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46
546화. 돌아가자
천하에 넷뿐인 친우였다.
-반갑다. 앞으로 잘 지내 보자.
-같은 스승님한테 무공을 배우게 된다던데, 뭐 들은 거 있어?
-다 똑같은 무공을 배우나? 난 도법을 배우고 싶은데.
-……반가워. 다들.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시절에 만나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생사고락을 함께했고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았으니 심우(心友)라 할 만했다.
넷 다 혈교에 들어오기 전의 기억은 대부분 흐릿했다. 아마도 마뇌에게 당한 대법과 세뇌의 영향일 터였다. 그렇게, 가족도 형제도 없는 천애고아 넷은 동문(同門)이 되었다.
소년·소녀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마뇌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곁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있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여기 있는 교관을 스승으로 섬겨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너희가 무공을 완성하는 날, 본교의 대업이 시작되리라.
그날, 소년은 내심 형제들이 생긴 것 같아 기뻤다.
절세신공을 익혀 고수가 되겠다는 의욕을 가진 친우들과 달리, 소년은 욕심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모두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지만…….
촤아악!
-너희가 지금까지 본교에서 어떤 대접을 받아왔는지는 관심 없다. 오늘부터 너희의 생사여탈권을 쥔 사람은 나다. 내 말에 절대복종하도록.
-…….
그들의 스승은 첫날부터 제자들을 가혹하게 매질했다. 철저하게 짓밟았으며, 감정을 말살한 채 살인 병기가 되라고 가르쳤다.
스승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면, 다 같이 한 방에 모여 원망과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죽여 버리겠어. 강해지면 반드시 그 자식부터 죽여 버리겠다고.
-끄흐윽. 아파…….
-젠장. 그만 좀 질질 짜. 아까 금창약도 발라 줬잖아.
-…….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숙소에는 잠시도 피 냄새가 가시는 날이 없었다. 피부에는 늘 피멍이 들어 있었고, 베인 상처는 점점 늘어났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몸과 마음에 남았다.
-억울한가? 그럼 더 강해져라. 무력하게 당하고 싶지 않다면, 살아남고 싶다면 강해져야 한다. 그것만이 너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악이다.
스승은 살아남고 싶으면 강해져야 한다면서 제자들을 죽음 직전까지 내몰았다.
-……저희가 포기하면 어떻게 되나요?
누구보다 단단했던 일호가 지친 얼굴로 그런 질문을 했을 때, 깜짝 놀란 것은 소년·소녀들만이 아니었다.
사호는 그 순간 스승의 눈동자가 확 커졌던 것을 기억했다. 전에 없이 불안하게 흔들리던 모습도.
그러나 스승은 순식간에 감정을 감추며 싸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너희 말고도 대체할 인력은 많다. 폐기된 후에 버려지겠지.
-……그렇습니까.
-나는 잠깐 나갔다 오겠다. 훈련은 계속하도록.
갑자기 볼일이 생겼다며 연무장을 떠나는 스승의 뒷모습에 대고, 일호는 무심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교관도 나갔는데, 잠깐 쉴까?
-아니. 계속한다.
반드시 살아남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서, 증명하겠다.
그렇게 중얼거린 일호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복잡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년·소녀들도 곧 수련을 재개했다.
그로부터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을 때, 일호는 자신이 증오했던 교관과 가장 닮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를 원망하느냐?
스승의 질문에 아무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 지독한 증오와 원망을 가슴에 품은 채, 고개를 숙이며 아니라고 답했다.
-그래? 잘됐군…….
주향을 풍기며 피식피식 의미 모를 웃음을 흘리던 스승은, 며칠 후 뇌옥에 갇힌 고수들과 함께 혈교를 탈출하려고 시도하다가 발각됐다.
그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제자들을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봤다.
-비켜라. 너희만큼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 않다.
그날, 스승이 죽었다.
싸움이 끝나고 숨을 거둔 스승의 시체를 내려보던 친우들의 얼굴이 기억에 생생했다. 텅 비어 버린 눈동자에 서로의 얼굴이 비쳐, 보지 않으려 해도 봐야만 했다.
-…….
-…….
넷 중 누구도 스승의 죽음을 비웃지도, 배신자라며 시신에 침을 뱉지도 않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이 감정이 완전히 말살되었기 때문인지, 혹은 다른 감정을 참아 내기 위해서인지 그때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돌아가자.
겨우 입을 연 일호의 말에 사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도들은 스승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일사도가 그의 꿈을 꾸었다고 말할 때까지.
-옛 스승이 나오는 꿈을 꿨다. 모든 것이 흐릿했는데, 이상하게 마지막 말은 기억에 남는군. 우리를 다시 만나러 오겠다고…….
일사도는 알까.
그를 교관이 아닌 옛 스승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본인이라는 것을.
* * *
콰아아아앙!
