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50
450화. 이 무대의 주인공은
거대한 판이 깔렸다.
이백에 달하는 녹림의 사내들이 축융봉 정상에 올랐다.
그중에는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직접 데려온 부하들도 있었지만, 절반 이상은 두 세력의 산하에 있는 산채 소속이었다.
“채주들끼리 한판 붙는다는 게 진짜였단 말이야?”
“갑자기 녹림맹주를 가린다니…….”
“허! 나는 저 털북숭이 새끼가 구라를 치는 줄 알았는데.”
“형님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유? 저 아래에서 기다렸다가 염라채를 족치는 거 아니었수?”
당장 축융봉으로 올라오라고 명령이 떨어졌다고 해서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대부분의 산적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방금 전, 맹룡휘의 외침에 호응하듯 내뱉은 함성도 대부분은 일단 지르고 본 것이었다.
“……두 채주가 갑자기 이럴 리 없는데?”
“젠장. 아무래도 우리가 속은 것 같다.”
녹림의 사내들이라고 모두가 단순하지는 않았다.
개중에서 머리가 돌아가는 자들, 특히 칠십이채에 속한 채주들은 상황이 자신들에게 좋지 않게 돌아감을 눈치채곤 표정을 굳혔다.
“곧 녹림의 세 호걸이 녹림맹주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대결을 펼칠 것이니, 다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시오!”
맹룡휘는 능숙한 호객꾼처럼 분위기를 만들었다.
녹림맹주.
과거 칠십이채를 통일한 녹림투왕이 돌연 실종된 이후, 그 누구도 녹림의 맹주를 자처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녹림맹주에 도전할 만한 채주들이 서로 충돌을 피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 녹림맹주를 결정한다?
자신들이 역사적인 현장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많은 녹림 호걸들의 가슴이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허나 그와 별개로, 사파의 종주들은 우르르 몰려온 녹림도들을 보고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제정신인가!”
벽안귀는 새파란 눈동자에 살기를 띠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호문채주와 거령채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회합 장소에 이렇게 많은 인원을 데려오다니. 정파에서 혈교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임을 모르나? 만약 이 장소가 발각되었다면, 그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
“그건…….”
“…….”
벽안귀가 사납게 쏘아붙이자, 두 채주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회합을 비밀리에 진행하기 위해, 한 세력당 최대 네 명까지만 회합에 참석하기로 한 것이 약속이었다.
물론 누구도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설마 세자릿수가 넘는 부하들을 동원하는 세력이 있을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산길을 타고 여러 곳에서 조금씩 모아왔으니, 누구에게도 들켰을 리 없다.”
거령채주가 구차하게 변명했으나, 사파 종주들의 표정은 더욱 싸늘해졌다.
“변명이라고 한다는 것이 고작 그건가? 방금 저놈들이 내지른 함성이 산을 뒤흔들 지경이었는데, 백 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겠더군.”
이제는 완전히 척을 진 귀령왕이 한껏 비꼬았지만, 두 채주는 잘못한 것이 있어서 함부로 화를 내지도 못했다.
“거령채주. 호문채주.”
나직한 목소리에 두 채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흑사련주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벽안귀나 귀령왕처럼 대놓고 분노를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두 채주는 흑사련주의 깊게 가라앉은 눈빛이 앞선 둘을 합친 것보다 몇 배는 두려웠다.
“변명할 것 없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너희가 책임을 지면 그만이니.”
“……책임?”
“정파 놈들이 냄새를 맡고 이곳을 찾아온다면, 너희의 수급을 잘라 놈들에게 던져 줄 것이다.”
“…….”
누구도 그것이 단순한 협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흑사련주 옆에서는 추혼궁귀가 조용히 자신의 활을 쓰다듬는 것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요.”
호문채주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거령채주 또한 흑사련주를 노려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길 바라야겠지.”
스윽.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서 흑사련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를 처음 보는 녹림의 사내들도 숨을 죽였다.
