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01
601화.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허어…….”
석일승은 헛웃음을 지으며 청룡학관 학생들이 거침없이 기관진식을 해체해 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평소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는 소리를 듣는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좀처럼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단순히 취미로 모인 동아리 학생들이라고 했다. 기관진식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명문가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 정도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제갈소영의 말대로, 그저 별종들이었다.
“조심해!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생문(生門)이 바뀌어!”
“역시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라. 방향 감각이 사라지도록 환영진이 중첩되어 있어. 여기선 팔괘의 풀이에 따라 길을 찾으면…….”
“이 장치를 바꿔 보면 어떨까?”
보통의 무림인들은 진법과 기관진식을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다.
강한 무공을 익히면 손쉽게 파괴할 수 있는 방해물쯤으로 여겼고, 오히려 힘으로 돌파하고 깨부수는 것에 열광했다.
때문에 이 종목 자체도, 매년 현무학관의 신비한 기관진식과 그걸 뛰어난 무공으로 돌파하는 천무학관 학생들의 무용(武勇)이 가장 큰 볼거리였다.
그러나 청룡학관은 달랐다.
“제갈소영 선생님한테 배운 대로 하니까 열렸어!”
“여기서 돌 위치를 북쪽으로 이동시키면 음양이 바뀌겠는데?”
저 학생들은 무공으로 기관진식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하여, 활용하고 있었다.
눈을 반짝이며 현무학관의 기관진식에 적용된 기술과 술법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해체했다.
무엇보다 즐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른 어느 학관보다 속도가 빨랐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그래도 제법이죠?”
옆에서 들려온 뿌듯함 가득한 목소리에, 석일승은 고개를 돌려 제갈소영을 바라봤다.
“……너와 닮았구나.”
불과 얼마 전처럼 느껴지는 제갈소영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석일승은 피식 웃었다.
다른 학생들은 경쟁률이 높은 무공 수업을 하나라도 더 듣겠다고 찾아다닐 때, 비인기 과목인 자신의 수업을 듣겠다고 찾아오던 학생이었다.
그것도 졸업까지 사 학년 내내.
-……이런 것보다 무공 수업을 하나라도 더 듣는 것이 도움이 될 게다.
-전 선생님 수업이 가장 재밌는걸요?
-철부지 같은 소리를. 이런 비주류 과목에 재미를 붙일 시간에…….
-시간 아까워요! 빨리 수업 시작해 주세요!
-…….
제갈세가의 금지옥엽이 아니었다면, 이 별종의 학관 생활도 퍽 쉽지 않았으리라.
그랬던 녀석이 이제는 자신과 꼭 닮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제갈소영이 싱긋 웃으며 스승에게 물었다.
“그 말. 기특하다는 칭찬이시죠?”
“……뻔뻔해지기도 했고. 대체 누구한테 나쁜 물이 든 겐지.”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석일승은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관중들의 반응도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청룡학관이 기관진식에도 조예가 있었나?”
“허어! 다른 학관들처럼 힘으로 빠져나올 줄 알았더니…….”
“올해의 청룡학관은 하루라도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는 날이 없군.”
관중들뿐만 아니라, 직접 기관진식을 설치한 현무학관 학생들도 당황한 기색으로 저희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끝내 청룡학관 학생들이 기관진식을 모두 해체하고 나왔을 때, 자리에서 일어난 현무학관주 대리 종리목은 감탄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선언했다.
“모두가 보셨을 테니, 기관진식 안에서 누가 가장 훌륭한 대처를 했는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이제, 청룡학관이 준비한 기관진식에 저희가 도전하겠습니다.”
청룡학관 학생들은 기쁜 얼굴로 준비해 온 기관진식을 설치했고, 이번에는 현무학관이 거기에 도전했다.
결과적으로 천무제 셋째 날의 우승은 현무학관이 차지했다.
하지만 더 뿌듯해 보이는 쪽은 준우승을 한 청룡학관 학생들이었다. 별종이라 불리던 자신들의 노력이 보답받았고, 그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과 겨룰 수 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준우승이라니! 말도 안 돼!”
“역시 현무학관은 수준이 다르더라!”
