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62
562화. 다 함께
사곤은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마뇌를 노려봤다. 당장 손을 뻗어 마뇌의 목을 부러뜨리고도 남을 기세였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몸을 꿈틀대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무것도 없었다.
드드득……!
사도들의 기운이 그의 육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뇌옥에 갇혀 쇠약해진 데다 온몸에 쇠사슬까지 묶인 상황. 천하에서 가장 강건한 육체가 아니었다면 이미 의식을 잃은 지 오래일 것이다.
과거에는 가장 유약했던 녀석이 본교를 배신하다니……. 어찌 된 일인지 나 또한 몹시 궁금하구나?
마뇌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사곤의 모습을 관찰했다.
반쯤 썩은 손이 사곤의 가슴에 닿았다. 그 싸늘한 감각이 느껴진 순간, 사곤이 몸을 뒤틀며 거칠게 저항했다.
으아……아아!
망가진 성대에서 거칠게 갈라진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평소에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탓에, 입에서 핏물이 울컥울컥 흘러내렸다.
클클. 얌전히 있거라. 생각만큼 아프지는 않을 게다.
마뇌는 귀중한 실험체를 대하듯 사호의 몸을 쓸어내렸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붉은 기운이 사곤의 몸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스스스슷.
그것은 평범한 기운이 아니었다. 혈마지존께 하사받은 역천의 힘이었다. 이 기운으로 말미암아, 마뇌는 불완전한 모습으로나마 죽음을 극복할 수 있었다.
거부해도 소용없느니라. 너의 몸 안에도 지존의 편린이 남아 있을 것이니.
역천의 기운이 스며듦에 따라, 거칠게 저항하던 사곤이 잠잠해지며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렸다.
“…….”
“…….”
사도들은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삼사도가 몸을 돌려 핏발선 눈으로 일사도를 노려봤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본교를 위한 일이다.”
“네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고?”
“……무슨 의미지?”
되묻는 일사도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그 눈빛은 싸늘했다.
마뇌가 사호에게 하는 짓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불쾌한 기억을 떠올린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일사도는 속에서 들끓는 무언가를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미 사호에게 몇 번이나 기회를 줬다. 그것을 거절한 것은 녀석이다.”
“차라리 죽이는 게 나아. 저대로 마뇌에게 망가지는 꼴을 보느니…….”
“멍청한 말 좀 그만해라.”
“뭐?”
일사도 또한 몸을 돌려 삼사도를 똑바로 노려봤다. 그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기세 역시 심상치 않았다.
“대체 무엇이 낫다는 거지? 삼호. 냉정하게 판단해라. 우리는 청룡신협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 지존의 재림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
“그깟 놈이 뭐라고!”
콰앙!
도집째로 바닥을 내리친 삼사도가 맹렬한 살기를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칼을 휘두를 것처럼 전신의 기파가 꿈틀대고 있었다.
“내가 당장 가서 청룡신협의 목을 베어 오지. 그럼 이딴 짓거리를 관둘 건가?”
“……허락하지 않겠다.”
“허락? 내가 너에게 허락을 구하는 게 언제부터 당연한 일이 됐지?”
사도 간 위아래를 구분하는 서열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일사도가 주도적으로 나서면, 다른 사도들도 거부하지 않고 따르던 것이 자연스럽게 굳어졌을 뿐.
“……후회할 행동은 하지 마라.”
“내게 가르치듯 말하지 마라. 네 잘난 척을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일사도는 고요한 눈으로 삼사도를 응시했으며, 삼사도는 잡아먹을 듯 사나운 기세를 마주 드러냈다.
그들의 무복이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기세를 끌어올릴 때였다.
“그만!”
이사도가 뿜어낸 싸늘한 한기가 두 사람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정확히 둘 사이를 막아서며 경고했다.
“누구든 먼저 시작하는 쪽은 나까지 적으로 만들 거라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
“…….”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내가 기파를 거둬들였다. 삼사도가 먼저 고개를 홱 돌렸다.
“마뇌가 선을 넘으면 내 칼로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
“……나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그렇게 사도들이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대치하는 동안에도, 마뇌는 개의치 않고 술법을 펼치는 중이었다.
클클. 이제야 좀 얌전해졌구나.
으으…….
사곤이 입을 뻐끔거렸으나, 망가진 성대에서는 알아듣기 힘든 갈라진 소리만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마뇌가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벙어리였던 것을 잠시 잊었구나. 우선 그것부터 해결해 주마.
일반적인 술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천하에서 가장 괴이한 역천의 기운이 펼쳐 낸 술법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했다.
마뇌의 손에서 흘러나온 역천의 기운이 사곤의 목으로 흘러들었다. 이내 울컥거리며 흘러나오던 피가 멎었다.
다시 말해 보아라. 한동안은 멀쩡히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사곤이 내는 목소리가 달라졌다. 망가진 성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사도들도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수십 년 만에 사호의 입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가 흘러나온 까닭이었다.
클클. 이 또한 지존께서 내려주신 은혜이니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다.
마뇌는 몽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곤의 모습에 확신했다.
그가 자신이 펼친 술법의 지배하에 들어와 있음을.
사도들의 몸에는 혈마지존께서 직접 새기신 술법이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자신뿐이었다.
사도여. 너의 심장은 지존의 것이니라.
