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89
489화. 나도 당신처럼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었다.
“만두 형씨! 여기서 또 보네!”
“…….”
사호는 반갑게 알은체를 하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야수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야수혁의 어깨 위에선 은호가 불안하다는 듯 털을 바짝 세우며 노려보고 있었고, 그 뒤로는 옛 스승의 다른 제자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청룡학관에는 어쩐 일이우? 설마…… 우리 선배였수?”
‘선배’라는 말에 멈칫한 것도 잠시, 사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그럼 여긴 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의아한 표정을 짓던 야수혁은 이내 사호의 손에 들린 면포를 발견하곤 씨익 웃었다.
“알았다! 만두 배달 왔구나!”
“…….”
녹림의 건장한 사내들과 평생 부대껴 온 소년답게, 야수혁은 낯선 사내들과도 쉽게 말을 트는 편이었다.
게다가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같은 무공을 익힌 무인들끼리는 본능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한 문파에서 수학한 사형제가 종종 혈육보다 더 끈끈한 유대로 뭉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스윽.
사호는 대답 대신 면포에서 만두 하나를 꺼내 야수혁에게 내밀었다.
“나 먹으라고? 근데 배달하던 걸 계속 나한테 줘도 되나?”
“…….”
입에서 나오는 말과 달리, 야수혁은 사호가 주는 만두를 덥석 받아먹었다. 은호가 한심하다는 듯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야수혁! 너 인마 그거 협박해서 뺏어 먹은 거 아니지?”
뒤에서 보고 있던 거상웅이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야수혁이 홱 돌아보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변했다.
“아니, 선배는 사람을 뭐로 보고……. 여긴 저번에 말한 그 만두 형씨라니까!”
“만두 형씨?”
그 순간, 사호와 청룡오망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야수혁이 사호의 옆에 서서 청룡오망을 한 명씩 소개해 주었다.
“저기 곰 같은 덩치는 거상웅. 인상 더럽게 생긴 인간은 헌원강. 머리털이 허연 여자는 여민. 밤톨만 한 꼬마는 위지천이오.”
““이 자식이?””
곧바로 달려든 선배들이 야수혁을 쥐어박았고, 키가 작은 위지천은 옆구리를 힘껏 꼬집었다. 은호는 그 틈에 끼어서 한심한 인간의 등짝을 마구 때렸다.
“어억!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
사호는 그 구타의 현장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바라봤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옛 스승의 제자들.
하나같이 근골이 훌륭하고 무재가 뛰어난 것이 보였다.
잘 짜인 근육의 형태, 사소한 움직임만 봐도 그 수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직접 부딪쳐 본다면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테지만…….
“저 그런데, 혹시 말을 못 해요?”
청룡오망 중에서 눈치가 가장 빠른 여민이 물어보자, 사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어쩐지 과묵하더라니…….”
야수혁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 또한 사호에게는 신선한 반응이었다.
보통은 상대가 말을 못 한다는 것을 알면 당황하거나, 이유도 없이 불편해하기 마련이었다.
지금처럼 사람들과 만난 경우가 많진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껏 만난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았던가.
야수혁처럼 그러려니 하는 반응은 사호에게 낯선 것이었다.
“난 그냥 엄청 과묵한 형씨인 줄 알았네.”
“…….”
사호는 대화를 위해 굳이 필첩을 꺼내지는 않았다. 번거로워질뿐더러, 지금 적지 않은 시선들이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옛 스승이 준 청룡패가 품에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눈에 띄어서는 좋을 것이 없었다.
“하여간 만두 형씨. 지난번에는 고맙다고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으잉? 이걸 다?”
야수혁은 사호가 내민 면포를 얼떨결에 받아들곤 당황한 표정으로 사호를 바라봤다.
“우리 먹으라고?”
고개를 끄덕인 사호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어차피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할 양이었다. 버리느니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깔끔했다.
하지만 사호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잠깐만!”
덥석.
야수혁이 급하게 손을 뻗어 사호의 팔을 붙잡았다.
그 직후, 야수혁의 눈이 놀라움으로 휘둥그레졌다.
“와, 무슨 몸이…….”
외공을 깊게 파고든 무인답게, 사호의 육체가 보기보다 훨씬 더 단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야수혁이 흥분한 얼굴로 사호에게 물었다.
