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99
499화. 뭘 숨기고 있는 거야?
“위지천이라. 청룡학관에 놀라운 재능이 숨어 있었군.”
지금껏 위지천을 만나 본 무인들이 수없이 했던 찬사였으나, 염왕은 과거에 십존으로 불렸던 전설적인 무인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감탄 섞인 시선으로 위지천을 지켜보던 염왕은 고개를 돌려 노군상을 흘겨봤다.
“이제야 군상이 네놈 얼굴이 핀 이유를 알겠다. 저만한 복덩이가 굴러들어왔으니, 올해는 못해도 꼴찌는 면하겠어.”
단 한 명의 천재로 인해 청룡학관이 지난 십 년간 겪은 꼴찌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 반쯤 농담이라곤 해도 엄청난 극찬이었다.
하지만 노군상은 그러한 칭찬에 도리어 고개를 저었다.
“허허. 벌써 놀라시면 안 됩니다. 천이 말고도 청룡학관에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많습니다.”
“기고만장하기는. 어디 한번 두고 보마.”
코웃음을 친 염왕은 다시 고개를 돌려 위지천을 바라봤다.
젊은 시절에 잠시 스쳤던 절세의 검객을 떠올리게 하는 소년은, 눈을 살짝 내리깐 채로 자신의 검을 소중히 쥐고 있었다.
“……정말 닮았군.”
염왕의 중얼거림을 들은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그 중 한 명인 백수룡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닮을 수밖에.’
항상 검존 사부를 떠올리며 가르친 제자였다.
무공은 물론이고 검에 대한 마음가짐까지 이어졌다는 걸 알아봐 주니, 백수룡도 뿌듯한 감정이 차올랐다.
“저 애…….”
사마영 또한 넋이 나간 표정으로 위지천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려 백수룡을 바라봤다. 어딘가 굉장히 억울한 표정이었다.
“이미 학생 수준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아까 말했잖아. 상대가 안 될 거라고.”
백수룡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곤 말을 이었다.
“주율상이란 녀석도 나쁘지 않아. 상대가 너무 강했을 뿐이지.”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검을 두 손으로 꽉 쥐고 계속해서 위지천에게 덤벼드는 모습.
독기와 근성만큼은 인정해 줄 만했다. 제대로 된 방향으로 꾸준히 정진한다면, 꽤 괜찮은 검객이 될 자질이 보였다.
그 평가에 사마영이 허탈하게 웃었다.
“지더라도 좋은 승부가 될 줄 알았는데……. 올해 천무제에서 우승하겠다는 말이 그저 허세가 아니었군요?”
“내가 허세를 부린 적이 있었나?”
“……반년 만에 십존이 되어서 나타난 사람한테 차마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사마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주작학관 강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 버렸다. 여전히 재수 없는 건 변하지 않았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다 들리거든?”
“들으라고 한 말이라서요.”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곤, 고개를 돌려 주작학관 강사들과 학생들의 표정을 살폈다.
사실 아까부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천이의 실력을 봤는데도 묘하게 여유가 느껴진다고?’
다들 위지천의 무공에 경악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위축되거나 심하게 경계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쪽에도 숨겨 둔 패가 있다 이건가?”
“네?”
“형님.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사마영이 자리를 비우자 슬금슬금 백수룡 곁으로 다가온 제갈소영과 명일오가 물었다.
백수룡이 특이할 뿐, 사마영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보통은 염왕의 손녀이자 염화나찰이라고 불리는 그녀를 어려워하기 마련이었다. 청룡학관에서 남궁수를 어려워하듯이.
“주작학관 말이야. 천이를 보고도 저것밖에 안 놀라는 게 이상해서.”
“……다들 입 벌리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자기 제자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큰 건지…….”
동기들이 어이없어하거나 말거나, 백수룡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작학관 진영을 살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의 근원을 찾는다면, 천무제에서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뭘 숨기고 있는 거야?’
마음먹고 기감을 활짝 개방하자, 백수룡의 감각에 걸려드는 수많은 정보가 있었다.
잠시 후, 백수룡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염왕의 손자이자 사마영의 동생인 사마현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그보다 더 뒤쪽으로 향했다.
“……이거 봐라?”
