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7
56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피를 토하며 무너지던 한 사내의 모습이 기억 속에 생생히 떠오른다.
-쿨럭…….
온몸에 심각한 자상을 입고,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 없는 상태.
그런 꼴을 하고, 광마는 반으로 부러진 도를 지팡이 삼아 다시 일어서려 했다.
-이런 식으로 끝날 수는……. 쿨럭!
또다시 터져 나오는 피.
그 모습을 본 녹림투왕이 다가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얌전히 있어, 새끼야! 일단 상처부터 막을 테니까!
그제야 자신의 가슴에 뚫린 구멍을 내려다본 광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다.
-육시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비켜다오.
갑자기 도를 내던진 광마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깜짝 놀란 녹림투왕이 옆으로 물러섰다.
광마가 목이 메어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어머님. 형님. 동생들. 그리고 피를 나눈 가족들…….
광마는 천천히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아마도 헌원세가가 있는 방향이었을 것이다.
-……이번 생에는 여러분이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갚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든 광마는 흐린 밤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번 생에 갚지 못한 은혜를 갚겠습니다.
-이 개새끼야! 재수 없게 유언 같은 거 남기지 마! 너 아직 안 뒈졌어!
-어이 산적.
-왜 미친 칼잽아!
쓰게 웃은 광마의 눈이 녹림투왕에게로, 그리고 나에게로 향했다.
-그동안 고마웠다.
-미친놈이 진짜……. 어이!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
서서히 흐려지던 광마의 두 눈이 완전히 생기를 잃었고, 털썩.
상처투성이인 몸이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으아아아아! 이 개새끼들! 모두 죽여 버리겠다!!
그리고 친우를 잃은 녹림투왕의 절규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
..
“……형님. 형님?”
“…….”
감았던 눈을 뜨자, 세 사람이 염려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 속을 헤매고 온 탓인지, 갑자기 현재가 비현실처럼 흐릿하게 느껴졌다.
악연호가 내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오늘 술이 좀 안 받네.”
그날 광마사부는 죽었다.
광마사부뿐만이 아니라 맹사부도, 검존사부도, 은사부도 모두 내가 보는 앞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싸우다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세상에 나 혼자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혈교를 무너뜨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무림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미안한데 난 먼저 가 봐야겠다. 너흰 더 마시다 가.”
나는 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들어가서 쉬세요.”
“……출근 첫날이라 피로가 많이 쌓였을 겁니다.”
두 녀석은 눈치껏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제갈소영만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객잔 밖까지 나를 따라 나왔다.
“혹시 제가 괜한 얘기를 해서…….”
“아니오. 정말 몸이 좀 안 좋아서 쉬려는 겁니다.”
“마, 많이 안 좋으신가요? 제가 데려다 드릴까요?”
나는 어쩔 줄 모르는 그녀에게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오. 잠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죄, 죄송해요! 제가 또 눈치 없이…….”
“내가 미안하지. 다음에 봅시다.”
그녀에게 힘없이 웃어 준 나는 객잔을 나와 혼자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
걸으며 머릿속으로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광마로부터 시작된 헌원세가와 하북팽가의 수십 년 묵은 은원.
그로부터 수십 년 후, 헌원세가로 돌아와 혼자서 세가를 거의 멸문시킨 광마, 아니 광마를 사칭한 자.
‘어떤 놈이냐.’
죽은 자를 되살아나지 않는 한, 혈사를 일으킨 자가 광마 본인일 수는 없다.
아니, 죽었다 살아났다고는 해도 광마 사부가 그랬을 리는 없다.
하지만 당시 헌원세가의 가주는 그자를 광마 사부라고 착각하고 사람들을 모아 연회를 열었다고 한다.
‘실종되고 수십 년이 지났으니 외모는 적당히 속여 넘길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무인에게는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바로 무공.
외모는 인피면구나 역골공 따위로 흉내 낼 수 있지만, 광마의 고강한 무공은 감히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범인은 광마 사부를 흉내 낼 수 있을 정도로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라는 뜻이다. 게다가 헌원세가의 무공까지 알고 있어야…….’
여기까지 떠올린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설마…….”
이 세상에 그런 일이 가능한 조직은, 내가 알기로 하나밖에 없었다.
청천에게 혈우마공을 배우게 하고, 위지천에게 가짜 무극검을 건넨 자들.
광마 사부의 무공 또한 알고 있으며, 십 년 이상 그를 가둬놓고 그의 모든 것을 빼앗은 자들.
“……혈교.”
혈교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면, 아니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부활할 계획을 꾸미고 있는 중이라면?
‘헌원세가에 혈사를 일으킨 건, 그날 우리에게 당한 것에 대한 보복인가.’
내 예상이 맞다면, 광마 사부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결국 자신 때문에 헌원세가가 망해 버린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그의 기구한 운명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내 예상이 틀릴 수도 있었다.
헌원세가에 개인적인 원한을 가진 자가 광마를 사칭해 꾸민 짓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번 생에 갚지 못한 은혜를 갚겠습니다.
나는 광마 사부의 마지막을 모습을 떠올리며 걸었다.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정파 기준에서 그는 분명 악인이었다.
자신의 무공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까지 뒤집어써야 하는가.
역사 속에 영원히 희대의 악인으로 기록되어야 하는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뇌옥에 갇혀 수십 년 동안 악몽을 꾼 것으로도, 그 죗값을 치르기엔 부족한 것일까.
동시에 나는 헌원강을 떠올렸다.
-광마? 지금 나 보고 한 소리냐?
녀석을 처음 봤을 때, 광마 사부가 환생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하다고 느꼈다.
