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54
554화. 담판을 지으려고
무림맹을 대표하는 무력집단 중 하나의 등장에, 청룡학관은 물론이고 도시 전체가 들썩였다.
“멸사단주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는 남궁수와 달리,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류설을 바라봤다.
“무림맹은 어쩌고?”
자신이 직접 무림맹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맞지만, 설마 오단주 중 한 명인 류설이 직접 정예를 이끌고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껏해야 그 아래 대주급이 올 줄 알았다.
“동생.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좋아하지 그래?”
한쪽 눈을 가린 안대도 류설이 지닌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분위기를 가리지는 못했다.
독안마도 류설.
무림맹을 대표하는 오단(五團) 중 하나인 멸사단의 단주로, 천하오대도객을 논할 때면 반드시 들어가는 초고수이기도 했다.
‘무림맹을 부른 효과는 확실하겠군.’
백수룡이 무림맹에 지원을 요청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학부모들의 불안을 덜기 위한 방편이었다.
혈교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은 청룡학관이 또다시 공격당할 경우, 학생들을 안전하게 지켜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해서.
하지만 백수룡도 멸사단주 정도의 전력이 직접 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지금쯤 무림맹도 혈교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테니까.
그 부분에 대해 백수룡이 묻자, 류설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직접 가겠다고 지랄을 좀 했지. 맹주 영감탱이도 처음엔 안 된다고 하다가 결국 허락했어.”
“맹주가?”
백수룡이 정말이냐고 묻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자, 류설은 당연하지 않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가 의외라는 표정이야? 무림맹 총사범한테 곤란한 일이 생겼다는데 당연히 와야지.”
류설이 씨익 웃자, 백수룡도 결국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에서 맹주가 직접 오는 것이 아닌 한, 이보다 든든한 아군은 드물었다.
뒤늦게 단주를 따라 도착한 멸사단원들을 살펴본 백수룡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용준은 왜 같이 안 왔어?”
“맹에 남아서 일할 놈도 있어야지. 그리고…… 요즘 그 녀석 속이 말이 아니기도 하고.”
“……모용세가 때문이군.”
아무리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이라고 해도, 가문의 멸문이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백수룡도 마찬가지였다. 검존 사부를 내친 모용세가를 동정하진 않았지만,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다.
“뭐, 그 녀석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니까 표정 풀어. 지나간 일을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류설이 화제를 돌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멸사단의 삼분지 일을 데려왔어. 이곳 지부에 머무르다가 천무제에 맞춰서 청룡학관과 함께 이동할 거야. 그때까지 학생들의 안전은 우리가 책임진다.”
멸사단은 무림맹 내에서도 실전 경험이 가장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거칠고 사납기로 유명하단 거였지만, 백수룡은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멸사단주님.”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궁수가 끼어들었다.
“이제 실무에 관한 이야기는 신입 강사가 아닌 저와 나누시면 되겠습니다. 제 사무실로 가시지요.”
“고마워, 남궁 동생. 참, 십존에 등극한 거 축하해. 이젠 말도 함부로 못 붙이겠다?”
“멸사단주께서도 큰 성취가 있으셨던 듯합니다.”
“나야 뭐, 맹주 영감탱이가 심심하면 불러다가 치고받고 하니까. 맞기 싫어서라도 실력이 늘더라.”
붙임성이 좋은 류설은 남궁수와도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사무실로 향했다. 백수룡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같이 가자고. 거기가 내 사무실이기도 하거든.”
“백수룡.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라. 내 사무실에 네가 얹혀 지내는 것이다.”
“너희들은 여전하구나?”
두 사람의 사무실로 향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류설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나 말고도 동생한테 빚 갚으러 온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네. 특히…….”
코를 킁킁댄 류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개방에서 많이들 온 모양이야. 괜히 거지들의 형제 소리를 듣는 게 아니구나?”
청룡학관 전체에서 개방에서 만든 보약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백수룡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었으나, 차마 도와주러 온 개방도들에게 형제가 아니라고 할 순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고마운 것도 사실이었다.
“개방의 형제들에겐 늘 고마워하고 있지. 조만간 밥이라도 한번 대접하려고.”
며칠 후, 청룡신협이 백룡장에 개방의 형제들을 불러 직접 밥을 지어 대접했다는 훈훈한 소문이 돌았다.
비록 그 후 한동안 거짓말처럼 개방도들의 발길이 뚝 끊겼지만 말이다.
* * *
남궁세가와 무림맹, 개방의 지원에 더해 백수룡의 지인들이 속속들이 도착하면서, 청룡학관은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부상자들은 치료에 집중했고, 무림맹의 요상약과 개방의 보약이 아낌없이 사용되었다.
철두, 서리애, 장걸은 백수룡의 단기 속성 과외를 받으며 빠르게 신입 강사 업무에 적응해 갔다.
황궁에 있는 공손영에게서도 답신이 도착했다. 지금 당장은 일이 있어 신입 강사에 지원하기 어렵지만, 정리되는 대로 가겠다며 재물과 영약을 보내 왔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청룡학관이 처한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어 가는 와중에, 그럼에도 한 가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관주님의 건강이 도통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회복되긴커녕 점점 나빠지시는 것 같아요.”
“돌아오신 후에도 쉬질 않으시니…….”
강사들은 모일 때마다 노군상의 건강에 대해서 염려했다.
청룡학관으로 돌아온 후, 노군상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관주실에서 업무를 보았다.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손으로 서류를 살피고, 직인을 찍고, 서찰을 쓰며 답신을 보냈다.
