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52
452화. 역시 똑똑하다니까
휘이이잉-
적막해진 장내에 바람이 불었다. 차가운 가을바람이 맨살을 쓸고 지나가자, 잠시 넋을 놓았던 군중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싸움을 지켜본 이백 명의 산적들이 동시에 제 감상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눈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두 채주를 저렇게 어린아이 대하듯 쓰러뜨린다고?”
“저 호리호리한 몸으로 어떻게…….”
“그보다 방금, 진정한 녹림투왕의 무공을 보여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수?”
“분명 비슷한 무공이긴 했는데……. 그럼 녹의수사도 녹림투왕의 무공을 익혔다는 거야?”
“헛소리! 우리 채주께서 잠깐 방심하신 거다!”
“녹의수사 저 비열한 놈이 우리 채주님 무공을 훔친 게 분명해!”
“그런데, 훔친 무공이 더 강할 수가 있나……?”
혼잣말처럼 시작된 중얼거림은 옆 사람과의 대화로 이어졌고, 소란은 점점 더 커졌다.
웅성웅성.
이곳에 모인 산적들 중 절반 이상은 거령채주와 호문채주의 직속이 아닌, 그들의 산하 산채에 소속된 산적들이었다.
그들이 거령채주와 호문채주에게 충성하는 데는 저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분명한 명분’이었다.
‘저들이 녹림투왕의 무공을 계승했다는 명분. 그걸 이 자리에서 박살 낸다.’
백수룡은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것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단순히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녹림맹주로서 명분을 거머쥐기 위한 싸움.
그의 사제는 생각보다 더 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싸움을 유리하게 시작했다.
“……근데 아까 좀 세게 때린 것 같은데.”
백수룡은 얼얼한 뺨을 매만졌다. 요령 좋게 맞아서 자국은 남지 않았지만, 맞을 때 난 소리가 상당히 컸다.
설마 감정을 담아서 때린 건 아니겠지?
백수룡은 미간을 좁히고 의심스레 녹의수사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오늘만큼은 봐주기로 했다.
“……녹림에 재미있는 사내가 한 명만 있는 건 아니었군.”
흑사련주의 감상이었다. 시종일관 맹룡휘를 향하던 절세도객의 시선이 녹의수사를 향하고 있었다.
그만큼 녹의수사가 보여 준 무공은 모두의 인상에 강렬하게 남았다.
“나 녹의수사 주표는!”
고개를 든 녹의수사가 녹림의 사내들을 향해 일갈했다. 그 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다. 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수많은 시선이 녹의수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동안 십대악인이라 불리며 제법 명성을 떨쳐 왔다. 그 바탕에는 녹림투왕께서 남기신 기연이 있었다.”
“……!”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녹림투왕의 무공을 계승했음을 선언했다.
“정강산의 신비지처에서 녹림투왕께서 남기신 무공을 발견한 후, 수십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정진했다. 녹림도라면 누구나 맹호투(猛虎鬪)라는 이름을 들어 본 자가 있을 것이다.”
녹의수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이쪽을 노려보는 거령채주와 심각한 표정의 호문채주가 보였다.
“방금 너희가 본 것이 진정한 맹호투(猛虎鬪)다. 나는 녹림투왕께서 남기신 맹호투를 전부 익혔다.”
“……!!”
그 순간, 이백의 녹림도들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자가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말.
하지만 지금 녹의수사에게서 느껴지는 기백, 그리고 방금 그가 보여 준 무공은 어설픈 반박을 허락하지 않았다.
“매, 맹호투를 전부 익혔다고?”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도 한 초식밖에 모를 텐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저 말이 사실이라면…… 녹림맹주는……!”
혼란이 극에 달해 가는 가운데, 거령채 산하에 있는 채주 중 한 명이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였다.
“그걸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소! 이 자리에서 밝히는 것은 또 무슨 꿍꿍이란 말이오!”
녹의수사는 차분한 표정으로 질문한 사내를 바라보며 대답해 주었다.
“내 보잘것없는 무공으로, 녹림투왕의 명성에 감히 누가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여 스스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판단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
실로 녹의수사와 어울리는 대답에, 사내는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뻐끔거리더니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갈! 누가 그딴 개소리를 믿는단 말이냐!”
“현혹되지 마라! 녹의수사는 교활하고 술수에 능한 작자다!”
자리에서 일어난 거령채주와 호문채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펼친 녹림투왕의 무공을 간단히 파훼당했으며, 자신들과 똑같은 무공에 얻어맞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녹의수사는 두 채주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겉핥기식으로만 익힌 녹림투왕의 무공만 가지고는 도저히 승산을 점칠 수 없을 만큼.
