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72
572화. 저자는 누굽니까?
“헌데 청룡신협은 어딜 간 겐가? 이틀째 코빼기도 비치질 않는군.”
검성의 질문에 남궁수는 멈칫했다. 함께 차를 마시던 도중이었다. 하마터면 강호의 대선배이자 웃어른 앞에서 평정심을 잃고 미간을 찌푸릴 뻔했다.
그러나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아무런 내색 없이 입 안의 찻물을 삼키곤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개인적인 용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천무제가 시작되기 전에는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백수룡이라는 예측 불가의 망종에게 일 년 가까이 단련된 평정심과, 개인의 부단한 수양이 어우러진 덕분이었다. 강호의 웃어른을 대하는 남궁수의 태도에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거참. 바쁜 친구로군. 이번에 속가의 제자 하나가 신세를 져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거늘.”
검성이 아쉽다며 차를 후루룩 마셨다. 남궁세가의 소가주와 달리, 그는 품행에 크게 개의치 않는 성정이었다.
“연소하 학생 말씀이시군요. 작년에 보았을 때도 범상치 않은 자질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검성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맞은편에서 천무학관주가 빙긋 웃으며 검성의 말을 받았다.
그러자 검성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는 쉽게 감추지 못했다.
“크흠! 제자는 무슨. 시간이 남아서 몇 수 가르쳤을 뿐일세. 자질도 그리 특출난 지 나는 잘 모르겠던데……?”
그러면서 은근히 말을 흐리는데, 누가 보아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는 쑥쓰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천무학관주는 능숙하게 검성이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연소하 학생은 분명 대단한 자질을 지녔습니다. 남궁소가주. 청룡학관 일타강사로서 어찌 생각하는가?”
“천재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남궁수 역시 단언하듯 말했다.
주작학관의 연소하가 검성의 제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 역시 적지 않게 놀랐었다.
한편으로는 검성을 보니, 그 제자인 연소하의 뛰어난 검술과 자유로운 성정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큼큼. 괜히 내 앞이라고 금칠할 필요는 없다는데도 이러나.”
검성은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
제자가 절세고수들에게 천재라고 칭찬받는데 기분이 나쁠 스승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궁수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명 천재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자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허나, 장차 대성(大成)하기 위해서는 태만한 성정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또한 수학여행지에서 몇 차례 음주와 지각이 적발된 것으로 압니다. 본인은 스승께 직접 주도를 배웠다고 주장한다고 들었습니다만 혹…….”
제자에 대한 거침없는 평가와 양심을 찌르는 질문에, 천하의 검성도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그, 그 부분은 내가 주의를 주도록 하겠네. 하여간에 제자 녀석을 구해 주어 고맙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저야말로 연소하 학생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자네는 예의가 바른 건지, 아닌 건지 도통 모르겠구만.”
“무슨 말씀이신지……?”
검성이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표정을 짓는 와중에, 천무학관주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검성께서 이해해 주십시오. 이 친구가 천무학관에 다닐 때도 입바른 말을 하는 데 거침이 없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충돌도 제법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억하는가?”
“……딱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습니다.”
남궁수가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젓자, 천무학주는 유쾌하다는 듯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렸다.
-천뢰검법이라. 제법 흥미롭구나. 펼칠 때마다 고통을 수반하는 뇌기무공인가……. 한 번 더 전력으로 펼쳐 보겠느냐?
-……이미 여러 번 보여 드렸습니다.
-계속해서 펼쳐야 고통에 익숙해질 것이다. 혹 힘이 들어서 못 하겠단 것이냐?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불현듯 떠오른 과거의 기억을 밀어내며, 남궁수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흐뭇한 미소로 장성한 제자를 바라보는 천무학관주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였다.
그때 화제가 다시 백수룡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검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여간 청룡신협 그 친구. 팔자에 역마살이라도 낀 겐지 여기까지 와서도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모양이로군.”
“그렇지 않고서야 수십 년간 숨어지내던 혈교를 찾아내서 그만한 전공을 올릴 수 있었겠습니까?”
“관주께서 그리 말하니 또 설득력이 있구만그래.”