처음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청룡학관의 선전에 당황했던 현무학관 학생들도 순수하게 기뻐하는 청룡학관 학생들의 모습에 표정을 풀었다.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그들이었지만, 청룡학관 학생들에겐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나누고 교분을 쌓으려 할 정도였다.
“잘했어, 얘들아!”
석일승은 제자들의 성취를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제갈소영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코웃음을 쳤다.
“흥. 딱 초임 강사답구나. 그런 열정이 몇 년이나 갈는지 모르겠다만…….”
그러나 하는 말과 다르게, 제자를 바라보는 스승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결국, 천무학관은 천무제 셋째 날에도 청룡학관을 이기지 못했다.
그 이유가 단순히 무공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석일승은 천무학관의 강사들 중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나이에 이직이라니……. 고생깨나 하겠군.”
피식 웃은 석일승은 몸을 돌려 천무학관 진영으로 돌아갔다.
축제 분위기인 청룡학관과 달리, 그곳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 * *
셋째 날 종목의 경기가 끝난 후, 학관들의 순위가 다시 한번 바뀌었다.
이틀간 일 위를 유지했던 주작학관이 두 번째로 밀려나고, 천무학관은 세 번째 자리를 지켰다. 현무학관과 백호학관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청룡학관이 처음으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펄럭-!
천무학관의 건물 벽에 청룡학관의 현수막이 맨 앞에 내걸린 기념비적인 순간, 청룡학관의 모두가 가슴 벅찬 감정을 느꼈다.
“해낼 줄 알았다니까!”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겨! 절대로 첫 번째 자리를 뺏기지 않을 테니까!”
“청룡학관의 종합 일 위 달성을 축하하며!”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소리치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강사들도 주먹을 불끈 쥐거나 미소를 주체하지 못했다.
강사들과 학생들을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들뜬 것을 주의시키고자, 매극렴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들을 나무랐다.
“이제 겨우 사흘이 지났을 뿐이다! 남은 종목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용봉비무도 남아 있음을 잊으면 안 될 것이야. 경거망동하지 말고 이후의 대회들을 잘 준비해야…….”
그 순간, 백무흔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장인어른. 말씀은 근엄하게 하시면서 아까부터 입꼬리가 위아래로 씰룩이는 거 아십니까? 표정 관리부터 먼저 하시지요?”
학생주임의 농담에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졌다.
“이놈이……!”
얼굴이 붉어진 매극렴은 괜히 다 늙은 사위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려다가, 그만 체통을 잃고 허허 웃어 버렸다.
그런 모습을 인자하게 지켜보던 노군상이 부관주에게 말했다.
“오늘만큼은 학생들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주게.”
“예.”
부관주 곽철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제 일정도 이제 거의 절반이 지났다. 긴장한 채 하루하루를 보냈을 학생들에게도 처음으로 외출이 허락되었다. 오대학관 전부에게 전해진 공지였다.
예년보다는 외출 허락이 늦어진 편이었는데, 무림맹의 주도하에 도시에 경계를 철저히 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고 했다.
그날 밤, 백수룡도 가까운 동료 강사들과 숙소에서 자축하는 자리를 가졌다.
“헤헤, 형니임……. 우리 애들 진짜 너무 장하지 않아요……?”
“지난 일 년! 학생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저희들의 노력이 더해져 비로소 결실을 맺었습니다. 저는 오늘과 같은 보람을 위해서 강사가 되기로 결심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더 마시자구요! 전 오늘 마시다 죽어도 좋아요!”
“백수룡.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나?”
신연호의 술주정과 명일오의 눈물 어린 지난 일 년의 소회를 들어주고, 간밤에 마시지 못한 술을 동이째 들이붓는 제갈소영과 대작을 해 준 다음, 남궁수의 밀린 잔소리를 듣다 보니 금세 밤이 되었다.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백수룡에게, 숙소에 배치된 시종이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
“백수룡 선생님.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나를?”
끝날 줄 모르는 잔소리를 피할 겸 밖에 나가 보니, 그곳에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한 명은 현무학관주 관주 대리 종리목.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이는 여전한 자줏빛 비단옷을 입고 주름 하나 없는 얼굴로 웃고 있는, 몹시 반가운 인물이었다.
“오랜만일세. 자네는 여전히 헌앙하구만?”
