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48
548화. 곧 알게 되겠지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지쳐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다름없이 능글맞은 얼굴.
그러나 남궁수는 백수룡에게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 목덜미가 섬뜩해지는 감각과 함께.
“지금까지 같이 싸워 놓고 왜 이래? 내가 백수룡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이지?”
백수룡의 입꼬리가 느릿하게 올라갔다. 본래 그의 말투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러나 남궁수는 여전히 백수룡을 겨눈 검을 치우지 않았다.
오늘처럼 백수룡이 인간이 아닌 존재로 느껴진 적은 없었다.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백수룡이라면 학생들이 위험하다고 했을 때 곧바로 움직였겠지. 운기요상을 할 시간 따위는 없다면서.”
“내 내상이 그만큼 심각하다면?”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매혹적이고 몽환적인 목소리였다. 웬만한 사람은 그 한마디에 동공이 풀려 버리고도 남을 터였다.
“무슨 수작이지?”
하지만 남궁수의 견고한 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천뢰제왕검형의 정순한 내공으로 요사스러운 기운을 흩어 버리며, 눈을 부릅뜨고 백수룡을 노려봤다.
“흐음. 드물게 단단한 정신이구나.”
몹시 이질적이고도 위험한, 그리고 피부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패도적이면서도 끈적한 공기가 백수룡의 전신을 두르고 있었다.
“……그때 그 기운이로군.”
천살과 싸울 때, 돌아보지 않은 등 뒤로 느껴졌던 기운이었다.
남궁수는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며 다시 백수룡을 불렀다.
“백수룡. 그 안에 있나.”
스스로를 백수룡이라고 주장하는 존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붉게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던 눈동자는 이제 완전히 붉게 변했다. 핏빛 보석안이었다.
스스슷…….
머리카락도 끝부분부터 천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남궁수는 뇌굉을 쥔 손아귀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창룡신검. 내 말이 들리나.”
우웅……!
백수룡의 오른손에 붙들린 창룡신검이 부르르 떨렸다. 마치 고통스러움에 신음하는 것처럼 보였다.
“꽤 버둥거리는구나.”
무심한 붉은 눈동자가 창룡신검을 응시했다. 한낱 검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영성을 품은 신물. 그 안에 있는 현천신녀가 전력으로 역천의 힘을 방해하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창룡신검의 저항이 강한 듯, 백수룡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명부로 썩 꺼지거라! 이 몸은 네가 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신령함이 깃든 현천신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지만, 백수룡의 핏빛 입술은 섬뜩한 호선을 그릴 뿐이었다.
“하찮구나. 내 너를 압제하지 못할 것 같은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손등에 핏줄이 불거지며 머릿속에서 현천신녀의 비명이 들려왔다. 동시에 역천의 힘이 집중되자, 은은한 푸른빛이 도는 창룡신검의 검신이 서서히 붉게 물들었다.
그때였다.
“도저히 못 봐주겠군.”
벼락같은 일검이 백수룡의 손목을 노렸다. 기다렸다는 듯 백수룡도 몸을 틀며 옆으로 검을 내쳤다.
쩌엉!
충돌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몸을 회전시킨 남궁수는 연달아 검을 뿌렸다. 내공을 대부분 소진한 탓에 벼락을 줄기줄기 내뿜지는 못했지만, 검객이 지닌 본신의 기예와 검의 예리함만으로 날카로운 검풍을 일으켰다.
까가가각!
불티를 튀며 스친 칼날이 서로의 무복을 찢고 살갗을 스쳤다. 소름 끼치도록 예리하고 섬뜩한 공방이었다. 붉은 눈동자에 순간 흥미가 일었다.
그 핏빛 눈동자에 비친 남궁수가 금안을 번뜩였다.
“불러도 깨어나지 않으니, 두들겨 패서라도 깨우는 수밖에.”
“과연 가능할까?”
남궁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호흡조차 아끼고 일보 전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상대가 생사대적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과감한 검격이었다.
까가가강!
두 사람은 진지하게 검을 맞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서로의 심상 속에서는 수백 번도 넘게 겨뤄 보았을 것이다.
적어도 남궁수는 그러했다.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백수룡은 청룡학관의 일타강사에게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존재였다.
‘역시.’
검을 부딪칠수록 남궁수는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언젠가 검을 부딪칠 날에 대비한 것은 아니다. 그저 무의식의 영역에서 상대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했다. 그 모든 추론이 하나의 결과로 수렴되었다.
백수룡은 무학(武學)의 천재다.
하나의 몸에 신공절학을 여럿 담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란 듯했다. 어떤 무공이든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자질을 지녔다.
