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5
44화. 제갈소영꾸르륵…….
심상치 않은 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얼굴이 샛노래진 악연호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혀, 형님. 저 뒷간에 좀……!”
“또?”
“……일오 형 대련 시작하기 전에 돌아올게요!”
악연호는 한 손으로 엉덩이를 틀어막은 기묘한 자세로 경공을 펼쳐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순식간에 작아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저런 놈도 절정고수라고…….”
전날에 술 좀 먹었다고 아침부터 설사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 정도로 술이 몸에 안 받으면 안 마실 법도 한데, 술은 또 엄청 좋아하는 걸 보면 저놈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많이도 보러 왔군.’
나는 고개를 돌려 비무대 주변의 관객석을 꽉 채운 학생들을 둘러봤다.
웅성웅성.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싸움 구경인 만큼, 학생들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듣기로는 학생회에서 학생들이 가까이에서 신입 강사들을 평가할 수 있도록 관객석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니, 저기 있는 녀석들이 전부 심사관인 셈이었다.
……게다가 그중 꽤 많은 시선에 내게 꽂히고 있어서 얼굴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선생님! 여기 좀 봐주세요!”
“여기도요! 손 한 번만 흔들어 주세요!”
대충 손을 흔들어 주자 일부 여학생들이 자지러질 듯 소리를 질러댔다.
“꺄아아아!”
“무슨 신기한 동물도 아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관객석에서 고개를 돌려 내 주변을 둘러봤다.
대기 중인 지원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대련이 진행 중인 비무대를 주시하거나, 각자만의 방식으로 긴장을 풀고 있었다.
“후우…….”
그중에는 명일오도 있었는데, 바로 다음 차례라서 우리와 떨어진 곳에서 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긴장하지 말고 제 실력만 발휘해라.’
사실 우리 셋 중에 합격할 가능성이 가장 애매한 사람이 명일오였다.
악연호는 배탈이 난 와중에도 기존 강사를 상대로 가볍게 승리를 거뒀고(서둘러 뒷간에 가기 위한, 그야말로 엄청난 강공이었다), 나 또한 누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자신 있었다.
그래서 어젯밤 명일오에게 따로 몇 가지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상대가 아주 난적만 아니라면 이길 가능성도…….’
그때였다.
“억! 윽! 엑!”
“……일단 저 웃기지도 않는 대련이 빨리 끝나야 할 텐데.”
비무대 위에서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에, 나는 혀를 차며 비무대를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안쓰러울 정도로 일방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 당숙! 살살 좀…….”
“이노오옴! 누가 당숙이냐! 부관주님이라 불러라!”
곽두용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도망 다니다시피 공격을 피하고, 부관주 곽철우가 그 뒤를 쫓아다니며 회초리 휘두르듯 도를 휘둘렀다.
후우웅! 후웅! 후웅!
그 도에 담긴 속도와 힘이 보통이 아니었기에, 한 번 공격을 막거나 피할 때마다 곽두용은 거의 생사를 오가는 중이었다.
“똑바로 못 하겠느냐! 가문 망신을 혼자 다 시키는구나!”
“제, 제가 뭘 어쨌다고…… 나름 열심히…….”
“닥쳐라!”
……누가 봐도 집안의 어르신에게 혼나는 모양새.
곽두용과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봐도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허어. 저러다 사람 잡겠군.”
“적당히 좀 하시지…….”
“부관주님한테 안 걸린 게 천만다행이군.”
다른 지원자들도 같은 생각인지, 다들 딱하다는 눈빛으로 곽두용을 바라봤다.
그 순간 나는 비무대 왼편, 강사석 정중앙에 앉아 있는 노군상을 바라봤다.
‘하여튼 짓궂은 양반이라니까.’
부관주 곽철우와 지원자 곽두용.
둘은 같은 가문 출신이었다.
그래서 노군상은 두 사람을 대련 상대로 붙인 것이 틀림없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같은 가문 사람인 곽철우가 저렇게 몰아붙여야, 훗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잡음이 적을 테니까.
곽철우도 그것을 알기에 인정사정없이 몰아치는 것이었다.
“갈! 각오가 서 있지 않다면 당장 포기해라! 강사가 쉬운 일인 줄 아느냐?”
“이 일은 정말 하고 싶습니다! 저 정신 차렸습니다!”
“앞으로 술도 끊을 것이냐?”
“……노, 노력해 보겠습니다!”
애매한 대답에 진심으로 화가 난 듯, 곽철우의 기세가 순식간에 일변했다.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화르르륵!
곽철우의 도가 불꽃에 휩싸였다.
그의 별호이자 성명절기인 화염도(火焰刀)였다.
