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52
552화. 괜찮겠습니까?
청룡학관으로 돌아가는 길은 조용했다.
아직 거동이 쉽지 않은 중상자들은 마차에 태웠다. 무림맹 지부에서 붙여 준 무인들이 그 주변을 물샐틈없이 호위했으며, 개방의 방도들이 자청해서 인근 수백 리를 미리 수색하며 수상한 자들이 접근하지 않는지 확인했다.
“…….”
“…….”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다들 걸음을 옮겼다. 올 때는 빠르게 경공을 펼쳤기에 하루면 충분했지만, 돌아가는 길은 부상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일부러 천천히 이동했다.
대부분은 말없이 풍경 등을 바라보며 걸었다. 발밑에서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 정도만이 간간이 들려왔다. 을씨년스러운 가을바람이 이따금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곧 겨울이겠다.”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일부는 찬 바람에 옷깃을 바짝 여미기도 했다.
무림맹 지부에서 머무는 열흘 동안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어느새 겨울의 시작이 성큼 다가왔는지, 관도를 따라 자라난 나무들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으으, 쌀쌀하네. 돌아가면 백룡객잔에 가서 따뜻한 국수부터 한 그릇 사 먹어야겠다.”
헌원강이 손바닥에 입김을 후후 불며 주변을 돌아봤다. 그의 곁에는 십대악인과 싸울 때 함께했던 같은 조 학생들이 조용히 걷고 있었다.
“니들도 같이 갈래? 이번엔 특별히 내가 다 산다!”
개구쟁이처럼 웃는 얼굴이 어딘가 과장돼 보였다. 다른 학생들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끼들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출발할 때 밥들 제대로 안 먹었…….”
따악!
뒤통수를 울리는 충격에 휘청거린 헌원강은 이내 중심을 잡으며 홱 돌아봤다. 백수룡이 흑룡편을 한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아이 씨! 왜 때려요?”
백수룡을 노려보며 짜증 내는 말과 달리, 헌원강의 눈빛은 반가워 보이기까지 했다.
자신이 평소처럼 백수룡에게 대들다가 두들겨 맞는 촌극이라도 본다면, 학생들의 무거운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다시 흑룡편이 날아올 거란 예상과 달리, 백수룡은 차분한 표정으로 제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헌원강.”
“……네?”
낮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헌원강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음을 깨닫고 움찔했다.
학생들이 적은 곳으로 헌원강을 데려간 백수룡이 불안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는 제자를 타일렀다.
“분위기 띄우려고 억지로 밝게 행동할 필요 없어.”
“예? 아니, 그게…….”
속내를 들킨 헌원강이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래도 제가 삼 학년이잖아요. 다들 축 처져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기운 나게 해 주고 싶어서…….”
“이 자식아. 너는 뭐 어른이냐?”
백수룡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헌원강의 귀를 잡아서 쭉 잡아당겼다. 헌원강이 “악!” 하고 작게 비명을 질렀다.
“다들 각자의 몫을 감당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오지랖 부리지 마라. 시간이 필요한 애들도 있으니까.”
“아, 알았으니까 이거 놔요! 진짜 아프다고!”
백수룡이 피식 웃으며 귀를 놓아주자, 헌원강이 귀를 붙잡고 그를 째려봤다.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힌 걸 보니 정말 아픈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 신경 쓰기 전에, 네 상처부터 먼저 추슬러.”
“……네.”
백수룡이 이만 가 보라며 턱짓을 했다. 조언이 도움은 되었는지,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헌원강의 표정이 조금은 홀가분해 보였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상웅과 야수혁은 학생회와 함께 학생들을 챙기고 있었고, 여민은 멍하니 걷다가 종종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돌아보곤 했다. 위지천은 할아버지를 극진히 보살피는 중이었다.
청룡오망뿐만이 아니었다. 학생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다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백수룡이 안쓰러움과 대견함이 섞인 시선으로 학생들을 둘러볼 때였다.
“안 어울리게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는군.”
익숙한 목소리에 백수룡이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봤다.
남궁수가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혹은, 안에 있는 삿된 것이 튀어나온 것인가…….”