그의 입가에 탐욕스러운 미소가 걸린다.
“천뢰검법과 제왕검형을 제대로 합쳤네.”
붉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가 자신의 모든 검로를 훑는다. 검을 부딪치는 순간순간마다 초식이 분석되고 분해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세하게 대응하는 방법이 바뀌는 것만 봐도 분명했다.
천하, 아니 고금을 통틀어도 이런 무인이 몇이나 존재했을까.
남궁수는 새삼 느꼈다. 괴물이군.
승률은 희박하며, 시간이 갈수록 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승부를 걸어 볼 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둘 다 신체와 내공이 거의 한계에 달했다.’
정신력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귀신에 들려 고생하는 어리숙한 후배와는 격이 달랐다.
스걱! 푸확!
검격을 교환할수록 남궁수의 몸에 상처가 늘었다. 보법은 백수룡보다 반 호흡씩 늦었고, 초식의 정밀함도 다소 부족했다. 이미 핏물로 점철된 백의무복이 찢겨 나가며 그 안의 무수히 많은 상처가 드러났다.
이만한 상처를 입고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다니.
백수룡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지?”
공적으로는 청룡학관의 강사이자 후배이기 때문이었고, 사사롭게는 가문의 은인이기에.
“……아직 남았다.”
갚아 줘야 할 은혜가 남았다. 그 전에 멍청하게 죽게 하거나, 삿된 것에게 몸을 빼앗기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저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촤악!
뺨을 스쳐 가는 공격을 흘리며 남궁수는 눈을 빛냈다. 벼락이 명멸하는 금안에서 어떤 각오가 새겨졌다.
움직이지 않는 왼팔을 미끼로 내어준다. 잃는 것 없이 이득을 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에.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다.’
백수룡은 미끼에 속지 않을 것이다. 왼팔이 아니라 이어지는 공격을 기다렸다가 검을 쳐낼 것이다.
‘그때를 노려서.’
꿈틀.
왼팔의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잠깐이라면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싸우는 동안 남궁수가 한 번도 왼팔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백수룡은 그 사실을 모를 것이다 속임수에 능한 백수룡을 속이기 위해서라면 더 치밀해야 했다. 남궁수는 머릿속에 수십 가지의 투로를 그린 뒤,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하나씩 지워 나갔다.
그리고 단 하나의 투로가 남았을 때.
남궁수는 거기서 절반의 승산을 보았다.
‘절반.’
승부를 걸어 보기에 충분한 가능성이었다.
쩌엉!
창룡신검과 뇌굉이 강하게 충돌했다. 그 반발력으로 거리를 벌린 두 사람이 휘청이면서 중심을 잡았다. 피차 체력과 내공을 거의 소진한 상태였다. 두 사람 모두 기교와 정신력만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하하……!”
백수룡의 얼굴을 한 사내가 즐거운 듯 웃었다. 붉은 보석안에 요사스러움과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공존했다.
남궁수가 이글거리는 금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다.”
“꽤 기대되는데?”
장난기가 섞인 대답에, 남궁수는 미간을 좁히고 달려들었다. 쥐어 짜낸 뇌기가 뇌굉의 검신을 휘감았다.
파지지직!
백수룡의 검에도 붉은 기운이 흐릿하게 맺혔다. 두 사람이 그린 궤적이 허공에서 난마처럼 얽혔다.
창룡신검이 남궁수의 목덜미를 스치며 핏줄기가 튀었다. 남궁수는 고개를 젖혀 피하는 동시에 왼쪽 어깨를 들이밀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수법.
백수룡은 걸려들지 않았다. 상대의 쓸모없는 왼쪽 팔을 무시하며 이어질 공격에만 신경 썼다. 남궁수의 예상대로였다.
‘지금이다.’
축 늘어져 있던 왼팔이 벼락처럼 움직여 백수룡의 혈도를 노렸다. 죽은 척 수풀에 엎드려 있던 뱀이 인내 끝에 먹이를 덮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백수룡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그 모습을 본 남궁수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알고 있었군.”
“정파 샌님이 안 어울리는 짓을 하니까.”
백수룡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왼팔을 붙잡아 꺾더니, 힘을 주어 무게중심을 무너뜨렸다.
쿠웅!
남궁수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맥없는 패배였다.
하지만 남궁수는 못마땅한 듯 미간을 한번 찌푸릴 뿐,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언제 돌아왔지?”
백수룡의 눈이 더 이상 붉은색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몇 번 눈을 깜빡인 백수룡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방금 전에.”
그의 손에 들린 창룡신검은 거의 오열하고 있었다.
