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75
575화. 조만간 답을 주지
무림맹에서 마련한 만찬장에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음식을 나르는 일꾼들과 시비들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정파 샌님들은 밥 먹을 때도 원래 이렇게 얌전한가?”
그러나 무거운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자들도 있었다.
맹룡휘를 비롯한 흑도맹의 수뇌부, 그 수하들은 거리낌 없이 만찬을 즐기는 중이었다.
“이봐? 술은 이것뿐이야?”
“먼 길을 왔으니 고기도 좀 더 내오라고!”
“도사랑 스님들은 풀떼기만 먹는다더니. 찬이 영 시원찮구만…….”
평소였다면 적진이나 다름없는 무림맹이었다.
그러나 흑도맹의 무인들은 마음껏 먹고 마셨다.
음식에 독을 풀었을지도 모른다고 경계하는 모습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다들 자기 집 안방처럼 허리띠를 풀고 양껏 만찬을 즐겼다.
“…….”
“…….”
반면, 반대편에 앉은 정파무림인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제대로 식사를 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누가 주인이고 손님인지 모를 분위기 속에서, 비싼 소흥주를 병째로 홀짝거리던 맹룡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왜 이렇게들 굳어 있나? 편하게들 먹지 그래.”
그 순간 정파무림인 전부가 맹룡휘를 노려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다.
‘이게 다 네놈 때문 아니냐!’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청성파의 검이 꺾였다.
그것도 평범한 무인이 아닌, 청성파 최고수라 일컬어지는 청성신검이 압도적으로 패배한 것이다.
‘그것도 단 일합에…….’
‘도마 소지광이 왜 흑도맹주 자리를 양보했나 했더니…….’
‘흑도맹주 맹룡휘. 저자가 새로운 사파제일인일지도 모르겠군.’
만찬에 참석한 일부 구파의 장문인들, 그리고 정파무림에서 이름난 고수들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였다.
다행히 무림맹주와 불존의 중재로 더 이상의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청성파의 명예는 이미 바닥으로 추락했다.
오늘 이후로 천하십대검수에서 청성신검의 별호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청성파는 만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청성신검과 다친 장로의 부상이 위중해서라는 이유였으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네놈 덕분에 청성의 문도들이 크게 다쳤다. 구파일방의 무인들이 기분 좋게 식사할 자리라고 생각하느냐?”
정파에도 성정이 만만찮은 무인은 있었다.
검성이 노려보며 쏘아붙이자, 맹룡휘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누가 들으면 팔다리라도 자른 줄 알겠군. 고작해야 혼절 좀 한 것 가지고 유난을 떨기는.”
“허! 사파의 종자들은 웃어른에게 경어를 쓰라는 기본적인 예의도 배우지 않는 것이냐?”
“웃어른이건 뭐건 먼저 시비를 걸면 밟아 놓으라고 배웠지.”
“이놈이…….”
맹룡휘는 한마디도 지지 않고 씨익 웃었다.
검성의 눈썹이 사납게 꿈틀댔다. 그가 뭐라고 쏘아붙이려는 찰나, 맹룡휘가 먼저 선수를 쳤다.
“청성은 그렇다 치고, 다른 놈들은 왜 안 왔지? 당연히 구파일방 전원이 참석할 줄 알았는데.”
“그것은…….”
구파일방 중 일부는 무림맹주에 대한 반발의 의미로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정파와 사파 간의 동맹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
그러나 흑도맹과 달리, 무림맹을 중심으로 한 정파 세력은 제대로 단합이 되지 않았다.
“쯧. 말 안 해도 알 만하군.”
맹룡휘가 나직이 혀를 차자 무림맹주가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얼굴을 붉혔다. 정파의 명숙들도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실망스럽군. 이래서야 혈교가 쳐들어오면 싸울 수나 있겠나?”
맹룡휘가 주변을 둘러보며 조소를 지었다.
그러곤 소흥주를 한입에 털어 넘기며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너희들 정도는 지금 당장이라도 몰살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맹룡휘의 조롱 섞인 도발에 정파 명숙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만방자함이 도를 넘었구나!”
“예의를 갖추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섣불리 나서는 자는 없었다.
청성신검을 상대로 맹룡휘가 보여 준 가공할 무위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 자리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흑도맹주 맹룡휘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스윽.