“눈빛을 보아하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저벅저벅.
녹의수사가 두 채주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등에 난 상처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조금 전 호문채주의 맹호혈조에 당한 상처였다.
그러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조차 녹의수사의 위엄을 해치지는 못했다. 오히려 뒤에서 급습한 호문채주의 행동을 비난하는 수군거림이 군중들에게서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너희가 나를 녹림맹주로 인정하고, 녹림을 다시 하나로 만들겠다고 이 자리에서 약조한다면, 더 이상의 망신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호문채주와 거령채주를 바라보는 녹의수사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었다. 이 이상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주둥아리 닥쳐라!”
“고작 한 번 승기를 잡은 것 가지고 잘난 척 떠벌리지 마라.”
두 채주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사납게 치켜뜬 눈에서 살기가 들끓었다. 동시에 그들의 몸에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두둑. 두두둑.
아직은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은밀했으나, 녹의수사를 비롯해 사파의 종주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변화를 주시했다.
“……마공이라. 오늘 놀랄 일이 많군.”
귀령왕의 옥가면 너머에서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다른 사파의 종주들도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마공을 일부나마 드러내야 할 만큼, 두 채주는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놈은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여야 한다!] [오늘 놈을 없애지 못하면, 우리가 가진 전부를 염라채에 빼앗기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령 명분을 잃더라도.]전음을 주고받은 두 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핏줄이 터지며 그들의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
““죽인다.””
녹의수사도 그 전과는 차원이 달라진 저들의 기세를 느꼈으나, 단호한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이는구나.”
스윽.
녹림십팔식의 기수식을 취한 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삼엄한 눈빛은 죄인을 바라보는 지옥의 판관을 떠올리게 했다.
“반푼도 안 되는 무공과 폭정으로 녹림투왕의 명예를 더럽힌 죄. 녹림맹의 이름으로 다스릴 것이다. 오너라.”
두 채주가 짐승과 같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 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 그리고 기파를 터트리며 다가왔다. 거령채주가 내딛는 땅이 푹푹 파이고, 호문채주의 손가락이 닿은 바닥이 뒤집히며 흙먼지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사제. 조심해. 아까처럼 쉽지는 않을 거야.]염려가 느껴지는 전음에 녹의수사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따라 몸이 가벼운 것이, 녹림투왕께서 한 손 거들어주시는 듯합니다.”
그리 말한 녹의수사는 가볍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쿵……!
진각의 충격파가 원형으로 번지며 대지에 파문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가벼운 파문이었으나 순식간에 산사태처럼 힘이 불어나더니, 녹의수사의 정면에서 땅이 뒤집혔다.
콰콰콰콰콰!
뒤집힌 흙이 파도처럼 일어나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를 덮쳤다. 당황한 두 채주가 팔을 교차해 쏟아지는 흙더미를 막아 냈다.
흙이 아니라 철벽에 부딪힌 듯한 충격에 두 채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마공은 고통을 잊게 했다. 앞을 가로막는 흙더미를 사방으로 쳐내며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이딴 잔재주가 통할 것 같나!”
녹의수사는 흩어지는 흙더미 뒤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우…….”
자세를 낮추고, 두 주먹은 허리에 붙여 뒤로 당긴 모습.
그 기수식을 본 백수룡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맹호파멸장(猛虎破滅掌).”
녹의수사의 뒤로 맹사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맹호파멸장을 가르쳐 주며 으스대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오늘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후우우웅!
녹의수사가 두 주먹을 앞으로 뻗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그것을 하나씩 감당해야 했다.
콰아아아앙-!
적수공권으로 만들어 낸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커다란 폭음이 터졌다. 축융봉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충격파로 발생한 바람에 구경꾼들의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렸다.
“어찌 이런 위력이…….”
“허! 이게 진정한 녹림투왕의 무공이란 말인가!”
사파의 종주들조차 체면을 지키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세 사람이 충돌한 주변 일대는 폐허가 되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흙이 모조리 뒤집힌 광경은 자연재해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인 듯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크흐흐. 지랄 맞게 아프네…….”
“죽여 버리겠다…….”
온몸이 터져 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은 공격을 맞고도 멀쩡히 서 있는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보였다.
비록 옷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낭패한 모습이긴 했지만, 갑주처럼 우락부락하게 부푼 근육이 충격을 막아 낸 것으로 보였다.
두둑, 두두둑……!
