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83
483화. 기특하네
동아리의 이름에 걸맞게, 어두컴컴한 지하 동아리실에선 실제 살수들의 훈련장을 방불케 하는 살벌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끄으윽…….”
“다, 다리가…….”
살무연의 간부들 중 누구도 이런 훈련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는 백수룡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쓰읍. 균형 제대로 못 잡고 흔들리지? 처음부터 다시 할까?”
“아닙니다아-!”
검은 야행복 차림의 살무연 간부들 전원이 뒷짐을 진 채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 상태로 한쪽 다리를 높이 들고 있었는데,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은지 다들 비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필사적으로 균형을 잡아야만 했다. 머리와 발이 닿은 곳을 제외한 바닥 전체에 암기들이 잔뜩 깔려 있었으니까.
“살수 무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심과 자제력이다. 내가 오늘 너희를 진정한 살수 무공의 세계에 입문시켜 주마.”
그들 앞에는 흑룡편을 어깨에 걸친 백수룡이 눈을 희번덕이고 있었고, 그 옆에는 당소소가 살무연의 이중장부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예상대로네요. 동아리 지원비로 신청해서 구매한 암기들 대부분은 암기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저급품이에요. 야행복과 복면도 마찬가지고요. 심지어 이건 추종향이 아니라 버섯가루네요?”
추종향이라 적힌 약병을 열고 냄새를 맡아 본 당소소가 단숨에 그 성분을 파악해 내자,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살무연 회장의 다급한 목소리로 변명했다.
“가짜 추종향은 저희도 속아서 산 겁니다! 떠돌이 약장수가 싸게 팔길래…….”
“애초에 추종향을 왜 떠돌이 약장수한테서 싸게 사셨을까?”
“그건…….”
“보나 마나 싼값에 후려치고 남은 돈은 착복하려고 그런 거겠죠.”
당소소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냉소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암기와 독으로 유명한 사천당가의 직계답게, 이런 부분에서는 더욱 깐깐한 그녀였다.
“게다가 그렇게 착복한 돈으로 음주가무를 즐기셨네요?”
당소소의 시선은 살무연의 동아리방 구석에서 찾아낸 술병으로 향했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살무연 간부들 주변을 빙 두르고도 남을 정도의 숫자였다.
백수룡은 살무연 간부들 앞에 쪼그려 앉으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자알들 한다. 어린놈들이 벌써부터 삥땅 치는 거나 배우고 말이야. 게다가 동아리 활동 내역까지 전부 날조해?”
“…….”
벌써 이 각째 이러고 있으니, 다들 온몸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변명할 말은 없는지 눈동자만 굴리면서 백수룡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까지 동아리 지원금의 사용 출처가 불명확한 경우는 제법 많았지만, 살무연은 그 정도가 유독 심했다. 웬만큼 융통성을 발휘하더라도 넘어가기 힘든 수준이었다.
동아리 지원금으로 나온 돈은 대부분 간부들의 전낭으로 들어갔으며, 동아리 활동이라고 보고서에 적힌 것 역시 전부 거짓이었다.
겉멋만 잔뜩 든 녀석들이 살수 무공을 연구하네 어쩌네 하면서, 학관의 예산만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관행처럼 굳어진 부패.
그러나 백수룡과 당소소에게 걸린 이상, 오늘부로 간부들의 주머니가 두둑했던 시절과는 안녕이었다.
“동아리 활동의 건전성, 더 나아가 청룡학관의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너희들의 정신을 개조해 주겠다. 내 지도방식에 불만 있는 사람 있나?”
““없습니다…….””
결국 무림에서는 무공이 깡패고 명성이 권력이었다.
무림십존으로 명성을 떨치는 백수룡에게 대들 수 있는 깜냥을 가진 학생은 최소한 살무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회장. 기상.”
“넵!”
백수룡의 부름에 살무연의 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삥땅 친 지원금은 책임지고 전부 뱉어내라.”
“알겠습니다!”
“그럼 살무연 회장님. 여기에 수결 좀 해 주실래요?”
