐승 한 마리 양보 못 하나?”
“미친놈. 너랑 나랑 언제부터 친구였느냐?”
거령채주의 코웃음에, 원숭이 상의 사내는 품에서 곰방대를 꺼내 연초를 빨아들였다. 그러곤 후욱- 새하얀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적의 적은 친구지. 자네나 나나 여기에 온 목적이 같으니 말이야.”
“흥…….”
거령채주와 호문채주.
현 녹림을 삼분하고 있는 녹림의 거물들.
사파 회합이 열리기 전, 두 사람이 먼저 만난 것은 같은 목적이 있어서였다.
“이번 기회에 녹의수사를 죽여 버리기로 한 것 말이지?”
거령채주가 호랑이 같은 눈에 은은한 살기를 띠며 말했다.
녹의수사 주표.
한마디로 눈엣가시 같은 자였다.
녹림의 채주라는 자가 양민들에게 알랑방귀나 뀌려고 길을 만들고, 터무니없이 낮은 통행료를 받는 자존심도 없는 늙은이.
그 탓에 거령채와 호문채의 수입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염라채 휘하의 산채가 장악한 산으로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녹의수사를 제거할 때까진 협력하기로 했으니, 그때까진 좋으나 싫으나 친구가 아닌가.”
호문채주 역시 송곳니를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거령채주처럼 노골적인 살기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거령채주가 단순하고 포악한 성격이라면, 호문채주는 교활하고 음모를 꾸미는 성격에 가까웠다.
호문채주가 말을 이었다.
“허나 신중해야 해. 녹의수사도 만반의 대비를 하고 이곳에 올 테니. 자칫하면 우리가 당할지도 몰라.”
“하! 그 늙은이가 아무리 대비를 해 봤자 너와 내가 합공하면 못 죽일 리 없다. 사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쳐죽일 수 있지.”
거령채주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곤 들고 있던 술병을 단숨에 꿀꺽꿀꺽 비웠다. 그러곤 빈 술병을 던져 멀리 있는 나무에 맞췄다. 다시 보니 그것은 돌을 깎아서 만든 술병이었다.
콰지직!
두꺼운 나무의 중간이 우지끈 부러지며 옆으로 넘어갔다. 과연 인간인가 싶을 정도의 괴력을 보여 준 거령채주가 큭큭 웃었다.
“십대악인? 정파 샌님들이 그깟 별명 좀 붙여 줬다고 녹림에서 가장 강한 줄 알면 오산이지.”
“……전에 봤을 때보다 힘이 더 세졌군.”
“으하하하! 이제 그깟 늙은이는 내 상대가 안 돼!”
거령채주의 목소리가 자개봉 정상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호문채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거령채와 호문채는 전대 채주들부터 복잡하게 얽힌 인연이 있었다. 둘 다 전대 채주의 아들이었기에, 그들은 어려서 서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종종 마주치기도 했다.
녹림투왕 무공의 일맥을 전수받았다는 명분은 두 산채를 경쟁자로 만들었고, 당연히 훗날 새로운 녹림왕이 탄생한다면 둘 중 한 명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
그 탓에, 거령채와 호문채는 수십 년 전부터 자주 충돌하며 피를 흘렸다. 염라채가 조용히 힘을 키우고 세력을 확장한 것은 그 시기였다.
둘의 입장에서, 녹의수사는 호랑이끼리 물어뜯고 싸우는 사이에 세력을 불린 비열한 늑대에 불과했다.
“근본도 없는 늙은이가 녹림왕 자리를 노리는 걸 더는 지켜볼 수 없지.”
“맞는 말이야. 이 기회에 녹림의 근간을 흔드는 해악을 뿌리 뽑아야 해.”
“부하들은 몇이나 데려왔지?”
“일백. 너희는?”
“비슷해. 산 아래에 잘 숨어 있으라고 해 놨지.”
의견이 일치한 두 채주가 씨익 웃었다.
“자, 한잔하지.”
“흐흐. 좋지.”
두 사람은 동맹을 기념하며 술을 나누어 마셨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녹의수사 다음은 네놈 차례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결코 곱지 않은 탓에, 두 채주가 데려온 부하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언제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녹의수사가 뒈지면, 놈 밑에 있던 세력은 어떻게 나눌까?”
“똑같이 반씩 나눠서 먹어야지.”
“흥. 놈들이 순순히 납득하겠어? 충성심 높기로 유명한 놈들이니 바로 전쟁이 일어날 거다.”
거령채주의 말에, 호문채주가 원숭이처럼 낄낄거리며 웃었다.
“전쟁이 왜 일어나나? 녹의수사는 흑사련주나 악인곡주, 아니면 모산파의 문주한테 죽을 텐데.”
“……다른 놈들에게 덮어씌우자?”
“이왕이면 더 짜증 나게 구는 놈한테 덮어씌울까 하는데.”
“흐흐. 이런 비열한 새끼…….”
“그래서 싫다는 건가?”
“누가 싫다고 했나.”
두 사내가 비열한 음모를 구체적으로 키워 가며 만면에 미소가 짙어질 때였다.
“썩 꺼져라!”
자개봉 아래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거령채주와 호문채주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이런 등신들. 아무도 못 올라오게 하라고 했더니, 그것 하나 못 해?”
거령채주가 짜증이 담긴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곁에서 수발을 들던 수하 중 하나가 허리를 숙였다.
“형님. 제가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그는 거령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였다.
채주에게 직접 무공을 사사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고, 맹수를 맨손으로 잡아 죽일 정도로 사납고 용맹해 거령채주가 아끼는 부하이기도 했다.
“그래. 네가 다녀와라.”
거령채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소란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날 듯이 뛰어갔다.
웬만한 일류고수도 삼십 초식 안에 쳐죽일 수 있는 실력자였기에, 거령채주는 소란이 금방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너도 가 봐라.”
“예!”
호문채주도 부하들 중 한 명을 지목해 내려보냈다. 그 역시 호문채에서 선별해 데려온 고수로, 앞서간 거령채주의 부하에 못지않은 실력자였다.
두 사람이 내려가고, 예상대로 소란은 금방 잠잠해졌다.
빠악! 빠악!
단 두 번의 타격음.
그리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는 똑같이 굳은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봤다.
“…….”
“…….”
이빨이 우수수 날아간 거령채와 호문채의 고수가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의식을 완전히 잃었는지, 처음 보는 사내의 손에 머리채를 잡힌 채로.
휘이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풍성한 담황색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그 모습이 마치 사자의 갈기 같았다.
휘익.
백수룡은 두 채주의 앞에 기절한 산적들을 던지며 씩 웃었다.
“거, 좋은 경치 같이 좀 구경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