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56
556화. 사기꾼들 아닙니까?
노군상은 관주실로 찾아온 두 사람을 의아한 얼굴로 맞이했다.
“자네들이 아침 일찍부터 웬일인가? 표정들은 또 왜 그렇고?”
비장하기까지 한 표정의 매극렴과 그 옆에 도살장에 끌려온 듯한 표정으로 서 있는 백무흔.
분명 낯선 광경인데도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익숙함이 느껴졌다.
“관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저는 어쩌다 코가 꿰여서…….”
만약 백무흔이 학생이었다면, 영락없이 사고를 치다가 잡혀 왔다고 생각했으리라.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허허. 일단 앉게. 금방 차를 내어줄 테니.”
“관주님. 제가 하겠습니다.”
“괜찮으니 가만히 있으시게. 의원이 이 정도는 직접 하는 게 회복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으니.”
노군상은 두 사람에게 앉으라고 권하고 직접 차를 준비했다.
부러진 뼈마디는 그럭저럭 붙어서 간단한 일상생활 정도는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더는 무공을 수련할 수도, 전장에 나서서 함께 싸울 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군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청룡학관을 떠나고자 했다.
“자, 이제 말해 보시게. 검치는 아침 댓바람부터 왜 그런 표정으로 날 찾아온 게요?”
노군상은 두 사람에게 차를 내어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수척한 얼굴은 감출 수 없었다.
매극렴은 노군상이 내어준 차를 한 모금 천천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관주님의 직인을 빼앗고자 왔습니다.”
“……뭐라?”
잠시 멍해졌던 노군상의 얼굴에 점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매극렴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허! 어제 부관주가 나를 찾아와 언질을 주긴 했지만……. 드디어 결심이 선 게요?”
그 순간 매극렴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세를 똑바로 한 후 노군상에게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천수관음 선배님의 뒤를 이어서 청룡학관의 관주가 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노군상은 흐뭇하게 웃더니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포권을 취했다.
“검치와 같은 무인에게 자격이 부족하다면, 나는 애초에 관주가 될 수도 없었을 것이오. 학관이 어려운 시기에 힘든 결정을 내려주어 고맙소이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것으로 매극렴은 청룡학관의 관주 대리가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인수인계가 시작되었다.
다시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곧바로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관이 어수선하니, 퇴임식과 취임식은 천무제가 끝난 이후로 미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번거로우니 아예 생략해도 괜찮을 듯한데.”
“그리할 수는 없지요. 천무제에서 우승해 돌아온 후에, 아주 성대한 퇴임식을 열어 드릴 것입니다.”
“허허! 누가 청룡신협의 외조부 아니랄까 봐. 이제는 우승을 아주 당연히 여기는군!”
한동안 기분 좋게 껄껄 웃던 노군상이 조금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보름 후에는 출발해야 천무제 일정에 늦지 않을 것이오.”
“예.”
매극렴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대학관을 통틀어도 그보다 천무제를 많이 경험해 본 인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올해에는 청룡학관의 학생주임이 아니라 관주 대리로서 참가하게 될 터였다.
“혹 따로 더 준비해야 할 것이 있겠소?”
“한차례 큰일을 겪은 아이들이니, 가는 길에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무림맹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매극렴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고, 노군상은 후임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한시름 놓았소이다. 그나저나 너무 우리끼리만 떠든 듯한데……. 자네는 왜 아무 말도 없이 앉아만 있는 겐가?”
노군상이 의아한 표정으로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던 백무흔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당사자가 아닌 매극렴에게서 들려왔다.
“제가 지금껏 맡아 온 학생주임의 업무를 이 녀석에게 맡길까 합니다.”
“허어! 그게 정말인가?”
노군상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묻자, 그때까지 조용히 앉아서 두 노인의 눈치만 보던 백무흔이 처음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 장인어른은 그렇게 하고 싶으신 모양입니다만, 관주님께서 탐탁지 않으시다면 전 언제라도 포기할 준비가…….”
그 목소리에는 일말의 희망이 담겨 있었으나, 노군상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찬성일세. 자네만큼 믿음직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끄응…….”
노군상은 난감해하는 백무흔을 바라보며 짓궂게 웃었다.
목이 타는지 백무흔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 옥면공자가 소싯적에 활약이 대단했다고 들었네. 담을 넘고 소저들의 마음을 훔치는 솜씨가 천하제일의 양상군자가 따로 없었다지?”
“푸흡!”
하마터면 노군상에게 마시던 찻물을 뿜을 뻔한 백무흔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 설마 장인어른이?”
“……내가 미쳤다고 내 딸 얼굴에 침 뱉는 짓을 하겠느냐.”
매극렴은 자신이 더 부끄럽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본 노군상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에 무림맹 조사단 중에 고주열이라는 친구가 왔다 갔는데, 자네 이야기를 해 주더군.”
백무흔은 조만간 그 인간을 찾아가서 요절을 내리라 속으로 다짐하며 급하게 변명했다.
“그 형님은 옛날부터 허풍이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입에서 나온 말 중 사실은 일 할도 되지 않을 겁니다. 장인어른도 가만히만 계시지 말고 한마디 해 주십시오.”
“능히 오 할은 사실…….”
“아닙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계십시오.”