옆에서 당소소가 기다렸다는 듯 무슨 무슨 조항이 잔뜩 적힌 서류를 내밀자, 살무연 회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 둘은 악마다……!’
청룡신협과 냉혈독수.
이 둘의 조합은 지금까지 겁도 없이 동아리 지원금을 흥청망청 사용해 왔던 동아리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왜? 막상 수결하라니까 싫어?”
흑룡편으로 손바닥을 툭툭 치는 백수룡을 보고 대체 누가 싫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 하겠습니다. 내용만 다 읽고…….”
“왜? 내가 니들처럼 사기라도 쳤을까 봐?”
“아니요…….”
결국 살무연 회장은 울고 싶은 심정으로 내용도 제대로 읽지 못한 서류에 수결했다. 그 서류는 위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당소소의 품으로 들어갔다.
“그걸 왜 네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보는 살무연 회장에게, 백수룡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
“뭐하나? 수결했으면 곧바로 다시 대가리 박는다. 실시.”
“시, 실시!”
그로부터 약 반 시진 후, 살무연의 간부들은 전신에 뭉툭한 암기가 반쯤 박힌 채 혼이 나간 모습으로 회원들에게 발견되었다.
살무연을 나서며, 당소소는 흡족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살무연이 마지막이에요. 이제 부패 동아리는 더 이상 없다고 보셔도 돼요.”
속전속결이었다. 하루도 안 되어서 문제가 있는 동아리를 둘이서 전부 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쟤들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지원금을 자기들 마음대로 착복하는 동아리 회장들. 언젠가 공론화시켜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는데, 마침 올해부터 천무제 규정이 바뀌어서 동아리 감사를 한다고 하지 뭐예요? 바뀐 규정, 전 아주 마음에 들어요.”
당소소는 평소보다 훨씬 더 신이 나 보였다. 단순히 백수룡과 함께 다닐 수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너…….”
그 모습을 보며, 백수룡은 처음부터 당소소의 계획에 말려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속이 아주 시원해 보인다?”
“물론이죠!”
백수룡을 홱 돌아보는 당소소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껏 학생회 간부 입장에서, 아무런 명분도 없이 부패한 동아리들을 건드릴 수는 없었거든요. 상당한 반발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당소소는 지난 몇 년간 청룡학관의 동아리 문화가 점점 부패해 왔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천무제에서 십 년간 최하위를 해 오며 쌓인 청룡학관의 뿌리 깊은 패배의식은 동아리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고, 함께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의욕을 잃고 놀자판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무공을 수련하는 학생들을 바보처럼 취급하는 분위기마저 생겼었다고.
백수룡은 처음 듣는 이야기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건 또 몰랐네.”
“선생님이 오신 뒤로 많이 바뀌긴 했는데, 아직 몇 군데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저희가 오늘 싹 털어 버렸지만요.”
당소소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하자, 백수룡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모았다.
“날 제대로 이용했구만?”
“원래는 남궁수 선생님에게 슬쩍 정보를 건네드릴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남궁수 선생님은 좀…… 원리원칙대로 하시려는 면이 있잖아요?”
“걔가 좀 답답하긴 하지.”
백수룡은 십분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당소소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더 잘된 셈이죠. 저는 선생님의 방식을 더 좋아하거든요.”
당소소는 활짝 웃으며 백수룡의 손에 들린 흑룡편을 가리켰다. 저게 없었으면 시간이 두 배는 더 걸렸을 것이다.
“게다가 청룡신협이라는 최강의 아군이 옆에 있는데, 누가 제게 따지고 들겠어요?”
학생회의 간부로서는 동아리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지만, 동아리 감사에 나선 백수룡에게 협조한다는 식으로는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었다.
실제로 누구도 당소소에게 화를 내지 못했다. 바로 옆에 백수룡이 있었으니까.
“하…….”
백수룡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계획을 파파락지에서 자신과 마주친 순간부터 생각해 내다니.
