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94
594화. 계주의 결과는
“천무학관이 계속 선두다!”
“시작부터 한 번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는군!”
관중들은 흥에 취했다. 전력질주하는 후기지수들의 모습에선 비무와는 또 다른,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오대학관의 후기지수 중에서 과연 누가 가장 빠를까?
이 흥미로운 주제를 두고 옥신각신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연히 천무학관의 옥진이지. 곤륜의 운룡대팔식은 구파일방의 신법 중에서도 천하일절로 꼽힌다는 것을 모르시오?”
“어허. 개방의 소걸아를 잊은 게요? 비록 계주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경공으로 따지자면 천하에서 개방이 으뜸이지!”
“주작학관의 사마현도 여간내기가 아닙니다. 얼마 전 타계한 염왕 때문에라도 각오가 남다를 터. 용봉비무를 앞두고 경공 종목에도 출전한 것만 보아도…….”
여러 후기지수들의 이름이 언급되는 가운데, 청룡학관을 언급하는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청룡학관이 외공 대결에서 놀라운 결과를 보여 준 것은 사실이지만, 초반부터 시작된 견제 탓에 최하위로 처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주자가 출발했다!”
“이거, 천무학관이 수월하게 이기겠군.”
“조금은 심심하게 되었습니다…….”
압도적인 선두로 치고 나가는 천무학관의 마지막 주자를 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뻔한 결과를 예측하는 가운데,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북해의 바람은 해 질 녘에 가장 세차게 불기 시작하지.”
“외지인들은 그에 대비하지 않다가 삭풍(朔風)에 잡아먹히곤 하지요.”
북해빙궁주 은휘령과 대장로의 짧은 대화였다.
그들은 이제 막 질주하기 시작한 여민의 모습을 무덤덤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러나 북해빙궁의 무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그들은 몹시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노라 말했을 것이다.
그 시각, 다른 한편에서도 여민을 유심히 지켜보는 존재가 있었다.
“청룡학관, 여민.”
이사도는 서늘한 시선으로 자신과 같으면서도 다른 신월빙백무를 익힌 소녀를 응시했다.
염왕과의 생사결 당시, 저 아이는 염왕을 살리고자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곤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뒷모습이 기억났다.
-당신도 비슷한 처지인 거죠?
얼마 도망가지 못해 자신의 손에 붙잡혔지만, 여민은 겁을 먹기는커녕 혈교의 사도를 안타깝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어린 나이에 혈교에 납치되고, 강제로 무공을 익히고,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여야 했던 거잖아요. 진심으로 혈교 따위를 믿어서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감히 누구도 혈교의 사도에게 할 수 없는 말.
평소의 이사도라면 즉시 상대의 입을 찢어 버리거나, 그 자리에서 얼음으로 만들어 산산조각 내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은 것은 여민이 익힌 신월빙백무에 대한 의문, 그리고 자신을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던 이해할 수 없는 눈빛 때문이었다.
-저랑 같이 가요. 그럼 치료할 방법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그 무공. 누구한테 배웠지?
여민은 그 질문에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의식을 잃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고집스럽게 버텼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 사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저 아이를 교로 데려갔을 테지만, 이후에 벌어진 사호의 배신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스승님이, 지어 주셨다.
사호는 옛 스승을 만났다고 했다.
그가 백수룡이라는 인물로 환생했으며, 자신에게 ‘사곤’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고 했다.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과 같은 무공을 익힌 여자아이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말이다.
그 순간 불현듯,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서 잠결에 뒤척이다 보았던 옛 스승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이게 지금…….”
울다가 잠든 자신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슬픈 표정을 떠올린 순간, 이사도는 완전히 잊고 지냈던 기억에 당황했다.
동시에 심장어림에 미약한 통증이 일었다. 이사도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갖다 대자, 삼사도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호.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니야.”
통증은 금방 사라졌지만 의문은 남았다. 이사도는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 냈다.
다시 고개를 들어 경주로를 바라보자, 여민이 무서운 속도로 앞선 주자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이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때보다 더 빨라졌군.”
문득, 사매(師妹)라는 낯선 단어가 떠올랐다.
* * *
천무학관의 마지막 계주 주자는 곤륜파의 옥진이었다.
긴 팔다리와 날랜 몸으로 개방의 소걸아와 함께 천무학관에서 손꼽히는 경공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반 바퀴 차이라…….’
후발 주자들과의 거리를 가늠한 옥진은 조금은 여유를 두고 경공을 펼쳤다.
방심해서가 아니었다.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전력 질주로 근육에 지나치게 피로가 쌓이면 다음 경기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을 터.
‘변수는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피로를 줄이며 결승점을 통과한다.’
당장 눈앞의 경기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천무학관은 종합 우승을 노리고 있고, 그것을 위해선 시선을 보다 멀리 둬야 했다. 항상 시야를 넓게 하고 다음 수를 생각하라는 것은 사문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휘이이익!
전력을 다하지 않음에도 옥진의 신형은 놀랍도록 빨랐다. 경주로를 내달리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학을 연상케 했다.
와아아아아아!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환호와 찬사에도 옥진의 표정은 차분했다. 익숙하고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경공으로는 누구도 자신을 앞설 수 없다는 자신감. 옥진은 체력을 안배하고 내공을 가늠하며 생각했다.
‘어차피 마지막 한 바퀴가 승부처다.’
그때였다. 관중들 중 일부의 시선이 옥진의 뒤편으로 향했다.
“주작학관이 치고 나온다!”
주작학관의 마지막 주자, 사마현이 무서운 속도로 선두를 추격하고 있었다.
화르르륵!
불꽃에 휘감긴 사마현의 신형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바닥을 찍을 때마다 폭발적인 기세로 쭉쭉 뻗어 나갔다.
