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54
454화. 끝난 줄 알았지?
녹림맹주를 결정하는 싸움이 끝났다.
승자는 마땅한 기쁨을 누렸고, 패자는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으하하하! 우리 채주님이 녹림맹주다!”
“큰형님! 오늘은 잔치를 엽시다!”
“이 녀석들아. 그만하고 내려놓지 못하겠느냐!”
녹의수사를 목말 태운 장걸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축융봉을 한 바퀴 돌았다. 웃통을 벗은 구길은 그것을 깃발처럼 흔들며 그 뒤를 따랐다.
캬앙!
은호도 그 대열에 합류해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맹수들 역시 그 뒤를 우르르 따라다녔다.
새로운 녹림맹주를 맞이한 산적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녹림의 사내들은 단순하고 호탕했다. 축융봉 전체가 들썩들썩할 지경이었다.
“하. 난리도 아니군.”
그 왁자지껄한 광경에 백수룡은 피식 웃곤, 고개를 돌려 거령채주와 호문채주의 모습을 살폈다.
“크윽…….”
“젠장…….”
고개를 숙인 두 패배자의 모습은 승자와 극명하게 대비되?駭? 그 곁에 남은 거령채와 호문채의 산적들은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때, 흑사련주가 녹의수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요란하게도 싸우더군.”
주변에 침묵을 강요하는 사내의 거대한 존재감에, 들떠 있던 산적들이 흠칫하며 즉시 얌전해졌다.
“흑사련주…….”
아래로 내려온 녹의수사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흑사련주를 바라봤다.
저 사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행여나 녹림의 행사가 흑사련주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지금으로서는 그 분노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어쩌면…….’
흑사련주는 이런 상황을 바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림에서 가장 강한 세 명의 채주가 싸우고 전력이 줄어들면, 그만큼 흑사련의 영향력은 더 커질 테니까.
‘늑대를 물리쳤다고 기뻐하느라 그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지 못하였구나.’
녹의수사는 잠시 풀어졌던 마음을 다시금 다잡았다.
흑사련주뿐만 아니라 그 뒤편에 권태로운 표정으로 서 있는 추혼궁귀, 다른 사파의 종주들도 모두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내게 할 말이 있으시오?”
녹의수사의 물음에, 흑사련주의 입매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좋은 구경을 시켜 줘서 고맙네. 맹주.”
“……!”
순간 녹의수사의 눈동자가 커졌다가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사파무림의 절대자가 녹의수사를 녹림맹주로 인정한 것이다.
작지만 커다란 의미가 담긴 한마디.
녹의수사를 지지하기로 결정한 산적들도 한껏 밝아진 표정이었다.
“……녹림은 흑사련의 배려를 잊지 않을 것이오.”
“별것도 아닌 것을.”
녹의수사는 몸을 돌려 귀령왕과 벽안귀에게도 포권을 취했다.
“녹림의 일로 회합이 늦어지게 되어 미안하오. 허나 잠시만 더 시간을 주실 수 있겠소? 서둘러 남은 일을 정리하겠소.”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흑사련주가 지평선 너머로 비치는 석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회합은 내일 이어 가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곤, 몸을 돌린 흑사련주는 미련 없이 축융봉을 내려갔다. 추혼궁귀가 하품을 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완전히 멋대로군.”
“뭐, 어쩔 수 없지 않소.”
귀령왕과 벽안귀는 잠시 투덜거리긴 했으나, 그들도 별다른 이견은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물러났다.
“……가자.”
다시 가마에 오른 귀령왕이 강시들에게 명령했다. 옥가면 뒤의 시선이 잠시 동안 맹룡휘를 향했으나,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사파의 종주들이 모두 떠나고, 축융봉에는 녹림도들만 남았다.
녹의수사는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를 불러 말했다.
“너희는 나를 녹림맹주로 인정하겠다 선언했다. 그것이 말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라.”
“뭘 더 어떻게 증명하라고?”
“충성 맹세라도 하라는 건가?”
녹의수사는 철두철미했다.
그는 말뿐인 충성 맹세를 받는 대신, 미리 준비해 온 서류를 거령채주와 호문채주의 면전에 내밀었다.
“두 채주는 여기에 수결하라.”
“…….”
“…….”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일그러진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녹의수사가 내민 서류에 수결했다.
그렇게 녹림맹이 재결성된 사실은 공식적인 서류로 남았다.
‘저런 면에서는 맹사부보다 훨씬 낫군.’
백수룡은 그 모습에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관업 종사자로서 서류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는 수긍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 하고 있었지만, 평생을 남들 위에 군림해 온 폭군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제대로 숨기지 못했다.
‘지금은 잠시 숙이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문제를 일으키겠지.’
녹의수사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둘을 죽여 혼란을 감수하는 것보다, 일단은 자비를 베풀어 품고 가는 것이 낫다는 것이 녹의수사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백수룡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사제가 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마땅히 사형이 나서야지.’
축융봉을 내려가는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눈빛은 더없이 싸늘하게 빛났다.
“조금 이따 보자고.”
