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94
494화. 가 보면 알 게다
“……불안하게 왜 그런 곳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게냐?”
백무흔은 야밤에 부엌에 들어가 있는 백수룡을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독이라도 제조하려는 걸까? 무공과 반비례하는 아들의 요리 실력이라면 평범한 식재료로도 충분히 가능할 터였다.
“으음…….”
백수룡은 팔짱을 낀 채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굽고, 찌고, 삶는 등 온갖 방법으로 조리한 만두들이 오색찬란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 옆에는 커다란 찬합 또한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어떤 걸 좋아하려나…….”
“만두는 어디서 이렇게 많이 사 온 게야?”
백수룡은 옆으로 다가온 백무흔을 돌아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 만두 좋아하시잖아요. 같이 먹으려고 퇴근길에 좀 사 왔죠.”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거라. 어디서 씨알도 안 먹히는…… 설마 너?”
미간을 가늘게 좁히고 아들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백무흔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 아들이 “어떤 걸 좋아하려나?”라고 중얼거린 것, 그리고 음식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조합해 보니 한 가지 놀라운 가정이 떠오른 것이다. 과거에 백무흔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탁!
손바닥을 마주친 백무흔이 감격한 표정으로 외쳤다.
“드디어 네가 마음에 드는 여인이 생긴 게구나! 그래서 도시락을 싸 주려는 게야!”
장성한 아들을 가진 아버지의 눈에 어떤 종류의 기대감이 어렸다.
물론 백수룡에겐 어처구니없는 오해일 뿐이었다. 그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갑자기 뭔 소리예요? 이게 왜 그렇게 연결이 돼?”
아들이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백무흔은 상기된 얼굴로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갔다.
“어쩐지 요즘 이 애비 몰래 여기저기로 싸돌아다닌다 싶더니! 허어! 아무렴! 내 아들이 고자도 아닌데 소처럼 일만 하면서 살 리가 없지!”
“거, 아들에게 하기엔 너무 심한 말이 섞여 있는데?”
“차라리 소가 낫지, 이놈아. 이 애비는 하마터면 네가 익힌 그 무공이 동자공인 줄 오해할 뻔했다.”
백무흔은 음흉한 표정으로 아들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그러곤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은근히 말했다.
“요 녀석. 내게만 말해 보거라.”
그 능청스러운 행동에 백수룡이 질겁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주책이라니까, 진짜. 그런 거 아니니까 헛물 그만 들이켜시죠?”
“장인어른께는 비밀로 해 줄 터이니, 응? 내게만 슬쩍 말해 보래도. 어떤 처자더냐?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부친의 끈질긴 추궁에 백수룡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대하게 해서 죄송한데. 이거 내일 수학여행 가는 길에 제자들하고 같이 먹을 거예요.”
그러나 백무흔은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짓궂게 웃으며 아들을 놀렸다.
“그래그래. 알겠다. 그런 것으로 하자. 평소에 음식에 관심도 없던 녀석이 갑자기 제자들을 위해 직접 도시락을 쌀 생각을 했다 이거지? 그래서, 그 제자하고 손은 잡아 봤고?”
“마음대로 생각하시든가요…….”
대꾸하기를 포기한 백수룡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백무흔은 흐뭇하게 웃으며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무튼 도시락 싸는 거라면 내가 도와주마. 이런 건 또 내가 전문이거든.”
소매를 걷어붙인 백무흔은 아들이 고민 중이던 음식들을 둘러봤다. 그러나 금세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생김새와 재료만 조금씩 다를 뿐, 전부 다 만두였다.
“안 되겠구나. 만두 말고 다른 음식도 좀 넣어야겠다.”
“저도 그럴까 했는데, 그 녀석이 만두를 워낙에 좋아해서요.”
“그 녀석?”
백수룡은 얼마 전 사호와 함께 80년 전통의 만둣가게에 갔던 일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 많은 양의 만두를 어찌나 전투적으로 먹어치우던지, 가게 주인이 놀라서 입을 떡 벌릴 정도였다.
-만두가 그리도 좋더냐? 많이 먹거라. 얼마든지 사 줄 테니.
-…….
비록 사호는 식사가 끝난 후 이해할 수 없는 한숨을 내쉬곤 금방 가 버렸지만, 맹호투를 펼치느라 힘들었겠거니 싶었다.
그날 많은 대화를 하진 못했다. 하지만 둘의 관계에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내일 도시락을 주면 좋아하겠지.’
사호는 분명 청룡학관 수학여행에도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점심 도시락을 챙겨올 리는 없으니, 백수룡은 적당히 때를 봐서 만두 도시락을 건넬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백무흔으로서는, 목석같은 아들 녀석이 드디어 연애를 시작했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약빙. 우리 애가 벌써 다 컸구려…….”