“우리 맹주께서 틀린 말이라도 했나?”
벽안귀가 두 눈에서 새파란 귀기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흑도맹이 예의를 갖추길 원한다면, 정파무림이 먼저 예의를 갖춰야 할 것이오. 손님을 초대해 놓고 검을 겨눈 것은 그대들이었으니!”
녹의수사는 단호한 목소리로 정파의 명숙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대가리에 구멍 뚫리기 싫으면 다들 다시 앉지?”
추혼궁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자리에서 일어난 정파 명숙들을 훑었다. 한 손으로는 옆에 내려놓은 활을 가볍게 쓸어내리면서였다.
벽안귀, 녹의수사, 추혼궁귀.
사파의 종주로 명성을 떨치는 고수들이 은연중에 내뿜는 기세가 만찬장의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방금 전까지 편하게 먹고 마시던 흑도맹의 무인들 역시 어느새 식사를 멈추고 무기에 손을 올렸다. 명령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시작될 태세였다.
꿀꺽…….
누군가가 낸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양쪽으로 나뉜 정파와 사파의 무인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할 때였다.
그 순간 만찬장의 구석진 곳에서, 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호기심 가득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오. 이게 무림맹의 주방에서 쓰는 식도란 말이지?”
“예, 예! 맞습니다요.”
“무게중심이 조금 낮군. 평소에 이렇게 잡고 사용하나?”
“그보다는 이런 식으로…….”
“한번 시범을 보여 줄 수 있겠나?”
“이, 이렇게 쥐고 사용합니다. 무인께서 보시기엔 보잘것없는 솜씨입니다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숙수들만큼이나 칼을 섬세하게 다루는 자들이 또 어디 있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하는 무림맹 숙수와 그를 붙잡고 이것저것 식도의 사용법에 대해서 캐묻는 사내.
그에게선 마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처럼 아무런 기도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흑도맹주 맹룡휘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마……!’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을 비롯해, 모두가 그 사내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도마 소지광.
천하제일도이자 전 흑사련주의 이름이었다.
‘어째서 도마에게서 내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지?’
‘설마 경지가 더 올라 완벽한 반박귀진을 이루었단 말인가.’
‘맹룡휘라는 자 하나만으로도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을…….’
소지광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으나, 그의 존재 자체가 정파의 명숙들에겐 누구보다 큰 위협이 되고 있었다.
“흐음…….”
“설마…….”
불존과 검성, 천무학관주 같은 절세고수들조차도 소지광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 역시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확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정파의 명숙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오해를 쌓아 나갈 때였다.
“아미타불. 이 자리에서 충돌하는 것은 서로에게 득보다 실이 많을 테니 그만두지요.”
불존이었다. 그는 아까부터 침중한 표정으로 말이 없는 무림맹주를 대신해 충돌을 중재하고 나섰다.
나지막이 불호를 외운 불존이 맹룡휘에게 말했다.
“청성신검을 상대로 시주의 손속이 과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헌데도 이리 과격한 언행을 일삼으니, 정녕 원활한 동맹이 성사되길 바라는 것이 맞습니까?”
맹룡휘는 코웃음으로 응수했다.
“실전이었다면 목을 베었을 것을 기절만 시켰다. 나는 오히려 자비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는데?”
“적당히 하거라. 네놈의 빈정거림을 받아 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느니라.”
검성이 서슬 퍼런 음성으로 경고했으나, 맹룡휘는 여전히 안하무인이었다. 마치 일부러 정파무림을 조롱하는 듯했다.
“받아 주지 않으면? 남은 팔 하나라도 붙어 있어야 젓가락이라도 들 수 있지 않겠나?”
“이놈이 정녕……!”
폭발하기 직전의 검성을 만류한 것은 천무학관주였다. 그가 검성을 가로막으며 맹룡휘에게 말했다.
“흑도맹주. 그대는 본인보다 명백히 하수를 상대로 전력을 다해 만인 앞에서 망신을 주었소. 그 손속에 악의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청성신검을 명백히 하수라고 표현하는 말에 구파일방의 명숙들이 표정이 순간 묘하게 일그러졌지만, 천무학관주는 개의치 않고 걸어 나와선 맹룡휘 앞에 섰다.
