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78
478화. 다행히 오늘
지나치게 이른 재회였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이를 줄은 예상치 못했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 절세고수들에게는 마음먹는 순간 서로의 목숨을 노릴 수 있는 간격이었다.
“분명, 너도 크게 다쳤을 텐데…….”
“…….”
백수룡은 다시 만난 옛 제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아무리 빨라도 달포 이상의 시간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친 사도들이 부상을 치료하고, 사태의 진위를 파악하고, 병력을 차출해 청룡학관으로 오는 데 걸리는 시간. 그것도 최대한 빠듯하게 잡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혼자서 온 것이냐?”
백수룡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사호를 확인하자마자 기감을 넓게 펼쳐 봤지만, 주변에선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다.
“…….”
사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살짝 들춘 흑립 아래, 눈빛이 깊은 청년이 무심하게 백수룡을 응시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처음 보는 얼굴일 것이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백수룡은 맹룡휘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때문인지, 사호는 그를 조금 더 가까이 보고자 했다.
스윽.
사호가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백수룡은 저도 모르게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마치 등 뒤에 있는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털을 곤두세운 짐승처럼 사납고 절박하게 으르렁거렸다.
“여기선 안 돼.”
백룡장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싸움이 벌어진다면 반 각도 되지 않아 백무흔이 달려올 것이다. 제자들도 모두 깨어날 것이고, 매극렴이나 남궁수도 달려올지 모른다.
백수룡은 자신의 업보에 그들이 휘말리는 걸 원치 않았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자. 포위당하면 네게도 좋을 게 없어. 그러니 싸우더라도 이곳으로부터 먼 곳에서 싸우자.”
백수룡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사호를 먼 곳으로 유인하려 했다.
그러나 사호는 요지부동이었다. 한 걸음을 내디딘 모습 그대로, 백수룡의 초조한 표정을 유심히 관찰할 뿐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날 따라오너라.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
사호는 고개를 저었다.
따라가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곧바로 싸움을 걸어 오지도 않았다.
‘뭘 원하는 거지?’
백수룡이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 때였다.
스윽.
사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필첩이었다. 미리 할 말을 적어 온 듯, 사호는 그것을 펼쳐 보였다.
따라오십시오.
과거와 비교하면 몰라보게 정갈해진 필체였다. 수어를 익히기 전에 글씨 연습을 많이 한 것일까. 백수룡은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필첩을 바라봤다.
필첩을 다시 품에 넣은 사호는 따라오라는 듯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래.”
백수룡은 사호를 따라 도시의 외곽으로 향했다.
함정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기엔 어딘가 어설펐다.
백수룡의 정체를 알아낸 사호가 굳이 함정을 팔 이유는 없었다. 옛 스승을 궁지로 몰아넣을 방법은 그것 말고도 많았다. 직접 가르쳤기에 알고 있었다. 사호는 외공을 다루기에 커다란 몸집을 지니긴 했으나, 무척 영리한 제자였다. 평소에 그것을 티 내지 않을 뿐이었다.
‘왜 혼자서 온 거지? 언제부터? 내가 혼자가 되기를 기다렸나? 다친 곳은…… 다 나았을까.’
사색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창룡신검마저 백룡장에 두고 나온 상황이었다. 싸움이 벌어진다면 크게 불리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따질 여유가 없었다.
“사람들을 피해서 가자.”
힐긋 백수룡을 돌아본 사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기감이 절세의 영역에 이른 고수들이기에 인기척을 피하는 것은 쉬웠다.
큰길을 피해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반 시진쯤 걸었을까.
목적지 앞에 도착한 사호가 멈춰 섰다.
늦은 밤까지 영업하는, 작고 허름한 주점이었다.
“아이구 헌앙한 청년들이 왔네? 여보! 손님 받아!”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술 드릴까?”
무림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주점의 주인 부부가 살갑게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 * *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승과 제자는 오십 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마주 앉았다.
허름한 탁자 위에는 적당히 시킨 술과 만두, 국수 따위의 안주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
“…….”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사호는 탁자 너머의 백수룡을 빤히 바라봤고, 백수룡은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이며 말을 머뭇거렸다.