“이 형씨 장난 아니잖아? 대체 몸을 어떻게 만든 거요?”
“…….”
사호는 다시 천천히 돌아섰다.
그는 야수혁이 손을 뻗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공격을 한다고 해도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으니까.
오히려 야수혁이 자신의 팔을 붙잡은 순간, 사호는 소년의 악력을 비롯해 외공의 수준을 훨씬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두 번이나 얻어먹고 그냥 보내기는 좀 그래서 말인데…….”
뒷말을 끄는 야수혁을 보며, 사호는 이어질 상황을 짐작해 보았다.
분명 야수혁은 자신을 수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극도로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라도 수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니까.
곧 싸움이 벌어지게 될까?
아니면 소리를 질러 옛 스승을 이곳으로 부를까?
청룡학관의 무인들이 천라지망을 펼쳐 자신을 포위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엔, 이 모든 것이 옛 스승이 꾸민 계략일 수도 있었다.
“…….”
어쩌면, 품 안에 들어 있는 청룡패는 처음부터 자신을 방심시키기 위한 미끼가 아니었을까.
꾸욱…….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든 사호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표정에 당황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저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한 그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함정이라 해도 쉽게 당하진 않으리라.
우선 눈앞에 있는 이 녀석부터…….
그때, 야수혁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만두 형씨. 혹시 축국 좋아하쇼?”
“……?”
“우리끼리는 숫자가 안 맞아서 항상 제대로 못 했거든. 비슷한 상대를 찾기도 쉽지가 않고.”
“…….”
“내공은 안 쓰고 할 건데,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몸풀기 겸 하거든. 형씨도 외공을 상당히 수련한 것 같은데, 같이 하는 게 어떻수?”
“…….”
“그리고 저녁도 같이 먹고 가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호가 눈을 꿈뻑거리며 멍하게 있는 동안, 야수혁이 고개를 돌려 선배들에게도 제안했다.
“선배들. 어떻수? 이 형씨, 몸이 진짜 장난이 아니거든? 셋씩 나누면 숫자도 딱이고.”
당연히 반대할 줄 알았는데, 청룡오망의 반응조차 긍정적이었다.
“뭐, 별로 상관없지.”
“저도 팔뚝 한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좋을 대로 해.”
“그분만 괜찮으시다면…….”
이 녀석들은 경계심이라는 게 없는 걸까.
처음으로 사호는 청룡오망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렸다.
‘바보들인가.’
아니면, 청룡학관 내부에서 적과 조우할 거란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었다.
사호는 잠시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해 본 적은 없지만, 축국이 공을 차는 놀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럼 결정됐네! 같이 백룡장으로 갑시다!”
백룡장으로 가는 동안, 야수혁은 사호의 옆에 달라붙어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주로 신체 단련에 관한 질문이었다. 사호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 만두 가게 형님. 등 근육 한 번만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어느새 거상웅도 반대편에 와서는 눈을 빛냈다.
야수혁과 마찬가지로 외공에 깊게 파고든 만큼, 흔치 않은 외공의 고수를 만나자 큰 흥미를 느낀 것이다.
끄덕.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허어!”
“우리보다 몸이 크지도 않은데, 어떻게 단련한 거요?”
“…….”
“저 근육 바보들. 아주 자기들끼리 신났네.”
“내버려 두고 우리는 만두나 먹자.”
“수혁아. 선배님. 이거 저희가 다 먹어요?”
““우리 거 남겨 놔!””
다 같이 나누어 먹느라, 주점 주인 내외에게 받아 온 만두는 금방 동이 나 버렸다.
* * *
터엉!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야수혁의 거구가 주르륵 밀려났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야수혁이 분한 듯 소리쳤다.
“으아아! 젠장!”
기합을 넣으며 다시 달려들었으나, 사호의 한 걸음을 막는 것도 버거웠다.
야수혁뿐만이 아니었다. 청룡오망 전원이 비슷한 상황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힘이 세?”
“순간적인 움직임도 엄청나게 빨라요!”
“시작하자마자 나한테 공 보내라니까!”
“원강 선배가 지금까지 제일 많이 뺏겼거든!”
처음에는 분명 삼 대 삼으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오 대 일이 되었다.
사호는 여민과 위지천의 압박을 동시에 피했다. 두 사람이 현란하게 움직이는 발은 사호의 발등에 놓인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오히려 사호의 간단한 움직임에 속아 둘이 서로를 걷어찼다.
