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77
577화. 익숙해졌을 뿐
무림맹과 흑도맹의 동맹이 극적으로 타결된 후, 양측은 그 사실을 대대적으로 공표하였다.
천무제를 보기 위해 호북으로 모여든 구경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 내 살아생전에 정사(正邪)연합의 결성을 볼 줄이야…….”
“그런데 동맹이라기엔 분위기가 너무 살벌하지 않소?”
“형장은 소식이 느리구만. 왜 그런 줄 모르시오? 흑도맹주가 청성신검을 일합에 때려눕히면서 개망신을 주었거든.”
“쉿! 제발 입조심하게. 고수들의 귀가 얼마나 밝은 줄도 모르고!”
동맹은 성사되었지만, 양측의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낸 결과는 아니었다.
그저 서로가 필요에 의해 잠시 손을 잡았을 뿐인 임시동맹.
혈교와의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 적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양측의 수뇌부는 공식적으로 연판장을 찍고 대대적으로 그 사실을 알리면서도 싸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도 동맹은 동맹이지.’
흑도맹주와 무림맹주는 출정식에 나서는 장수들처럼 나란히 큰길로 말을 몰았다. 그들의 뒤로 흑도맹과 무림맹의 수뇌부가 뒤따르며 행렬을 이뤘다.
정파무림과 사파무림의 거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은 호사가들이 십 년은 술안주로 삼을 만한 구경거리였다.
우와아아아!
대다수의 군중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의구심을 품으며 못마땅해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으나, 그들도 이미 결정된 사항에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도시를 한 바퀴 돌면서 동맹을 과시한 후에야, 두 맹주는 무림맹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진이 다 빠지는군.”
말에서 내린 무림맹주 야율황이 피곤한 음성으로 투덜거렸다.
야전에선 수십 일을 싸워도 끄떡없는 체력과 정신력의 소유자였으나, 수많은 인파의 환호를 받으며 도시를 한 바퀴 도는 것만큼은 다시는 못 할 짓이었다.
“무림맹주께선 담이 작군. 나는 꽤나 재미있었는데 말이야.”
반면 맹룡휘는 여유롭게 웃으며 자신의 흑마에서 내렸다. 그 말처럼, 맹룡휘는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야율황은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련하시겠나.”
굳은 표정으로 앞만 보고 말을 몰던 야율황과 달리, 맹룡휘는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며 손까지 흔들어 보였다.
그러한 모습에서 절세고수로서의 위엄은 보이지 않았지만, 흑도맹주는 애초에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위인이었다.
두 사람을 뒤따라온 흑도맹의 수뇌부들, 구파일방의 인사들 역시 말에서 내렸다. 대부분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휴우. 이제 다 끝난 건가?”
“그런 것 같은데…….”
천무제가 시작되기 전에 신속하게 이뤄진 동맹인 만큼 큰 틀에서만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밖에 향후 동맹에 필요한 세세한 문제들은 맹주들이 아닌 그 휘하의 실무진이 지금부터 조율할 예정이었다.
“총군사. 지금 바로 회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회의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무림맹에서는 총군사 제갈소진이 자리를 지켰고, 흑도맹에서는 녹의수사 주표가 총군사 역할을 맡았다.
녹림칠십이채라는 거대한 조직을 관리해 본 경험과 뛰어난 학식이라면, 무림맹의 지낭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사제. 뒷일은 부탁 좀 할게.’
자신은 이제 슬슬 퇴장해야 할 때였다.
잠시 녹의수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맹룡휘가 야율황에게 제안했다.
“잡다한 업무는 수하들에게 미뤄 두고, 동맹이 성사된 기념으로 맹주끼리 술이나 한잔하는 게 어떻소?”
느닷없는 제안에 무림맹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겉모습과 달리 그는 머리 회전이 빠른 사내였다. 갑자기 흑도맹주가 둘이서 술을 마시자고 제안한 이유가, 정말로 동맹을 기념하기 위해서일 리 없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술이라……. 마침 목이 칼칼하던 참인데 잘됐군. 맹주실로 가지.”
두 맹주는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절세고수들을 뒤로하고, 무림맹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특별히 혼자 있을 때 먹으려고 꿍쳐 둔 술을 대접하마.”
“기대해도 되나? 이왕이면 독한 놈이면 좋겠는데.”