누구도 그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의원이 하루에 한 번씩 관주실에 들러서 치료를 할 때를 제외하곤 쉬지 않았다.
“이러다간 정말 큰 일을 치르겠습니다.”
“서둘러 후임을 결정해 짐을 덜어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관주님께선 따로 말씀이 없으시니…….”
오히려 청룡학관으로 돌아온 후, 노군상은 자신의 후임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학관이 힘든 시기를 겪는 상황에서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강사들은 모두가 노군상의 후임이 속히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미 두 사람으로 후보가 좁혀져 있었다.
“역시 학생주임 선생님만 한 분이 있겠습니까?”
“부관주님은 학생들을 지키다가 한쪽 눈을 잃으셨습니다. 그걸 보고도 다른 분을 추대한다고요?”
“매극렴 선생님은 그 누구보다 학관을 오래 지켜 오셨습니다. 자격은 그것만으로 차고 넘칩니다.”
“헌데 매극렴 선생님 본인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것 아닌가요?”
현 부관주인 곽철우.
학생주임 매극렴.
둘로 나뉜 여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삼십 년이 넘도록 청룡학관을 위해 일해 온 학생주임과, 혈교로부터 학생들을 지키다 한쪽 눈을 잃은 부관주.
어수선한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강사들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관주님의 건강을 염려하며, 차기 관주가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렸다.
“관주님. 계속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보다 못한 백수룡이 노군상을 찾아가 반쯤 협박했고,
“누가 되었든 후임을 정하셔야 합니다. 그 몸으로 더 이상 무리하시게 둘 수 없습니다.”
함께 온 남궁수도 금안에서 벼락을 쏟아낼 것처럼 노군상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서류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노군상이 고개를 들고 빙긋 웃었다.
“허허. 자네들도 참 성격이 급하군. 안 그래도 오늘 검치와 부관주가 왔다 갔다네.”
“두 분이 함께 말입니까?”
“그건 아닐세. 따로 왔다 갔는데…….”
노군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조만간 결판이 날 걸세.”
* * *
매극렴은 학생의 붕대를 갈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거라. 덧날 수도 있으니.”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는 다친 학생들을 두루 살피며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냈다. 백수룡의 얼굴도 자주 보러 가지 못할 정도였다.
“어디 또 불편한 곳은 없느냐?”
“챙겨 준 약은 제대로 챙겨 먹었고?”
“이 녀석들! 벌써 수련을 하면 어쩌자는 게야!”
매극렴이 청룡학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세월은 삼십 년을 훌쩍 넘겼다.
그에게 젊은 강사들은 자식 같았고, 학생들은 손주 같았다. 말썽을 부려 엄하게 다스릴 때도 있었지만, 한 번도 진심으로 미워했던 적은 없었다.
학관을 다녔던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은 모두 기억했다. 간혹 무림으로 나간 졸업생들이 어딘가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홀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애도했다.
무림인으로 살기로 결정한 이상, 죽음은 늘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졸업생들의 부고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런 그에게 악가에서 벌어진 참상은, 수학여행에 따라가지 않은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루를 마무리한 후,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매극렴은 평소 잘 마시지 않는 술을 꺼냈다.
“……약빙아.”
한쪽 벽에 걸린 딸의 초상화를 바라봤다. 얄미운 사위 놈과 보물 같은 손주 사이에서 환하게 웃는 딸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애틋했다.
“마음이 좋지 않구나.”
강사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후임 청룡학관주로 자신과 부관주의 이름이 함께 오르내리는 것을.
매극렴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생각했다.
“오늘 관주님께 말씀드렸다. 이 늙은이는 관주가 될 자격이 없다고.”
강사들과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을 때, 자신은 그곳에 함께 있지 않았다.
그런데 감히 무슨 자격으로 저들을 대표할 수 있단 말인가.
청룡학관주의 자리에는 마땅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앉아야 했다.
“관주님께선 더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만…….”
매극렴이 딸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푸념을 늘어놓을 때였다.
“계십니까.”
문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매극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부관주 곽철우였다.
“부관주가 이 시간엔 어찌?”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곽철우가 하나뿐인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무언가 각오를 한 눈빛이었다.
“……들어오게.”
잠시 후, 두 사람은 다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찰나, 곽철우가 준비해 온 술병과 잔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웬 술인가?”
“선생님과 한잔하고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두 사람은 술을 나누어 마셨다. 독한 술이었다.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기자마자 뱃속을 뜨겁게 달구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학생주임 선생님. 아니, 검치 선배님.”
공식적인 직위가 아니라 사사로운 호칭으로 불렀다.
지금부터는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겠다는 의미였다.
매극렴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게.”
“오늘 선배님과 담판을 지으려고 왔습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매극렴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마저 맺혔다.
“나 또한 자네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네. 요즘 강사들이 자네와 나를 두고 저울질한다지.”
“선배님. 이 후배가 욕심 많고 이기적인 인간이라서 죄송합니다.”
곽철우가 고개를 숙였다. 매극렴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학관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네.”
곽철우는 기울어 가던 청룡학관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온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행동이 다소 속물적일 때는 있었어도, 근본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매극렴은 차기 관주로서 그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미안해할 것 없네. 내 관주님에게 다시 한번 내 뜻을 말씀드릴 테니…….”
“부디 청컨대.”
매극렴의 말을 중간에 끊은 곽철우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검치 선배께서 청룡학관의 관주가 되어 주십시오.”
“……무슨?”
예상치 못한 부관주의 말에, 매극렴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