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88
588화. 실망시키지 마라
초일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거상웅에게 붙잡힌 양어깨에서 뼈가 으스러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슨 힘이!’
그 역시 적수공권으로 병장기를 든 무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권객인 만큼, 외공의 단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천하에서 가장 걸출한 후기지수들이 모인 천무학관에서도 그의 신체 능력은 손에 꼽을 정도로 우수했다.
하지만 거상웅의 완력은 차원이 달랐다. 붙잡힌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빨리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이대로 패배하리라는 것을.
일격을 성공시킨 순간, 잠깐의 방심이 가져온 결과였다.
‘이대로 당할 것 같으냐!’
초일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용봉비무에서 두 차례나 용봉에 들었을 만큼 비무 경험이 많았다. 또한 혈교에서 수많은 실전을 겪고, 혹독한 세작 교육까지 받았다. 이 정도에 당할 수준이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휘익!
양어깨가 잡힌 상황에서 초일은 무릎을 굽히곤, 그대로 상체를 뒤로 젖히며 두 발을 앞으로 뻗었다. 거상웅의 가슴을 강하게 걷어차 그 반발력까지 이용했다.
퍼억!
손에서 초일을 놓친 거상웅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어깨 하나 정도는 뽑아 놓고 시작하려 했는데.”
손바닥을 부딪쳐 툭툭 터는 거상웅의 손아귀에서, 찢어진 초일의 무복 자락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힘 하나는 무식할 정도로군.”
초일은 욱신거리는 어깨를 주무르며 거리를 벌렸다. 잠깐이었는데도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크게 낭패를 당했을 터였다.
그러나 초일의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거상웅의 전략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넌 방금 공격으로 비무를 끝내야 했다. 내가 너한테 붙잡힐 행운은 두 번 다시 없을 테니까.”
거상웅의 무지막지한 힘은 초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힘만 세다고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저 거대한 덩치와 말도 안 되는 힘. 필연적으로 둔해질 수밖에 없지.’
민첩성과 유연함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초일은 그 부분에서 자신이 몇 수는 위라고 확신했다.
그때 거상웅이 귀에 손을 대며 말했다.
“멀찍이 도망가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안 들리니까 가까이 와서 말해라.”
“……건방 떠는 것도 여기까지다.”
타닷!
이번에는 초일이 먼저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쇄도한 그의 주먹이 거상웅의 명치를 노렸다.
거상웅은 얼마든지 쳐 보라는 듯 몸을 활짝 열어 주며, 동시에 손을 뻗어 초일의 손목을 낚아채려고 했다.
‘역시!’
초일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역동적으로 틀었다. 아슬아슬하게 거상웅의 금나수를 피하며 소리쳤다.
“같은 수가 또 통할 것 같나!”
휘리릭 옆으로 돌아선 초일의 주먹이 거상웅의 왼쪽 어깨, 옆구리, 허벅지를 연달아 타격하며 스치고 지나갔다.
파바바박!
눈 깜빡할 사이에 타격을 허용한 거상웅의 몸이 휘청거렸다. 곧바로 돌아서며 반격하려 했으나, 초일은 이미 거리를 벌린 뒤였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지나간 공방에 관중들이 감탄성을 터트렸다.
“과연 권패! 엄청나게 빠르군!”
“단순히 빠른 것이 다가 아닙니다. 민첩성과 몸의 유연함을 보시오! 가진바 신체 능력을 완전하게 끌어낸다는 말이 저런 것이외다!”
“청룡학관의 누구처럼 덩치만 크다고 능사가 아니지!”
권패를 응원하는 관중들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천무학관의 권패(拳覇).
두 해 연속으로 용봉비무에서 용봉이란 명예를 거머쥔 후기지수로,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에게는 다음 대의 권왕이 될 재목이라고까지 불리는 영걸이었다.
“고작 무식한 힘만 믿고, 내 별호를 빼앗아가겠다고?”
초일은 완전히 여유를 되찾았다. 그는 빠른 발을 이용해 거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거상웅의 전신을 난타했다. 눈으로 보고도 막기 힘든 변화막측한 궤적이 수십 줄기였다.
