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65
565화. 각자의 목표
“드디어 끝이다!”
헌원강은 해방감에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소리쳤다.
마지막 필기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길.
소년에게는 천무제 준비보다 더 죽을 맛이었던 기말고사도 이걸로 끝이었다.
지난 며칠은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헌원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궁시렁거렸다.
“천무제를 앞두고 부정 타게 무슨 시험 같은 걸 본다고 말이야. 올해는 그냥 적당히 넘어갈 것이지.”
수학여행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학사 일정이 또 한 번 밀리는 바람에, 대부분의 기말고사 시험이 필기로 대체되었다.
몸을 쓰는 시험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이 있었던 헌원강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헌원강에게는 기말고사 낙제를 피하게 도와줄 구세주가 있었다.
“……표정을 보니 낙제는 피했나 보군.”
복도에서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던 독고준이 헌원강을 보곤 한숨을 길게 쉬었다.
같은 학년인 독고준과 헌원강은 몇몇 수업을 함께 들었다.
그 말은 즉, 시험도 함께 보았다는 뜻이었다.
물론 모범생인 독고준은 가장 먼저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와서 한참을 기다린 터였다.
“내 성적이 아니라 남의 성적 때문에 이렇게까지 초조해질 줄은…….”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독고준을 향해 헌원강이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독고! 네가 찍어 준 문제들이 그대로 시험에 나오더라. 역시 선생님들이랑 친한 학생회장이라 그런가?”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모함을 하는지 말해 줘도 어차피 모를 거라 화도 안 나는군. 그래서, 시험은 잘 봤어?”
“어! 덕분에 무사통과다!”
청룡오망의 시험 낙제를 막는 것.
독고준은 어쩌면 올해 학생회가 이룬 것 중에 가장 큰 업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헌원강이 기말고사에서 낙제한다면, 천무제에 나가는 대신 학관에 남아서 보충 수업을 받는 대참사가 발생할 테니까.
“확실해? 낙제는 피한 것 맞아?”
“이 몸을 뭐로 보는 거야? 완벽하게 풀고 답이 맞는지 검토까지 하고 왔다니까.”
헌원강은 자신의 가슴을 퍽퍽 치며 통과를 확신했지만, 독고준은 영 미덥지 않은 표정이었다.
사실 독고준이 기다린 사람은 헌원강이 아니었다.
“남궁수 선생님…….”
시험지를 정리해서 밖으로 나온 남궁수는 복도에 서 있는 두 학생을 발견하곤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어딘가 간절한 표정의 독고준과 자신감 넘치게 씨익 웃는 헌원강을 발견하곤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뭔가 반대로 된 것 같은데…….
남궁수는 마지막으로 가채점한 헌원강의 시험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헌원강 학생. 무공을 수련하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는 무인으로서 갖춰야 할 교양을 쌓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도록.”
싸늘한 남궁수의 목소리에 두 학생의 표정이 똑같이 사색이 되었다.
“서, 설마…….”
“자신 있다면서! 이 머리라고는 둔기로밖에 못 써먹는 돌대가리 자식아!”
말로는 다 못 할 지난날의 고생을 떠올린 독고준이 헌원강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 때, 남궁수가 말을 이었다.
“두 문제만 더 틀렸다면, 남아서 보충 수업을 받아야 했을 거다.”
“와씨! 놀랐잖아요!”
“……흠흠. 감사합니다, 선생님.”
서로 다른 반응이었지만 눈빛으로 욕을 하는 것은 둘 다 똑같았다.
남궁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그들을 지나쳐 갔다.
그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그럼 둘 다 천무제에서 보도록 하지.”
““네!””
점수도 아니고, 낙제 여부 정도는 말해 줘도 괜찮을 터였다.
예전의 남궁수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지만, 청룡학관의 모두가 그런 것처럼 남궁수도 변한 부분이 있었다.
남궁수가 떠난 후, 비로소 걱정을 덜어 낸 두 소년의 눈에서 의욕이 활활 타올랐다.
“자, 빨리 수련하러 가자. 오늘도 같이 갈 거지?”
“물론. 백룡장에서 위지천, 유이란과 대련이 약속돼 있다.”
“근데 아까 남궁수 선생님. 우리한테 천무제에서 보자고 하지 않았냐?”
“더 열심히 수련하라는 뜻이겠지.”
두 사람은 함께 백룡장으로 향했다.
