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84
484화. 어째서?
동아리를 전부 뒤집어 놓아서라도 백수룡에게 칭찬을 받고야 말겠다던 당소소의 그릇된 야망은, 소문을 듣고 달려온 독고준에 의해서 막을 내렸다.
“부회장-!”
사자후에 가까운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독고준이 저 멀리서 나타나자, 당소소의 표정이 못마땅하게 찌푸려졌다.
“쳇, 하필이면 이런 때 방해하다니…….”
“조금 전에 학생회 활동에 대해서 애틋하게 이야기할 때랑 분위기가 너무 다르지 않아?”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당소소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작게 쉬었다.
“어떻게 항상 좋기만 하겠어요? 특히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로 저한테 뭐라고 할 땐, 정말 답답이가 따로 없다니까요.”
“부회장! 학생회에 신고가 접수됐다! 동아리 회원들을 상대로 협박, 공갈, 심지어 용도를 알 수 없는 각서까지 받아 냈다면서!”
하나하나가 ‘별것 아닌 일’이 없었지만, 당소소는 아쉬운 표정으로 백수룡을 돌아볼 뿐이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서류를 모두 백수룡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일단은 흥분한 학생회장부터 진정시켜야겠네요. 선생님. 다음에 뵈어요.”
당소소의 눈에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이대로 있다가 독고준에게 잡히면 상당히 귀찮아질 것이기에 일단은 자리를 피할 생각이었다.
휘익!
땅을 박찬 당소소가 독고준의 반대 방향으로 멀어졌다. 가벼운 몸에 어울리는 뛰어난 경공이었다.
뒤늦게 생각난 듯, 백수룡은 당소소가 도망치는 방향을 향해 외쳤다.
“나랑 약속한 거 잊지 마라!”
벌써 꽤 멀어진 거리에서 “네에-!” 하고 대답하는 당소소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 백수룡의 앞까지 달려온 독고준은 급하게 멈춰서며 포권을 취했다. 이 와중에도 예의가 바른 학생회장이었다.
“백수룡 선생님. 쾌차하셔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무탈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백수룡은 대충 인사를 받아 주며 손을 휘휘 저었다.
“됐으니까 얼른 쫓아가 봐. 인사는 수업 시간에 하면 되니까.”
“……예. 그럼 사안이 급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독고준은 바닥을 쾅! 소리 나게 찍더니 단숨에 당소소를 향해서 질주했다.
“당소소오-! 거기 서지 못해!”
그를 호위하기라도 하듯, 학생회의 쌍둥이인 유곤과 유건이 좌우에서 넓게 포위망을 펼치며 독고준과 함께 당소소를 뒤쫓았다.
사람을 쫓는 것보단, 맹수를 몰이 사냥하는 사냥꾼들의 움직임에 가까웠다. 심지어 여러 차례 합을 맞춰 본 듯 익숙했다.
“……너희도 고생이 많다.”
평소 청룡오망에 가려지고 학생회의 지낭이라는 위치 때문에 티가 안 나서 그렇지, 당소소도 만만치 않은 망나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백수룡이었다.
“그나저나 많이들 늘었네.”
경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당소소는 물론이고, 독고준과 쌍둥이의 실력도 몰라보게 늘었다는 것을.
그만큼 천무제에 대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백수룡은 당소소가 넘겨주고 간 서류를 훑었다.
“나머지는 혼자서 확인해 봐야겠군.”
백수룡은 가벼운 걸음으로 걷다가, 문득 석양이 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 질 녘의 하늘. 구름이 주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학관 건물 중 하나로 향하고 있었는데, 지붕 끝에 그림자 하나가 언뜻 비친 것 같았다.
“……혼자는 아닐지도.”
피식 웃은 백수룡은 다시 몸을 돌렸다.
아직 둘러봐야 할 동아리가 꽤나 남아 있었다.
* * *
“하아압! 차핫!”
목형우는 구슬땀을 흘리며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쉬지 않고 얼마나 창을 휘둘러온 건지, 그가 서 있는 주변의 바닥이 땀으로 흥건할 정도였다.
“……선배님. 저희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함께 수련하던 창술 동아리 후배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내심 질린다는 표정으로 목형우를 바라봤다.
“후우……. 어어, 들어가.”