이제는 그들의 몸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커진 것을 누구나 알아볼 정도였다. 거령채와 호문채 소속 산적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놈만! 저놈만 없애면 내 세상이다!”
“녹림맹주는 나다! 방해하는 새끼는 다 죽여 버리겠어!”
마공도 전부 같은 마공이 아니다.
쉽게 이성을 잃고 파괴적인 본능만이 남는다면, 그 아무리 위력이 강해도 하급으로 친다.
‘맹사부를 배신하고 받은 것이, 고작 저런 저급한 마공이었나.’
백수룡은 눈살을 찌푸리며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를 바라봤다. 놈들의 현재 상태가 그들이 익힌 마공의 수준을 증명했다.
“크하하하!”
“죽어라! 죽어!”
이성을 반쯤 잃은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괴성을 지르며 녹의수사에게 달려들었다.
비록 하급으로 칠지언정, 그 위력만은 눈이 돌아갈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 사실이었다.
쿠르르릉!
거령채주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천둥소리가 났다. 단순히 힘으로는 녹의수사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스아아아악!
어느새 길게 자라난 호문채주의 손톱이 피륙을 스치고 지나갔다. 놈은 핏방울이 살짝 맺힌 손톱을 혀로 핥으며 히죽 웃었다.
“크윽……!”
시간이 지날수록 두 채주의 공격이 기세를 올렸다. 녹의수사도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무복이 찢어지고, 상처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몇 번이나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채, 채주님!”
“형님! 채주님이……!”
장걸과 구길이 발을 동동구르며 백수룡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녹의수사가 점점 궁지에 몰리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백수룡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걱정할 것 없어.”
백수룡은 녹의수사의 실력을 믿었다.
적수공권만으로 싸운다면 자신이라고 해도 녹의수사를 당해 내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거령채주와 호문채주의 합공이 강력하다고 해도, 이기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저토록 고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분위기가 완전히 무르익길 기다리고 있는 거지?’
백수룡은 싸움에서 잠시 고개를 돌려 녹림도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저, 저게 녹림투왕의 무공이라고?”
“어째서 채주님이…….”
“저건 그냥 괴물 아니우……?”
그들은 싸움이 길어질수록 거령채주와 호문채주에게 실망, 분노, 그리고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도무지 인간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하하하!”
“키키키킥!”
피를 본 두 채주는 점점 더 흥분해서 이성을 잃었다. 뼈가 부러져도 아무렇지 않게 싸웠고, 실핏줄이 터진 눈은 초점이 맞지 않았다. 굶주린 짐승같은 소리를 내며 오로지 살육만을 위해 날뛰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살핀 백수룡이 피식 웃더니 다시 녹의수사를 바라봤다.
“역시 똑똑하다니까.”
마치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궁지에 몰려 있는 듯 보였던 녹의수사의 움직임이 급변했다.
휘이익!
단숨에 거령채주의 품으로 파고든 녹의수사가 몸을 옆으로 틀었다. 온몸에 회전력을 가미하며 그가 말했다.
“너희는 맹주가 될 자격이 없다.”
녹림투왕이 자신보다 큰 상대를 날려 버리기 위한 고안한 고법.
맹호붕산격(猛虎崩山擊)이 거령채주의 몸에 작렬했다.
터어어어엉!
염라채에서 백수룡이 보여 준 것보다 더 가공할 위력에, 거령채주의 거구가 십여 장을 튕겨 날아갔다.
백수룡이 사제의 과감한 손속에 감탄했다.
“뼈가 못해도 열 군데는 부러졌겠는데.”
녹의수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형환위와 같은 움직임으로 호문채주의 공격을 피하더니, 순식간에 뒤로 돌아갔다.
“너희 스스로 그 자격을 버렸지.”
“놔, 놔라-!”
호문채주의 몸을 뒤에서 껴안은 녹의수사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백수룡은 순식간에 작아진 녹의수사를 올려보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
“……맹호등천(猛虎登天). 가장 좋아하던 초식이지.”
정점에 오른 녹의수사가 허공에서 홱 몸을 뒤집더니, 그대로 호문채주를 바닥에 강하게 메다꽂았다.
콰아아아앙-!
대지가 크게 들썩이며 분진이 크게 피어올랐다.
잠시 후 불어온 바람이 먼지를 가라앉히자, 그곳에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호문채주가 땅속에 박혀 있었다.
언뜻 봐도 뼈가 멀쩡한 곳이 거의 없어 보였다.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괜히 십대악인이 아니었네.”
백수룡은 사제의 악랄함에 연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