사파제일의 종주는 천천히 공터로 걸어갔다. 험상궂은 산적들이 쏘아낸 수백 쌍의 시선이 쏟아졌으나, 흑사련주의 표정에는 미동도 없었다.
“지금부터 녹림의 맹주를 결정하겠다. 셋 중 둘이 죽고 하나가 남을 때까지 싸우는 것으로 하지. 이 규칙에 이의 있는 자가 있나?”
발언권이 거의 없다시피 한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할 때였다.
“할 말이 있소.”
녹의수사였다. 앞으로 나선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녹림의 사내들을 주욱 둘러봤다.
‘곱지 않은 시선뿐이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모인 녹림도 대부분이 거령채와 호문채 산하에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저들마저 모두 포용해야 진정한 녹림의 맹주가 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두 채주를 죽인다 해도, 저들이 내게 순순히 협력하지는 않을 테지.’
마음 같아서는 저 가증스러운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
녹림투왕을 배신하고 마공을 익힌 주제에, 감히 정당한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추악한 악인들.
명분 또한 충분했다.
흑사련주가 직접 나서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으니, 설령 이 자리에서 죽인다고 해도 누구도 자신을 비난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그랬다간 녹림에 분열이 생길 것이고, 그것을 봉합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
갈등하는 녹의수사의 마음을 읽었는지, 백수룡이 전음을 보내 왔다.
[사제. 지금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한숨을 길게 내쉰 녹의수사는 악귀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두 채주에게 말했다.
“같은 녹림의 형제끼리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벌일 필요는 없다. 그러니 패배를 시인하고 물러나면, 항복으로 인정하도록 하지.”
우우우우우-!
축융봉을 둘러싼 산적들에게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방금 전 녹의수사의 말이, 마치 항복하면 살려 달라는 말처럼 유약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저 단순한 놈들이 잠시 후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맹룡휘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곧 모두가 보게 될 것이다.
녹림투왕의 진정한 후계자가 누구인지 말이다.
“……좋다. 받아들이지.”
“흐흐. 듣던 것보다 더 겁쟁이로군.”
호문채주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거령채주는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대결의 규칙을 정한 채주들이 공터로 걸어 나가려 할 때였다.
“뭐가 그리 급하단 말이오!”
쿵! 소리와 함께 거구의 한 사내가 채주들보다 먼저 앞으로 나섰다.
수염이 가득한 얼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흉터가 인상적이었다. 왼쪽 눈에는 짐승의 가죽으로 된 안대를 하고 있었다.
“독안마부(獨眼魔斧)!”
사내의 손에 들린 시뻘건 도끼를 알아본 군중들이 외쳤다. 녹림에서 유명한 별호인지, 장걸과 구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어찌 처음부터 채주들께서 먼저 싸움에 나서신단 말입니까.”
히죽 웃은 독안마부가 도끼를 들어 정확히 맹룡휘를 겨눴다.
“채주들끼리 대결을 펼치기에 앞서, 그 부하들끼리 먼저 실력을 겨뤄 보는 것이 어떻소? 흥도 돋울 겸!”
단순히 실력을 겨뤄 보자는 말치고는 느껴지는 살기가 무척이나 짙었다.
맹룡휘는 살기로 번들거리는 상대의 시선을 마주하며 떠올렸다.
‘그 자리에 있었던 놈이군.’
자개봉에서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를 처음 만났을 때, 거령채주 곁에 있던 자였다.
“그 도전을 받아 주마!”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호문채 쪽에서도 한 사내가 나섰다.
거령채의 독안마도에 못지않은 덩치에, 커다란 도를 양손에 하나씩 든 말상의 사내였다.
“대력쌍도(大力雙刀)다!”
그 역시 녹림에서 유명한 고수인 듯했다.