오늘로써 청룡학관의 학사 일정이 모두 종료되었다.
즉, 학생들에겐 겨울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학관 안팎에서 방학을 즐기려는 학생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들 그럴 여유가 없는 탓이었다.
“진짜 얼마 안 남았단 말이지. 팽사혁 그 자식하고 다시 붙는 날이.”
헌원강은 곧 만나게 될 팽사혁을 떠올리며 눈을 빛냈다.
천무제 용봉비무에서 팽사혁을 만나 이기는 것.
지난 일 년간 한순간도 잊어 본 적 없는 헌원강의 목표였다.
곧 천무학관이 있는 호북으로 떠난다는 생각에, 최근 며칠은 기대되고 설레어서 잠도 잘 안 올 지경이었다.
독고준이 그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다시 붙으면 이길 자신은 있고?”
“당연하지.”
헌원강은 허리춤의 흑도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피식 웃었다.
“뭐, 그 자식도 꽤나 강해졌을 테니까 쉽진 않겠지만……. 이번엔 내가 이길 차례거든.”
헌원강뿐만이 아니었다.
청룡오망 모두에게 이번 천무제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거상웅은 권패 초일에게 과거의 빚을 갚고자 했고.
여민은 경공대회에서 우승한 후, 당당하게 북해빙궁을 찾아갈 예정이었다.
야수혁은 천무제를 구경 올 녹림의 형제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 주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위지천은 산속에 숨어 살며 자신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할아버지, 그리고 스승인 백수룡에게 자신의 검을 증명하고자 했다.
또한 청룡학관의 학생들 모두에게 크고 작은 목표가 하나씩은 있었다.
“너는 뭐 없냐?”
“음?”
문득, 헌원강은 독고준에게도 개인적인 목표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독고준은 학생회장으로서 항상 본인보다 청룡학관을 우선시해 왔다. 하지만 그에게도 무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을 리 없었다.
“청룡학관이 우승하는 거 말고, 네가 이루고 싶은 목표 말이야.”
독고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내게도 목표가 있지.”
“오. 뭔데?”
“……소림신룡 일각.”
“그게 누군데?”
독고준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헌원강을 바라봤다.
“너는 소림 제일의 후기지수가 누군지도 모르나?”
“그딴 녀석 알아서 뭐 하게?”
“……어쨌든 그런 인물이 있다. 천무학관의 학생회장이기도 하지.”
“걔가 왜?”
“작년 용봉비무에서 만났었거든.”
독고준은 잠시 소림신룡을 떠올렸다.
검룡과 소림신룡.
각 학관의 최고 후기지수이자 별호에 용(龍)이 들어간 학생들의 대결이라 꽤나 많은 이목이 쏠려 있었다.
물론 반쯤은 청룡학관에 대한 조롱이 섞여 있었던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독고준은 신경 쓰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완패였다.
“당시에는 십초만에 패했다.”
“……십초?”
헌원강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독고준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비참했던 건, 그 십초지적조차 일각이 봐준 거라는 사실이었지.”
-시주. 좋은 검법이었습니다.
독고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던 일각의 얼굴을 떠올렸다.
소림신룡 일각은 십팔반병기(十八般兵器)를 전부 제 몸처럼 다를 줄 아는 천재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비무에서 소림신룡이 사용한 병기는 검 한 자루였다.
그리고 그날, 비무대 위에서 독고준의 검이 부러졌다.
-……졌습니다.
-이것이 독고구검이군요. 덕분에 견문을 크게 넓힐 수 있었습니다.
상대보다 약했으니 비무에서 패배한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상대는 소림신룡.
천무학관의 천재들 중에서도 최고라 일컬어지는 괴물이었다.
애초에 이길 거라 생각하고 나섰던 비무도 아니었기에 분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독고준은 그날의 패배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한동안 그의 검술이 정체되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소림신룡과 천무제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독고준은 굳은살이 가득한 손바닥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소년의 입매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맺혔다.
“이번에는 진짜 독고구검을 보여 줄 생각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 자식의 무기를 부러뜨려 주겠어.”
평소의 모범생답지 않은 독고준의 야심 찬 계획에, 헌원강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가 독고준의 어깨를 퍽퍽 두드리며 말했다.
“좋아. 시험도 다 끝났겠다, 당장 검 부러뜨리기 훈련하러 가자고!”
