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84
584화. 물렁살이네
흑도맹의 간부들이 자리한 귀빈석.
관중들을 열광케 한 졸업생들의 친선비무 도중에도, 이곳은 주변과 분리된 듯 냉정한 분위기가 흘렀다.
“옥면신검이라……. 검이 상당히 날카롭군.”
“청룡신협의 부친이라던데. 그 말도 안 되는 자질이 비로소 이해가 돼.”
“쯧쯧. 안타깝구만. 검이 아니라 도를 들었다면 더 뛰어난 무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어련하시겠어…….”
흑도맹의 간부들이 종종 비무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는 정도가 반응의 전부였다.
천무제는 정파무림의 큰 축제지만, 그들에게는 그다지 의미 있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물론 평생을 무인으로 살아온 만큼 싸움 구경은 퍽 좋아하는 편이지만, 피가 튀고 목숨이 오가는 생사결이 아닌 바에야 산전수전 다 겪은 사파 무인들의 흥미를 끌기엔 부족했다.
“이제부터 애송이들 재롱잔치가 시작되는 건가?”
“흐암. 퍽 지루하겠군.”
“악사들이라도 불러서 몇 곡조 뽑게 하면 좋겠는데 말이야.”
귀빈석 주변을 둘러싼 흑도맹의 정예들은 지루하다는 듯 연신 하품을 해 댔다.
옥면신검과 아미파 장로의 싸움은 꽤 볼 만했지만, 정파 후기지수들 따위로는 눈에 안 찰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한 사내만은 예외였다.
“……흐음. 청룡학관에 생각지도 못한 잠룡이 있었군.”
바로 녹의수사였다.
흑도맹의 총군사라는 중책을 맡은 그는 졸업생 친선비무가 진행될 때까지만 해도 근엄하게 자리를 지켰지만, 오히려 학생들의 외공 대결이 시작되자 엉덩이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옳지! 잘한다! 모조리 부숴 버려라!”
녹림칠십이채의 채주들 중 드물게 기품과 격조를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 인물이 녹의수사였다.
하지만 지금 녹의수사는 그런 평가가 무색하리만치 주먹을 꽉 움켜쥐고 누구보다 천무제에 몰입해 있었다.
청룡학관에서 야수혁이 외공 대결에 출전한 순간부터였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야수혁이 기관장치를 모조리 부수고 나온 순간, 녹의수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렇지! 바로 그거다, 이놈아! 하하하하!”
고개를 뒤로 젖히고 호탕하게 앙천광소를 터트리는 녹의수사에게 수많은 시선이 모여들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정파 진영 쪽에서도 그쪽을 힐긋거릴 정도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녹의수사가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큼큼. 그 녀석 참, 뉘 집 아들인지 대단하구나. 미래가 아주 기대가 돼.”
흑도맹의 간부들은 그런 녹의수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런 뻔뻔한 놈…….’
‘지 양아들 놈인 거 뻔히 아는데. 저러고 싶을까?’
‘아주 녹림 후계자라고 소문을 내라. 소문을 내.’
평소에는 흑도맹 간부들 중 누구보다 냉정한 사내조차 자기 아들이 관련된 일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형님. 주책이 좀 심하지 않수?”
염라채의 부채주 적만패가 다가와 녹의수사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녹의수사가 세모눈으로 그를 흘겨봤다.
“넌 방금 그 모습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더냐? 우리 수혁이가 어느새 저렇게 커서…….”
“덩치는 열두 살에 이미 형님보다 컸지. 하여간 손님이 찾아왔수다. 한번 만나 보셔야 할 것 같은데.”
“손님?”
녹의수사가 표정을 굳히며 되물었다.
흑도맹과 무림맹이 동맹을 맺긴 했지만, 자신에게 손님으로 찾아올 만한 사람이 쉽게 떠오르진 않았던 것이다.
“기관진식을 통과하는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잠시 비무대를 정리한 후 박투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침 기관장치를 통과하는 시험이 모두 끝났다.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은 경기에 대한 담소를 나누거나, 소속 학관 진영으로 돌아가 강사들과 함께 박투비무를 준비했다.
잠시 그곳에 있는 야수혁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녹의수사가 적만패에게 말했다.
“모셔와라. 한번 만나 봐야겠구나.”
잠시 후, 거구의 중년인이 흑도맹 진영으로 다가왔다.
기질이 사나운 흑도맹의 무인들이 사방에서 노려보는데도 얼굴에 여유가 묻어나는 것이, 배짱이 상상하기 힘들 만큼 큰 사내였다.
