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0
59화. 다음에 다시 붙자!
“편입을 하고 싶다고?”
“예.”
마주 앉은 노군상의 질문에, 팽사혁은 굳은 표정을 고개를 끄덕였다.
노군상이 팽사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이제 와서 말인가? 어째서?”
“…….”
팽사혁은 솔직히 이 자리가 불편했다.
하지만 다른 학관으로 편입하기 위해선 학관주인 노군상의 추천서가 꼭 필요했다.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팽사혁이 말했다.
“죄송하지만 청룡학관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뛰어난 학생들과 경쟁하고 싶습니다.”
“허…….”
잠시 말문이 막힌 노군상이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편입은 어느 학관을 생각 중인가?”
“천무학관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로군. 백호학관이 아니어서 말이네.”
청룡학관과 백호학관은 오래된 앙숙이었다.
무림의 동쪽과 서쪽에 있는 두 학관은 예전부터 묘한 경쟁의식이 있었고, 천무제에서 거둔 성적도 비슷해 학생이건 강사건 만나면 으르렁거렸다.
……그것도 청룡학관이 십 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의미 없는 것이 되었지만.
“천무학관 외엔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편입 준비는? 지금부터 하려면 빠듯할 텐데.”
“추천서만 써 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편입학은 매우 어렵다.
기존 학관에서의 성적이 매우 우수해야 하며, 입관 시험보다 몇 배는 어려운 실기시험을 치러야 한다.
오대 학관 중 가장 떨어지는 청룡학관 출신이 천무학관으로 편입하려면 그 기준은 더더욱 엄격할 것이다.
“텃세도 심할 테지. 그곳의 강사들과 학생들이 끊임없이 자네를 시험하려 할 게야.”
그러나 팽사혁은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상관없습니다.”
“……그런가. 하긴 자네라면 잘 적응하겠지.”
천무학관에 아무리 기재들이 많다 한들, 팽사혁은 충분히 그곳에서 가서도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인재였다.
‘오히려 저 만만치 않은 성격이면 천무학관을 들썩이게 할 수도 있겠지.’
노군상이 갑자기 짓궂게 웃자, 팽사혁의 의문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추천서에 자네의 인성에 대해서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르겠군. 삼 년간 동아리연합회를 장악해 추종 세력을 만들고, 동급생을 괴롭히고, 올해는 신입 강사들을 길들이려다 관아까지 갈 뻔하지 않았나.”
“과, 관주님.”
팽사혁이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 모습에 노군상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자네 따지고 보면 누구 못지않은 문제 학생인데 말이지. 천무학관주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
“관주님…….”
팽사혁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만약 노군상이 정말로 추천서에 ‘인성 문제’를 거론한다면, 편입은 물 건너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젠장…….’
상대는 백대 고수인 천수관음 노군상이다.
하북팽가의 이름으로 으름장을 놓는다고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팽사혁의 당황한 얼굴을 본 노군상이 클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네. 추천서에 인성 부분은 빼고 써 주겠네. 자네의 장난질은 간혹 도가 지나쳤지만, 수습은 대체로 잘했으니 말이야.”
“……감사합니다.”
팽사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러나 노군상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 하루만 더 고민해 보게.”
“예? 어째서…….”
그 순간, 노군상은 깊은 눈빛으로 팽사혁을 응시했다.
그 눈빛이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을 것만 같아, 팽사혁은 슬그머니 그의 시선을 피했다.
“자네가 편입하려는 이유. 그게 전부가 아니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자네 눈에 미련이 남아 있거든. 오래 살다 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네.”
“…….”
“천무학관으로 가고 싶다면 얼마든지 보내 주겠네. 하지만 그전에 이곳에 남겨 둔 미련을 깨끗이 정리하고 가게. 그냥 내버려 두면 심마가 될 수도 있으니.”
미련이라면 이미 깔끔하게 정리하고 왔습니다.