잠시 창을 멈춘 목형우는 호흡을 정리하며 후배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는 소규모 창술 동아리의 회장이었다. 이 학년 때 설립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수련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형우 학생. 언제까지 하려고요?”
고맙게도 올해부터 동아리 담당 강사를 맡아 준,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와 수련을 도와주는 악연호가 다가와 물었다.
목형우가 최근 들어서 더 무리하는 것 같아, 그의 몸 상태가 걱정되는 듯했다.
“먼저 들어가십시오. 전 조금 더 하다가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목형우가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 악연호가 장난스럽게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나이도 생각해야죠. 너무 무리하다가는 진짜 관절에 문제 생긴다니까요?”
“하핫! 서른이면 아직 청춘입니다! 정말 조금만 더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하여튼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알겠습니다. 너무 늦게까지 하진 마세요.”
“예!”
동아리실에 혼자 남은 후에도, 목형우는 수련과 휴식을 반복했다. 무릎과 손목 관절이 뜨거워질 때까지 창을 휘두르고, 조금 무리한다 싶으면 운기조식을 취했다.
“후우우…….”
청룡제가 끝나고 얼마 후, 백수룡은 목형우를 불러 비급을 하나 건네주었다.
-육합창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부지런히 익혀 봐.
-감사합니다, 선생님!
낙성창법(落星槍法).
별을 떨어뜨린다는 대단한 이름과는 달리, 혈교의 무인들에게는 기본공에 가까운 창술을 백수룡이 적당히 손본 무공이었다.
다행히 낙성창법은 목형우와 궁합이 잘 맞았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초식은 군에서 무공을 배운 그에게로 쉽게 흡수되었고, 백수룡이 다듬어 준 초식은 성명절기로 삼기에 충분했다.
그 때문인지 낙성창법을 익히기 시작한 이후로, 목형우는 더욱 필사적으로 수련했다.
“……한 번만 더 하자.”
끈기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해 온 서른 살의 무인은 창을 휘두르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굳은살이 벗겨져 피가 나고, 그 위로 새로운 굳은살이 생길 때까지 휘둘러도 질리기는커녕 점점 빠져들었다.
평생 무공에 갈증을 느껴 왔던 그에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잠시라도 창을 놓고 싶지 않았다. 체력만 허락한다면 평생 창만 휘두르고 싶을 정도로.
털썩.
“하아……. 하아아…….”
아무도 없는 동아리실 바닥에 지쳐 탈진해 드러누운 와중에도, 목형우의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즐겁다.”
평생토록 이렇게 즐거운 경험은 처음이었다.
목형우에게 낙성창법은 절세신공이나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수련한다면 별을 떨어뜨리지는 못해도, 언젠가 별을 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금만 더 빨리 시작했다면…….’
목형우는 고개를 저어 비관적인 생각을 털어냈다.
남들과 비교해 봤자 드는 것은 자괴감뿐이었다. 옆에서 누가 어떤 속도로 달려가든, 자신만의 속도로 무인의 길을 걷기로 하지 않았던가.
“한 번만 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주문처럼 외우며, 목형우는 비틀거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모든 것을 쥐어짜 내어 낙성창법의 모든 초식을 한차례 펼친 후에 수련을 마칠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자세는 좋은데, 힘이 너무 들어갔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놀란 목형우가 돌아섰다.
“……백수룡 선생님?”
대체 언제 왔는지, 백수룡이 차분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시간에는 왜…….”
목형우는 땀에 절은 무복 차림으로 눈을 끔뻑였다. 헛것을 본 게 아닌지 손등으로 눈을 슥슥 비비기까지 했다.
“동아리 활동 관련으로 조사할 게 있어서 왔는데…… 그건 됐고.”
필수적인 비품 외에는 보이지 않는 허름한 동아리실을 대충 둘러본 백수룡은 들고 온 서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세나 다시 잡아 봐. 한번 봐 줄 테니.”
“아, 예!”
목형우는 즉시 자세를 잡았다. 얼마나 많이 같은 동작을 반복했는지,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꿀꺽.
목형우는 백수룡 앞에서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뛰어난 무공을 알려주신 선생님을 실망시킨다면 그보다 면목이 없는 일도 없었다.
“……음. 기초는 확실히 좋네.”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이자, 목형우의 표정에도 안도감이 퍼졌다.