어쩐지 아까부터 뒤통수가 따끔따끔하더라니.
백수룡은 남궁수의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에 질린다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남궁수 선생님. 많이 한가하신가 봅니다?”
그러자 남궁수는 코웃음을 치며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기막을 펼치며 말했다.
“벌써 잊었나? 네 속의 괴물이 튀어나오지 않는지 감시하라고 한 건 너였다.”
“내가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요 며칠 어딜 가나 남궁수의 시선이 뒤통수에 따라붙으니 영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러다 측간까지 따라올 판이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괜찮을 거라니까. 며칠이나 지났다고 또 튀어나오겠어? 그리고 징조가 보이면 내가 먼저 알릴…….”
“허튼 소릴.”
백수룡이 나름대로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내가 작은 방심이라도 용납할 것 같나.”
단숨에 백수룡의 말을 일축한 남궁수는 그의 눈동자를 유심히 살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이 보이면 당장 제압할 기세였다.
심지어 한 손에는 무림맹 지부에서 빌려온 수갑까지 들고 있었는데, 귀한 현철이 일부 섞였는지 은은한 묵빛이 흐르고 있었다.
백수룡은 찝찝한 표정으로 남궁수의 손에 들린 수갑을 바라봤다.
‘무림맹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때야 자신이 의도한 것이었고 무림맹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지만, 청룡학관까지 수갑이 채워진 모습으로 끌려가는 것은 웬만하면 사절이었다.
백수룡이 어색하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누가 보면 내가 무림공적이라도 된 줄 알겠다?”
농담이 전혀 통하지 않았는지, 오히려 더 싸늘한 표정만이 돌아왔다.
“백수룡.”
“……음. 방금은 좀 과했지?”
“알긴 아는군.”
백수룡을 한번 매섭게 노려본 남궁수는 허리춤의 수갑을 손으로 툭 친 후에 돌아섰다.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고 얌전히 지내도록.”
백수룡보다는, 그 안에 있을 혈마에게 보내는 경고처럼 들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남궁수가 있어서 든든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의 몸에 깃든 혈마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눈썰미가 뛰어나고, 만약의 상황에선 단호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고수.
그에게 은혜를 갚으라고 말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다.
“……그래도 미안하다.”
분명히 그 말을 들었을 테지만, 남궁수는 못 들은 척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백 선생. 남궁 선생. 나와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나?”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마차 안에서 누워 있어야 할 노군상이었다.
창문으로 해쓱한 안색을 드러낸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두 사람을 불렀다.
* * *
“다름이 아니라, 학관의 이후 일정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하네. 둘 다 안으로 들어오게나.”
백수룡과 남궁수는 노군상이 탄 마차에 잠시 올라탔다.
마차 안에는 부관주 곽철우도 있었는데, 그의 곁에는 무림맹 지부에서 받은, 그리고 개방에서 실시간으로 전해 주는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두 분. 의원에게 절대적인 안정을 취하라는 이야기 못 들으셨습니까?”
남궁수가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며 지적했지만, 상대는 그의 정색이 먹히지 않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노군상이 허허롭게 웃으며 태연하게 받아쳤다.
“청룡학관 최고의 일 중독자들이 지금 누구를 나무라는 겐가?”
“관주님께서 이러고 계시는데 난들 쉴 수 있겠나.”
곽철우는 이미 해탈한 듯 힘없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는 왼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었는데, 노군상과 마찬가지로 창백한 안색이었다.
두 팔을 크게 다친 노군상은 혼자서는 서류를 넘기거나 답신을 쓸 수 없었다. 때문에 부관주인 곽철우의 도움을 받아서 일하고 있었다.
자잘한 일이야 부관주나 다른 강사들에게 맡기거나 미룰 수 있었지만, 지금 청룡학관이 당면한 문제들 중 가벼운 것은 없었다.
그래서 노군상은 쉬지 않았다.
최소한의 치료만 받은 후 온갖 곳에서 날아오는 서류를 확인하곤 답신을 적어 보냈다.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강사들과 함께 고민했다.
