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13
513화. 뭐가 그렇게 즐거워요?
“끄응…….”
악연호는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했다. 그러다 지난밤에 같이 술을 마신 두 사람을 떠올리곤 천천히 눈을 떴다.
“……형님들?”
백수룡, 남궁수와 함께 술을 마시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의식이 툭 끊겼다.
심란하고 복잡한 마음에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연달아 들이켜 댄 탓이었다.
침상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악연호에게, 익숙한 기척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깼냐?”
“수룡 형님…….”
“이거나 좀 마셔라.”
악연호는 백수룡이 건넨 꿀물을 받아서 꿀꺽꿀꺽 마셨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지끈거리던 두통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제야 방 안의 풍경이 제대로 보였다.
“와, 저희 어제 대체 얼마나 많이 마셔 댄…… 궁수 형님은 왜 저러고 계세요?”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 중인 남궁수의 모습이 보였다. 안색이 다소 창백했는데, 그에게서 희미한 혈향을 맡은 악연호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제가 잠든 사이에 살수들이 쳐들어오기라도 한 거예요?”
백수룡은 긴장한 악연호의 어깨를 손으로 짚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하품을 하며 말했다.
“어젯밤에 나랑 나가서 대련 좀 했어.”
“……형님이랑요?”
“술이 들어가니까 흥이 오르더라고. 그래서 이 몸이 한 수 가르쳐 줬지. 그때 살짝 긁힌 거야.”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백수룡이었지만, 악연호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남궁수의 안색이 창백해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으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악연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백수룡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형님들이 무슨 애들도 아니고, 술 먹고 싸움박질이나 하면 어떡해요! 이럴 때 보면 학생들보다 더하다니까.”
“잔소리는……. 그리고 먼저 시작한 건 저 자식이거든?”
백수룡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남궁수를 가리켰다.
실제로 악비의 따귀를 갈기겠다고 뛰쳐나간 건 남궁수였으니까.
‘다시 생각해 볼수록 황당한 자식이라니까.’
상대는 십존이었다.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역시 술에 취해서 즉흥적으로 뛰쳐나간 게 틀림없었다.
“뭐, 나도 어느 정도 부추기긴 했지만…….”
“형님이 먼저 싸우자고 살살 약 올렸죠? 안 봐도 뻔하지.”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콱 그냥!”
“가, 갑자기 왜 내 핑계를 대고 그래요!”
백수룡은 악연호의 머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주먹으로 쥐어박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뇌기에 고개를 돌렸다.
파직, 파지직……!
가부좌를 틀고 앉은 남궁수의 몸 주변으로 미세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몸이 한 치쯤 바닥에서 떠올랐다.
화아아악!
남궁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이 방 안을 장악했다. 공기가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악연호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백수룡에게 물었다.
“형님. 저건…….”
백수룡은 무아지경에 빠진 남궁수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두 시진 가까이 저러고 있더니, 뭔가 얻은 게 있는 모양이네.”
그는 천뢰검법과 제왕검형을 조합해 악비와 맞서던 남궁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록 공력 사용에 제한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십존이라 불리는 절세고수와의 맞대결에서 거의 밀리지 않았다.
‘두 가지 무공의 조합이 아직 미숙한 걸 생각하면…….’
대성을 이룬 천뢰검법과 제왕검형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면, 과연 그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남궁세가의 역사를 통틀어도 그런 경우는 없었겠지.’
그런 무인이 있었다면, 남궁세가를 넘어 무림의 역사에도 큰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남궁수의 무공이 얼마나 더 성장할지, 백수룡도 쉬이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때, 악연호가 놀란 표정으로 백수룡에게 물었다.
“두 시진이라고요? 그럼 형님도 밤을 꼴딱 새서 호법을 서신 거예요?
“호법까진 아니고. 시간이 남아서 일이나 좀 했지.”
백수룡은 턱짓으로 자신의 침상에 놓여 있던 서류들을 가리켰다.
그 두꺼운 종이뭉치를 확인한 악연호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 지독한 일 중독자…….”
술을 그렇게 퍼마시고도 밤새도록 일을 하다니.
