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27
527화. 제법 괜찮았어
혈교의 사장로인 풍도검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대체, 어떻게…….”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그의 눈은 윤회연옥의 마귀들에게 둘러싸여 싸우는 적발적안의 사내를 향하고 있었다.
‘어떻게 청룡신협이 역천신공을 익혔단 말인가!’
청룡신협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붉게 물든 순간.
사장로의 이성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대로 굳어서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때, 혈승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도망치는 것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이 든 순간 사장로는 오직 생존본능에 따라 뒤돌아서 전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맹수와 마주한 짐승과도 같은 반응이었다.
차라리 술법진에 갇혀서 환상을 본 것이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그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기에.
역천신공(逆天神功)이라니!
교의 본단에서도 아직 제대로 된 혈마의 후계자를 찾지 못했다. 헌데 지금껏 교의 계획을 몇 번이나 파탄 내고 장로들을 죽여 댄 청룡신협이 역천신공을 익히고 있다?
‘당장 알려야 한다!’
이토록 중요한 정보를 알지 못한다면, 혈교는 또 한 번 커다란 패배를 맞이하리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사장로는 공포에 질려 무작정 도망치던 도중에서야 떠올렸다.
윤회연옥진은 바깥에서 열어 주지 않으면 내부에선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즉, 아무리 도망쳐도 진법에서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분가의 잡것들을 소탕한 후 노부가 직접 청룡신협을 데리러 갈 테니, 자네들은 놈이 너무 날뛰지 못하도록 막기만 하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며 자신을 진법 안으로 들여보낸 대장로에 대한 살심이 무럭무럭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찢어 죽일 늙은이!’
다행히 윤회연옥에 들어오기 전에 대장로가 알려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주문을 외워 윤회연옥의 마귀들을 잔뜩 불러내 자신을 호위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청룡신협과 다시 조우한 지금.
촤아아아악!
쩌저저저적!
콰직! 콰지직!
윤회연옥의 마귀들이 찢겨 나가고, 얼어붙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뭉개지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쓸려 나가고 있었다.
그 중심에, 핏물에 담겼다 나온 듯한 적발적안의 사내가 있었다. 하나하나가 절정고수에 준하는 움직임을 가진 윤회연옥의 마귀들에게 포위돼 있으면서도, 그의 입가에 맺힌 요사스러운 미소는 오히려 점점 짙어졌다.
“빌어먹을…….”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저토록 패도적인 기운을 뿌리는 무공은 천하에 역천신공 외에는 존재하지 않기에.
‘어차피 도망치지 못한다면…… 반드시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백수룡을 노려보는 사장로의 눈에 짙은 살기가 어렸다. 삶에 대한 집착은 천적에 대한 두려움을 증오로 바꾸었다.
그는 혈교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인사였지만, 혈마가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청룡신협이 역천신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충격을 받는 것은 정파 무림만이 아니다.
혈세천하 혈마재림을 외치는 광신도들 앞에 저러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그들은 상대가 청룡신협이 아니라 무림맹주라고 해도 떠받들려 할 터.
자칫하면 혈교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스르륵. 스르륵.
사장로의 허리와 등에 메인 다섯 자루의 검이 저절로 검집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떠올랐다.
“대장로. 오늘 내가 살아나간다면 이 빚은 톡톡히 받아 낼 것이외다.”
풍도검귀(風道劍鬼).
바람의 길을 읽는 검의 귀신.
남의 보검을 빼앗기 위해 수많은 검객을 죽여온 악인에겐 과분할 정도로 고상한 별호였으나, 직접 그의 무공을 견식한 자들은 그보다 어울리는 별호는 떠올릴 수 없다고 했다.
다섯 자루의 검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한 자루만 다루어도 절세검객으로 인정받는 어검술이 무려 다섯 자루로 동시에 펼쳐졌다.
“재미있는 무공을 쓰는군.”
백수룡은 윤회연옥의 마귀들과 싸우면서도 그 모습을 흥미롭게 힐긋거렸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투와 가볍게 말려 올라간 입꼬리. 역천신공을 펼치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노부의 독문무공인 섬혼마검(閃魂魔劍)이다. 어디 한번 받아 보거라.”
우우우우웅!
다섯 자루의 검이 귀신의 울음소리를 내며 부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위로 잿빛의 강기가 맺혔다.
풍도검귀는 혈교의 사장로였다.