그 전에, 우선은 귀령왕부터 만날 생각이었다.
* * *
그날 밤.
축융봉을 내려온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는 산의 초입에 임시로 거처를 만들었다.
둘 다 마공으로 큰 부상은 회복했으나, 기력과 내공의 소모가 극심했다.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고 안정을 취했다.
으적으적.
부하들이 잡아 온 멧돼지를 산 채로 잡아먹는 거령채주의 눈에서 살기가 번들거렸다. 그가 피 묻은 이빨을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녹의수사. 맹룡휘. 흑사련주. 전부 죽여 버리겠다……!”
호문채주도 맞은편에서 똑같이 짐승을 산 채로 뜯어먹고 있었다. 그가 노루의 내장을 씹어 삼키고 말했다.
“벽안귀. 귀령왕도 잊으면 안 되지. 특히 귀령왕 그놈……!”
둘 다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부하들조차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멀찍이서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거령채주가 사납게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귀령왕은 우리 편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 자리에서 녹림맹주를 결정하자는 맹룡휘의 제안에 귀령왕이 반대표를 던졌다면, 그들이 녹의수사와 싸우는 일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맹이라 믿었던 귀령왕은 결정적인 순간에 맹룡휘의 제안에 찬성했고, 결국 저들의 의도에 휘말린 두 채주는 모든 것을 잃었다.
“……박쥐 같은 놈이었다. 처음부터 믿어서는 안 되는 거였어.”
호문채주가 이를 뿌드득 갈며 말했다.
그는 귀령왕과 녹의수사 사이에 무언가 거래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순순히 돌아갈 생각이냐? 그럼 우리 세력이 쪼개질 것이 뻔하다. 차라리…….”
거령채주는 길목에 숨어 있다가 녹의수사를 덮치자고 제안했다. 처음 계획을 다시 밀어붙인 것이다.
하지만 호문채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무슨 방법?”
“혈교.”
“……!”
거령채주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본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다행히 부하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혈교를 끌어들이자고?”
“어차피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혈교에서 고수를 지원받아 녹의수사를 죽이고, 우리가 녹림을 양분하는 거다.”
“하지만 혈교는…….”
망설이는 거령채주에게, 호문채주가 송곳니를 비죽 드러내며 말했다. 두 눈에 광기가 가득했다.
“그럼 녹의수사 그 새끼 밑으로 들어갈 테냐?”
“빌어먹을……!”
거령채주도 그것만큼은 죽어도 싫었다.
한 번 무릎을 꿇은 것만 해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앞으로 계속 놈을 맹주로 모시며 살아가야 한다니.
결국 거령채주도 혈교를 끌어들이자는 의견에 동의했다.
“크흐흐. 그래. 한 번 해 봤던 일인데 두 번이라고 못할 것 없겠지.”
“산채로 돌아가면 내가 연락해 보겠다.”
그들이 마귀와 같은 얼굴을 마주 보며 괴소를 흘릴 때였다.
픽.
경계를 서던 바깥에서부터 산적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귀기 어린 바람이 불어와 횃불을 모조리 꺼 버렸다.
““누구냐!””
동시에 벌떡 일어난 두 채주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예상은 했지만……. 네놈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쓰레기였구나.”
저벅. 저벅.
한 사내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밤바람에 휘날리는 풍성한 담황색 머리카락과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
“설마 내려오자마자 혈교를 끌어들이려고 작정할 줄이야. 배신자인 애비들을 그대로 보고 배운 모양이야.”
맹룡휘가 얼음처럼 섬뜩한 안광을 빛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맹룡휘-!”
거령채주가 옆에 있는 도끼를 집어 들고 달려들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맹룡휘가 나타나자, 지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사나운 기세가 폭발했다.
후와아악!
흉악하게 큰 도끼가 바람을 사납게 찢어발겼다. 맹룡휘를 당장 반으로 쪼개 버릴 기세를 보이며 위에서 뚝 떨어지는 궤적이었다.
맹룡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도를 뽑았다.
“참아 주는 것도 이젠 지겹다.”
도집에서 유엽도의 칼날이 슬쩍 올라온 순간, 맹룡휘의 신형이 벼락처럼 거령채주를 스치고 지나갔다.
푸화아악!
거령채주의 오른팔이 도끼와 함께 바닥에 떨어지고, 그 절단면에서 솟구친 핏물이 밤하늘을 검붉게 물들였다.
“끄아아악! 내 팔이이!”
거령채주는 고통에 괴성을 지르면서도 몸을 돌려 맹룡휘를 공격했다. 아직 멀쩡한 왼손을 뻗어서 어떻게든 맹룡휘를 붙잡으려 했다.
‘잡히기만 하면 반드시 죽일 수 있다!’
거령채주는 그렇게 믿었다. 타고난 신력에 혈교의 마공까지 익혔다. 살면서 힘으로는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었다.
녹의수사와 싸웠을 때도 순수한 힘 대결이었다면 결코 패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덥석!
천운이 따랐는지 맹룡휘의 손목이 잡혔다. 그 순간 거령채주의 입가에 가학적인 미소가 맺혔다.