“설마…….”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었다. 곧 상대의 정체를 눈치챈 녹의수사의 눈이 반짝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사내를 맞이하며 웃었다.
“용력을 타고난 아드님의 풍채는 부친에게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었군요.”
“뼈대가 굵은 것 하나는 집안 내력이지요. 그 외에는 모두 훌륭한 선생님이 지도해 주신 덕분입니다.”
“실로 맞는 말씀입니다. 천하에 누가 저 아이들을 저렇게 단련시켜 주실 수 있겠습니다.”
“수혁 군의 활약도 대단했습니다. 마치 천하의 모든 산을 호령하는 산군을 보는 듯했습니다.”
“하하!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잠시 덕담을 주고받은 후, 거구의 중년인이 정식으로 포권을 취했다.
“금룡상단의 거일산입니다.”
천하십대상단 중 한 곳인 금룡상단의 주인.
천하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면 반드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부로, 거상웅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녹림맹의 주표입니다.”
녹림칠십이채의 맹주.
천하를 잇는 산맥을 넘어 다니려면 그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특히 상단, 표국, 장사꾼들은 하나가 된 녹림맹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녹림맹주의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평소 염라채에서 하고 계신 사업에도 흥미가 있었습니다.”
“금룡장주께서 좋게 봐 주시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즉, 두 사내의 만남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천하에 뻗어 있는 자금력과 유통력.
이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면, 훗날 그들은 진정한 녹림왕과 상왕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금이 아니어도 좋다. 내 다음 대에서라도.’
두 사람은 서로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닫곤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저희끼리 긴히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 같지요?”
“여기 앉으시지요. 박투비무를 구경하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눠 보는 건 어떻습니까?”
이후 두 사내는 기막을 펼치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꽤나 긍정적인 대화가 오가는 듯, 시종일관 웃음꽃이 피었다.
* * *
박투비무가 시작되기 전, 비무에 출전한 학생들에게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정말로 콩만 먹어서 이 정도 근육을 만들 수 있단 말이야?”
“그 밖에 본사 비전의 벽곡단을 먹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수련법을 더하면, 곡기만으로도 신체를 단련하는 데 부족함이 없지요.”
다들 비무에 오르기 전 각자 몸을 풀거나 명상에 잠긴 가운데, 야수혁은 자신의 첫 번째 비무 상대인 일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의외로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다.
둘 다 또래에서 비견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체격이 컸고, 곧 시작될 박투비무에 긴장하긴커녕 여유가 있었다.
일성은 거구에 구릿빛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승려답게 온화한 태도로 야수혁을 대했다.
“시주의 몸에서도 고련의 시간이 느껴집니다.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을 테지요.”
“죽어라 굴렀지. 너도 그랬겠지만.”
“신기하게도 시주에게선 유독 많은 자연의 기가 느껴지는군요. 산중의 깊은 곳에 있는 사찰에서나 느껴 본…….”
“나도 어려서부터 산에서 자라서 그럴걸?”
“허어. 그렇습니까. 역시 저희는 공통점이 많은 듯합니다!”
녹림의 후계자와 공통점을 찾아낸 소림의 후기지수가 기쁘다는 듯 활짝 웃었다.
사실 둘 다 운이 나쁘다고 할 수 있었다.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 만한 실력을 갖춘 두 사람이었지만, 하필이면 첫 번째 박투비무 상대로 서로가 배정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경계하는 대신, 순수하게 서로를 맞수로서 인정했다.
“그나저나, 저쪽은 아예 사생결판을 낼 기세던데?”
“……아미타불. 초일 선배님께서 평소답지 않게 조금 흥분하신 모양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투쟁심을 넘어 살기까지 느껴지는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는 거상웅과 권패 초일이 있었다.
“저 둘은 간단하게는 안 끝날 거야.”
거상웅의 사연을 아는 야수혁은 초일을 사납게 노려봤다.
만약 자신이 초일과 먼저 싸우게 되었다면, 일성을 대하듯 상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필연처럼 거상웅과 초일의 박투비무가 성사되었다. 그들의 순서는 맨 마지막이었다.
‘상웅 선배라면 스스로 잘 매듭짓겠지.’
거상웅에게서 고개를 돌린 야수혁은 관중석을 크게 둘러봤다.
흑도맹의 귀빈석에 앉은 양부가 보였다. 그 곁에는 상웅 선배의 부친도 함께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녹의수사는 조용히 엄지를 치켜세웠다. 잘했다는 뜻이리라. 야수혁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주. 아까부터 누굴 찾으십니까?”
