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80
480화. 여긴 설마?
“……백수룡.”
“왜?”
“네 사무실 수리가 끝났다는 소식. 듣지 못했나?”
“들었는데? 그게 뭐?”
쿵!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친 남궁수가 무시무시하게 번득이는 금안으로 백수룡을 노려봤다.
“그런데 왜 당연하다는 듯이 내 사무실로 출근하는 거지?”
웬만한 사람은 오금이 저려서 마주 보지도 못할 눈빛.
그러나 백수룡은 익숙하다는 듯 뻔뻔하게 씩 웃으며 걸어와선,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서류 더미를 남궁수 맞은편에 쿵, 하고 내려놓았다.
“그야, 여기가 일하기 더 편하니까?”
파지직……!
남궁수의 손끝에서 뇌강이 튀자, 백수룡은 손바닥을 들어 그를 진정시켰다.
“워워, 이번엔 네 사무실을 태워 먹으려고? 그럼 내 사무실로 함께 이사가야 할 텐데 괜찮겠어?”
“……!”
그 너저분한 사무실에 발을 들일 생각만 해도 끔찍했기에, 남궁수는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인내심과 자제력을 강조한 남궁세가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백수룡의 침입을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남궁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납득이 갈 만한 이유를 말해라. 이곳이 편하다는 둥 헛소리를 계속 지껄이면 당장 쫓아내겠다.”
그러자 백수룡도 장난을 관두고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남궁수의 사무실이 편하다는 이유도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천무제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 앞으로 우리끼리 정보를 계속 공유해야 하는데, 효율적으로 일하려면 서로 사무실에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게 낫지 않겠어?”
“…….”
두 사람과 같은 고수에게 사무실의 거리는 지척이나 다름이 없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조차 최소화하자는 것이 백수룡의 의견이었다.
물끄러미 백수룡을 바라보던 남궁수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불과 얼마 전에 천무제를 포기하자느니 어쩌느니, 그런 헛소리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그랬던가?”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이며 능청을 떨었다.
사호는 백수룡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즉, 다른 사도들은 아직 그의 정체를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혈교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위험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백수룡은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같이 하면 돼. 천무제 준비와 혈교와 싸울 준비까지.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무공을 가르치는 거니까.”
백수룡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결연한 각오에, 남궁수는 영 못마땅하단 표정으로 대꾸했다.
“앞으로도 본인의 몸을 함부로 굴리겠다는 선언처럼 들리는군.”
“……하여간 사무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아까우니까, 천무제 끝날 때까지는 사무실을 같이 쓰는 게 어때?”
남궁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마지못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틀린 말은 아니군. 시간은 확실히 절약되겠지.”
사실상의 동의였다. 백수룡의 입가에 ‘그럴 줄 알았어.’ 하는 미소가 맺히자, 남궁수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 네가 내 사무실에 빈대 붙는 건 올해까지만이다.”
“더 있으라고 부탁해도 안 있을 거거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백수룡은 가져온 서류들을 자리에 펼쳤다. 그러곤 익숙한 모습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
남궁수는 맞은편에 앉은 백수룡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백수룡이 피치 못하게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남궁수는 두 사람분의 일을 대부분 도맡다시피 했다.
반송장이 되어서 돌아온 백수룡만큼은 아니었지만, 남궁수도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다.
피로가 누적된 탓에, 눈 밑에는 희미하지만 그늘이 질 지경이었다. 백수룡이 백룡장으로 돌아와 요양을 하는 중에도 그는 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오늘 막 업무에 복귀한 백수룡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오늘은 수업이 있는 날도 아닌 데다가, 급한 일은 대부분 남궁수가 이미 처리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오. 이거 서류 정리 깔끔하게 해 놨는데?”
“…….”
지금도, 백수룡은 지금까지 남궁수가 작성한 서류를 살피고 검토하고 있었다. 남궁수가 생각하기에는 굳이 두 번씩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저보다 중요한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예를 들면,
“마침 잘됐군.”
