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
4화. 살인멸구(殺人滅口)명문세가의 이름을 사칭하는 것.
‘사실 그 정도야 흔한 일이지.’
남궁세가를 포함한 오대세가는 거대한 세력만큼 수많은 방계를 거느리고 있었고, 그들은 명문의 이름을 이용해 온갖 이득을 취했다.
그중에는 사기꾼도 많았다.
막말로, 저잣거리의 약장수들도 종종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를 들먹이며 약을 팔았다.
‘그걸 무림맹이 일일이 찾아다니며 죄를 묻지는 않아.’
무림맹이 그리 한가한 단체도 아니고, 다 조사할 수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정도는 사소한 일이니까.
하지만 누군가가 남궁세가의 이름을 사칭해 사파의 무공을 가르친다면?
“어라? 남궁욱 대협? 왜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으십니까? 뒷간에라도 가고 싶으신 표정인데요.”
“너 이 새끼…….”
내 빈정거림에 남궁욱이 이를 갈았다. 그는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무, 무림맹에 연통을 넣는다고? 그런 짓을 한다고 뭐가 바뀔 줄…….”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저는 그저 자랑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 마을에 남궁세가의 신공절학을 가르치는 무관이 있다고요.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사람 하나를 반 죽여 놓을 정도 아닙니까. 사파의 무공 같다는 건 농담이었습니다. 농담.”
농담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남궁욱도 알고, 저기 있는 염소수염도 알고, 내 옆에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아버지 백무흔도 안다.
‘명문세가일수록 사파와 이름이 엮이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지.’
명예와 위신.
정파는 그 두 가지에 목숨까지 건다.
물론 뒤에서야 온갖 호박씨를 다 까는 놈들이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의(義)와 협(俠)을 행하는 자들이니까.
그렇기에 자신들의 정의에 대한 모욕 또한 절대로 참지 않는다.
“농담이 너무 심하지 않나!”
“에이. 설마 농담 좀 했다고 무림맹에서 널, 아니 절 죽이기라도 하겠습니까.”
“헙……!”
내가 손으로 목을 슥 긋는 시늉을 해 보이자 남궁욱의 얼굴로 창백하게 질렸다.
거 덩치에 안 어울리게 순진한 놈일세.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아버지의 전음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눈동자만 굴려 힐끗 옆을 보자, 그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들이 가르친 게 사파의 무공이라고? 확신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거냐?]아직 전음을 사용할 수 없는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계십시오.’
뜻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내가 주도하기 시작한 이 상황을 일단은 지켜보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지 모르지 확실히 할까요? 무림맹에 연통을 넣는 김에 남궁세가에도 연통을 넣는 겁니다. 남궁세가의 이름 높은 대협이신 남. 궁. 욱. 대협께서 이곳에 무관을 여셨으니 축하 화환이라도 보내 달라고요. 겸사겸사 양삼이 배운 절세신공도 검증해 주시면 더 좋고…….”
“주둥아리 닥쳐라!”
이제는 대놓고 빈정대는 내 말투에 남궁욱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수십 번이나 날 때려죽였을 것이다.
나는 비죽 웃었다.
“왜요? 쫄리십니까?”
“이놈이 정말 죽고 싶어서……!”
그는 당장이라도 출수하고 싶은지 몸을 움찔거렸지만, 주변의 많은 시선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지가 불러 모았으니 다 자업자득이다.
웅성웅성.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말이야?”
“남궁 대협이 사기꾼이라는 거 같은데?”
“에잉. 무인들이 무슨 혓바닥이 저리들 긴지. 싸우려면 싸우고, 말려면 말지.”
“내 말이. 싸움 구경하려고 왔는데 말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 봅세. 곧 한판 붙을 것 같긴 한데…….”
구경꾼들도 눈치가 있다면 이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여론마저 불리하게 돌아가자, 남궁욱의 표정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변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옆을 힐끗거렸다.
남궁욱의 시선이 향한 곳엔 염소수염이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역시 저쪽이 진짜였군.’
처음부터 이상했다.
이 산적처럼 생긴 놈은 아무리 봐도 머리를 굴릴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염소수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보시오, 소협.”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염소수염의 사내를 응시했다. 그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한 말, 책임질 수 있겠소?”
“책임이라니요?”
“우리가 남궁가의 이름을 팔아서 사파의 무공을 가르쳤다고 주장하지 않았소. 증거도 없이 함부로 그런 말을 했다가, 나중에 어떤 꼴을 당할지 생각해 본 거요?”
이 일이 커져 소문이 돌면, 무림맹의 조사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이곳에 직접 들이닥칠 수도 있었다.
