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26
526화. 윤회연옥(輪廻煉獄)
백수룡은 도망친 적에 대해서는 우선 관심을 껐다. 아직 운기조식 중인 위지열을 두고 적을 추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차피 멀리 가진 못할 테지.”
핏물이 담긴 듯한 눈동자가 광채를 띠며 진법의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역천신공의 경지가 오를수록 혈마안의 공능도 강해졌다. 이제는 고절한 술법도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창룡신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음에도, 백수룡이 윤회연옥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윤회연옥(輪廻煉獄).
해석하면 불길로 달군 감옥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절세고수를 가두어 천천히 말려 죽이겠다는 의도와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이건…….”
백수룡은 외부와 단절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복잡한 술식과 기의 흐름을 읽었다. 그것은 언젠가 보았던 우주의 단면과 닮아 있었다.
“……혈마. 이것도 네가 만든 것이었나.”
진법에서 역천신공의 흔적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오직 백수룡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흔적이었다.
사부들이 뇌옥에 끌려가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술법도 혈마가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자, 백수룡은 이를 갈며 씹어뱉었다.
“대체 그 잘난 목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인생을 망쳐 놓은 거냐.”
윤회연옥을 만든 이유가 사부들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용도로 만든 것을 혈교의 장로들이 필요에 의해 가져다 쓴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 윤회연옥이 자신에게 펼쳐진 것 또한, 혈마의 의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의 운명은 태어난 순간부터 내게 종속된 것이 아니었을까?
문득 불쾌한 기억을 떠올린 백수룡은 그것을 털어 내듯 적월을 휘둘렀다. 시뻘건 도기가 전면으로 뻗어 나가 몰려오는 마귀들을 쓸어버렸다.
캬아아아아!
끼아아아아!
혈승이 죽은 후부터 사방에서 마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놈들은 몸에 용암을 반쯤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인간을 닮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형태에 통일성이 없었다. 다만 본능처럼 살아 있는 인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마귀들을 둘러본 백수룡은 발을 굴렀다.
쿠웅-!
진각 한 번에 원형의 충격파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번져 나갔다. 연달아 몸이 터져 나가는 마귀들. 백수룡은 무감각하게 발을 구르고, 적월을 휘둘러 몰려오는 적을 쓸어 냈다.
그의 뒤에는 위지열이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에 몰두해 있었다. 영약의 기운을 녹여 내상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그의 전신이 흘러나온 땀으로 흥건했다. 백수룡은 위지열의 상태를 계속 확인했다.
‘어르신도 거의 마무리 중인 것 같고.’
사방의 땅이 울려 대고 괴성이 난무하는 와중에, 위지열이 앉아 있는 주변만 호수처럼 고요했다. 백수룡이 미리 기막을 쳐 둔 영향이었다.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
끝없이 몰려오는 마귀들과 숨을 쉬기조차 어려운 윤회연옥의 내부는 절세고수라 해도 진이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역천신공을 익힌 백수룡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건 위지열도 마찬가지였다.
역천신공의 기운을 미리 몸 안에 불어넣었으니 감히 마기가 침범하지 못할 것이고, 살을 익힐 듯한 열기도 화령신공을 익힌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원기를 북돋워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르신이 깨어나면 바로 움직여야겠어.’
백수룡은 역천신공의 기운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몰려오던 마귀들이 흠칫하며 움직임이 확연히 느려졌다. 그러나 곧 괴성을 지르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들을 둘러싼 지형이 흔들리며 바뀔 때도, 인간의 형태였던 마귀들이 갑자기 짐승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을 때도 백수룡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윤회연옥을 경험하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결코 낯설지는 않았다.
-그 지독한 진법은 내부에서 파훼할 수 없더구나. 그 안에 들어온 놈들을 족쳐서 물어봐도 생문(生門)이 없으니 그냥 포기하라고만 하지 뭐냐? 그래서 뭘 아는 놈이 나올 때까지 족치고 또 족쳤지.
-잘 들어라. 그곳에서는 시간이 흐름이 바깥과 다르게 흐른다. 그 흐름에 속으면 몇 배는 빠르게 지칠 것이다.
-수시로 지형이 변하고 마귀들의 형태도 바뀐다. 이때는 당황하지 말고…….
-너라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을 게다.
사부들은 자신들이 윤회연옥에서 경험한 일을 제자에게 전부 알려 주었다.
당시에는 굳이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마치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알려 준 것 같았다.
휘익!
백수룡의 신형이 하늘로 솟구쳤다. 마귀들의 고개가 그를 쫓아 위로 들렸다. 목이 불가능한 각도로 꺾이는 놈들도 있었다.
대략 십 장 높이까지 뛰어오른 백수룡은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적월을 휘둘렀다. 수라혈천도의 초식에 빙백신공의 냉기를 담아 최대한 넓은 반경에 뿌렸다.
쩌저저저적……!
반경 수백 장이 넘는 범위에 백색의 냉기가 휘몰아쳤다. 용암이 흐르는 대지가 순식간에 설원으로 변했다. 그 안에서 움직이던 마귀들도 모조리 얼어붙었다.
처음으로 마음껏 펼쳐 내는 수라혈천도, 그리고 빙백신공이었다. 두 사부의 여러 조언을 떠올리며, 백수룡은 칼을 휘두르는 동시에 냉기를 분출했다. 그 모든 동작을 가능케 하는 신체는 녹림십팔식으로 단련했으며, 언뜻언뜻 무극검의 묘리도 함께 풀어냈다.
-만약, 그 안의 마기만 어찌 견딜 수 있다면…… 새로운 무공을 시험하기에 천하에 그보다 좋은 장소도 없을 게다.
검존 사부의 말이었던가.