남궁수가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자, 백수룡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잘되다니? 뭐가?”
남궁수는 기다렸다는 듯 두툼한 서류를 서랍에서 꺼내 내밀었다. 웬만한 서책의 두께를 가뿐히 넘는 양이었다.
“안 그래도 손이 부족했는데, 네가 이 일을 맡으면 되겠군.”
남궁수가 넘긴 서류의 맨 앞에 적힌 글귀를 읽은 백수룡이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올해부터 천무제 참가 조건에 교우활동 평가가 들어간다는 건 기억하고 있나?”
“물론 기억하지.”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부터 바뀐 천무제 참가 조건이었다.
교양 평가, 교우활동 평가, 협의 평가. 세 조건의 최소 기준을 넘어선 학생만이 천무제에 참석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바로 그 점수 때문에 헌원강이 동아리 연합 회장 선거에도 나가지 않았던가?
“교우활동 평가에 가장 중요한 동아리 활동 보고서다. 각 동아리 회장들과 담당 강사들이 제출한 것으로, 이 보고서들의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걸 일일이 다?”
백수룡은 눈앞에 쌓여 있는 방대한 분량에 표정이 굳었다.
청룡학관의 학생들 중 대부분은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두 개 이상의 동아리에 가입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즉, 수십 개가 넘는 동아리가 활동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 내역을 전부 확인하고 감사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말이었다.
“활동 내역에 허위사실이 기재돼 있는지, 지출 내역에 문제가 없는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하도록. 문제가 발견된 동아리 학생들은 교우활동 점수에서 감점 처리할 것이다.”
남궁수의 빠르고 단호한 말투에 백수룡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이걸 나 혼자 하라고?”
남궁수는 ‘그럼 이 쉬운 걸 둘이서 하나?’라는 의문이 섞인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분명 평소와 똑같은 얼굴인데, 백수룡은 묘하게 약이 오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걸 왜…….”
나한테 떠넘기냐고 따져 물으려다가, 그 순간 남궁수의 얼굴 위에 떠오르는 ‘이런 몰염치한 자가 있나?’라는 표정을 보고 할 말이 쏙 들어갔다. 남궁수. 생각 이상으로 표정 연기의 달인이었다.
‘쩝…….’
생각해 보면, 남궁수가 지금까지 백수룡의 일을 대신 떠맡아서 해 준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결국 백수룡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남궁수가 내민 서류 더미를 인계받았다.
“언제까지 하면 되는데?”
“사흘. 그 안에 모든 동아리에 직접 찾아가 확인하고 오도록.”
“……장난해?”
“뭐가 장난이라는 거지? 내가 지난 사흘 동안 처리한 서류의 양이 그보다 많을 텐데.”
“…….”
몇 마디 말로 백수룡의 입을 닫아 버린 남궁수였다.
더 따져 봤자 염치없는 놈이 될 뿐이라는 걸 깨달은 백수룡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면 될 거 아냐. 돌아오자마자 아주 일복이 터졌구만.”
백수룡이 구시렁거리며 사무실을 나가고,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남궁수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흠.”
남궁수는 사무실 한편에 놓인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사무실에서 다도의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 * *
“그 자식. 내가 돌아오면 떠넘기려고 제일 귀찮은 일을 미루고 있었던 게 틀림없어.”
백수룡은 남궁수에게 인계받은 서류를 휘리릭 넘기며 연신 구시렁거렸다. 표정은 건성이었지만, 눈은 빠르고 정확하게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 태연하게 있어도 되는 것이냐?]문득 들려온 창룡신검의 걱정이 담긴 목소리에, 백수룡이 속으로 되물었다.
‘무슨 말이야?’
[……너의 옛 제자 말이다. 도시 안에 혈교의 사도가 숨어 있는데, 이렇게 태평하게 있어도 되느냔 말이다.]지난밤, 백수룡이 사도와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창룡신검은 ‘앞으로는 한시라도 검을 떼어놓지 말거라!’라며 밤새 잔소리를 쏟아냈다.