“내 어찌 학관의 졸업생을 함부로 험담할 수 있겠느냐.”
“저는 뭐 졸업생도 아닙니까?!”
울컥하는 백무흔의 반응에 두 노인이 동시에 큭큭 웃었다. 오십 먹은 사내를 놀리는 맛이 쏠쏠한 모양이었다.
노군상이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여간, 지난 과거의 경험을 살려서 학생들을 잘 지도해 주게나.”
“……예. 알겠습니다.”
노군상의 인정까지 받았으니,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내가 학생주임이라니.’
백무흔은 삼십여 년 전에 저지른 업보가 이렇게 돌아오는 건가 싶었다.
심란해하는 사위의 표정에, 매극렴이 그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며 말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을 게다. 말썽을 부리는 녀석들을 보면 옛날 생각도 많이 들 게야.”
“……그렇겠지요. 그 시절 생각이 아주 많이 날 것 같습니다.”
결국 백무흔도 현실을 받아들이곤 피식 웃어 버렸다.
여전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솔직히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약빙과의 추억으로 가득한 청룡학관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되다니.
백무흔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허허. 이럴 게 아니라 백수룡 선생도 불러야겠군. 삼대가 모두 청룡학관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마땅히 축하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잠시 후, 소식을 듣고 찾아온 백수룡은 기뻐하기보다는 난색을 표했다.
“예? 아버지가 학생주임을 맡는다고요?”
다소 떨떠름해 보이는 아들의 반응에, 백무흔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왜 네가 못마땅해하는 것이냐?”
“수룡아. 네 애비가 중책을 맡기에는 미덥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구나. 모자란 녀석이지만 이 할애비가 엄하게 가르치면 사람 구실은 할 게다. 네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거라.”
“……장인어른은 대체 누구 편입니까?”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느냐?”
백수룡은 그런 문제가 아니라며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말렸다.
“아니, 다 좋은데……. 학관 관계자가 되면 천무제에서 졸업생 비무에 나갈 때 모양새가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허어. 그걸 깜빡했군.”
“나도 거기까진 미처 생각을 못 했구나.”
노군상과 매극렴은 대번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백무흔만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꿈뻑거렸다.
“졸업생 비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천무제에 그런 것도 있었나? 아니, 그보다 왜 내가 거기에…….”
천무제의 구체적인 일정은 모르고 있는 백무흔이었다.
당연히 얼마 전 아들이 자신의 졸업장을 받아 준 것도 비무대회에 나가게 만들기 위한 계획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당사자를 제외한 세 사람은 이미 계획을 착착 세워 가는 중이었다.
“졸업생 비무에 나갈 인선은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고민할 것이 없겠군.”
“학관당 두 명까지만 참석 가능하다고 하니, 한 명만 더 섭외하면 되겠습니다.”
“……관주님. 장인어른. 지금 제 얘기하시는 것 맞습니까?”
“일단 업무는 시작하되 정식 계약은 내년부터 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요?”
“하지만 그 기간 동안에는 월봉이 지급되지 않을 텐데?”
““그건 괜찮습니다.””
“……지금 제 월봉 얘기하시는 겁니까?”
백무흔은 그나마 셋 중 유일하게 만만한 아들을 쏘아보았다. 그도 슬슬 사태를 파악해 가고 있었다.
“수룡이 네가 꾸민 짓이냐? 설마 얼마 전에 내 졸업장을 받아다 준 것도?”
매섭게 노려보는 아버지의 눈빛에, 백수룡은 슬쩍 시선을 외면했다.
“아니 뭐, 겸사겸사요.”
“이놈아! 그날 내가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데!”
영악한 아들에게 또 한 번 속았음을 깨달은 백무흔이 아들놈을 요절낼 기세로 다가갈 때였다.
“무흔아.”
그 앞을 막아선 매극렴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두 손을 뻗어 백무흔의 어깨를 단단히 움켜쥐기까지 했다.
무슨 말이 나올지 뻔히 예상한 백무흔은 해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라리 개잡놈이라고 부르십시오.”
“술병으로 기권한 지난날의 치욕을 설욕할 수 있는 기회다.”
“저는 딱히 설욕할 마음이 없습니다만…….”
“친선대회이긴 하다만, 학관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일이다. 반드시 우승해야 할 것이야!”
“장인어른. 그때 저랑 붙었던 배분이면 지금쯤 구파의 장로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요?”
“내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야.”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매극렴이 내뿜는 어마어마한 기백에, 백무흔은 퍽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번 해 보죠, 뭐.”
반드시 우승하라는 매극렴이나, 그걸 또 해보겠다고 하는 백무흔이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황당해 보일 테지만, 이 자리에서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허허. 덕분에 한 종목은 마음을 놓고 구경해도 되겠군.”
노군상이 흐뭇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럼 백무흔 학생주임과 정식 계약서는 내년에 쓰기로 하겠네.”
“그럼 제 월봉은…….”
“어허! 대체 지금까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느냐!”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학생주임 선생님.”
그렇게 백무흔은 청룡학관의 학생주임으로 채용되었지만, 한동안은 무급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는 사기꾼의 현란한 말솜씨에 놀아난 시골 촌부처럼 멍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아니, 이건 뭐……. 사기꾼들 아닙니까?”
그리고 천무제 졸업생 비무의 출전 명단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