‘똑똑한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백수룡은 당소소의 지략가적인 면모에 새삼스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동아리는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는 곳들이에요. 이제 천천히 둘러봐도 될 것 같아요.”
백수룡은 를 휘리릭 넘기며 걸어가는 당소소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예전과는 달리,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아진 그였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선생님이 저한테요?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돌아보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당소소에게, 백수룡은 조금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왜 청룡학관에 입관했지?”
“……아.”
당소소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처음에는 놀란 것처럼 보이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가문에서 전략적으로 내린 판단이었어요.”
“전략적?”
예상치 못한 대답에 백수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이 녀석도 뭔가 사연이 있나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오대학관에 한 명씩, 가문의 직계를 입관시켜 미리 다양한 인맥을 쌓아 두는 게 본가의 전략이거든요.”
당소소는 사천당가의 직계이기는 했지만 소가주 자리와는 거리가 멀었고, 그래서 천무학관을 제외한 사대학관 중 한 곳에 입관해야 했다.
솔직히 말해서, 청룡학관에 입관한 이유는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해서는 무공에 대한 재능이 조금 뒤처지는 편이어서라고 했다.
“처음에는 사실 내키지 않았어요. 오대학관 중에 제일 명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가문에서 절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당소소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며 반달을 그렸다.
“제가 처음 학생회에 들어갔을 때 학생회장은 방백현 선배였거든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정말 열심히 노력하던 선배였어요. 비관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어떻게든 학생회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솔직히 잠깐 반한 적도 있었는데. 앗, 이건 비밀이니까 지켜 주셔야 해요.”
백수룡과 함께 걸으며, 당소소는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지금껏 백수룡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평범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조금 신기해서, 백수룡은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일 년이 지나서 보니까 독고준 선배도 똑같더라고요. 올해는 다를 거라면서, 내년에는 달라질 거라면서 격려해 준 선배들, 함께하는 동기들. 인맥을 쌓으려고 들어온 학생회였는데…… 어느샌가 저도 뭔가 힘이 돼 주고 싶어졌어요.”
학생회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당소소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지금은 오히려 청룡학관 소속이라는 사실이 더 좋아요. 청룡학관에 오지 않았으면, 저도 이렇게까지 뭔가를 열심히 하려고 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백수룡은 어쩌면 이게 냉혈독수라 불리는 당소소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이 녀석을 너무 피하기만 했는지도 모르겠군.’
조금은 반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면, 잘 몰랐던 학생의 새로운 모습을 알 수 있었는데.
“……그러니까 선생님은 저희에게 기연이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제가 더 좋아하는 거고요.”
스스로 말을 해 놓고도 조금 쑥스러운지, 당소소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흠흠. 하여간 제가 선생님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뭔데?”
당소소가 허리에 두 손을 척 올리더니, 장난스럽게 웃으면서도 눈빛만큼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청룡오망 말고도 많다는 거예요. 천무제에서 활약할 수 있는 청룡학관의 이무기들이요.”
그 또래의 소녀다운, 치기 어리면서도 당당한 말.
“그래. 네 말이 맞다.”
백수룡은 그 말을 인정한다는 듯, 피식 웃으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뻗어 당소소의 머리를 가볍게 툭툭 쳐 주었다.
“기특하네.”
순간 당소소의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백수룡은 평소 청룡오망에게 하듯 한 행동이었지만, 당소소에게는 망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으니까.
“……나 평생 머리 안 감을 거야!”
피식 웃은 백수룡이 몸을 돌려 먼저 걸어가자, 당소소가 그 뒤를 따라붙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중에 또 이렇게 칭찬해 주실 건가요?!”
……눈빛이 초롱초롱을 넘어 섬뜩하게 번뜩이는 걸 보니, 평범하다는 평가는 아무래도 보류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전처럼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이제 나머지 동아리도 보러 갈까?”
“저한테 전부 맡기세요! 선생님의 실적을 위해서라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붙일 테니까요!”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지나치게 의욕을 불태우며 앞서가는 당소소의 모습에, 백수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