라는 외침이 턱 끝까지 올라왔으나, 무림의 대선배이자 학관주에게 그런 말을 할 만큼 팽사혁은 어리석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추천서는 내일 오후까지 써 놓을 테니, 그때 찾으러 오게나.”
“예.”
자리에서 일어난 팽사혁은 노군상에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섰다. 그때 노군상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의 등에 와 닿았다.
“삼 년 전, 자네가 청룡학관에 입관했을 때 선생들이 자네에게 건 기대가 무척 컸다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이 뭐가 있겠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우리 탓이지. 오히려 미안하게 생각하네. 그런데 말이야.”
팽사혁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와 눈이 마주친 노군상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직도 자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네.”
“……청룡학관에 남으라는 말씀이십니까?”
팽사혁이 표정을 굳히며 묻자, 노군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야. 자네가 이곳에 남든, 천무학관에 가든 상관없어. 어디에서든 최선을 다하고 목표한 것을 이루면 돼. 그게 내 기대에 부응하는 거야.”
“…….”
“물론 아쉽기도 하지. 올해의 청룡학관은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거든. 왠지는 알지?”
노군상은 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팽사혁은 자기도 모르게 따라 웃어 버렸다.
“알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머릿속엔 똑같은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올해 천무제. 제가 책임지고 우승시키겠습니다.
당당히 천무제 우승을 말하던 백수룡.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떻게든 결과를 내기 위해 온갖 일을 다 벌일 거란 예상은 충분히 되었다.
“그걸 못 봐서 아쉽지 않겠나?”
“재미있을 것 같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이 팽사혁이 내린 결론이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팽사혁은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몸을 돌려 관주실을 나섰다. 노군상은 더 이상 그를 붙잡지 않았다.
쿵!
문을 나선 팽사혁이 작게 중얼거렸다.
“……더 이상 아무 미련도 없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와 학관 내부를 걸으며, 팽사혁을 청룡학관에서 보낸 지난 삼 년의 시간을 돌이켜 보았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자신은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수업은 대부분 수준에 맞지 않아 따분하기 짝이 없었고, 동기란 녀석들도 하나같이 약하고 재미없었다.
‘그나마 독고준 정도는 쓸 만하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수준 미달이다.
학관 내에서 제대로 된 경쟁자가 없었기에, 팽사혁은 일찌감치 다른 쪽에 눈을 돌렸다.
‘권력이라면 질리도록 즐겼지.’
하북팽가의 소가주가 학관 내에서 추종자들을 거느리는 건 너무 쉬웠다.
추종자들을 기반으로 동아리연합회를 장악해 권력을 쥐었고, 이제는 일부 강사들마저 자신의 눈치를 살폈다.
뒤에서 자신을 뱀 머리에 만족하는 소인배라고 수군댄다는 것을 알았지만, 약한 놈들이 지껄이는 말에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전부 따분할 뿐이야.’
청룡학관에선 아무리 안하무인으로 행동해도 다 용납이 되었다.
헌원강을 만날 때마다 헌원세가의 망나니라고 조롱하듯 불렀지만, 사실 진짜 망나니는 자신이었다.
……이제는 그것도 지겨워졌다.
-가문에서 준 비싼 영약을 처먹고, 가문의 최고수들에게 사사하면서, 가주에게만 대대로 전해지는 대단한 무공을 익히면서 노력하셨겠지. 그러고도 나보다 약하면 그게 병신 아니냐?
“병신 같은 놈.”
입술이 터지고 부어오른 한심한 얼굴.
그 와중에 독기만 가득해서, 자신을 노려보던 눈빛.
모두가 부러워할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도 한심하게 인생을 낭비한 놈.
한때는 친구였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헌원강을 떠올린 팽사혁은 코웃음을 쳤다.
“넌 여기서 평생 그렇게 살아라.”
아무리 생각해도 청룡학관에선 더 이상 배울 것도, 남을 이유도 없었다.
미련 따위는 없다.