“걱정 마라. 절세고수도 숙면에 취하게 도와주는 놈이니까.”
잠시 후, 마주 앉은 무림맹주와 흑도맹주는 커다란 술잔을 부딪쳤다. 목구멍이 불타는 느낌이 들 정도의 독주였다.
“크으- 좋군.”
야율황은 그 지독한 독주를 벌컥벌컥 마셔 대는 맹룡휘를 보며 큭큭 웃었다.
그러자 맹룡휘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징그럽게 왜 그렇게 웃나?”
“난놈은 난놈이다 싶어서.”
오만하고, 무례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무공을 가진 절세고수.
흑도맹주 맹룡휘는 짧은 시간에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일격에 청성신검의 검을 부러뜨린 이야기는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릴 것이다.
“흑도맹주 말고 불리는 별호는 없나? 그만한 성질머리와 무공을 지녔다면 없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검마존. 사자투왕. 빙월신마. 광마도.”
“……뭐?”
“넷 중에 하나 고르려다가 관뒀어. 넷 중에 셋이나 삐져 버리면, 아무래도 수지가 안 맞는 장사거든.”
숨결에 독한 주향이 묻어났다. 취객의 헛소리 같기도 하고, 타고난 능청스러움 속에 진심을 숨긴 것 같기도 했다.
무림맹주 야율황은 그냥 웃었다.
“큭큭.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심이 많은 자로군. 자기 별호를 네 개나 지어 두고 고민하는 것은 처음 봤다.”
“내가 욕심이 좀 많긴 하지. 얼마 전에도 어떤 녀석이 같은 소리를 하더군.”
맹룡휘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술잔을 내밀어 야율황과 술잔을 한 번 더 부딪쳤다.
이후 두 사내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독주를 나누어 마셨다.
그러다 야율황이 툭 내뱉었다.
“……고맙다. 네가 어디까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온전한 무림맹이 필요했거든.”
“너도 혈교에 원한이 있나?”
그 순간, 깊게 가라앉은 맹룡휘의 눈에서 섬뜩한 빛이 새어 나왔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을 거다.”
“크큭……. 그래. 어쩐지 처음부터 묘하게 마음에 들더라니!”
야율황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러나 웃는 얼굴과 달리 그의 눈빛은 심유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맹룡휘가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술맛 떨어지게 왜 그렇게 쳐다봐?”
“볼수록 우리 총사범이랑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말이야.”
듣기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맹룡휘는 가벼운 코웃음으로 대답했다.
가볍게 떠보는 것으로 어떤 반응을 끌어내기엔, 상대를 기만하는 그의 능력이 너무나 뛰어났다.
“청룡신협? 나도 그 유명한 낯짝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못 보고 가서 아쉽긴 하군.”
“……가다니? 천무제를 보지 않고 떠날 셈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맹룡휘는 길게 하품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솜털도 가시지 않은 애송이들 싸움엔 관심 없어. 내 볼일은 다 끝났다.”
완전히 안하무인이었다.
자신이 할 일은 다 끝났으니 이만 떠나겠다는 말.
야율황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맹룡휘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추혼궁귀, 도마, 녹의수사는 이곳에 남을 거다. 잡다한 일은 그 셋이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긴 한데…….”
“아니면 내가 남아서 난장이라도 부렸으면 좋겠나?”
“…….”
야율황은 답하기 어렵다는 듯, 그저 술만 한 잔 더 건넸다.
그리고 그날, 맹룡휘는 홀연히 떠났다.
흑도맹주가 갑자기 사라지자 정파의 명숙들 대부분은 그 무례함에 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로서는 감당하기 불가능한 종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쩌려고…….”
맹룡휘가 떠났다는 소식은 남궁수에게도 전해졌다.
남궁수는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흑도맹주 맹룡휘가 떠났으니, 이제 청룡신협 백수룡이 돌아와야 할 차례였다.
하지만 과연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을까?
‘천무학관주는 이미 의심하는 눈치다.’
마지막으로 맹룡휘와 독대한 무림맹주 또한 남궁수를 찾아와선 ‘총사범에겐 별다른 소식이 없나?’ 하고 은근히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수룡이 무림맹으로 돌아온다면, 충분히 의혹 어린 시선을 받을 만했다.
‘백수룡. 이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만 다행히도, 남궁수가 걱정했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청룡신협이 돌아오는 것보다 더 특별한,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도착했습니다!”