남궁욱(자칭)이 정말 사파의 무공을 가르쳤다면, 그는 남궁세가의 검에 목이 잘릴 것이다.
하지만 아니라면?
“소협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는지 알고 있소? 사파 무공. 남궁세가는 지저분한 소문에 얽히는 것만으로도 소협을 가만두지 않을 거요.”
그래. 오히려 내가 역풍을 맞겠지.
근거도 없이 남궁세가와 관련된 지저분한 소문을 퍼트린 것이니 말이다.
염소수염이 몸을 돌려 아버지에게 포권을 했다.
“백무관주님. 오늘은 양쪽의 감정이 크게 격앙된 듯합니다. 괜한 말로 큰일을 치를 수 있으니……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함구하고, 차후에 날을 잡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그러니까 염소수염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파 무공을 가르쳤다고? 증거도 없이 함부로 떠들다간 너희도 뒈지는 수가 있다. 그러니 적당히 하고 물러나라.’
무공이라는 것이 흔적만 보고 정파냐 사파냐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파의 무공에도 손속이 잔인한 초식이 있고, 사파의 무공에도 정파 못지않게 고지식한 것이 있다.
구결을 알고 초식을 직접 보지 않는 한, 무공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거의’라는 건 누군가는 가능하다는 얘기지.
피식.
“그렇게 말하면 내가 겁먹을 것 같나?”
“이보시오 소협…….”
“사파 나부랭이 새끼들이 어디서 개수작이야?”
나도 사파의 정점이었던 혈교 출신이지만, 사소한 건 넘어가도록 하자.
“!!”
내 말에 염소수염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나는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진무관이 제자들에게 사파 무공을 가르쳤다는 데 분명한 확신이 있었으니까.
무공을 직접 보지도 않고 어떻게 확신하냐고?
‘그야, 내가 사파 무공을 십 년 넘게 가르친 교관 출신이니까.’
남궁욱과 염소수염이 움직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보이는 움직임.
그들 뒤에 서 있는 제자들의 긴장된 몸의 자세 등등.
내게는 그 모든 것이 증거였다.
“너희들 어디 파냐? 꼴을 보니 동네 무관으로 위장한 후에 세력을 확장하려고 한 것 같은데.”
이것도 예전부터 있었던, 사파들의 흔한 수법이다.
“……하.”
염소수염이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하하…… 푸하하하하!”
따가운 살기에 피부가 간지러웠다. 웃음에 내공이 실렸는지 귀가 아프다.
염소수염의 기세가 변하고 자세가 변하기 시작했다.
우둑, 우두둑!
구부정했던 허리가 펴지고, 서생처럼 얄상했던 몸이 근육질로 변했다.
‘어쩐지 자세가 부자연스럽다 했더니 역골공을 사용한 거였군.’
건장한 사내로 변신한 그가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거의 다른 사람으로 변했지만, 염소수염은 여전했다.
나는 상대의 경지를 가늠해 보았다.
‘일류 초입쯤 되겠군.’
이런 촌구석에서는 산삼보다 더 찾기 힘든 고수.
더 이상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는지, 놈은 살기를 풀풀 풍기며 나를 노려봤다.
“보통내기가 아니로군. 어떻게 우리 정체를 알았지?”
“그건 영업 비밀인데.”
내 장난스러운 말투에 그의 눈썹이 크게 꿈틀댔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까불 수 있는지 보지.”
―쿠웅!
그가 발을 크게 구르자 돌로 된 연무장 바닥에 커다란 족적이 남았다.
“갈! 지금부터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놈은 죽는다!”
자욱한 살기가 연무장을 뒤덮었다.
어느새 염소수염의 뒤에 서 있던 진무관의 제자 중 일부가 몸을 날려 진무관의 대문을 막아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발을 빼려던 구경꾼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희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아무 말도 않겠습니다요!”
살기를 감당하지 못해 주저앉은 사람들이 오들오들 떨며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중에는 우리를 따라온 포목점 장 씨도 장이를 꼭 껴안고 있었다. 장이가 아비의 품에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이 나쁜 놈들! 니들 백사부님한테 다 죽을 줄 알아!”
“이놈아! 얌전히 있어 좀!”
그들을 힐끗 본 염소수염이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맺혔다.
“애송이. 너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죽게 될 거다.”
살인멸구(殺人滅口).
정체를 들킨 놈들은 목격자를 모두 죽일 작정이었다.
“똑똑히 보여 주지. 힘없는 자가 만용을 부리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말이야.”
염소수염이 히죽 웃으며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