도신 위로 일렁이는 불꽃을 본 곽두용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다, 당숙!”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면 그만한 각오를 보여야 할 것이다.”
“으으…….”
곽두용은 다리가 후들거리면서도 용케 포기하지 않았다.
순간 두 사람이 똑같은 자세를 취하더니, 동시에 바닥을 박차며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결과는 천양지차였다.
까아아앙!
곽철우는 부딪친 자리에서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은 반면, 손에서 도를 놓친 곽두용은 꼴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찢어진 그의 손바닥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곽철우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주저앉은 곽두용을 바라봤다.
“못난 놈.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
“시, 싫습니다.”
“그래도 이놈이? 정녕 끝까지 말을 안 듣겠다면…….”
“부관주. 그만하시게.”
어느새 경신법을 펼쳤는지, 노군상이 두 사람 사이에 유령처럼 스르륵 나타났다.
“이, 이형환위?”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도 않았어.”
“과연 백대고수…….”
강사고 학생이고 다들 놀라서 감탄하는 가운데, 노군상은 쓰러진 곽두용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현기 가득한 눈으로 곽철우를 바라봤다.
“곽두용 지원자의 실력은 이만하면 충분히 보았네. 이 이상은 과한 것 같군.”
“관주님! 이 녀석 실력으론 청룡학관에 누만 끼칠 것이 뻔한…….”
싸늘해진 노군상의 눈빛에 곽철우가 입을 다물었다.
“그걸 판단하는 것은 자네 혼자가 아니네. 언제까지 공정해야 할 시험에 사적인 감정을 끼워 넣을 것인가?”
“……죄송합니다.”
곽철우가 고개를 푹 숙이고 물러났다. 곽두용도 비틀거리며 비무대에서 내려갔다.
노군상이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소란스러워진 장내를 수습했다.
“비무대를 정리한 후 곧바로 다음 대련을 시작하겠소. 다음 차례인 명일오 지원자는 지금 몸을 풀어 두시오.”
“후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명일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몸을 풀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노군상이 고개를 돌려 강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봤다.
“명일오 지원자와 대련을 펼칠 강사를 지목하겠소.”
명일오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쉽게 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멀리서 눈빛으로 녀석을 응원했다.
‘가서 실력을 보여 줘라.’
방금 부관주가 대련에 나섰으니 또 부관주를 부르진 않을 것이고, 매극렴은 학생들을 관리하느라 오늘 대련에는 나서지 않는다.
그 외에 강사들이라면 명일오에게도 어느 정도 승산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상하게 불안한 거지?’
내 불안감의 실체는 곧 밝혀졌다.
노군상의 입에서 내가 예상 범위 안에 넣지 않았던 문제가 나온 것이다.
“남궁수 선생. 준비해 주시오.”
지금까지 한 번도 불리지 않았던 남궁수의 이름이 불리자, 기대감으로 관객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명일오의 표정은 긴장으로 잔뜩 굳었다.
“예.”
짧게 대단한 남궁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노군상을 바라봤다.
마침 그 순간 나와 마주친 노군상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못된 늙은이. 나한텐 안 된다더니…….”
“……관주님 보고 한 말인가요?”
“그럼 누구겠냐…… 어?”
당연히 악연호가 돌아온 줄 알고 대답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학생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 보이는 여자였다.
스무 살이나 겨우 넘겼을까?
두 팔로 흉기로 써도 될 법한 커다란 책을 가슴에 안고 있고, 왼쪽 허리춤에는 판관필이 매달려 있었다.
체구는 가녀렸다. 들고 있는 커다란 책 때문에 서 있는 것이 불안해 보일 정도로.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이며 걸음걸이, 호흡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명문가의 자식이로군.’
내 반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여자가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더 애 같았다.
“그쪽이 저보다 연상이신 것 같지만, 그래도 초면에 반말은 좀…….”
“미안하오. 뒷간에 간 아는 동생이 돌아온 줄 알았소.”
“제 목소리가 남자 같단 말인가요?”
“아니. 내가 아는 동생 목소리가 여자 같단 말이오.”
“…….”
그나저나 용기가 대단한 여자였다.
어제 시범 강의에서 한 짓이 있는 터라, 지금 내 주변에는 아무도 다가오려고 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과도한 관심, 그리고 적지 않은 강사들의 못마땅한 눈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지금만 봐도, 혼자 덩그러니 있던 내게 여자가 다가오자 시선들이 몇 배 더 따가워졌다.
그러나 여자는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내게 다가왔다.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실례인 줄은 알지만 궁금한 게 있어서요.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거라면.”
내 말에 여자는 기쁜 듯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말했다.
“어제 마지막에 도풍을 가른 검법이요. 혹시 모용세가의 검법인가요?”
“…….”
순간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표정을 굳혔다.