두 소년은 함께 백룡장으로 향했다.
천무학관이 있는 호북으로 출발하기 사흘 전이었다.
* * *
이른 새벽.
백수룡은 어깨에 가벼운 봇짐을 메고 백룡장을 나섰다. 그의 숨결에 새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꽤 쌀쌀해졌네.”
평소와는 달리 흑의장포 차림이었다. 평소 허리춤에 찔러넣고 다니던 흑룡편은 봇짐에 넣고, 창룡신검과 적월도 등에 사선으로 패용했다.
금세 청룡학관 앞에 도착한 백수룡은 정문 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앞에 멈춰 섰다.
“……시간 참 빠르네.”
새벽이라고 하기에도 이른 시간이라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백수룡은 묘한 감흥이 어린 표정으로 고요한 청룡학관을 바라봤다.
그가 천무제에서 우승하겠다는 선언을 한 이후,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야기로 만든다면, 족히 수십 권의 책으로 엮을 수 있지 않을까.
“꽤나 재밌을 것 같은데 말이야.”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청룡학관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어쩌면 꽤 오랫동안 이 모습을 다시 못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잠시 후, 남궁수가 정확히 약속한 시각에 도착했다.
“일찍 왔군.”
그는 백수룡을 보자마자 가타부타할 것 없이 본론을 꺼냈다. 마치 금방 다녀올 출장에 유난 떨지 말라는 것처럼.
“준비됐으면 바로 출발하지.”
백수룡은 비로소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짧게 마주치고, 동시에 발이 땅을 박찼다.
휘익!
그들이 먼저 출발하는 것은 학관 내에서도 소수만 아는 비밀이었다.
날이 밝으면 어차피 모두가 알게 되겠지만, 혹시나 모를 혈교의 움직임을 억제하기 위해 최대한 알리지 않았다.
“제자들에겐 알렸나?”
“아까 서찰 남기고 나왔지. 그 녀석들. 갑자기 내가 없어지면 난리 칠 게 뻔하니까.”
“…….”
도시를 벗어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였다.
휘이이이익!
그들의 신형이 빛살처럼 공간을 갈랐다. 주변의 풍경이 스치듯 휙휙 옆을 지나갔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일하러 나온 양민들은 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갑자기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돌풍에 어리둥절해할 뿐이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과거 제갈소영, 남궁미와 함께 무림맹으로 향할 때는 중간중간 휴식을 취했으나,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절세고수들의 초인적인 체력과 내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들은 범인과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았다.
호북 무한.
어느덧 무림맹 본단과 천무학관이 존재하는 천하무림의 중심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기감으로 먼저 도시를 살핀 백수룡이 남궁수에게 물었다.
“벌써부터 모여든 인파가 어마어마하네. 원래 천무제 시기가 되면 이래?”
“올해는 규모 자체가 달라졌으니 인파도 더 많아질 수밖에. 이건 내 예상보다도 많지만…….”
말 그대로 도시 자체가 들떠 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마어마한 인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올해는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들도 전부 출전한다면서요?’
‘나는 후기지수보다는 십존의 무공을 보고 싶은데 말이야.’
‘하! 그대의 수준으로 한 수라도 알아볼 수 있겠소?’
‘뭣이? 당장 밖으로 나와라 이 자식아!’
‘그 얘기 들으셨어요? 청룡신협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이 말하길…….’
기감을 활짝 펼치자 사방에서 떠드는 목소리들이 들어왔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그때, 아주 은밀하면서도 거대한 존재감이 강풍처럼 두 사람에게 불어닥쳤다.
화아아아악!
절세지경에 이른 고수들이 흠칫할 정도로 강렬한 기파였다. 더구나 워낙 은밀하기까지 해, 도시에 수많은 무림인들이 있음에도 알아차린 것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우리를 부르는군.”
“눈치도 빠르네. 뭐, 우리도 딱히 기척을 숨기진 않았지만.”
백수룡과 남궁수는 기파가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성문 앞에서 무림맹과 관의 고수들이 고리눈을 뜨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가벼운 바람처럼 그들을 스쳐 목적지로 향했다.
“어서들 오시게.”
십 층이 넘는 높은 전각에서 세 사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도 있었지만, 백수룡은 한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권왕 야율황.
불존 무허대사.
만병제 진량.
천하무림의 정상에 있는 무인들이, 두 사람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