백수룡은 역천신공에 사부들의 네 무공을 조금씩 접목하고 있었다. 단순히 같이 사용하는 것이 아닌, 하나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지금껏 머릿속에서만 염두에 두었지 시도조차 해 볼 수 없었던 일.
하지만 이곳에는 그의 적발적안을 보고 놀랄 사람도, 역천신공의 기운을 느끼고 달려올 고수들도 없었다.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었다.
침입자를 배제해야 할 연옥의 마기는 오히려 그의 전신에 활력을 선사했다. 무공에 대한 영감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마귀들은 적당한 연습 상대가 되어 주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감.
백수룡의 입술이 고혹적인 호선을 그렸다.
우우우우웅!
윤회연옥 전체가 백수룡에게 공명했다. 그가 무공을 펼칠 때마다 위지열이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곳의 지형이 변했다.
문득 멈춰선 백수룡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봤다. 밤하늘을 물들인 수많은 별이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개벽(開闢).”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러나 백수룡은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하늘을 노려보았다. 두 눈에 시뻘건 광망이 어렸다.
마침 아래에서 호흡을 갈무리하는 위지열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백수룡은 그대로 날아올라서 하늘을 찢어발기려 했을 것이다.
“후우우…….”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백수룡은 아래로 내려가 위지열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다 나았네. 이만하면 자네를 데리고 충분히 탈출할 수 있겠어.”
늙으면 느는 건 허세와 넉살뿐이라더니.
피식 웃은 백수룡은 위지열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챙겨 둔 물건이었다.
“입고 계세요. 몸을 조이는 녀석이라 일부러 운기조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가죽도 아니고 천도 아닌,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진 검은색 보의(寶衣)였다. 한눈에 그 정체를 알아본 위지열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건 묵룡의(墨龍衣) 아닌가?”
한서(寒暑)의 침범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검기를 막아 내며, 내공을 주입하면 강기까지도 몇 차례는 버티게 해 주는 혈교의 기물. 묵룡의 또한 위지가의 선조가 만든 물건 중 하나였다.
그간 여러 차례 험한 싸움으로 많이 손상되었지만, 안 입는 것보다 훨씬 나을 터였다.
“이건 자네가 입는 편이…….”
“제게는 더 이상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물건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말씨름할 시간 없습니다.”
“……알겠네.”
위지열은 더 이상 군말하지 않고 묵룡의를 입었다. 조금이라도 백수룡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했다.
“내 나중에 잘 고쳐서, 아니 더 개량해서 돌려주겠네.”
두 사람은 곧바로 길을 찾았다. 마귀들은 더 이상 백수룡을 막아서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운 눈으로 그를 피해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위지열은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백수룡에게 물었다.
“헌데, 길을 알고 가는 겐가?”
“도망친 놈부터 잡을 겁니다. 혈교의 장로로 보였는데, 뭐라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주면 내가 알 것도 같네만.”
“검을 여러 자루 가지고 다니는 노인이었는데…….”
“사장로로군. 욕심이 많고 눈치가 빠른 늙은이지. 내게도 보검을 만들어 달라고 몇 번이나 협박을 해 대던지.”
백수룡은 어렵지 않게 도망친 사장로의 기척을 찾을 수 있었다. 윤회연옥 안에서 그의 기감은 천지사방에 다 닿을 정도로 확장돼 있었다.
사장로 풍도검귀는 혼자가 아니었다. 철갑옷을 차려입고 제대로 무기를 갖춘 거구의 마귀들과 함께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놈을 잡아, 아니 죽여라!”
사장로가 잔뜩 독이 오른 얼굴로 소리치자 철갑옷을 입은 마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 숫자가 백이 넘어 보였는데, 하나같이 흉포한 마기를 전신에 두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된 놈들을 데려왔군.”
하나같이 이곳에 오기 전에 만난 마귀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 보였지만, 백수룡은 오히려 무공을 시험할 수 있어 즐거워 보였다.
그가 위지열을 두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잠시 기다리고 계십시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짧은 말을 남긴 백수룡의 신형이 그대로 쏘아졌다. 적발이 바람에 흩날린 순간, 그는 이미 적진의 한복판에 있었다.
쩌억!
일도(一刀)에 적이 갑옷째 반으로 갈라지고, 일장에 맞으면 얼음 조각이 되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휘돌려 찬 발에 걸리면, 그게 무엇이든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박살 났다.
어느새 적에게서 빼앗은 검으로는 검법을 펼쳤다. 절세의 검법과 도법이 양손에서 자유자재로 풀려나왔다.
무(武)의 화신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하나의 몸으로 동시에 여러 절세신공을 펼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신들린 듯 보였다.
“하하하하!”
백수룡은 스스로 웃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달려드는 적들을 베고, 찌르고, 꺾어 부수고, 날려 버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사부들의 무공을 하나로 만드는 과정에서 극한의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반쯤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자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위지열은 온 몸이 덜덜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저는 혈교를 증오합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이 검으로 놈들과 싸울 겁니다.
목숨을 걸고 그를 시험하고자 했던 때가 있었다.
거짓으로 혈교의 새로운 지존이 되어 달라고 간청했을 때, 백수룡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지열은 백수룡이라는 사내를 믿었다.
하지만.
“무림이 지금 자네의 모습을 본다면…….”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와 독보적인 존재감.
홀로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는 절로 경외감을 품게 만들 것이며, 저 붉은 보석안을 마주하는 순간 심장을 갈라 바치겠다는 자들이 속출하리라.
역천신공의 성취가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저러한 기질은 더더욱 숨기기 어려워질 것이다.
‘혈마의 재림이라는 말 외에, 다른 어떤 말도 떠올리지 못할 거라네.’
위지열은 말을 속으로 삼킨 채, 복잡한 표정으로 백수룡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