검과 주먹이 부딪친 순간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거센 바람이 사방팔방을 휩쓸었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고 흙먼지가 비산했다.
그 폭발의 한가운데서.
사곤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친우의 검을 막아 내고 있었다.
“……사호. 비켜라.”
혈마의 신물인 혈마검이 일사도의 손에 들렸다. 검신에 은은한 붉은빛이 흘렀다.
무극검을 극성으로 익혀 낸 절세검객이 절세보검마저 들었다. 지금껏 일사도가 마음먹고 베지 못한 것은 없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오랜 친우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혈마검을 막고 있는 사호의 두꺼운 근육 위로 희미한 혈선이 비쳤다.
말했을 텐데. 지나갈 수 없다고.
허공에 비산한 먼지들이 일사도의 눈앞에서 글씨를 이루는 것과 동시에, 사호는 혈마검을 위로 쳐올렸다.
쩌엉!
그때부터 두 절세고수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손속을 나눴다. 혈교 최정예 전력이라 불리는 혈룡대의 눈에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속도였다.
화아아아악!
태풍이 두 사람의 몸을 휘감아 가둔 듯했다. 휘몰아치는 기류가 그들의 모습을 완전히 가렸다.
그 안에서 연달아 터지는 굉음과 새어 나오는 강기의 파편 등이, 사도들의 싸움이 얼마나 험악한지 알려 주었다.
쿠구구궁……!
그들이 맞붙은 장소를 중심으로 지반이 점점 아래로 내려앉았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넘어가고, 바위가 흔들거리다가 산 아래로 굴러갔다. 혈룡대의 무인들이 황급히 멀리 물러났다.
“……이 정도면 되겠군.”
일사도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자, 사곤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휘감은 태풍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 일사도는 천천히 검을 내렸다.
“변명할 기회를 주겠다.”
갑자기 검을 휘두른 것은 둘이서 대화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혈룡대가 자연스럽게 수십 장 이상 뒤로 물러나도록.
사곤 또한 그 사실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일사도는 옛 스승을 가장 많이 닮은 녀석이니까. 거친 인상과 달리 두뇌 회전이 빠르고 침착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사곤은 물끄러미 자신의 친우를 바라봤다.
옛 스승이 저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일사도는 절대로 물러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언젠가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자신이 옛 스승을 만나면서 느낀 감정과 경험을 그에게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눈앞의 일사도뿐만 아니라 다른 사도들, 이호와 삼호에게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니다.
이 자리에서 옛 스승의 정체를 밝히면 파국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이제 그만하자.
다행히 사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바닥에 새겨진 글씨에, 일사도가 미간을 모으며 되물었다.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혈마의 귀환을 기다리는 일.
“……너.”
흑립 아래로 드러난 흉터들이 사납게 꿈틀댔다. 하지만 사곤은 멈추지 않았다.
설령 그가 돌아온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지?
일사도는 얼굴의 흉터들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최근 들어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이 잦았다.
“……미쳤군.”
일사도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자신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심지어 그 말을 한 당사자가 수십 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한 친우였다.
“지존의 귀환이 의미가 없다고? 그 말이 무슨 뜻인 줄 알고 지껄이는 것인가?”
사도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혈마의 귀환이었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나를 기다려라.
그 한마디를 듣고 수십 년을 기다렸다. 무너진 혈교를 처음부터 재건하고, 세력을 키우면서, 언젠가 돌아올 혈마의 귀환을 맞이하기 위해 살아왔다.
“그걸 포기하면, 우리에게 대체 무엇이 남지?”
평생 같은 목표를 보며 살아왔다고 믿고 있었던 친우에게 느끼는 배신감이기에 더욱 컸다. 일사도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우리의 삶이 늘 지옥이기만 했을까?
사곤은 슬픈 얼굴로 일사도를 바라봤다. 그 눈에 가득 담긴 감정을 본 건 몇십 년 만인 터라, 일사도는 당혹스러웠다.
“무슨…….”
과연 지금까지의 삶이 전부 지옥이기만 했을까?
혈마를 기다린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까?
사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옛 스승을 다시 만나고, 그와 함께 있는 다섯 명의 사제들과 보냈던 시간 동안.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삶이 의미 없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너희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바닥에 새겨진 글씨가 유독 선명했다. 마치 절대로 지우지 않겠다는 것처럼.
한동안 그 글씨를 바라보던 일사도가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인가.”
그 순간, 일사도가 서 있는 주변의 풍경이 마치 예리한 검에 베인 듯 비현실적으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무극검(無極劍) 오의(奧義)
무극천하(無極天下)
천하의 그 무엇도 베지 못할 것이 없다는 의념이 일사도의 가슴에 깃들었다.
다시 혈마검을 들어 사곤을 겨눈 일사도가 서슬 퍼런 목소리로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 비켜라. 네가 나를 막아서는 진짜 이유를 확인해야겠다.”