“아악!”
“야!”
사호가 둘을 제치고 전진하자, 헌원강과 야수혁이 동시에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손을 쓰는 것은 반칙이지만, 어깨를 부딪치는 몸싸움은 괜찮았다. 그들은 규칙을 이용해 힘으로 밀어붙였다.
물론, 둘에게 전혀 유리할 것 없는 규칙이었다.
터어어엉-!
단숨에 나가떨어진 헌원강과 야수혁이 바닥을 굴렀다. 사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전진한 후, 담벼락을 향해 공을 툭 찼다.
정확히 거상웅의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나간 공이 벽에 부딪힌 후 데구루루 굴렀다.
“젠장……!”
망연자실한 표정의 거상웅을 뒤로하고, 사호는 몸을 돌려 연무장 중앙으로 돌아갔다. 상대편 담벼락에 공을 맞히면 중앙에서 다시 시작이었다.
“끄아악! 또 당했다!”
“왜 저렇게 잘하는데?”
“우리 아까부터 한 번도 못 넣고 있어…….”
청룡오망은 녹림십팔식을 외공의 기초로 삼았다. 본격적으로 깊게 파고든 것은 거상웅과 야수혁뿐이지만, 다른 셋도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녹림십팔식의 기초를 단련했다.
아무리 또래 중에서는 특출나게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녔다고 한들, 녹림십팔식을 극한까지 단련한 사호를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사호의 가벼운 움직임에도 청룡오망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자고 덤벼들었다.
““한 번 더 해!””
“…….”
그리고 그 광경을, 백수룡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었다.
캬앙!
은호가 달려와 백수룡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몹시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앞발을 휘둘러 대며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했다.
[……저 멍청한 인간들 좀 어떻게 해 보라는구나.]은호의 말을 해석한 창룡신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백수룡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너희들이 왜…….”
청룡오망과 사호.
언젠가 사호를 초대해 백룡장에서 함께 밥을 먹는 상상을 해 보긴 했지만, 상상 속에서도 이렇게 어울리는 모습은 없었다.
“저 사람 진짜 만둣집 아들 맞아?”
“지금 그게 중요해? 정신 바짝 차리고 덤벼!”
“이번에는 뺏기지 마!”
“……백수룡 조지기 쓸까요?”
“안 돼! 그건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이야!”
다들 진심이었다.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기 전의 몸풀기였지만, 어느새 이쪽이 본격적인 수련이 되었다.
사호에게 덤벼들고, 바닥을 구르고, 다시 벌떡 일어나 덤벼들었다.
결국 하나둘 널브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게 될 때까지. 완전히 지쳐서 탈진할 때까지 축국은 계속되었다.
“허억……. 허억…….”
“죽겠다아…….”
“저, 형씨. 진짜 뭐 하는 사람이야……?”
위지천, 여민, 헌원강이 차례대로 바닥에 드러눕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거상웅과 야수혁이었다.
“수혁아 가자!”
“우와아아!”
녹림투왕의 무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두 거인이 지축을 울리며 달려들었다. 발 구름 한번 한 번이 진각처럼 이어져 바닥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전신의 힘을 한 점에 모은 그 기세는 성문조차 돌파할 듯 무지막지했지만.
―콰아아아앙!
언제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 채, 하늘과 땅이 뒤집히며 둘 다 바닥에 처박혔다.
“쿨럭! 쿨럭!”
“커허억!”
바닥에 반쯤 몸이 박힌 거상웅과 야수혁이 격렬하게 기침을 했다. 핏물마저 조금 비치는 것이, 내상을 입은 듯했다.
“……그만.”
어느새 백수룡이 사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은 지켜만 볼 수 없구나.”
“…….”
사호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지쳐서가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저도 모르게 손속이 과해졌음을 인정했다.
사호가 손을 들어 올리자, 백수룡은 입술을 깨물며 검파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이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나도 당신처럼.
최근에 틈이 날 때마다 수어를 배웠기에, 백수룡은 그 의미를 느리게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무공을 가르쳐 보고 싶습니다.
수어를 끝낸 사호의 시선은, 바닥에 쓰러진 야수혁과 거상웅을 향했다.
“…….”
옛 스승을 이해하기 위해, 문득 그와 같은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