그리고 역천의 힘을 나누어 받은 자신은, 사도의 심장에 새겨진 술법에도 간섭할 수 있었다.
곧 자신이 펼친 술법과 사도의 심장에 새겨진 술법이 공명하기 시작할 터.
이 기회에 혈마지존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다시 한번 새겨 주리라.
‘하나로는 아쉽지.’
마뇌는 생각했다. 기회를 보아서 다른 사도들의 심장에 새겨진 술법에도 손을 써야겠다고.
하지만 당장은 일사도에게 협력하며 방심을 유도할 생각이었다. 그는 속내를 감추며 클클 웃었다.
일단 쉬운 것부터 묻도록 하마.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그러나, 다음 순간 나온 대답은 마뇌는 물론이고 사도들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곤(謝坤).”
무어라?
대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마뇌가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술법과 공명해야 할 사도의 심장에서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마뇌는 술법의 기운을 다시 한번 크게 일으켰다.
화아아악!
그의 전신에서 안개처럼 붉은 기운이 퍼져 나왔다. 뇌옥 안을 울리는 마뇌의 목소리에 위압감이 실렸다.
대답하라! 네 이름과 직책이 무엇이냐?
혈교의 네 번째 사도.
혹은 ‘사호’라는 대답이 나와야 했다.
하지만 쇠사슬에 묶인 사내는 둘 다 부정했다.
몽롱하게 풀렸던 눈에는 어느새 총기가 돌아와 있었다.
그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름은, 사곤이다.”
마뇌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땐, 사곤의 손이 목을 꽉 틀어쥐고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었다. 사곤의 오른팔에 묶여 있던 쇠사슬은 어느새 끊어져 있었다.
설마, 심장의 술법이……!
그제야 마뇌는 사곤의 심장에서 술법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존께서 직접 새겨 넣으신 술법을 감히 누가 없앨 수 있단 말인가?
……대체 누구냐! 누가 너의 심장에 새겨진 역천의 술법을 건드렸단 말이냐!
마뇌는 더 이상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사곤이 그의 목을 옆으로 꺾어 버린 탓에.
우지직!
사곤은 목이 부러진 마뇌를 쓰레기처럼 옆으로 던져 버렸다. 이미 죽은 몸이니 죽지는 않을 것이나, 한동안은 입도 뻥긋하지 못할 터였다.
“너……!”
“대체 뭘 한 거지?”
“……술법이라고?”
사도들이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사곤은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근육에 힘을 주자, 몸을 속박하고 있던 쇠사슬이 모조리 끊어져 나갔다.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수십 년 만에 해 보는 말은 어눌하고 어색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 목소리를 잃은 친우가 다시 말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표정이 전부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잠깐이지만 과거로 돌아온 듯했다.
그때였다.
“그 이름…… 누가 지은 거지?”
무언가를 떠올린 일사도가 멍한 눈빛으로 물었다.
모용세가를 멸하던 날에 꾸었던 꿈.
그는 그곳에서 옛 스승을 만났다.
-이름을 지어 주고 싶구나.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과 동시에,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진다.
한동안 종적을 감춘 사호가 청룡신협을 찾아간 이유.
지금껏 청룡신협에게 혈교의 계획이 전부 간파당한 이유.
청룡신협이 익혔다고 알려진 무극검.
악가에서 빙백무를 익힌 무인을 보았다는 이사도의 말.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사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죽음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던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사곤은 혼란스러워하는 일사도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이, 지어 주셨다.”
“……!”
그 순간 삼사도의 표정이 의혹으로 물들고, 이사도는 ‘설마, 그 빙백무가……’라고 중얼거리며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일사도는 이를 꽉 악물었다. 어떤 돌발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마라. 옛 스승에게 배운 가르침이었다.
“……설명해라.”
검을 뽑아 든 일사도는 사곤에게 걸어갔다.
놀라운 신력으로 쇠사슬을 끊어 냈지만, 여전히 그는 쇠약해진 상태였다.
만전의 상태인 일사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마뇌의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우리의 심장에는…… 혈마의 술법이 새겨져 있다.”
“…….”
“…….”
“…….”
사곤의 말은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난 상처를 짚으며 말했다.
“내게 걸려 있던 술법은 사라졌지만, 너희에게는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사곤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혈마의 술법은 강력하지만, 그렇다고 떨쳐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심장에 난 상처를 꾸욱 누르며 사곤이 웃었다.
“우리가 스승님에게 배운 무공이, 지금껏 술법으로부터 우리들을 지켜 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너희도 떨쳐 낼 수 있을 거다. 어렵다면 내가 옆에서 도와줄 테니까.
“도대체 무슨 소리를…….”
“너, 혹시 정신이 나간 거냐?”
“……더 설명해라.”
사곤은 혼란스러워하는 친우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는 뇌옥에 갇혀 수없이 고민했다. 친우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옛 스승을 만나고, 감정을 깨닫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알게 된 많은 것들을 친우들에게도 알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수어로도, 글로 적는 것으로도, 직접 말을 할 수 있게 된 지금도 그것은 도무지 불가능했다.
그러니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다. 우리 다 함께…….”
사도들의 시선이 사곤의 입으로 모였다. 수십 년 만에 열린 입에서 내뱉는 말마다 그들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천무제를 구경하러 가자.”
사곤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로 듣는 것보단 직접 보여 주는 것이 백배는 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