퍼버버버벅!
충격이 쌓여 갈수록 거상웅의 몸이 들썩였다. 한 번씩 뻗어 나간 커다란 손이 초일을 붙잡으려고 했으나, 번번이 빈 허공만 움켜쥐었다.
휘익!
거상웅의 손을 피한 초일의 입매가 한쪽으로 뒤틀리며 조소가 맺혔다.
“관중들의 함성이 들리나? 다음 세대의 천하제일권에게 환호를 보내는 소리가.”
“…….”
거상웅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는 당장 초일의 파상공세를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상웅을 응원하던 관중들의 표정도 점점 어두워졌다.
“권패를 상대로는 역시 무리였나…….”
“자신만만하기에 내 전낭을 통째로 걸었건만!”
“아까 못 봤소? 잡히기만 하면 아직 승산이 있소이다!”
“저 초일이 순순히 잡혀 주겠습니까?”
지금 비무대 위에서, 초일은 거상웅보다 명백히 한 수 위의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어깨를 붙잡혔던 처음을 제외하면, 그는 단 한 번도 위기라고 할 만한 상황을 겪지 않았으니까.
반면, 거상웅은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점점 버거워 보였다.
거상웅을 응원하던 관중들도 조금씩 기대를 접으며 조용해졌다. 청룡학관 학생들 정도만이 별다른 동요 없이 비무를 지켜볼 때였다.
피식.
“즐겁냐?”
버티기에 급급해 보이던 거상웅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시종일관 밀리기만 하는 모습과 달리, 차분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하지만 초일은 그가 부질없는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거상웅의 몸에 주먹을 꽂아 넣은 횟수만 벌써 수십 번이 넘었으니까. 그가 코웃음을 치며 빈정거렸다.
“맷집 하나는 칭찬할 만하군. 그동안 제법 열심히 몸뚱어리를 단련한 모양이야. 하지만 이래서야 이 년 전과 다른 게 뭐지?”
이 년 전.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자신에게 농락당했던 그때의 기억을 건드려 흥분하게 만들려는 도발이었다.
그러나 거상웅은 오히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네 주먹은 이 년 전과 똑같네. 아니, 오히려 전보다 약해진 것 같은데?”
“하! 아직도 입만 살았군. 간신히 버티고 있는 걸 인정하기 싫은가 보지?”
“판돈은 이만하면 충분히 끌어모은 것 같고…….”
거상웅은 초일의 말을 무시하며 관중석을 주욱 둘러봤다. 마지막으로 청룡학관을 바라본 그가 후배들과 눈을 맞추곤 씨익 웃었다. 그리고 자세를 바꾸었다. 맹호투(猛虎鬪)의 기수식이었다.
그 순간, 초일은 본능적인 위험을 감지하고 저도 모르게 두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뭘…….”
“그거 아나? 도박이든 싸움이든, 역전승이 더 재미있다는 거 말이야.”
씨익 웃은 거상웅이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달려들었다. 한순간에 돌변한 움직임이었다.
‘어느새!’
순식간에 짓쳐든 주먹이 눈앞에 있었다. 시야를 다 가릴 정도로 거대했다. 초일은 두 팔을 교차해 간신히 일격을 막았다.
퍼어억!
비무대 바닥에 뒤로 밀려난 족적이 길게 남았다. 초일은 뼈가 저릴 정도로 시큰거리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끄윽……!”
“이 꽉 악물어라. 턱뼈 부서지기 싫으면.”
순식간에 따라붙은 거대한 주먹이 초일의 턱을 후려쳤다. 얼굴이 크게 돌아간 초일의 몸이 넘어질 듯 휘청였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거상웅은 깍지 낀 두 주먹을 힘껏 하늘로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찍었다.
“한 방 더 간다.”
“……!”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초일은 두 팔을 머리 위로 교차해 받아 냈다.
콰아아앙!
초일이 딛고 선 비무대 바닥에 금이 갈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무릎을 굽혀 간신히 충격을 분산한 초일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비, 비겁하게 내공을 쓰다니!”