“다 큰 지 십 년도 넘었…… 왜 혼자 훌쩍이고 그래요?”
“크흠. 눈에 먼지가 들어간 모양이다.”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찍어낸 백무흔은 괜히 아들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 녀석아. 아무리 애비 앞에서 부끄러워도 그렇지, 마음에 둔 여인을 그 녀석이라고 부르면 안 되지. 그 처자의 방명이 어찌 되느냐?”
“…….”
“그래그래. 알겠다. 내가 또 눈치 없이 굴었구나. 내일 제자들하고 같이 먹을 음식이라고 했지?”
백무흔은 웃음을 참는 얼굴로 아들이 준비한 여러 개의 찬합에다가 만두를 적당히 나누어 담았다.
“아무리 만두를 좋아해도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구나. 나머지는 다른 음식을 함께 담는 것이 좋겠다.”
백수룡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퇴근길에 사 온 만두를 전부 사호에게만 줄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청룡오망에게도 나눠 줄 생각이었다.
“그럼 고기라도 좀 삶을까요? 저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를.”
백무흔은 드물게 정색한 얼굴로 백수룡을 째려봤다. 그러곤, 자신의 요리 실력을 과신하는 아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랬다간 천년의 사랑도 식을 테니, 너는 나가서 장인어른 말동무나 해 드려라. 나도 금방 갈 테니.”
“……쩝.”
결국 부엌에서 쫓겨난 백수룡은 안주와 술을 챙겨서 정자로 향했다. 해 준다는 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매극렴은 정자에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손주의 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노인의 시선이 백수룡이 받쳐 들고 온 소반으로 향했다.
“갑자기 웬 술상이더냐?”
“다녀오기 전에 한 잔 드리고 싶어서요.”
백수룡은 매극렴의 맞은편에 앉아 그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매극렴은 평소 주도를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손자가 주는 술까지 마다하진 않았다.
“오랜만이구나. 너도 한잔 받거라.”
“예.”
휘영청 달이 밝은 밤.
조손은 한동안 말없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서늘한 가을바람에 풀벌레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방에 들어간 청룡오망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종종 들려왔다.
힐끗 제자들이 있는 방향을 쳐다본 백수룡이 피식 웃었다.
“저 녀석들. 오늘따라 늦게까지 안 자네요.”
“그럴 만도 하지. 수학여행이 처음인 아이들도 있지 않더냐?”
“저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다들 들뜬 모양이더라고요.”
평소 같으면 제자들에게 어서 자라고 한소리를 했겠지만, 백수룡도 오늘만큼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매극렴도 그 모습을 보곤 부드럽게 웃었다.
“너는? 준비는 다 마쳤느냐?”
“저야 뭐 준비할 게 있나요. 애들 따라가서 딴짓 못 하게 감시나 하면 되는 건데.”
평소와 다를 것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손자의 반응에, 매극렴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부터 청룡학관의 수학여행 일정이 시작된다.
매년 학사 일정의 끝은 천무제로 정해져 있지만, 지난 십 년간 청룡학관은 천무제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청룡학관 학생들에게는 천무제보다 수학여행이 한 해의 마지막 행사로 여겨졌다. 나름의 전통마저 생길 정도로 말이다.
매극렴은 빙그레 웃으며 알 듯 모를 듯 묘한 말을 했다.
“아마 생각과는 많이 다를 게다.”
“……예?”
“가 보면 알 게다. 직접 겪어 보거라.”
매극렴은 슬쩍 웃기만 할 뿐, 그 이상은 말해 주지 않았다.
“장인어른. 저도 한 잔 주십시오.”
부엌에서 나온 백무흔이 술자리에 슬쩍 끼어들었다. 단숨에 잔을 비운 그가 아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룡이 이 녀석. 예전의 저와 약빙 못지않게 멋진 추억을 만들고 올 겁니다.”
“……두 분이서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라니까요?”
백수룡이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하는 와중에, 매극렴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네놈은 꼭 내가 손주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걸 방해해야 직성이 풀리겠느냐?”
“자꾸 잊으시는 것 같은데, 얘가 제 아들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 퍽 익숙해진 두 사람이었다.
백수룡은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다가 매극렴에게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정말 안 가십니까?”
매극렴은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이가 따라가 봤자 흥만 깰 뿐이지.”
물론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극렴은 자신이 학관에 남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사정이 있어 수학여행에 참여하지 못하고 학관에 남는 학생들도 있지 않더냐. 남아서 그 아이들을 살필 사람도 있어야지.”
특히 요즘처럼 뒤숭숭한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며, 매극렴은 손주에게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당부했다.