[수룡아! 수룡아! 이제 괜찮은 게냐?]“괜찮아. 둘이 도와준 덕분에……. 일단은 밀어냈어.”
백수룡은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단순히 남궁수와의 대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궁수가 백수룡의 몸을 장악한 혈마와 검을 겨루는 동안, 그의 내면에서는 몸의 통제를 되찾기 위한 사투가 벌어졌다. 현천신녀 역시 그의 심상에서 함께 싸워 주었다.
“하지만 아직은 위험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
남궁수의 팔을 놓아준 백수룡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가 남궁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부탁 좀 하자.”
“무슨?”
백수룡은 검결지로 자신의 혈도를 몇 군데 짚었다. 그러곤 눈을 감더니 스르륵 의식을 잃었다.
“백수룡? 백수룡!”
[잠이 깊게 든 것뿐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창룡신검의 설명이 있고 나서야 남궁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백수룡을 노려봤다. 곤히 잠든 얼굴을 보자 괜히 울화가 치밀었다.
“한 대 패 주고 싶군.”
남궁수는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폈다 반복했지만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 * *
혈교가 산동악가의 분가에서 벌인 천인공노할 살겁은 며칠 만에 전 무림에 알려졌다.
천하가 격동했다.
모용세가가 몰살당했을 때도 이 정도의 파급력은 아니었다. 모용세가는 워낙에 무림의 변방에 위치한 데다가, 그 전에 벌어진 남궁세가의 혈사가 더 큰 충격으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꽃피우지 못한 어린 무인들이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분노했다. 또한 그 싸움에 죽거나 다친 무인들의 별호가 무림을 경악하게 했다.
“창왕 악비가 죽었다고 합니다!”
“염왕께서 돌아가셨다고…….”
“남궁세가의 뇌신?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건가?”
“청룡신협이 사흘째 의식불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무림맹에서, 개방에서, 하오문에서 전서구가 날아오르며 관련된 소식은 모두 지급으로 취급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물론이고 힘 있는 가문들과 상단들, 표국들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온갖 믿기 힘든 소문들이 무성한 가운데, 무림맹주 야율황은 조사단을 파견해 협곡에서 벌어진 일을 샅샅이 조사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무림맹의 조사단이 도착하기 전.
“……놀랍군.”
한발 먼저 현장에 도착한 사내는 전장이었던 협곡을 둘러보고 있었다.
“십존이 모조리 이곳에 있었다고 해도 믿겠어.”
무림맹 지부의 무인들이 협곡 입구에서 고리눈을 뜨고 지키고 있었지만, 사내를 발견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전투의 흔적들을 발견할수록 사내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사도들까지 왔는데도…… 살아남았다는 건가.”
생각에 빠진 사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 멀리서 아주 희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사내는 곧바로 몸을 띄워 그곳으로 향했다.
무너진 바위의 틈새에 끼워진 시체가 있었다. 아니, 시체인 줄 알았던 그것은 아주 희미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대장로…….”
사내는 굳은 표정으로 반쯤 짓이겨진 불사마존을 바라봤다.
혈교의 대장로가 끔찍한 형태로 간신히 숨만 붙어 있었다. 불사마공의 질긴 생명력 덕분에 저런 참혹한 모습으로도 살아 있는 듯했다.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불사마존을 바라보는 사내의 목소리가 섬뜩했다.
백수룡에 의해 의식이 꺼진 불사마존은 이곳에 짐짝처럼 처박혔다.
싸움이 끝난 후에 찾아가려고 했지만, 아직 백수룡이 의식을 차리지 못한 탓에 계속 방치된 상태였다.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어야 하나 보군.”
온갖 방법을 시도해 보고도 불사마존을 깨우지 못한 사내는, 결국 흥미를 잃었다.
콰직!
다시는 재생하지 못하도록 불사마존의 머리를 발로 밟아서 터트리고, 가죽신에 묻은 뇌수와 피를 넝마가 된 시신에 닦았다.
“들고 가기엔 너무 더러워서 말이오.”
혀를 찬 사내는 몸을 돌렸다. 멀리서 다수의 기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무림맹 본단의 조사단일 터였다. 몸이 달았는지 생각보다 움직임이 빨랐다.
“벌써?”
아쉽지는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충분히 보았으니까. 사내는 조용히 협곡을 빠져나왔다.
“혈마의 재림일지, 아니면 혈마를 막을 운명일지…….”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붉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떨어져 있었다.
“곧 알게 되겠지.”
그 순간, 지렁이가 지나간 듯한 흉터가 사내의 입술에서 꿈틀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