“크하하하! 뼈마디를 잘근잘근 부숴 주마!”
거령채주는 온 힘을 다해 맹룡휘를 끌어당기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손목뼈부터 먼저 부러뜨린 후, 고통스러워하는 놈을 바닥에 깔아뭉개고 완전히 짓이겨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고작 이 정도로 잘난 척한 건가?”
“어, 어째서……!”
전력으로 잡아당겼음도 맹룡휘는 제자리에서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는 거령채주에게 잡힌 손목을 빤히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맹사부의 십 분지 일도 안 되겠군.”
맹룡휘는 도를 집어넣었다. 그러곤 역으로, 자신의 손목을 잡은 거령채주의 손가락을 잡아서 하나씩 뒤로 꺾었다.
우득! 우득! 우드득!
“끄어억……!”
손가락이 하나씩 부러지는 고통에 거령채주의 눈이 뒤집혔다. 급히 손을 풀고 물러나려 했지만, 맹룡휘에게 잡힌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만! 그마아아안!”
“누구 마음대로?”
빠아악!
맹룡휘는 거령채주의 턱을 후려쳐 바닥에 때려눕힌 후, 거구의 몸 위에 올라탔다.
공포에 질린 얼굴을 내려다보는 차가운 눈에서 용암 같은 분노가 이글거렸다.
“내가 사제를 위해서라도 차분하게 행동하려 했거든?”
거령채주는 맹사부를 배신한 제자가 아니라 그 자식이다.
맹사부를 배신한 제자 놈은 이미 똑같이 아들에게 배신당해 죽었다.
그 사실을 되새기며 최대한 냉정해지려 노력했다.
하지만 맹사부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자가 혈교의 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리고 또 한 번 녹림에 혈교를 끌어들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도저히 참기가 힘들더군. 네가 나를 애송이라고 부른 순간부터, 이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맹룡휘의 붉게 물든 안광에서 쏟아졌다. 혈마안이 발현된 것이다.
“하, 항복하겠다! 살려…….”
평생 두려움을 모르고 살았던 거령채주의 몸이 본능적으로 떨려왔다. 이성을 흐리는 마공조차 공포를 없애지 못했다.
아니, 마공을 익혔기에 눈앞의 사내가 더더욱 두렵게 느껴졌다. 만마(萬魔)의 주인이 자신을 굽어보는 듯했다.
“불사야차마공을 사용해라. 그래야 최대한 죽지 않고 버틸 테니까.”
“제발, 제발……!”
백수룡은 거령채주의 애원을 무시하고 그를 부수기 시작했다. 거령채주가 그에게 약속했던 그대로.
콰직! 콰직! 콰지직!
거령채주의 비명은 점점 잦아들더니, 나중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충격에 들썩이기만 했다.
‘맹룡휘가 저런 괴물이었다니!’
호문채주는 거령채주가 당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즉시 몸을 돌려 도망쳤다.
애초에 필요에 의해서 손을 잡았을 뿐, 거령채주에게 지킬 의리 따위는 없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서 경공을 펼쳤다.
그러나 호문채주는 얼마 가지 못했다.
그르르르…….
그르르르…….
사람을 닮았지만 어딘가 다른 존재들이 그를 가로막았다. 기이하게 조금씩 뒤틀린 몸과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불길한 모습이었다.
“기다리거라.”
옥가면을 쓴 사내가 호문채주를 내려다보았다. 가마 위에 앉은 그의 자줏빛 장포가 달빛을 받아 요사스러운 빛깔로 펄럭였다.
그가 맹룡휘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쯧. 저렇게 잘라 버리면 강시로 만들기도 어렵거늘.”
그 모습을 본 호문채주가 악다구니를 썼다.
“귀령왕! 역시 저놈과 한패였구나!”
“……본좌는 누구와도 한패가 아니다. 필요에 의해서 거래를 할 뿐이지.”
귀령왕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강시들이 일제히 호문채주를 공격했다.
그 강시들은 귀령왕이 산 아래에 숨겨 두었던 전력이었다. 녹의수사와 싸움으로 기력이 쇠했다고는 하나, 고작 다섯이서 호문채주를 상대로 밀리지 않았다.
호문채주는 쉽사리 강시들을 떨쳐 내지 못할 듯하자, 귀령왕에게 애원했다.
“귀령왕! 이 강시들을 치워 주시오! 원하는 것은 다 줄 테니……!”
“네가 줄 수 있는 것은 내게 아무런 흥미를 주지 못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말이라도 해 보시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는 호문채주의 등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 끝난 줄 알았지?”
어느새 다가왔는지, 맹룡휘가 바로 등 뒤에 있었다. 옷에 피가 잔뜩 튄 모습. 뺨에도 몇 방울이 튀어 있었다.
“천만에. 이제 시작이야.”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맹룡휘의 목소리에, 호문채주의 얼굴이 공포로 질렸다.
“그놈은 자르지 마라. 나중에 강시로 만들 때 급이 떨어진다.”
귀령왕이 혀를 차며 맹룡휘에게 주의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