하지만 장로의 앞에 붙는 숫자가 반드시 강함의 순서는 아니었다.
보검을 수집하며 숱한 원한을 만들고도 장수한 비결은 신중하고 매사에 경계하는 성격이었다. 그가 더 적극적이었다면, 혈교의 삼장로와 사장로의 위치는 바뀌었으리라는 것이 대장로의 평가였다.
“흥미롭군. 해 봐.”
백수룡은 윤회연옥의 마귀들과 싸우는 와중에도 손가락을 까닥여 상대를 도발했다. 그러자 마귀들이 더욱 사납게 날뛰었다.
캬아아아아아!
동시에 다섯 자루의 검이 윤회연옥의 마귀들을 엄폐물 삼아 쏘아졌다. 두 자루는 심장과 단전을 노리고, 다른 두 자루는 뒤로 돌아가 척추와 목을 노렸다.
하늘 높이 솟구친 마지막 한 자루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백수룡의 정수리로 뚝 떨어졌다.
쩌엉!
백수룡은 적월을 휘둘러 앞으로 날아온 두 자루를 쳐 내고, 등 뒤로는 냉기를 뿌려 날아오던 검이 허공에서 얼어붙게 만들었다. 동시에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켜 느려진 검들을 옆으로 비껴내고, 정수리로 뚝 떨어지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 와중에 여전히 덤벼드는 마귀들의 공격까지도 전부 피하거나 막아 내는데, 신기(神技)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한 번에 죽일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장로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이자 튕겨 나갔던 검들이 다시 허공에 떠올라 윤회연옥의 마귀들 틈으로 숨어들었다가 덤벼들기를 거듭했다.
촤아악!
검이 스치고 지나간 어깨에서 핏물이 터졌다. 난전 중에 공격을 완벽하게 흘리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백수룡의 입가에 맺힌 요사스러운 미소는 여전했다.
“아까 그 땡중보다는 낫군.”
“……언제까지 건방을 떨 수 있는지 보겠다.”
짧은 대화가 끝난 즉시, 다시금 다섯 자루의 어검이 쏘아지고 백수룡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쩌저저저저정!
허공을 자유롭게 유영하던 다섯 자루의 검은 변화막측한 궤적을 그렸고, 그에 맞서는 백수룡의 움직임은 완전히 신들린 무희를 보는 듯했다.
충격파가 터질 때마다 그 여파에 근처에 있던 윤회연옥의 마귀들이 소멸했다. 스무 합을 나누기도 전에 일대에 성한 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우우웅!
제법 부딪칠 만한 적수들을 만난 적월이 신명나게 울었다. 사장로가 부리는 검 하나하나가 마병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다섯의 존재감이 적월 하나를 능가하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사장로의 눈에는 경악이 어렸다.
‘저자는 대체…….’
싸움이 길어질수록 청룡신협의 무복에 핏물이 번지고 있었다. 마귀들과 난전 중에 다섯 자루의 어검이 날아오는 상황. 심지어 하나하나에 전부 강기를 두른 채였다.
평소 사장로의 능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위력의 무공이었다. 마공을 연성한 무인에게 끊임없이 마기를 공급하는 윤회연옥진 안이기에 가능한 일. 지금이라면 상대가 대장로라고 해도 꺾을 자신이 있었다.
‘진작에 결판이 났어야 하거늘!’
사장로는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여 청룡신협을 몰아붙였다.
거리를 두고 일방적으로 공세를 퍼붓는 그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조급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그럼에도 점점 불안감이 드는 이유를, 사장로는 서서히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저 무공들은…….”
사납고 강맹하기만 했던 절세무공들이 점점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 보였다. 도법과 빙공이 신들린 체술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비어 있던 왼손도 어느새 마귀에게 빼앗은 검으로 검법을 펼쳤다.
놀랍게도 전부 아는 무공들이었다.
“어떻게 사도들의 무공을 전부…….”
그러나 놀라기도 잠시, 청룡신협이 자신을 상대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사장로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를 상대로 무공을 수련 중인 것이냐-!!”
지독한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
그와 동시에 다섯 자루의 보검이 일제히 쏘아졌다. 벽력탄 수십 개가 동시에 터진 듯한 폭발이 뒤를 이었다.
콰콰콰콰콰콰쾅!
거대한 폭발이 술법 전체를 흔들었다.
그리고 폭발의 여운이 가시고 난 자리에, 다섯 자루의 보검을 제압한 백수룡이 오연히 서 있었다.