“……상처는 아물었느냐?”
백수룡이 어색하게 꺼낸 말에 사호의 눈썹이 꿈틀댔다. 감정적인 동요가 있을 때의 습관. 백수룡은 그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호는 필첩을 꺼냈다. 얇은 붓을 꺼내 정갈한 필체로 묻고 싶었던 말을 적었다.
당신의 죽음을 기억합니다. 어떻게 다시 살아났습니까?
“……다시 살아난 게 아니라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그들 주변으로 기막이 펼쳐져 있었다. 아까부터 둘뿐인 손님을 힐긋거리는 중년 부부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사호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생각했음에도 해결되지 않은, 옛 스승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들.
그래서 그는 돌려 묻지 않았다.
그때, 내 몸에 무슨 짓을 했습니까?
백수룡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혈마에 대한 분노로 그의 목소리가 깊게 가라앉았다.
“……역시 몰랐었군. 네 심장에 혈마의 술법이 걸려 있었다. 그걸 없애기 위해서는 심장에 검이 닿아야만 했다.”
술법?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혈마에 대한 충성심을 강제하는 종류였을 거다. 너희가 어려서부터 받은…… 금제. 그것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이었겠지.”
“…….”
‘금제’라는 단어를 말할 때 백수룡이 지은 표정을, 사호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자신이 성대를 다쳤다고 밝혔던 때 보았던 표정과 비슷했다.
그 탓에, 의문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커졌다.
왜 나를 죽이지 않았습니까?
백수룡은 입술이 하얘지도록 꽉 깨물었다.
사호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을 재촉했다.
심장을 파고들었던 검. 조금만 더 깊었으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옛 스승의 입장에서는 싸움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 순간 자신은 냉정을 잃었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으니까.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왜?
“죽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단호한 목소리였다. 백수룡은 사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어진 사호의 반문에, 그 시선은 갈 곳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백수룡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사호의 반문에서 느껴지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의 옛 제자는 진심으로 묻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죽이는 것 외에, 다른 운명이 존재할 수 있느냐고.
왜 이제 와서야 당신은, 그런 이상한 말을 하는 거냐고.
“…….”
백수룡은 대답을 하지 않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풀벌레 소리가 시끄러운 밤이었다. 탁자 위에 놓인 만두가 차갑게 식어 갔다. 백수룡은 독한 화주를 잔에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이곳에 도착해 당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호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옛 스승을 괴롭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저 의문을 해소하고 싶을 뿐이었다.
지금도 무공을 가르친다고 들었습니다.
청룡신협 백수룡은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객잔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수많은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교를 상대로 싸운 이야기는 물론이고, 청룡학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화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당신의 제자들도 궁금해졌습니다.
“애들을…… 만난 건가?”
백수룡의 표정이 해쓱하게 변했다. 생각만 해도 섬뜩한 일이었다. 사호가 악독한 마음을 먹는다면, 청룡오망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없었다.
멀리서만 지켜봤습니다.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백수룡을 보며, 사호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아는 옛 스승은 약점이 없는 사내였다.
협박이나 인질 따위로는 그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오히려 인질범을 조롱하라고 가르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를 부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시험해 보고 싶었다. 사호는 탁자 위에 놓인 젓가락을 들었다. 그의 시선이 이쪽을 힐끗거리는 주인 부부를 향했다.
평범한 젓가락도 절세고수들의 손에 들리면 무시무시한 무기가 된다. 가벼운 손짓 한 번이면 저들의 목을 꿰뚫을 수 있었다.
“그만.”
사호의 의도를 알아차린 백수룡의 표정이 굳었다. 그 역시 젓가락을 들었다.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무런 죄도 없는 양민들이다. 건드리지 마라.”
방금 전까지는 바람에도 쓰러질 듯 약해 보였으면서, 지금은 서슬 퍼렇게 변한 눈빛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사호는 젓가락을 탁자에 다시 내려놓았다.
확실히, 당신은 변했습니다.