“아직은 내가 청룡학관의 관주가 아닌가. 마땅히 뒷수습을 해야지.”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그의 모습에 강사들이 제발 좀 쉬라고 간청해도, 노군상은 빙긋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노군상이 두 사람을 부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 다른 것은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겠는데……. 인력의 공백만은 당장 어찌하기가 힘들 것 같네.”
백수룡과 남궁수, 둘 다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혈교와의 싸움에서 청룡학관의 많은 강사들이 죽고 다쳐, 당장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해야 할 인력이 부족해졌다.
지난 열흘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 썼으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이후의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노군상이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떠난 이들의 빈자리가 아주 커. 돌아가면 학관의 업무에도 많은 공백이 생길 게야.”
청룡학관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남은 학사 일정이 대부분 마비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안전에 대한 문제도 불거질 수 있었다.
노군상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불안감을 느꼈을 테니, 문파와 가문에서 아이들을 데려갈 수도 있겠지. 최악의 경우엔, 인원 부족으로 천무제에 나가는 것도 요원해질 수 있을 걸세.”
제자와 자식이 걱정돼 데려가겠다는 이들을 어찌 말리겠는가.
청룡학관 입장에서는 그것을 말릴 명분도, 염치도 없었다.
전력 공백까지 생긴 입장에서는 더더욱.
물론 천무제에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었다.
“해서, 혹 자네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뾰족한 수가 떠오를까 싶어서 불렀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시험을 생략하고 임시 강사를 뽑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 바가 있는 듯, 남궁수가 곧바로 말했다.
“본가에 즉시 연락을 취해, 믿을 만한 사람들을 추천해 달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남궁혈사 이후 전과 같지 않다곤 하지만, 여전히 남궁세가는 학관업의 정점에 있었다. 그 광활한 인맥을 동원한다면 어느 정도는 인력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터였다.
“허어. 역시 남궁 선생이군. 덕분에 한시름 덜었네.”
순간 노군상의 미간에 깊게 파인 주름이 조금은 펴진 듯했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백수룡은 말없이 팔짱을 끼고 조용히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방법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일단 관주님은 지금 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노군상은 지나치게 무리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억지로 기력을 쥐어 짜내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백수룡 선생의 말에 동의합니다. 관주님께선 지금 휴식이 필요합니다.”
남궁수까지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팔짱을 끼자, 곽철우는 눈치껏 서류를 슬쩍 옆으로 치웠다.
“허허. 그래. 안 그래도 조금…… 잠이 오는구만. 부관주. 좀 눕혀 주겠나?”
곽철우의 부축을 받아 간이 침상에 몸을 누인 노군상을 지켜본 후, 두 사람이 조용히 마차 밖으로 나올 때였다.
“……두 사람의 어깨가 앞으로 더 무거워질 게야. 미안하네.”
등 뒤에서 들려온 힘없는 목소리에 남궁수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고, 백수룡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곽철우도 두 사람을 따라 마차 밖으로 나왔다. 그 역시 한쪽 눈을 잃는 중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거동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관주님께서 최근에 많이 무리하셨네. 부상도 회복되지 않았는데,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계속 잠을 옅게 주무시더군.”
“부관주님도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들어가서 쉬십시오.”
“고맙네. 그 전에 몇 가지만 자네와 상의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남궁수가 곽철우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계속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백수룡이 불쑥 말했다.
“부관주님. 저도 임시 강사로 추천할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런데…….”
백수룡이 말을 애매하게 끊자, 곽철우가 애가 타는지 이어질 말을 재촉했다.
“그런데 뭔가?”
“조금 문제가 있는데…….”
“혹 실력이 부족한가? 일단은 인원이 부족한 형편이라, 조금 부족하더라도 믿을 만한 사람이면 괜찮네.”
“아닙니다. 실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전부 믿을 만하기도 하고요.”
일반적인 강사들이라면 남궁세가를 통해서 얼마든지 충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력 있는 강사들을 단기간 내에 채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은 이미 오대학관 중 한 곳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그 와중에 백수룡이 보증할 만큼 실력도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럼 뭐가 문제란 말인가?”
잠시 고민하던 백수룡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혹시 출신 성분이 좀 애매해도 괜찮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