자신은 더 위를 향할 것이다.
천무학관에 편입해, 자신을 아니꼽게 보는 놈들을 전부 밟고 올라가 천무학관마저 접수할 것이다.
‘돌아가서 추천서를 당장 써 달라고 해야겠어.’
팽사혁이 노군상을 다시 찾아가려 할 때였다.
“팽사혁-!”
숨을 모두 토해내는 외침과 함께, 전력으로 경공을 펼쳐 바람을 가르는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팽사혁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멍투성이가 된 헌원강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일단 녀석이 자신을 찾아온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 처참한 몰골을 보니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저건 내게 팬 게 아닌데…….’
어디서 다른 누구에게 처맞고 왔는지 웅묘(熊猫 : 판다)처럼 눈탱이가 시퍼렇게 멍들어서 보통 우스운 꼴이 아니었다.
팽사혁 앞에 도착한 헌원강이 숨을 몰아쉬었다.
“후, 후우……. 여기 있었군. 젠장. 어디 있는지 한참 찾았잖아.”
“날 찾았다고?”
일순간 팽사혁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의 몸에서 솜털이 곤두설 정도의 살기가 흘러나왔다.
“헌원강. 내가 분명히 경고했지. 백 장 밖에서도 날 보면 피하라고. 다시 만나면 그땐…….”
“야. 다시 붙자.”
“뭐?”
“다시 붙자고.”
그 뻔뻔한 말투에, 팽사혁은 황당하다 못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차린 팽사혁이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정신을 못 차렸군. 좋다. 기분도 더러운데 죽도록 패 주지. 덤벼, 이 새끼야.”
“잠깐만!”
스르릉.
팽사혁이 도를 뽑아 들기 무섭게, 헌원강이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오늘은 말고 다음에 붙자! 그 말 하려고 온 거다.”
“……뭐? 장난하나 이게.”
그러나 헌원강의 표정은 장난이 아니었다.
팽사혁에게 또 일방적으로 당할까 봐 무서워서 피하는 것도 아니었고, 진 것이 분해서 무작정 달려온 것도 아니었다.
헌원강은 팽사혁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오늘부터 새로운 도법을 배울 거다.”
“새로운 도법?”
“이제부터 술도 안 마시고, 게으름도 안 피우고 죽도록 수련만 할 거다.”
“……어쩌라고?”
그 순간, 헌원강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다음엔 내가 이길 거다.”
삼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헌원강의 웃는 모습.
팽사혁은 잠시 과거로 돌아온 기분을 느꼈다.
-다음엔 내가 이길 거야!
어릴 때 자신이 헌원강에게 수없이 했던 말이다.
그 말을 지금 헌원강이 자신에게 하고 있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친놈이……. 큭큭큭.”
“왜? 내 말이 우습냐? 그래. 지금 마음껏 웃어라. 몇 달 뒤에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퍼억!
기습적으로 배를 맞은 헌원강이 무릎을 꿇고 꺽꺽댔다.
눈물을 찔끔 흘린 헌원강이 팽사혁을 노려봤다.
“왜 때려, 이 새끼야! 대련은 다음에 하자니까!”
팽사혁은 조소 어린 표정으로 헌원강을 내려봤다. 그 시선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기대할 걸 기대해라. 몇 달? 앞으로 넌 날 평생 못 이겨. 헌원가의 망나니.”
“빌어먹을……. 두고 봐라.”
이를 바득바득 가는 헌원강을 보며 팽사혁은 피식 코웃음을 쳤다. 그 웃음은 제법 유쾌해 보였다.
“크크크. 좋다. 다음에 다시 덤벼라. 즐거운 마음으로 널 패 줄 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팽사혁은 한결 후련해진 얼굴로 말했다.
.
..
며칠 후.
팽사혁은 노군상의 추천서를 받아 천무학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난히 편입시험에 합격해 천무학관의 학생이 되었다.
헌원강에게는 따로 서찰 하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