“제법 괜찮았어.”
다섯 중 두 자루는 그의 발아래에 각각 한 자루씩 밟혀 있었으며, 다른 두 자루는 적월에게 눌려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마지막 한 자루는 백수룡의 왼손에 칼날이 잡혀 있었는데, 그의 손바닥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상을 입었는지 입가에도 희미한 핏물이 비쳤다.
백수룡은 사장로의 검에 연결된 아주 얇고 투명한 실을 오른손으로 툭툭 건드리며 피식 웃었다.
“검에 가느다란 천잠사를 연결해 어검처럼 부린다. 괜찮은 수법이야. 진짜 어검술에 비하면 심력 소모도 적고, 효율도 좋지. 게다가 하수들에게는 어검처럼 보일 테니 심리적인 효과까지 있고.”
“…….”
독문무공의 비밀을 들켰음에도 사장로는 이를 악물 뿐 놀라지 않았다. 애초에 저 정도 고수에게 들키지 않기란 불가능한 수법이었다.
어검술과 비슷한 무공을 펼치기 위해 검파에 천잠사를 연결한 후, 손가락을 이용해 미세하게 움직여 조종한다.
같은 내공으로 훨씬 더 많은 검을 쉽게 부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사장로는 자신의 독문무공이 실제 어검술에 못지않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어검술과 비교하면 느리고 잡스럽더군.”
“감히-!”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장로가 일갈을 터트리며 손가락을 당겼다. 검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천잠사에 연결된 검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용을 써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끄윽! 당장 놓지, 못하겠느냐……!”
피식 웃은 백수룡은 적월로 사장로가 왼손에 붙잡고 있던 검을 내리쳤다. 너무나 간단하게 검이 두 조각으로 부러졌다.
“무슨 짓이냐!”
사장로가 비명을 질렀으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백수룡은 풍도검귀가 평생 모은 가장 뛰어난 보검 다섯 자루를 그가 보는 앞에서 하나씩 깨뜨렸다.
“그만! 그만해라!”
주인을 죽이고 빼앗은 검에는 망자의 원념이 깃들기 마련이었다.
백수룡은 검을 깨트리는 것으로 이전 주인들의 원혼을 달래고, 마병이 된 검들에게 안식을 주었다.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눈이 뒤집힌 사장로가 덤벼들었으나, 검을 들고 싸워도 이기지 못했는데 맨손으로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맹호투의 연습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콰아앙!
바닥에 처박혀 피를 토하는 사장로를 일별한 백수룡은 마지막 남은 검을 깨뜨리기 위해 적월을 들었다.
“제, 제발 그 검만은……!”
사장로의 애원을 무시하고 적월에 강기를 둘러 내리치려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검이 스스로 검명을 울렸다.
우우웅.
“음?”
맑고 단단한 울림이었다. 망자의 원념에 잠식되지 않았다는 의미. 자세히 들여다보니 검 자체에서 자연의 기가 풍부하게 느껴졌다. 사장로가 휘두를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기운이었다.
백수룡은 검면에 새겨진 뇌굉(雷轟)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살고 싶은 거냐?”
우우웅.
그렇다고 말하는 것처럼 검명을 울리는 뇌굉을 잠시 바라보던 백수룡은 적월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사장로에게 다가갔다.
“사장로. 묻는 말에 대답하라.”
주저앉아 피를 토하고 있던 사장로가 푸흐흐 웃었다.
그는 죽어 가고 있었다.
윤회연옥의 힘을 빌려 분수에 넘치는 무공을 펼친 대가로 기혈이 가닥가닥 끊어지고 단전이 망가졌다. 회생 불가의 상처였다.
“내게…… 명령하지 마라.”
사장로는 흐린 눈으로 백수룡을 바라보며 클클 웃었다. 어차피 죽어 가는 몸이었다. 더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그 잘난 역천신공으로 곧 죽을 늙은이의 입도 열 수 있을 것 같은가? 감히 내 검을 부숴 놓고…….”
“어리석구나.”
백수룡은 벼락처럼 손을 뻗어 사장로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게 했다.
“나를 보거라.”
“……!”
사장로는 인세의 존재가 아닌 것 같은 상대의 얼굴을 무심코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안에서는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죽지 못한다.”
핏빛을 띤 입술이 섬뜩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눈앞의 사내는 혈마(血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