사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두 주먹을 가슴 앞에서 쿵- 부딪치자, 주변 일대의 공간을 짓누르는 압력이 더욱 강해졌다.
일사도가 꽉 악문 잇새로 말했다.
“……너를 죽이고 싶진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둘 다 끝까지 양보하지 않을 기세였다. 일사도의 검극이 사호의 심장을 겨누고, 자세를 낮춘 사곤의 눈빛이 맹수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콰콰콰콰……!
맹호군림과 무극천하의 기운이 부딪치며 사방을 할퀴어 댔다. 신공절학을 극한으로 연마한 절세고수들의 오의가 팽팽하게 맞섰다.
섣불리 그 안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수백 조각으로 분해될 만큼 가공할 기파의 소용돌이.
그때, 돌연 새하얀 바람이 불어와 그들의 영역을 침습하기 시작했다.
“……배신자.”
어느새 정신을 차린 이사도의 백발이 바람에 거세게 나부끼고 있었다.
사곤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섬뜩한 분노가 일렁였다. 신월빙백무의 백색 기류가 무극천하와 맹호군림이 장악한 공간의 일부를 밀어내며 그들과 대등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분위기 속에서, 이사도가 싸늘한 목소리로 일사도에게 말했다.
“청룡신협은 윤회연옥진에서 탈출했을 거야. 염왕과 싸우던 중에 윤회연옥진이 파괴된 걸 느꼈어.”
“……놀랍군.”
“당연히 그 안에 있던 장로들도 죽었겠지. 반나절이면 정리될 줄 알았던 협곡에서 아직도 전투 중인 걸 보면, 불사마존도 죽거나 잡혔을 테고.”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말에 일사도가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더 최악이었군.”
“아직 남았어. 저길 봐.”
일사도의 고개가 이사도의 눈짓이 향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기감을 집중시키자, 멀리서 적지 않은 숫자의 기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곤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한 사이였다.
“협곡을 탈출한 자들이 지원군을 불러온 모양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몰려오겠지.”
일사도는 헛웃음을 흘렸다.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보다 더 최악이 있을 수 있다니.
그러나 그는 빠르게 현실에 수긍하고 방법을 모색했다.
“계획은 실패다. 이번에는 청룡신협 때문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있는 배교자 때문에.”
일사도의 시선은 여전히 비켜설 마음이 없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호를 노려봤다.
지금은 청룡신협보다 사도의 배신이 더 큰 문제였다.
만약 교를 배신한 사도가 무림맹에 투항하기라도 한다면, 혈교는 그 근간부터 흔들리게 될 터.
‘청룡신협은 포기하더라도, 사호는 반드시 데려가야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벽을 무너뜨려야 하는 일이다. 두 명의 사도가 전력을 다해도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겠군.”
일사도는 옛 스승을 가장 많이 닮았다.
특히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이.
그는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로 사호를 응시했다. 마치 네 속내를 다 안다는 듯이.
“첫 번째. 내가 이곳에서 사호를 붙잡고 있는 동안, 이사도. 네가 협곡으로 가서 최대한 많은 인간을 죽이고 돌아온다.”
“……!”
사곤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맹호군림의 기파가 거칠어졌다. 그 반응으로 일사도는 그가 자신을 가로막은 이유가 저 협곡 안에 있음을 확신했다.
“두 번째. 순순히 우리를 따라 본교로 복귀한다. 그럼 더 이상 누구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사실상 한 가지 선택을 강요하는 협박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사곤의 눈동자에 보일 듯 말 듯 한 안도감이 어렸다.
일사도가 그를 아는 만큼, 사곤도 일사도를 알았다.
천천히 주먹에서 힘을 푼 그가 수어로 말했다.
-너희를 따라가겠다.
잠시 후, 세 사람을 휘감았던 태풍이 흩어졌다. 사도들의 신공이 충돌한 여파로 일대가 모조리 폐허로 변했다.
싸움이 완전히 멈추자, 사호가 웃으며 한 번 더 수어로 말했다.
-함께 돌아가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우의 미소에, 무언가를 깨달은 일사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 설마, 처음부터……!”
한동안 사곤을 매섭게 노려보던 일사도가 몸을 홱 돌렸다. 그는 명령을 기다리는 혈룡대에게 지시했다.
“포박해라.”
사곤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사도도 한마디를 남기고 일사도를 따라갔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
“…….”
힐긋 협곡을 한번 바라본 사곤은 다가오는 혈룡대의 무인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두 팔이 뒤로 묶이고, 혈도가 제압당하고, 굵은 쇠사슬을 몸에 칭칭 감았음에도, 혈룡대는 방심하지 않고 그를 철저하게 감시했다.
사곤이 혈교에 도착해 뇌옥에 갇힐 때까지, 사도들은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