“감사합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조금은 보상받은 것 같아서 입가에 환한 웃음이 피었다. 백수룡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더니, 본격적으로 목형우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천천히 초식을 펼쳐 봐. 힘 빼고 정확한 자세로.”
“……예!”
목형우는 백수룡이 시킨 대로 천천히 초식을 펼쳐 냈다. 우직하고 거칠지만,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창을 움직였다.
“…….”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습을 지켜본 백수룡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목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창 이리 줘 봐.”
창을 건네받은 백수룡은 무게중심을 잠시 가늠하더니, 목형우가 펼쳤던 낙성창법의 초식을 직접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허어…….”
목형우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이 펼쳤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깔끔하고 완벽한 투로.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활짝 열어 둔 창문으로 흘러들어와 벽에 비친 노을이, 창을 휘두르는 백수룡의 그림자에 따라 이리저리 너울졌다.
목형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것이야말로 완성된 낙성창법의 정수이자, 목형우가 꿈에 그리는 완성된 무인의 모습이라는 것을.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눈물마저 차오를 정도였다.
“오랜만이라 좀 어색하군.”
중얼거리며 시연을 마친 백수룡은 넋이 나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목형우에게 말했다.
“제대로 봤냐?”
“……그, 보긴 다 봤는데…….”
목형우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방금 전 백수룡의 시범은 그 수준이 너무 높아서, 목형우는 절반도 제대로 눈에 담지 못했다.
백수룡은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보여 줄 테니 잘 봐. 이번에는 초식마다 나눠서 보여 주지.”
“……예!”
그러나 두 번째에도 목형우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백수룡은 다시 한번 시범을 보여 주었다.
“다시 봐. 이번에는 더 천천히 한다.”
“죄, 죄송합니다…….”
세 번, 그리고 네 번.
“이번에는 초식을 섞어서 보여 주지. 이런 방식도 있다는 걸 참고해. 이해력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예! 감사합니다!”
다섯 번, 그리고 여섯 번.
“직접 해 봐. 자세를 봐 줄 테니.”
백수룡은 몇 번이고 낙성창법의 시범을 보여 주고, 창술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목형우는 무공에 대한 재능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한 번만 보면 웬만한 동작은 따라 하는 청룡오망은커녕, 그 자질은 청룡학관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럭저럭 이해시켰을 땐, 창밖으로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새 캄캄한 밤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같이 부족한 녀석에게 귀한 시간을 할애해 주시고…….”
목형우가 까슬까슬한 턱수염을 긁으며 바보처럼 웃었다. 무복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지쳤는데도 행복한 얼굴이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됐다. 너한테까지 순서 안 돌아간다.”
백수룡은 목형우의 어깨를 한 번 툭 두드려 준 후 돌아섰다.
“오늘은 그만하고 들어가라. 더 이상 무리해 봤자 도움 안 돼.”
“예!”
백수룡은 알고 있었다. 목형우가 최소한 반 시진은 더 수련하리라는 것을. 그러나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말린다고 들을 눈빛이 아니야.’
내일 원강이한테 시켜서 먹다 남은 개방의 보약이라도 보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바깥으로 나오니,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대부분의 강사들마저 퇴근했을 늦은 시간이었다.
백수룡은 사무실에 들르려다가 그대로 퇴근하기로 했다. 서류야 백룡장에 가져가서 정리하면 되는 것이고, 사무실에 가 봤자 남궁수한테 잔소리나 들을 테니까.
“이 정도면, 내일이면 다 끝나겠네.”
청룡학관을 나선 백수룡이 남은 서류를 대충 훑으며 길목을 돌아섰을 때였다.
쿠웅-!
그가 내려선 바닥에 실금이 번져 나갔다.
마음만 먹으면 고양이처럼 사뿐히 내려설 수 있을 텐데도, 굳이 바닥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상대의 감정적인 행동에 백수룡이 눈을 크게 떴다.
“……사호?”
성큼성큼 걸어온 사호가 필첩을 꺼내 불쑥 내밀었다.
멀리서 옛 스승을 지켜보던 그는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어째서 그런 쓸모없는 무인에게 시간을 낭비한 겁니까?
빠르게 휘갈긴 글씨가 평소처럼 정갈하지 않고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지금 백수룡을 바라보는 사호의 혼란스러운 눈동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