그 이후로도 야수혁이 계속해서 관중석을 둘러보자 일성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야수혁은 시선을 관중석에서 떼지 않으며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사형이 보고 있을 것 같아서.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
백수룡이나 거상웅이 들었으면 표정을 굳히며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겠지만, 야수혁은 사곤이 분명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감이었다. 야수혁은 자신의 감을 믿는 편이었다.
“사형. 똑똑히 지켜보슈. 그간의 성과를 제대로 보여 줄 테니까.”
야수혁이 관중석을 바라보며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조용히 듣고 있던 일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시주께 한 가지 조언을 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
“기권하십시오.”
“……뭐?”
야수혁이 황당하다는 듯 돌아보자, 일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시주가 다치지 않게 제압할 자신이 없습니다.”
“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시주의 육체는 놀랍도록 잘 단련돼 있습니다. 움직임이 매우 역동적이며, 빠르고 강합니다.”
야수혁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일단 들어 보기로 했다. 그가 계속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일성이 말을 이었다.
“허나 깊이가 부족합니다. 정중동(靜中動). 소림에서 몸을 단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묘리입니다. 단순히 빠르고 강하기만 해서는 제게 이길 수 없습니다.”
일성은 야수혁이 다칠까 봐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었다.
“제가 익힌 것은 천년소림의 역사가 담긴 외공입니다. 시주께서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계신다 한들, 천하의 그 어떤 단련법도 소림을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기권하십시오.”
자비로운 표정과 말투로 천년이란 단어를 입에 담았다.
조롱이나 도발이 아닌,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분명한 의도.
일성으로서는 야수혁이 꽤나 마음에 들었기에 해 주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피식.
야수혁은 웃었다.
청룡학관에 입관하기 전이었다면 아마 불같이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녹림의 소년이 청룡학관에 와서 배운 것은 무공만이 아니었다.
“천년이라고 했냐?”
녹림투왕 맹호악이 처음 녹림십팔식을 창안할 때, 그는 자연에서 동물들의 움직임을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녹림의 무공들, 먼 과거에서부터 산을 터전으로 살아온 사내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을 단련하고, 외부의 위협과 맞서며 발전시켜 온 필사적인 방법들.
그 모든 것을 집대성한 무공이 녹림투왕의 녹림십팔식이었다.
“내가 익힌 건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단련해 온 사내들이 남긴 무공의 총화다. 전통으로 따지면 천년보다 훨씬 더 깊다고.”
“아미타불…….”
정중동(靜中動)이니, 부동(不動)이니 하는 소림의 고매한 수련법과는 근간부터가 다르다.
수행과 생존, 두 갈래에 정답은 없지만 곧 우위가 갈릴 것이다.
“곧 박투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비무에 나설 학생들은 올라와 주십시오!”
사회자의 목소리에 야수혁은 목을 좌우로 꺾더니 일성에게 말했다.
“올라가자고.”
“……그리하지요.”
두 사람이 비무대 위로 올라오자 환호성이 쏟아졌다.
기관장치를 최단 시간에 돌파한 두 소년.
닮은 듯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의 대결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쿵!
일성이 두 다리를 벌려 바닥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는 여전히 야수혁을 한 수 아래로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승부를 간단히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일격(一擊)을 양보하겠습니다. 제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버텨 낸다면 저의 승리, 만약 시주께서 저를 한 걸음이라도 물러나게 한다면…….”
그 순간, 야수혁이 진각을 밟으며 일성에게 달려들었다.
후웅!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 야수혁의 주먹이 일성의 복부를 노렸다. 일성은 피하지 않았다.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인자하게 웃었다.
‘안타깝지만 시주와 저의 격차를 알게 되면 단념하기도 쉬워질 것입니다.’
천년소림의 거암 같은 육체를 한낱 인간이 어찌할 수는 없다.
적어도 육체 하나는 능히 금강불괴라 할 만한 수준이었으니.
그 생각이 바뀐 것은 야수혁의 주먹이 복부에 닿은 직후였다.
뻐어어억!
“컥, 커헉!”
허리가 앞으로 꺾인 일성이 비틀거리며 몇 걸음을 뒤로 물러나더니, 이내 한쪽 무릎을 꿇고 헛구역질을 했다. 부릅떠진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을 담고 있었다.
“새끼. 이거 순 물렁살이네.”
야수혁이 히죽 웃었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은 일성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꼴값 떨지 말고, 일어나서 제대로 덤벼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