백수룡이 하나씩 설명해서 겨우 진정시켜 놓았지만,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동향이라도 파악해 둬야 한다. 아무리 혈마의 술법이 풀렸다곤 해도, 사도들은 평범한 이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자들이 아니더냐.]‘감시라도 붙이자고? 천하의 누가 들키지 않고 그 녀석을 감시할 수 있는데?’
사도는 현세대의 십존보다 윗줄에 있는 절세고수들이었다. 모르게 감시를 붙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사호가 작정하고 기척을 숨기면 나도 찾기 힘들어.’
[내 술법이라면…….]“하지 마.”
백수룡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사호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절세고수는 기를 느끼고 다루는 데 극히 민감하다.
당장 백수룡도 웬만한 술법은 쉽게 간파할 수 있으며, 바로 알아차리진 못하더라도 이상함을 느낄 수는 있었다.
물론 천하제일의 술법사인 현천신녀의 술법이라면 들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백수룡은 만에 하나라도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해치지 않고 지켜보겠다고 했어. 나는 그 말을 믿어 볼 생각이고,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어.”
형산에서는 운이 좋았다. 함께 싸워 준 사파의 종주들이 곁에 있었고, 백수룡의 정체가 심리적으로 사호를 크게 동요시키기도 했다.
수십 년 만에 갑자기 나타난 옛 스승 앞에서, 사호는 냉정하게 싸우지 못했다.
반면 백수룡은 언젠가는 옛 제자를 만나리라 각오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상대가 펼치는 무공 역시 알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그 근간은 자신이 가르친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해서야 겨우 이길 수 있었지.”
다시 싸우게 된다면 이번에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도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너무 걱정하지 마. 나도 이런저런 생각이 있으니까.”
백수룡은 한숨을 내쉬는 창룡신검의 검파를 툭툭 두드렸다. 매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컸다.
“선생님! 돌아오셔서 기뻐요!”
“부상당하셨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으세요?”
“못 본 사이에 더 잘생겨지신 것 같은데요?!”
다시 출근한 백수룡을 발견한 학생들이 다가와서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 밝은 얼굴이었다.
벌써 일 년 가까이 청룡학관 강사로 일하면서, 백수룡은 이제는 꽤 많은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그의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오냐. 나중에 수업 때 보자.”
백수룡은 손을 흔들어 학생들의 인사를 받아 주며 의 제일 위에 적혀 있는 동아리 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동아리 연합 건물에서도 상당히 외곽에 위치한 곳.
동아리 방 앞에 선 백수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가 파파락지(波波樂志)가 맞나?”
[……문 너머로 음침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청룡학관에 술법 동아리가 있더냐?]백수룡이 느끼기에도 문 너머로 묘하게 음침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파파락지의 동아리 활동 보고서를 읽었다.
“여기 적혀 있기론, 그림 그리는 동아리라고 되어 있는데?”
만약 활동 보고서에 적힌 것과 동아리의 실체가 다르다면 이건 꽤나 큰 문제였다. 백수룡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설마 문제 있는 동아리는 아니겠지?’
다행히 내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백수룡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백수룡 선생님이다. 문 열어.”
“…….”
“…….”
잠시 거짓말 같은 적막이 흐르고.
동아리 방 안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빨리 다 치워!”
“하, 하필이면!”
“그건 창문으로 던져!”
“하지만 이것만큼은…….” 따위의 급박한 목소리들이었다.
“안에서 뭔 수작을 꾸미는 거야?”
콰앙!
백수룡이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자, 파파락지 동아리의 실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여긴…….”
혈교의 비밀기지인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놈들이 이렇게 깊숙한 곳에 침투했다고?
동아리방에 수십 개도 넘게 걸려 있는 자신의 용모파기를 본 순간, 백수룡은 그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소소?”
동아리 방 한쪽에, 낭패한 표정의 당소소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