경공을 펼쳐 단숨에 공터에 내려선 대력쌍도가 독안마부와 마주 섰다. 기골이 장대한 두 사내가 마주 보자 숨 막힐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각각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를 대표하는 고수들.
염라채에서도 여기에 걸맞은 고수가 나서야 마땅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맹룡휘를 향했다.
“전초전이라. 재밌겠군.”
흑사련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염라채의 도객. 그 언변만큼 실력도 뛰어난지 궁금하구나.”
“…….”
갑자기 예상치 못한 싸움에 나서게 된 백수룡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걸어나갔다.
‘어차피 이 무대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사제다.’
녹림투왕의 무공을 이은 것은 백수룡 자신이지만, 스승의 뜻을 녹림에 계속 이어 나갈 사람은 녹의수사였다.
‘그러니 섭섭해 마시오, 맹사부. 이 자리에서 맹사부의 무공은 쓰지 않을 테니까.’
툭.
그는 허리춤에 매달린 유엽도를 왼손으로 가볍게 쳤다. 그러자 칼집에 꽂혀 있던 도가 위로 올라왔고, 그 순간 오른손으로 도파를 가볍게 쥐며 도를 뽑아 올렸다.
“호오. 이거 점점 기대하게 만드는군.”
뒤에서 흑사련주가 작게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백수룡은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도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모두가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솜털이 곤두서는 긴장감에 산적들이 침을 꼴깍 삼킬 때였다.
“시작하라.”
흑사련주의 말과 동시에 독안마부, 대력쌍도가 맹룡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전에 전음이라도 나눈 듯 도끼와 칼날이 좌우로 나뉘었다. 맹룡휘를 먼저 죽이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살초였다.
““죽어라!””
녹림의 각 세력을 대표하는 고수들답게 병기에 강렬한 기파가 흘렀다. 주변의 대기가 흐릿하게 일그러질 정도였다.
백수룡은 적당히 몇 합 나누다가 하나씩 무릎을 꿇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실전에서 광마 사부의 무공을 쓰는 건 오랜만이군.’
몸에 힘을 빼고 호흡을 조절했다.
수라혈천도는 살기가 무척 짙은 무공이기에 최대한 살기를 죽이고, 평온한 마음으로 도를 휘둘렀다.
‘일단 쳐내자.’
그러나 백수룡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수라혈천도는 그것을 창안한 광마조차 조절이 쉽지 않을 만큼 살기가 짙은 무공이며, 상대를 죽이기 위한 최적의 경로를 자연스럽게 그리는 놈이라는 것을.
맹사부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꾹 눌러 담아 둔 분노가, 상대의 살기에 반응해 본능적으로 칼날을 이끌었다는 것을.
스스스슷…….
찰나의 순간, 하늘이 붉게 물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붉은 하늘에 한 줄기 은빛 궤적이 그려졌다.
스걱!
한 번의 휘두름에 두 개의 목이 동시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독안마부와 대력쌍도는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지 못하고 몇 차례 눈을 깜빡였다. 그들은 왜 하늘이 붉을까 잠시 의아해했다.
그것이 마지막 생각이었다.
쿵! 쿵!
거구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진 후에야 죽음을 알아차린 건지, 뒤늦게 피가 콸콸 쏟아져 바닥을 적셨다.
“…….”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곧 싸워야 할 채주들도, 녹림의 산적들도, 천하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하기로 소문난 사파의 종주들조차도.
“……음.”
백수룡은 잠시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유엽도를 바라봤다.
‘원강이한테만 뭐라고 할 게 아니었군. 조절이 쉽지 않아.’
사실 중간에 궤적을 틀 수도 있었지만, 칼이 움직이는 대로 그냥 두었다. 먼저 자신을 죽이려고 한 건 놈들이었으니까.
“……항복하기 전에 뒈지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백수룡은 핏방울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유엽도를 도집에 집어넣고 돌아섰다.
“하하하하!”
그 모습을 지켜본 무인들 중, 유일하게 흑사련주만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