백수룡이 서찰 한 장만 남기고 갑자기 사라진 건 분명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다행히 검성과 천무학관주 모두 백수룡에게 호의적인 인물이었다.
이 자리에는 없는 불존과 무림맹주도 그 일에 대해 별달리 불쾌해하지 않았다. 모여들기 시작한 무림인들로 인해 그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기 때문이다.
검성. 천무학관주. 남궁수.
그나마 시간에 여유를 낼 수 있는 세 사람이 처음 만났던 전각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큰 명성을 떨치는 무인들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좀 아쉽습니다. 청룡신협과 각자의 무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만……. 천무제가 시작되면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관주는 천하의 무공을 모두 섭렵하고도 아직 모자란가? 하여간 무공광 아니랄까 봐.”
검성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천무학관에는 구파일방과 오대학관뿐만 아니라 천하의 기재들이 매해 모여든다.
뿐만 아니라 매년 오대학관이 모여 일 년간의 성취를 겨루는 천무제를 주관하니, 천무학관주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많은 무공을 보는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새롭게 접하는 무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천무학관주의 눈동자는 생기있게 빛나고 있었다.
“어찌 감히 천하의 모든 무공을 섭렵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천하에 존재하는 무인의 수만큼 다른 무공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때문에 저는 강호에 신진고수가 등장할 때마다, 그리고 이렇게 천무제가 열리는 시기가 될 때면 여전히 가슴이 설렙니다.”
“쯧쯧. 그정도면 중증이구려.”
“검성께서는 안 그러십니까?”
“나야 옛적에나 검을 좀 휘두를 줄 알았지. 외팔이가 되고 나서는 욕심을 내려놓고 유유자적하게 사는 게 편해졌지.”
검성의 헐렁한 오른팔 소매가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펄럭였다.
그는 과거 혈교와의 전쟁에서 오른팔을 잃고 은퇴했다.
하지만 무공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이후 검성은 왼손으로 검을 수련하기 시작했으나, 누구도 검성이 좌수검으로 검법을 펼치는 것을 본 이는 없었다.
천무학관주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왼손으로 검을 수련하신 후, 실전에서는 한 번도 검을 뽑은 적이 없으시지요?”
“없소.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도 없었고.”
검성이 단호하게 말하자, 천무학관주는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검성이 펼치는 좌수검이 얼마나 날카로울지, 그조차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검성은 피식 웃고는 화제를 돌렸다.
“하여간 은퇴해서 편한 것이 이런 점이지. 불존과 맹주는 저걸 다 조율해야 하느라 지금쯤 머리통이 얼마나 아프겠소?”
검성의 시선이 전각 아래에 펼쳐진 도시를 향했다. 그를 따라 두 사람의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
무수히 많은 인파가 몰렸다.
천무제가 가까워지면서, 호북 땅에 붐비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객잔이며 주루가 아침부터 가득 차고,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고 도시가 불야성을 이뤘다.
“저기 봐! 소림의 십팔나한이다!”
“무당파 팔검선께서 왕림하셨다!”
“화산파의 매화검수들이다!”
구파일방의 정예들이 한 번씩 모습을 보일 때마다, 온갖 곳에서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처럼 인파가 모여들고 환호성이 쏟아졌다.
“하북팽가의 십이도객(十二刀客)이다!”
“제갈세가! 제갈세가도 왔다!”
“쉿! 사천당가의 무인들 앞에서는 입을 조심하시구려. 함부로 떠들다간 갑자기 횡액을 면치 못할 테니.”
오대세가도 다르지 않았다. 남궁세가는 외부행사를 자제하였으나, 제갈세가와 하북팽가, 사천당가는 자신들의 전력을 은근히 드러내며 뽐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정파무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무인들이 나타나자 도시가 더욱 들썩였다.
과거에도 그들 중 일부는 천무제에 참석하였으나, 올해처럼 본격적으로 고수들을 이끌고 온 적은 없었다.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했다.
검성의 눈에는 그것이 좋게만 보이진 않는 듯했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쯧. 괜한 공명심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될 것인데…….”
후기지수들의 대회라기에는 지나치게 천무제의 규모가 커진 탓이었다.