‘뭐지, 이 여자?’
내가 어제 도풍을 가른 검법은 무극검의 무리를 기반으로 한 초식이었다.
그리고 무극검의 창시자인 검존은 모용세가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 흔적을 알아보는 건 거의 불가능한데…….’
“아니오. 나는 모용세가에 가 본 적도 없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실제로 모용세가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었다.
또한 검존 사부도 모용세가와 인연을 끊은 사람이었으니, 무극검을 모용세가의 검법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정말인가요?”
“그렇소.”
여자는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한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음 질문을 했다.
“그럼 곤륜파의 검법인가요?”
“…….”
이쯤 되니 여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검존 사부는 곤륜의 은거기인과 오랜 기간 친분을 맺었고, 자신의 검을 완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펼친 검법을 보고 그 사실을 알아냈다는 건, 무공을 보는 눈이 정말 보통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곤륜의 검도 아니오. 내 검법은 아버지에게 배우고, 내가 이것저것 깨달으며 스스로 완성한 검이오.”
이건 당연히 거짓말이다.
여자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말도 안 돼. 그 정도의 검법을 스스로 깨우쳤다고요?”
“아버지한테도 배웠다니까.”
“그쪽 아버지가 천하제일의 고수라도 되나요?”
“시골에서 작은 무관을 하고 계시오.”
“……대답하기 싫으면 싫다고 하세요. 그게 거짓말보다 낫겠네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에게, 나는 한숨을 작게 내쉬며 설명했다.
“다시 말하지만 내 검법은 모용세가의 것도, 곤륜의 것도 아니오. 애초에 그 두 곳의 검법은 성질이 완전히 다르지.”
“……어떻게 다른데요?”
정말 몰라서 묻는다기보다는, 내가 아는지 시험해 보고 싶은 눈빛이었다.
‘이것 봐라?’
살면서 무공에 관한 수많은 질문을 받아온 교두로서, 나는 훈련생의 도전적인 질문을 그냥 넘긴 적이 없었다.
“모용세가의 검은 부드럽고 느리지. 유능제강(柔能制剛), 후발제인(後發制人). 많이 들어 보았을 거요. 결국 상대의 힘을 이용하거나 상대의 공격을 본 후에 움직이는 것이 모용세가가 추구하는 검도(劍道)라고 할 수 있소.”
내 본격적인 검론 강의에 여자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반면 곤륜의 검은 수백 년 전부터 천마신교와 피비린내는 역사를 쌓아 가며, 또 그 후예인 혈교와 싸워 오며 완성한 실전적인 검이오. 그들은 도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거칠고 사나운 기질을 지니고 있지. 상대가 공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숨통을 끊는 것, 그것이 곤륜의 검도(劍道)라 할 수 있소. 여기에도 몇 가지 갈래가 있는데…….”
“…….”
곤륜파와는 혈교 시절 여러 번 부딪쳐 보고 실제로 그들의 비급도 많이 보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종일도 말할 수 있었다.
“……따라서 모용세가와 곤륜의 검은 상극에 가깝고, 섞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오. 반박해 보겠소?”
실제로 검존 사부도 곤륜의 은거기인과 수많은 논쟁을, 그리고 비무를 치렀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 상극인 두 가지를 기어이 하나로 합쳐 만든 것이 무극검이었다.
‘일반적으론 불가능하지만, 천재니까 가능하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천재의 영역이고, 검존은 내가 본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이었다.
“자, 잠깐만요! 좀 적을게요!”
여자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내 말을 듣고 있더니, 쪼그려 앉아서 들고 있던 책을 무릎에 펼치고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설마 필기를 하는 건가?’
좀처럼 보기 힘든 참된 학생의 태도라, 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아까 해 주신 말 중에 궁금한 게 있는데…….”
그렇다고 계속 수업을 해 줄 생각은 없었다.
슬슬 주변에서 쳐다보는 시선들도 부담스럽고 말이지.
“미안한데 검론 강의는 여기까지요. 다음 수업을 듣고 싶으면 강의실에서 봅시다.”
“저, 저도 신입 강사 지원자예요!”
발끈한 여자가 나를 올려보며 외쳤다.
혹시나 했는데…….
너무 어려 보기기에 학생인가 했더니, 신입 강사 지원자인 모양이다.
“어려 보여서 학생인 줄 알았는데.”
“……학관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학관이면 이곳 청룡학관?”
“아니요. 천무학관 출신이에요. 그러고 보니 저희 아직 통성명도 안 했네요.”
필기를 다 끝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포권을 취했다.
“제갈소영이에요. 올해 신입 강사 모집에 기관진식(機關陣式) 및 무림사(武林史) 강사로 지원했어요.”
제갈소영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