-젠장……. 아까부터 뭔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재능을 타고났지만 환경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한 원석.
-나한테 관심 끄고 꺼져!
나는 오랫동안 걸으며, 두 사람에 대해서 생각했다.
* * *
“끄윽. 물…….”
헌원강은 숙취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잠에서 깼다.
밤새 퍼마신 술 때문에 시야가 빙글빙글 돌고, 축 늘어진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잠깐이라도 운기조식을 하면 숙취를 날려 버릴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꿀꺽꿀꺽.
찬물을 주전자째로 들이켠 헌원강은 다시 누웠다.
그리고 몇 시진 동안이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넌 천재다.
“미친놈.”
허여멀건한 기생오라비의 얼굴이 천장 한복판에 떠올랐다.
갑자기 나타나서 천재니 어쩌니 말하던 정신 나간 신입 강사.
-얘기는 대충 알고 있다. 너희 헌원세가와 하북팽가의 관계.
“알긴 뭘 알아.”
정말 안다면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지금의 헌원세가가 팽가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그들의 한마디, 기침 한 번에 가문의 어른들이 벌벌 떠는 것을 안다면…….
-무공을 익혀 봤자 결국엔 팽가의 종놈이 될 인생이라고 생각해 포기한 거라면, 넌 정말 멍청한 놈이야.
“닥쳐.”
-네 재능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야.
“닥치라고.”
지금까지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치려 한 선생은 여럿이었다.
어릴 때부터 재능이 있다는 소리는 자주 들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
하지만 죽어라 무공을 익혀 봤자, 결국엔 팽가의 잘 드는 칼이 될 뿐인 운명이다.
그리고 팽사혁 같은 놈에 의해 휘둘러지겠지.
-지금 우리가 가진 무공으론…… 잘해도 절정고수가 한계일 게다.
이번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이에 비해 훨씬 늙고 지친 얼굴.
없는 형편에 항상 쪼들리고, 팽가의 당주에게조차 고개를 숙는 헌원세가의 가주.
-파천도, 아니 하다못해 진천도만이라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다면…….
늦은 밤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한숨을 내쉬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가 미안한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미안하구나. 네게 해 줄 수 없는 게 별로 없어서…….
“아무것도 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청룡학관 생활은 할 만하더냐? 팽가의 소가주랑은…… 잘 지내고?
“예. 지랄 맞게 잘 지냅니다.”
헌원강은 큭큭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의 근심 가득한 얼굴이 천천히 사라졌다.
“아버지. 저는 팽가의 충성스러운 개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바엔 그들이 한심하다며 쳐다도 보지 않을 망나니가 되는 것이 낫다.
그때 사라졌던 백수룡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지금처럼 팽사혁의 눈치나 보면서 살면, 헌원세가는 앞으로도 팽가에 목줄 매인 개처럼 지내게 될 거다.
“닥쳐! 닥치라고 좀!”
헌원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방안에 계속 있으면 그 재수 없는 인간의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를 것 같았다.
‘나가서 술이라도 한잔 더 해야겠어.’
대충 옷을 걸쳐 입은 헌원강은 외박계를 쓰고 기숙사를 나섰다.
오늘은 싸구려 술을 주점에 가서, 아무 생각도 안 날 때까지 진탕 취해 버릴 생각이었다.
기숙사를 나와 대연무장을 가로질러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등 뒤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휘익!
옆으로 피하고 보니,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불어넣어 만든 공이 땅에 부딪혔다가 데구르르 옆으로 굴러갔다.
“죄송합니다!”
‘모여서 축국이라도 하고 있었나.’
그때, 모여 있던 학생들 중 한 명을 본 헌원강의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어이. 헌원가의 망나니.”
팽사혁이 이죽거리며 그를 불렀다. 헌원강은 평소처럼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돌아서려고 했다.
“옆에 있는 공 좀 주워 줘라.”
“…….”
“내 말 무시하냐? 헌원세가가 요즘 먹고살 만한가 보다?”
한숨을 푹 내쉰 헌원강은 옆에 있던 공을 차서 팽사혁이 있는 곳으로 보냈다.
뻐엉!
공은 정확히 팽사혁의 발 앞에 떨어졌다.
그러나 팽사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하. 이 새끼가 장난하나.”
그러더니 자신의 발 앞에 놓인 공을 힘껏 걷어찼다.
뻐어엉!
수십 장을 날아간 공은 대연무장을 벗어나 아예 학관 밖으로 날아갔다.
“주인이 부르면 공손하게 두 손으로 갖고 와야지. 가서 다시 가져와.”
“……하.”
평소 같았으면 무시하고 그냥 갔을 것이다.
욕이나 걸쭉하게 한번 해 주고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삼 년이나 참아왔으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을 텐데.
하지만 어째서일까.
“하, 하하……. 하하하하!”
“저 자식 왜 저래?”
“아직도 술이 안 깼나 본데.”
헌원강은 지금 순간을 도저히 참아 넘길 수 없었다.
삼 년을 참았으니 계속 참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삼 년이나 참았으니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돌연 웃음을 멈춘 헌원강이 팽사혁을 불렀다.
“어이 팽사혁.”
“……뭐냐?”
스르릉.
도를 뽑아 든 헌원강이 성큼성큼 팽사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한번 붙어 보자.”
“……뭐?”
“우리 어릴 때 말곤 제대로 붙어 본 적 없잖아?”
헌원강이 사납게 웃자, 팽사혁이 보기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이게 미쳤나…….”
“왜? 쫄리냐? 어릴 때처럼 나한테 지고 울까 봐?”
“……덤벼, 이 새끼야.”
잠시 후, 도를 뽑아 든 두 학생이 대연무장 한복판에서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