초일은 확신했다. 내공을 쓴 것이 아니라면 갑자기 몸놀림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바뀔 수는 없었다.
“내공이라고?”
거상웅은 허탈하다는 듯 웃으며 초일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다가가는 만큼 초일은 뒷걸음질 쳤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너를 꺾으려고 매일 뼈를 깎는 듯한 수련을 했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내공을 운운해?”
비무 내내 차분하던 거상웅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꾹 눌러왔던 상대에 대한 분노와, 지난 이 년간 응어리진 감정이 살기가 되어 흘러나왔다.
“진심이냐? 내공이 없으면 이 정도밖에 못 하는 거냐?”
“무슨…….”
초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거상웅을 바라봤다.
무지막지한 건 힘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반사신경, 속도까지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거상웅이 내뿜는 기백이었다.
저 녀석이 정말 이 년 전의 거상웅과 같은 인물이란 말인가?
“초일. 제발 날 실망시키지 마라. 화가 나서 널 죽여 버리기 전에.”
“……건방 떨기는!”
초일이 까드득 이를 악물었다. 잠시 당황했을 뿐이다. 그 역시 아직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관중석은 어느 순간부터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져 있었다. 급작스럽게 바뀌어 버린 상황이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것이다.
조용하던 관중들이 하나둘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 제가 본 게 맞습니까? 시종일관 밀리던 거상웅이 갑자기 압도를…….”
“내공을 쓴 것 아닙니까? 권패도 그렇게 외치던데요.”
“댁들 눈은 옹이구멍이오? 방금 전의 움직임에서 기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거늘!”
“허! 대체 외공을 어떻게 수련했으면…….”
그때, 적수공권의 두 청년이 비무대 중앙에서 다시 충돌했다. 서로를 향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적의가 가득했다.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보여 주는 싸움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흉험하고 살기가 짙었다. 구부린 손가락이 서로의 목줄기를 노리고, 주먹과 발끝이 급소를 겨냥했다.
야수혁과 일성이 보여 준 투지 넘치는 박투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싸움이었다.
그들의 주먹에 담긴 것은 명백한 살의(殺意)였다. 아슬아슬한 장면이 몇 번이나 연출되었다. 살갗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몇 번이나 뼈가 부러진 것이 아닌가 싶은 소리가 울렸다.
흡사 서로를 죽이려는 생사결을 벌이는 듯했다. 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과격한 싸움에, 지켜보던 관중들은 환호성도 잊고 몰입했다.
어느덧 싸움은 거의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비무대 위에 펼쳐진 결과는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콰아앙!
“쿨럭! 쿨럭!”
비무대 바닥에 처박힌 초일이 기침을 토했다.
찢어진 무복과 산발이 된 머리, 전신에 피멍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찢어진 입술과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봐.”
반면, 거상웅은 그 앞에 철탑처럼 서서 초일을 내려다봤다.
그 역시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두 다리를 땅에 단단하게 딛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거상웅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이런 허섭한 무공을 가지고 천하제일권이 되겠다고?”
-이런 병신 같은 무공을 가지고 천하제일권이 되겠다고?
거상웅은 이 년 전, 초일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저벅.
거상웅이 한 걸음 다가오자, 겨우 몸을 일으킨 초일이 흠칫 놀라 황급히 물러섰다.
“평생 오늘을 기억하게 해 주지. 그 몸뚱이에 새겨서 말이야.
-평생 오늘을 기억하게 해 주지. 그 몸뚱이에 새겨서 말이야.
자신이 내뱉었던 말이 기억 났는지, 초일의 얼굴이 모욕감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꽉 악문 잇새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끄윽, 내공만 쓸 수 있었으면, 네놈 따위는……!”
비틀거리며 일어난 초일의 눈이 실핏줄이 터지며 붉게 충혈됐다.
그리고 그 순간, 초일의 장포가 부풀며 거상웅을 향해 벼락같은 일장을 내질렀다.
전과 확연히 다른, 내공을 담아 내지른 살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