주인 부부는 방금 전까지 목숨의 위협을 당한 사실도 모르고, 음식이 맛이 없나 하고 섭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사호가 다시 붓을 움직였다.
아무에게도 당신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백수룡의 눈이 커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으니까.
“……어째서?”
사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정확히 그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까. 궁금해서, 라는 대답은 어쩐지 궁색하게 느껴졌다.
당신도 내 정체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십시오. 그럼 누구도 죽지 않을 겁니다.
“……그리하마.”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약속이었다. 서로의 정체를 알리지 않고 침묵하는 것.
또한.
한동안 당신을 지켜보겠습니다. 죽일지 말지 결정은 그 후에 하겠습니다.
“…….”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말을 하는 사호의 의도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백수룡은 옛 제자와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자체가 꿈만 같았다.
“그럼 계속 이 도시에 머물 생각이냐?”
사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백수룡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백룡장에 방이 몇 개 남는데……. 아니, 아니다.”
백수룡은 사호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는 말을 흐렸다. 그리고 한동안 대화가 뚝 끊겼다.
“……나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렇게 입을 뗐지만 뒷말이 나오진 않는지, 백수룡은 남아 있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다시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머뭇거리는 백수룡의 숨결에서 짙은 주향이 배어 나왔다.
“……나를 원망하느냐?”
붓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호는 물끄러미 필첩을 내려다보다가, 붓을 옆에 내려놓고 수어로 대신 대답했다.
변덕이었다.
옛 스승은 수어를 모른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백수룡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행히 오늘 배운 말이구나.”
사호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그제야 그는 백수룡이 품 안에 서책 한 권을 품고 있음을 의식했다.
설마 저 안에 있는 책이…….
“다음에는 더 많이 배워 오마. 필첩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게.”
백수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미안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내가 먼저 일어나야겠다. 팔불출 부친의 기척이 느껴져서 말이지.”
백무흔의 기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들이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결국 직접 찾으러 나선 모양이었다.
“내게 묻고 싶은 게 있거든, 아무 때나 찾아와도 된다.”
사호는 떠나는 백수룡을 붙잡지 않았다. 주점 밖에서 “수룡아!” 하는 목소리와 변명하는 목소리, 티격태격하며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백수룡이 주점을 떠난 후에도, 사호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
그는 옛 스승이 앉아 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와 나눈 대화를 하나씩 복기했다.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다.
몇 가지 궁금증은 해소되었지만, 오히려 더욱 궁금해진 것들도 있었다.
“다 큰 청년들끼리 싸우기라도 했나 보오? 표정들이 심각하던데.”
주점의 주인 내외 중 남편이었다. 그가 그릇을 치워도 되냐고 묻자, 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 혹시 말을 못 해요?”
“…….”
이번에는 주인 내외 중 부인이 말을 걸어 왔다.
억척스러운 인상의 중년 여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내 친척 중에도 말 못 하는 애가 하나 있거든. 젊은 청년도 고생이 많았겠어.”
사호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품에서 금전을 꺼내 건네자, 주인 부부가 식겁을 했다.
“아이고. 우리는 이런 큰돈에 거스름돈 못 줘!”
“꼴랑 만두에 소면, 술 한 병 시켜 놓고 금전을 주는 사람이 어딨어!”
주인 부부의 타박에, 사호는 금전을 그냥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잔돈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그대로 주점을 나서려고 하자, 주점 주인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미안해서 어찌 그냥 보내란 말이오? 밤도 깊었겠다, 제일 좋은 방으로 내어줄 테니 자고 가시오. 돈은 더 안 받을 테니까 걱정 말고.”
그의 아내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렇게 해요. 딱 봐도 타지 사람 같은데. 다른 곳에서 자려고 해도 이 시간에는 장사하는 데가 별로 없어요.”
사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따로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잠시 후, 사호는 주인 내외가 내어준 방에 들어가 몸을 뉘었다.
“…….”
낡고 허름하지만 깨끗한 침상에 누워, 그는 옛 스승에게 했던 수어를 허공에 다시 해 보였다.
-당신을 원망합니다.
어째서 그 말에 스승의 표정이 밝아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