아무리 마음만 먹으면 주독을 몰아낼 수 있는 고수라고 해도, 수학여행에 와서 이렇게까지 일을 하는 건 절대 정상은 아니었다.
이쯤 되면 주화입마의 한 종류가 아닐까?
“연호야.”
“네, 네?”
속마음을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악연호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러나 백수룡이 지나가듯 툭 내뱉은 말은 그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너 파양당하면, 다른 데 말고 우리 집으로 와라.”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악연호에게,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냥. 그런 일이 생기면.”
백수룡은 악비에게서 과거의 혈교를, 악연호에게서 혈교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아였던 이십칠호에게는 혈교에서 알려 주는 방식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방식에 따라야만 했다. 머리가 커져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게 되었을 땐, 그의 손은 이미 너무 많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벗어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이십칠호는 혈교의 방식에 순응하며 더 위로 가고자 했고, 타고난 독기에 재능이 더해져 혈룡대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단전을 잃고 바닥에 추락한 이후, 사부들을 만나기 전까지 그의 삶은 지옥의 연속이었다.
“넌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형님……?”
만약, 뇌옥에서 사부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혈교에서 탈출하려고 했을까.
종종 생각해 보는 화두지만, 백수룡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곳에서 도망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
“갈 곳 없다고 우물쭈물하지 말고. 바로 나한테 와. 알았어?”
“…….”
백수룡은 고개를 숙인 악연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백룡장에 남는 방 많으니까.”
“……네.”
개미 목소리만 한 작은 대답이었지만, 백수룡은 분명히 들었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방 안을 가득 채운 남궁수의 존재감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드드드드……!
이제는 탁자며 침상이 부르르 진동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대충 서류를 챙겨 든 백수룡이 악연호에게 말했다.
“슬슬 나가자. 곧 아침 집합 시간이기도 하니까.”
“궁수 형님은 저렇게 둬도 돼요? 누가 들어와서 방해라도 하면…….”
무아지경에 빠져 운기조식 중인 무인의 곁에는 반드시 호법이 필요했다.
극도로 무방비한 상태인 만큼,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얼마든지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깨달음의 순간을 방해하는 것을 막는 일도 호법의 역할이었다. 평생 몇 번 오지 않는 순간을 날려 버린다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 테니까.
하지만 백수룡은 괜찮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주변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몰입해 있으니 방해받을 일은 없어. 내 방에 쳐들어올 만큼 간 큰 녀석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리고, 저거 봐라.”
파직, 파지지직-!
가부좌를 튼 남궁수의 주변으로 새하얀 뇌기가 연신 튀어 올랐고, 벽과 바닥에 그을음을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제왕검형의 기운이 방 안을 짓누르는 힘도 점점 거세졌다.
백수룡이야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악연호만 해도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저걸 어떤 미친놈이 건드려? 차라리 저 자식을 외부와 격리하는 게 맞지.”
“그렇긴 하지만…….”
“뭐, 조치는 취해 두는 게 좋겠지.”
백수룡은 허리춤에서 창룡신검을 끌러 남궁수 아래쪽에 두었다.
‘부탁 좀 할게.’
[……가끔씩 나를 만능도구로만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무슨 소리야? 이런 상황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당신뿐이라 이렇게 부탁하는 거지.’
창룡신검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지만, 군말없이 술법을 펼쳐 주었다.
우우웅!
창룡신검이 펼친 술법이 방 안으로 퍼져 나가자, 바깥으로 새어 나가던 뇌기와 제왕검형의 기운이 일정 공간에만 머물렀다.
[이제 한동안은 괜찮을 게다. 헌데, 오늘 수업에 내가 없어도 되겠느냐?]‘꿩 대신 닭이라고. 아쉽지만 오늘은 이 녀석으로 때워야지 뭐.’
백수룡은 반대편 허리춤에 찬 적월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창룡신검은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백수룡이 악연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됐지?”
“어쩐지 더 위험해 보이는데…… 뭐, 함부로 들어오는 사람이 잘못이겠죠.”
두 사람은 문을 닫고 방을 나섰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남궁수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창룡신검이 펼친 술법의 능력이었다.
“흐흥~”
학생들이 모여 있는 대연무장으로 향하는 길에, 백수룡은 뭐가 즐거운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형님. 뭐가 그렇게 즐거워요?”