백수룡의 표정에 순간 감탄이 어렸다.
저들이 위지천의 눈부신 재능을 보고도 크게 경계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낸 것이다.
“작년 기록을 다 살펴봤을 때도 크게 흥미를 끌 만한 녀석은 없었는데…….”
“왜, 왜 또 그렇게 웃는 건데요?”
“형님. 뭔지 모르겠지만 제발 자중하시는 편이…….”
뭔가 심상치않은 낌새를 눈치챈 제갈소영과 명일오가 불안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지만, 그는 이미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천아. 가만히 듣기만 해라.]갑자기 들려온 전음에 위지천이 순간 멈칫했다.
슬슬 지도대련을 끝내려던 참이었다.
주율상은 더 이상 검을 휘두르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마음에 들어서 상대해 주고 있었지만, 저렇게 헉헉거리기만 해서는 대련을 더 이어 나간다 한들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까.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볼 수 있겠어?]고개를 끄덕인 위지천은 군말 없이 백수룡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일단 한쪽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말아 올렸다.
피식.
그 순간, 청룡오망은 갑자기 작은 백수룡처럼 변한 위지천의 모습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백수룡으로 빙의한 위지천이 주율상에게 말했다.
“한심하네요.”
“……뭐?”
힘겹게 숨을 몰아쉬던 주율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켜보던 주작학관 학생들의 표정도 함께 굳었다.
그러나 위지천은 개의치않고 할 말을 계속했다.
“천무제에서 여러 번 준우승을 했다길래 제법 기대했는데, 주작학관의 수준은 이 정도인가요?”
“닥치지 못해!”
다 쓰러져 가던 주율상은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덤벼들었다.
그러나 멀쩡할 때도 상대가 되지 못했던 위지천을 지친 상태에서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쪽에서 먼저 도발해 놓고, 내가 똑같이 갚아 주니까 기분 나쁘신가 봐요?”
오히려 지금까진 봐줬다는 듯, 위지천이 더 일방적으로 주율상을 몰아붙였다. 지도대련처럼 느껴졌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철저하게 상대를 압도하는 싸움이었다.
피식.
“에이, 주작학관도 별 볼 일 없네.”
마지막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자신이 약해서 학관 전체가 모욕당했다는 생각에, 주율상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죽여 버리겠어!”
검에 살기가 담겼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명백히 선을 넘은 행동. 주율상의 검이 위지천의 심장을 노렸다.
그 순간, 위지천의 눈에도 진득한 살기가 어렸다.
“……이거, 정당방위인 거 아시죠?”
서늘하게 웃은 위지천의 검이 섬뜩한 궤적을 그렸다. 그 궤적 안에 주율상의 목이 있었다.
“……!”
검귀로 변한 위지천의 미소를 본 순간 주율상의 몸은 그대로 굳어 버렸고, 그 모습을 본 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모든 학생들이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
쩌어어엉-!
검과 검이 부딪치며 생긴 충격파로 인해 먼지가 훅 일어나며 두 사람의 모습이 잠시 가려졌다.
천천히 먼지가 가라앉자, 충돌의 현장이 드러났다.
낯선 검에 의해서, 위지천의 검이 가로막혀 있었다.
“뭐야. 허초였어?”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은 위지천도 주율상도 아니었다.
“깜빡 속았잖아. 너, 살기 되게 잘 다룬다?”
어깨까지 오는 단발의 소녀가 큰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얼굴 가득한 주근깨에서 짓궂은 장난기가 엿보였다.
“민망하게 괜히 나섰잖아. 가까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잠깐만. 혹시 너 일부러 그런 거야?”
“네. 맞아요.”
방금 전까지 살기를 풀풀 풍기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위지천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상대의 검을 바라봤다.
검면에 소나무 무늬가 새겨진 송문검. 구파일방 중 무당파 무인들의 상징이었다.
“그 검. 아까부터 신경 쓰이더라고요.”
“미안한데 어울려 줄 생각은 없어.”
“왜죠?”
“귀찮거든.”
싱긋 웃은 소녀는 위지천의 검을 옆으로 흘려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털썩.
소녀의 등 뒤에 있던 주율상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멈췄던 주변의 시간이 다시 흘러가는 듯했다.