두 눈에 맹룡휘를 가득 담은 천무학관주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정 무위를 뽐내고 싶다면 내가 상대해 주고 싶은데, 밖에 나가서 나와 무공을 겨루어보는 것이 어떤가?”
천무학관주의 제안에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십존의 일인인 천무학관주가 흑도맹주에게 먼저 비무를 제안했다.
만약 둘의 비무가 성사된다면, 결과에 따라 새로운 십존이 탄생하거나 둘 중 하나가 패사할 수도 있었다.
맹룡휘의 입가에도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그것도 재미있겠는데?”
그러나 두 절세고수의 대결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내가 허락하지 않겠소.”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무림맹주가 비로소 나선 것이다.
“이 자리는 무공의 고하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닌, 무림맹과 흑도맹의 동맹을 위해 마련된 자리이오. 더 이상의 싸움은 내 이름을 걸고 막을 것이니 모두 그리 아시오!”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무림맹주는 사납게 치켜뜬 눈으로 두 사내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천무학관주가 아쉬운 표정으로 무림맹주를 바라보았으나,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대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아쉽지만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천무학관주가 먼저 물러나자, 무림맹주는 고개를 돌려 맹룡휘에게 말했다.
“흑도맹주. 네 성정에 거침이 없고 솔직한 것은 알겠다. 허나 동맹을 맺으러 온 것이 진심이라면 자중하도록.”
“자중? 이미 많이 참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섬뜩하게 이를 드러낸 맹룡휘가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스스스슷…….
무지막지한 살기가 뻗어 나와 만찬장을 뒤덮었다.
단순히 경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타고난 살기였다. 혹은 지옥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으며 갈고닦은 진득하고도 광폭한 살기였다.
정파의 명숙들 중에서도 이 정도의 살기를 경험한 자들은 많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떨리는 팔다리를 주체하지 못해 경악한 표정이 되었다.
맹룡휘가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그 자리에서 청성신검의 목을 자르고, 청성 장문인까지 쳐죽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자비를 베풀었더니 뭐? 자중하라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러나 그토록 끔찍한 살기에도 무림맹주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야율황은 과거 혈교와의 전쟁을 겪은 백전노장이었으며, 또한 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해 온 자였다.
평화로운 무림에 익숙해진 자들과는 정신의 굳건함이 달랐다.
“흑도맹이 원하는 것을 말해라. 계속 어깃장을 놓을 거라면 나도 썩 꺼지라는 말밖에 해 줄 말이 없으니.”
야율황의 두 눈에서도 투기가 들끓었다.
흑도맹주의 도발과 멋대로 구는 구파일방의 행태를 계속해서 참아 온 권왕의 두 눈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듯했다.
“진작 이렇게 나올 것이지.”
피식.
그 순간 거짓말처럼 맹룡휘가 일으킨 살기가 가라앉았다. 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나는 정파무림과 동맹을 맺으러 왔지, 반쪽짜리만도 못한 무림맹과 동맹을 맺으러 온 게 아니다. 그러니 뭐가 됐든 우선 하나로 만들어라.”
“……!”
무림맹주는 조용히 이를 악물었고, 그 뒤에 있던 불존이 나지막이 불호를 외웠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 명숙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것조차 안 되면, 너희는 혈교는커녕 흑도맹조차 이기지 못할 테니까.”
할 말을 끝낸 맹룡휘는 돌아섰다.
“가자.”
흑도맹주를 따라 흑도맹의 수뇌부, 그리고 흑도맹의 무인들이 일제히 만찬장을 빠져나갔다.
“……조만간 답을 주도록 하지.”
무림맹주는 그 뒷모습을 향해 낮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서 단호한 결의가 느껴졌다.
‘이 정도면 정신을 차렸겠지.’
흑도맹의 등장으로 정파무림은 바짝 긴장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각자의 이득을 위해 멋대로 행동하기엔 너무나 강력한 경쟁자.
무림맹의 입장에서는 구파일방을 휘어잡을 명분이 될 것이다.
만찬장을 빠져나가는 맹룡휘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 * *
그날 밤.
무림맹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 묵게 된 맹룡휘는 예상했던 손님의 방문을 받았다.
“……흑도맹주.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소?”
남궁수는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음에도, 일단은 상대의 현재 신분에 맞추어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면담을 요청했다.
이에 맹룡휘는 짧게 대꾸했다.
“싫은데.”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