백무흔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은 이유로 나도 이곳에 남을 생각이다.”
“……애초에 네놈이 수학여행을 따라갈 자격이나 있단 말이냐?”
“아니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매극렴은 허튼수작을 부릴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듯 사위를 노려본 후, 다시 따뜻한 시선으로 손자를 바라봤다.
“하여간 수룡아. 그곳에선 조금 느슨하게 학생들을 풀어줘도 괜찮다.”
“……정말요?”
“너무 옥죄려고만 들면 터지는 법이지.”
매극렴은 삼십 년 넘게 청룡학관의 학생주임을 맡아 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항상 엄정한 규율로만 학생들을 다스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학관이 아니니, 굳이 이곳과 똑같은 규칙을 적용할 필요는 없을 터. 네가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학생들을 지도하거라. 사고가 나지 않도록만 유의하고.”
외조부로서가 아닌, 학생주임 선생님의 경험이 섞인 조언에 백수룡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나 단 한 가지.”
부드러웠던 노인의 눈빛이 순식간에 서슬 퍼런 검처럼 번뜩였다.
“불순이성교제를 시도하는 것들은 결단코 잡아 내야 하느니라.”
“…….”
“…….”
“그날, 어느 개잡놈의 양물을 자르지 못한 것이 아직도 천추의 한이로구나…….”
“그랬으면 훗날 장인어른의 손주도 못 태어났을 텐데요?”
가만히 눈치를 보던 백무흔이 억울하단 표정으로 항변해 보았으나.
“그 덕에 아직까지 붙어 있는 줄 알거라.”
“…….”
매극렴의 눈빛이 특정 부위를 향하자, 하반신을 다소곳하게 움츠리는 백무흔이었다.
* * *
평소 같았으면 피곤에 절어서 기절하듯 잠들어 있을 시간.
“다들 짐은 다 쌌냐?”
백수룡이 두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던 때, 청룡오망은 거상웅의 방에 모여 있었다. 눈빛도 하나같이 또렷한 것이, 다섯 중 누구도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거상웅은 수학여행으로 들뜬 후배들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다 헌원강이 자기 몸보다 커다란 보따리를 가져온 걸 보곤 입을 떡 벌렸다.
“원강아. 넌 어디 이사 가냐?”
“뭐가? 이거 가져가면 다 쓸모가 있는 법이거든?”
헌원강은 보란 듯 보따리를 풀어헤쳐 보였으나, 거기서 나오는 물건들은 잡다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루면 도착할 곳에 가는데 비상약이랑 육포는 왜 챙겨? 이 쇳덩이는 또 뭐고?”
“그거 수련 도구.”
“자식아. 이런 건 거기에도 다 있어. 너 수학여행 처음 가 보냐?”
“……어. 처음인데.”
헌원강이 민망한 듯 뺨을 긁적이며 이실직고하자, 다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민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삼 학년이면서 수학여행이 처음이라고?”
“그 뭐냐, 일 학년 때는 내가 가기 싫어서 안 갔고, 이 학년 때는 사고 쳐서 근신 중이라 못 갔거든.”
“어이구, 이 망나니야. 그러면서 나만 따라다니라고 후배들 앞에서 잘난 척했어?”
여민이 얼마 전 헌원강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피식 웃자, 헌원강이 울컥한 얼굴로 따졌다.
“그러는 너는 가 봤어?”
“나? 나는 돈 아까워서 안 갔지.”
“…….”
“…….”
“뭐야? 갑자기 분위기 왜 이래?”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에 여민이 당황한 표정으로 선후배들을 둘러봤다. 다들 안쓰럽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
“원강이 이 자식아! 애 아픈 구석을 건드리고 그래!”
“미, 미안.”
“누님. 이번에 꼭 좋은 추억을 만듭시다…….”
“니들이 그렇게 말하는 게 더 기분 나쁘거든!”
유일한 수학여행 경험자인 거상웅이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정리하며 말했다.
“결국 너희들 전부 수학여행이 처음이라 이거지? 그럼 이 선배가 중요한 걸 하나 알려주마.”
삼 학년 때는 폐인처럼 사느라 안 갔지만, 그전에는 두 번 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거상웅이었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화제를 꺼내자, 후배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청룡학관의 수학여행에는 오래된 전통이 한 가지 있다.”
““전통?””
“이건 선생님들도 존중해 주는 전통인데…….”
거상웅은 잠시 말을 멈추곤 문 바깥을 힐긋 바라보더니, 얼굴 가득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기막부터 펼치자.”
옹기종기 머리를 모으고 음모를 꾸미면서, 청룡오망은 그날 밤을 꼬박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