“소하 선배!”
“연소하 선배님!”
연소하.
위지천의 살기가 담긴 일검을 막아 낸 소녀의 이름이었다.
“다들 조용히 좀 해 줄래?”
연소하가 입을 열자, 시끄럽게 떠들던 후배들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그 한 장면만 보아도 보통내기가 아닌 듯했다.
고개를 돌린 연소하는 청룡학관 학생들에게도 말했다.
“후배가 경솔하게 군 건 내가 대신 사과할게. 그러니 그만하자. 즐거운 수학여행이잖아?”
부드러우면서도 묘하게 거절하기 힘든 목소리였다. 청룡학관 학생들도 수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연소하를 아는 고학년들도, 처음 보는 신입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사들이 끼어들어 중재할 필요도 없었다. 연소하는 들끓었던 분위기를 몇 마디로 정리한 후, 조용히 스며들 듯 주작학관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감명 깊게 본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백수룡이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시, 진짜배기는 따로 있었네.”
그때, 무언가를 눈치챈 염왕이 눈썹을 찌푸리며 백수룡에게 다가왔다.
“자네. 소하의 실력을 보고 싶어서 제자를 부추겼나?”
주율상을 향하는 살검이 진짜였다면, 누구보다 먼저 염왕이 나서서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짜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버려 두었다.
강호에 나가서도 저만한 경험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테니까.
백수룡도 그 사실을 알기에,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만 비밀병기를 보여 줄 순 없지 않습니까? 조건은 서로 공평해야지요.”
“뭐라? 허!”
그 당당함에 화를 내려던 염왕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덕분에 재밌는 구경을 하긴 했지.”
저 나이의 소년이 살검을 저토록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으니까.
미리 알게 되었으니, 대처할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염왕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둘이 한판 붙여 보고 싶다만…….”
“형님. 그건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노군상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서로를 노려보는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강사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위지천과 주율상의 싸움으로 두 학관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긴 것이다.
“어차피 애들끼리는 싸우면서 크는 게지. 그리고 경쟁심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 아니겠느냐?”
염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으나, 노군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숙소로 출발하지요. 이러다간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기도 힘들어지겠습니다.”
“……어쩔 수 없군.”
염왕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주작학관 진영으로 돌아갔다. 노군상도 부관주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부관주. 우리도 출발 준비를 하지.”
“예!”
두 학관이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이동할 준비를 하는 동안, 백수룡은 위지천의 검을 쉽게 막아 냈던 소녀의 검을 다시금 떠올렸다.
“연소하라……. 서류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수준이었어.”
전에 보았던 주작학관 관련 서류가 미흡했던 것일 수도 있고, 지난 일 년 사이에 무공에 대단한 발전을 이뤘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번 수학여행에서, 문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저기 보이는 봉우리만 넘으면 곧 도착입니다.”
악연호의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을 본 남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경공을 펼치는 중이었다.
어색한 기류가 흘렀던 것도 잠시.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들 사이에 대화가 끊긴 시간은 많지 않았다.
비록 그 대부분이 악연호의 수다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하. 본대에는 별 문제 없겠죠?”
“……아무리 백수룡이라도 그 짧은 시간에는 힘들겠지.”
“학생들이 부려먹는 것에 화가 나서 전부 엎어 버리진 않았을까요?”
“학관의 전통도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속이 좁을까.”
“그, 그럼 혹시 남궁수 선생님도 예전에 부려먹히신 경험이……?”
“…….”
“죄송합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정말이오? 구체적으로 하나만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비밀로 하겠습니다.”
“…….”
“죄, 죄송합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악연호는 점점 수다스러워졌다.
나름에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았는데, 남궁수는 그래서 더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수룡 형님이 사무실에 찾아왔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악연호 선생.”
“예?”
잠시 악연호의 안색을 살피던 남궁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절정에 이른 고수가 고작 이 정도 경공을 펼친 것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하. 갑자기 말을 끊으시니 더 궁금하네요. 혹시 제가 너무 시끄러웠나요?”
“…….”
저 너머에 있는 무엇이 악연호를 극도로 긴장하게 하거나, 혹은 두렵게 한다는 이야기였다.
남궁수는 반걸음 정도 앞서가는 악연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