사마현은 나란히 달리던 백호학관의 마지막 주자를 떨쳐 내곤, 머지않아 앞서 달리던 현무학관의 주자마저도 제쳤다.
힐긋 뒤를 돌아본 옥진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그가 무섭게 가까워지는 사마현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라면 겨룰 맛이 나지.”
둘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작년 천무제에서도 몇 차례 마주한 적이 있었고, 썩 친하지는 않지만 같은 학년이었기에 말도 편하게 했다.
그러나 사마현은 대꾸하지 않고 경공을 펼치는 데 집중했다. 약간의 호흡조차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옥진과 달리 그는 여유가 없었다. 주작학관의 전 주자가 청룡학관을 견제하느라 늦어지는 바람에, 보다 무거운 부담이 사마현의 어깨를 짓눌렀다.
“간절해 보이는군. 하지만 이쪽도 양보해 줄 수는 없다네.”
“……실력으로, 제칠 거다.”
“무운을 빌지.”
옥진은 결코 선두를 내어주지 않았다. 최단 경로를 선점하고, 적절히 사마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면서 체력을 온존하는 전략을 유지했다. 사마현은 그를 위협하며 틈이 날 때마다 선두 자리를 노렸다.
손에 땀을 쥐고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들이 소리쳤다.
“곧 마지막 바퀴다!”
“이제부터가 진짜지!”
잠시 후 선두주자들이 마지막 바퀴에 진입하자, 기관장치가 작동하며 지형이 더 험준하게 바뀌었다.
쿠구구궁……!
평지가 울퉁불퉁하게 바뀌고, 단단한 바닥이 아래로 쑥 꺼지며 그 자리에 모래가 차오르고, 외나무다리가 중간에서 뚝 끊어지기도 했다.
마지막 바퀴에서 급격하게 난도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단순히 직선적이고 빠른 경공만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까지 시험하는 무대였다.
그럼에도 선두에 있던 두 주자의 속도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옥진은 용이 구름 사이를 노니는 듯한 역동적인 몸놀림으로 방해물을 가볍게 피했고, 사마현은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대부분의 방해물을 뛰어넘거나 열기로 태워 버렸다.
“사마현 저 녀석. 기관장치를…….”
“허어! 젊었던 시절의 염왕 어르신을 보는 것 같구나!”
무인들의 평가 속에서 둘의 거리가 점점 더 좁혀졌다. 다만 체력 소모가 심한지 사마현의 숨결이 조금 더 거칠어졌다.
반면 옥진은 아직 여력이 있었다. 그는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마현에게 조금 질린 듯 보였지만, 선두는 결코 빼앗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둘만의 경주를 벌이고 있을 때, 뒤편에서는 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싸아아아아아-
뒷덜미를 스치는 차가운 기운에 옥진이 움찔했다.
“……뭐지?”
반면, 사마현은 예상했다는 듯 피곤한 상황에서도 작게 웃었다.
“곧 쫓아오겠군. 차이를 더 벌려 놔야 했는데…….”
그 말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옥진이 힐긋 뒤를 돌아보니, 새하얀 눈보라가 그들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중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세다는 북해의 삭풍(朔風)을 몰고 오는 소녀.
콰콰콰콰콰!
매서운 눈보라가 기관장치를 모조리 얼려 버리고, 일대를 빙판으로 만들었다.
여민은 그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해 오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거리가 있어서 작아 보였던 신형이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저게 무슨…….”
“하…….”
순식간에 뒤처진 백호학관과 현무학관의 주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여민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미친…….”
옥진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은 후에야 깨달았다.
지금은 효율 따위를 생각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곧바로 내공을 모조리 끌어올려 용천혈로 보냈다.
휘이이익!
곤륜의 운룡대팔식이 전력으로 펼쳐지며 가속이 붙었다.
사마현도 이를 악물며 남은 힘을 모조리 짜냈다.
어차피 결승점이 머지않은 상황. 힘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에서는 청룡학관의 마지막 주자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쫓아오고 있었다.
마치 겁에 질린 두 소년이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를 피해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리에 앉아 지켜보던 관중들도 어느새 벌떡 일어나 있었다. 그들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청룡학관의 추격을 지켜봤다.
“점점 거리가 좁혀진다!”
“뭐, 뭐가 저렇게 빨라?”
“십 장, 오 장, 삼 장, 이제 바로 등 뒤……! 곧 따라잡는다!”
그리고 마침내, 세 사람의 신형이 같은 선상에서 겹쳐진 순간.
각자가 뿜어낸 기파가 뒤섞이고, 관중석에서는 어마어마한 함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힘차게 내민 발이 결승선을 넘었다.
휘이이이익-!
결승점을 지난 세 사람은 관성으로 조금 더 달리다가 멈춰 섰다. 모두 다 탈진에 가까울 정도로 전력을 다했는지, 허리를 숙이고 거칠어진 호흡을 정리했다.
“……뭐야? 누가 이긴 거야?”
“천무학관의 옥진이 끝까지 선두를 지켰소!”
“무슨 소리! 주작학관이 마지막에 역전한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댁들은 눈보라가 저 둘을 덮치는 것을 못 봤수? 이건 청룡학관의 대역전이야!”
관중들이 갑론을박으로 웅성거렸다.
그만큼 박빙인 승부였다. 웬만한 안법이 뛰어난 고수들도 세 학생이 결승선을 동시에 통과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끼리 이럴 게 아니라…….”
“바로 앞에서 본 감독관의 말을 들어 봅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이 결승선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남궁수를 향했다.
특별감독관으로서 지척에서 결과를 지켜본 만큼, 그라면 확실하게 누가 먼저 들어왔는지 보았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계주의 결과는…….”
무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여는 남궁수의 목소리에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지고,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