학관에서 이룬 성취를 겨루는 자리라 표명하긴 했으나, 실상 정파무림이 각자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축제에 가까웠다.
혈교 토벌이라는 대의를 앞두고, 자칫 정파간의 기 싸움이 과해져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구파일방이 후기지수 간의 대리전을 치르기로 한 것이지요.”
천무학관주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말했다. 차분한 말과 달리, 도시에 가득한 무인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받은 소년처럼 들떠 있었다.
그때, 남궁수가 천무학관주에게 물었다.
“관주님. 오대학관 입장과 천무제 개회식은 예년과 같습니까?”
“맞네. 작년 천무제에서 거둔 성적 순서대로 입장할 것이야.”
천무학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제 개회식까지 사흘.
개회식 전야에 오대학관이 동시에 입장할 것이고, 개회식이 시작되면 성적 순으로 차례차례 학관을 소개할 것이다.
그 행사에서, 청룡학관은 지난 십 년 동안 마지막이었다.
천무학관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너무 섭섭해 말거라. 내 생각에도 청룡학관이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일 것 같으니.”
남궁수는 개의치 않는다며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그 방식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내년에 청룡학관이 첫 번째로 소개된 후에 방식을 바꿔 보도록 건의할 예정입니다.”
“……하하. 그것도 재미있겠구나.”
싱긋 웃은 천무학관주의 시선이 다시 도시를 향했다.
이제 대중들의 관심은 오대학관의 후기지수들이 언제쯤 등장할까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아직 축제에 도착하지 않은 것은 오대학관의 후기지수들만이 아니었다.
두두두두…….
지평선 너머에서 시작된 먼지구름이 조금씩 커지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에 그것을 발견한 자들은 소수에 불과했으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고수들이 눈치채게 되었다.
기감이 예민한 고수들이 많은 탓이기도 했지만, 빠르게 다가오는 기의 존재감이 워낙에 거칠었기 때문이었다.
두두두두두두-!
곧 수백의 인마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체계가 있다기보다는 각양각색의 무기를 차고 있었는데, 복색 정도만이 흑의장포로 통일되어 있었다.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사납고 패도적인 기세를 몸에 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들은…….”
“설마?”
검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침음하는 가운데, 천무학관주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남궁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때, 달려오던 무리의 선두에서 깃발을 높게 치켜세웠다.
“……흑도맹(黑道盟)?”
깃발에 적힌 글자를 본 무인들은 대부분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호북에는 정파무림의 정수가 대부분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파의 무리로 짐작되는 자들이 감히 쳐들어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어찌 사파의 파락호들이 이 자리에 온단 말인가!”
“혈교에서 보낸 자들인가?”
“감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정파의 고수들이 성벽 위로 올라섰다. 그중에는 구파일방의 장문인, 오대세가의 가주들, 그 휘하에서 천하무림에 이름을 날리는 고수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맴돌았다. 저절로 성벽 앞에 기파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정파의 고수들 앞에 거대한 사내가 내려섰다.
쿠웅!
“진짜로 왔군.”
무림맹주 야율황이었다.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맹주? 저자들이 누군지 알고 계시오?
“흑도맹이라니요! 사파의 무리로 보이는데,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혈교에서 보낸 마두들이 분명합니다. 당장 싸울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 중견고수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맹주를 바라보는 가운데, 달려오는 수백의 인파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그중 선두에서 흑도맹을 이끌던 한 사내가 말을 끌고 앞으로 나섰다.
사자 갈기 같은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 몹시 차가운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문을 열어라! 흑도맹이 무림맹주의 초대를 받아 왔다-!”
패도적인 음성이 대기를 떨어 울렸다.
그 순간 정파 무림의 고수들 중 놀라지 않은 자가 없었다.
일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가 겨우 망신을 면했다.
‘고수다!’
그것도 절세고수가 분명했다. 단 한 번의 사자후로 안색이 창백해진 자들이 속출했다.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낯선 사내와 그들을 뒤따르는 자칭 흑도맹이란 무인들을 바라볼 때.
“설마…….”
낯선 사내를 바라보는 남궁수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