북해의 새하얀 바람과 함께, 일단의 무리가 호북 땅에 들어섰다. 하나같이 새하얀 피부에 은발을 지닌, 서늘한 인상의 무인들이었다.
그 선두에서는 북해빙궁주 은휘령이 당당히 걸어왔다.
대장군의 갑주를 연상시키는 두꺼운 옷과 큰 키. 목덜미에서 짧게 친 단발이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는데, 군중들은 그녀의 신비한 외모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북해빙궁이 무림맹의 초대를 받아 왔소.”
무림맹주는 소식을 듣자마자 손님을 마중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
그런데 북해빙궁주의 옆자리에 익숙한 사내가 있는 게 아닌가?
북해빙궁의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은발이 아님에도 묘하게 잘 섞여들어 있는 듯한 사내는…….
“……총사범?”
“청룡신협이다!”
“북해빙궁이 청룡신협과 함께 왔다!”
관중들이 청룡신협을 연호하는 가운데, 북해빙궁주 은휘령이 백수룡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북해의 은인이 마중을 나와 준 덕분에 쉽게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별말씀을.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지요.”
분명 작게 나눈 대화였으나, 반경 십 장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림맹주를 비롯해, 뒤늦게 나온 천무학관주와 불존, 검성 등의 절세고수들이 그 말을 듣고는 눈을 부릅떴다.
“……북해의 은인이라고?”
“청룡신협이 빙궁과도 인연이 있단 말입니까?”
“허어! 놀라운 일이로군요.”
대략의 사정을 아는 무림맹주만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맹룡휘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던 천무학관주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옆에 있는 남궁수에게 물었다.
“자네는 알고 있었나? 어째 별로 놀라지 않은 것 같은데…….”
잠시 말이 없던 남궁수는 어딘가 초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익숙해졌을 뿐입니다.”
북해빙궁까지 도착하면서 무림맹이 초대한 중요한 손님들은 모두 도착했다.
천무제 개회까지 이틀을 남긴 밤이었다.
* * *
축제를 맞아 북적이는 도시의 인파. 그 속에서 유독 인상을 찌푸린 채 움직이는 일행이 있었다.
“…….”
“…….”
“…….”
사방에서 웃고, 떠들고, 소리 지르고, 고함치는 도시의 소음은 감각을 의도적으로 죽이지 않으면 귀가 아플 정도였다.
특히나 무림맹과 천무학관 주변은 늦은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기감을 최대한 죽여라.”
“살기 드러내지 마. 들키고 싶어?”
그들은 낯선 환경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들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거나, 숨을 죽이며 명령을 기다릴 뿐이었다.
때문에 그들이 이런 떠들썩한 환경을 경험해 보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인피면구를 쓰고, 기감을 대부분 죽이고, 번잡한 인파 속에서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치이기를 반복했다.
퍽!
“이봐! 눈을 어디 두고 다니는……!”
“……뭐?”
“죄, 죄송합니다!”
간혹 술에 취해 부주의한 자들과 몸을 부딪히기도 하고, 바닥에 버려진 당과 따위를 밟기도 했다.
달고 고소한 냄새가 어찌나 코를 자극하는지 괴로울 정도였다.
“끔찍하군.”
일행 중 인상이 가장 선량한 사내의 말에, 그의 좌우에 서 있는 여인과 사내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 명만큼은 예외였다.
그들을 축제에 데려온 사내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으며 일행을 이끌었다.
거리에서 우스꽝스러운 광대놀음을 구경하고, 재담꾼의 입담에서 흘러나오는 청룡신협의 활약상을 눈을 반짝이며 듣고, 좌판을 늘어놓고 파는 물건들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았다.
다른 셋은 앞서가는 커다란 뒷모습을 노려보며 한마디씩 했다.
“저 녀석을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건?”
“의문을 해소하기 전까진 불가하다.”
셋의 의견이 갈렸으나 결국은 한숨을 내쉬며 앞서간 사내를 따라갔다.
그때, 휘적휘적 혼자 앞서서 걸어갔던 사내가 무언가를 면포에 싸서 돌아왔다. 그가 씩 웃더니 그것을 친우들에게 내밀었다.
“먹어 봐라. 맛있다.”
그것은 따끈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네 개의 만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