“어떻게 소개해야 더 부끄러울까? 무림맹주가 나한테 한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소개말을 생각해야 하는데…….”
“대체 뭔 소린지…….”
백수룡은 악연호를 돌아보며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말석 자리 말이다. 신고식을 거하게 치러 주고 싶거든.”
그의 시선이 악연호를 지나쳐 남궁수가 있는 곳을 잠시 향했다.
* * *
수학여행 둘째 날 아침.
각각 첫날 일정을 소화한 청룡학관과 주작학관의 학생들은 대연무장에 집결했다.
좌측은 청룡학관.
우측은 주작학관.
아직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지 않았기에, 학생들은 저희들끼리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어제 번개가 엄청 치지 않았어?”
“천둥소리도 들리던데. 비는 조금도 안 왔는데…….”
“너희 방에는 술 남은 거 있냐?”
“쉿. 조용히 말해, 이 멍청아!”
다들 밤새 신나게 놀았는지, 잠을 제대로 잔 학생이 드물어 보였다.
그 와중에 서로를 힐긋거리는 시선들에서 적지 않은 적대감이 느껴졌다.
“청룡학관 녀석들. 어제 담력시험을 했다면서?”
“선생님들이 그러는데. 생각보다 제법이라더라.”
“그래 봤자 십 년째 꼴찌…….”
“뭘 봐, 이 새끼들아?”
“헌원강! 조용히 안 해!”
첫날부터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경쟁하면서 들어왔고, 누가 이겼다고 말하기 애매한 결과가 나왔다.
더군다나 오늘은 합동수업이기에, 본격적으로 경쟁의식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학생들이었다.
‘이번 기회에 누가 위인지 확실히 알려 주지.’
‘건방진 콧대를 콱 눌러 주마.’
벌써부터 두 학관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살벌한 가운데, 청룡학관에서 마지막으로 백수룡과 악연호가 나타났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백수룡은 우선 노군상에게 가서 남궁수가 오지 못한 이유를 전음으로 설명했고, 기다려 준 주작학관에도 가서 사정을 설명했다.
“흐음.”
염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백수룡을 추궁했다.
“간밤에 요란하게도 싸우는 것 같던데. 사고를 치진 않았겠지?”
“사고 칠 뻔한 놈은 방에 가둬 놓고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정은 제가 대신 진행하려고 합니다.”
염왕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맡겨 보겠네. 청룡신협이라면 우리 학생들도 환영할 테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포권을 취한 백수룡은 몸을 돌려 주작학관 학생들을 향해 걸어갔다.
청룡학관 학생들을 향해서는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던 학생들도 청룡신협에게는 호기심과 동경의 시선을 보냈다.
“반갑다, 주작학관 여러분. 오늘 오전 동안 너희들에게 특강을 할 백수룡이다.”
본래는 남궁수와 백수룡이 반씩 나눠서 하기로 했지만, 피치 못할 남궁수의 부재로 백수룡이 오전 시간을 전부 담당하게 되었다.
“청룡신협…….”
“어떤 무공을 지도해 주시려나? 역시 검법이겠지?”
“진짜 잘생겼다…….”
주작학관 학생들의 눈동자가 기대로 반짝였다.
청룡신협은 어떤 방식으로 무공을 가르칠까?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과목은 사파 무공의 이해와 실전 대비다. 지난 학기에 무척이나 반응이 좋았던 교과 과정을 압축했지.”
백수룡이 학생들과 눈을 맞추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곤 허리춤에서 적월을 빼 들었다.
스르릉.
햇빛을 반사한 칼날이 섬뜩한 살기를 드러냈다.
본래 피처럼 붉은색의 도신은 한 사내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신병이기였기에, 그 정체를 숨기기 위해 묵빛으로 가려 두었다.
“지금부터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너희를 조져 놓을 생각이다.”
“예?”
“네?”
“무슨…….”
백수룡은 학생들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곧바로 주작학관을 향해 신형을 날리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얻어터지기 싫으면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방금 전까지 으르렁대던 청룡학관 학생들조차, 이 순간만큼은 주작학관 학생들에게 애도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