장난기 가득한 아이처럼 웃는 풍월화공의 얼굴을 본 순간, 백수룡은 얼굴 가득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풍…….”
그 순간 풍월화공이 자신의 장원 밖으로 나오지 않기로 유명하다는 점, 그리고 천하에 그의 얼굴을 아는 자가 많지 않은 유명인이라는 점을 떠올린 백수룡이 씨익 웃으며 급히 말을 고쳤다.
“오랜만입니다. 춘삼 어르신.”
예상치 못하게 본명으로 불린 풍월화공의 눈이 세모꼴이 되고, 그 옆에 있던 종리목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풍월화공이 종리목을 째려봤다.
“네놈은 뭐가 좋다고 웃는 게냐. 사형이 놀림당하는 게 그리도 재밌더냐?”
함께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조손지간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들은 현천신녀 아래에서 동문수학한 사형제였다.
“스승님 말고도 사형을 이름으로 놀려 먹는 사람이 있으니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흥. 안 그래도 자글자글한 늙은이 얼굴에 주름살만 늘어나는구나.”
“사형처럼 주안술을 사용해 억지로 주름을 매달아 놓고 있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얼굴이 낫지요.”
“에잉. 젊어서부터 못생긴 네놈이 내 고충을 어찌 알까.”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니, 사이좋은 사형제라기보다는 앙숙처럼 보였다. 백수룡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두 분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인사도 할 겸 겸사겸사……. 헌데 계속 여기에 세워 둘 건가?”
잠시 후, 세 사람은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풍월화공이 먼저 근황을 전했다.
문율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한동안 친우인 검노와 함께 강호를 두루두루 여행했다고 했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그리면서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다가 청룡신협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고.
“그러다 천무제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지. 자네도 있으니 분명 재미있을 게 아닌가? 놓칠 수 없어서 축지법까지 쓰고 달려왔다네.”
“생각만큼 재미는 있으셨고요?”
“아무렴. 덕분에 그림도 제법 많이 그렸지. 자네 제자들은 하나같이 인상 깊더군. 특히 신월빙백무를 춘 아이는…… 은예린 그 녀석을 많이 닮았어.”
풍월화공이 잔잔하게 웃었다. 그러곤 백수룡에게 빙월신녀의 무공이 잊히지 않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웃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던 백수룡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검노 어르신은 함께 안 오셨습니까?”
“오늘은 나만 왔네. 실은 자네에게 따로 용건도 있고 해서.”
“용건이요?”
풍월화공의 시선이 백수룡의 허리춤을 향했다.
그 옆에서 한동안 말이 없었던 종리목 역시, 창룡신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안타까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스승님께선, 잠이 드신 겐가?”
“……예.”
고개를 끄덕인 백수룡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둘 다 현천신녀가 아끼는 제자들인 만큼, 그녀의 평생 숙원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역천의 힘이 저를 해치려고 했을 때, 창룡신검이 저를 구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목숨을 구했지만…….”
백수룡은 자신의 몸 안에 깃든 혈마의 존재를 제외하곤 대부분을 사실대로 말했다. 창룡신검 또한 그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조언했으니, 그녀의 제자들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종리목이 말했다.
“잠시 스승님을 뵙게 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두 사람은 백수룡에게 건네받은 창룡신검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우웅-
그들이 술법의 기운을 불어넣자, 창룡신검의 검신이 가볍게 떨렸다.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미 육신을 벗어던지시면서 크게 기운이 쇠하셨는데, 어찌 또…….”
“본인은 이제 등선을 하셔도 상관없단 게지. 항상 이리 야속한 분이셨지만, 남겨진 제자들은 어쩌란 말인지…….”
“사형. 스승님을 이렇게 보내 드릴 수는 없습니다.”
“물론이다.”
함께 창룡신검을 살펴보던 두 사람은 시선을 맞추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린 풍월화공이 진지한 얼굴로 백수룡에게 말했다.
“스승님을 잠시만 우리에게 맡겨 주겠나? 우리가 어떻게든 원기를 불어넣어 깨워 보겠네.”
“깨울 수 있단 말입니까?”
백수룡이 놀란 표정으로 묻자, 이번에는 종리목이 대답했다.
“장담할 수는 없으나, 저희 둘이 힘을 합치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나머지는 천운에 맡겨야겠지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백수룡은 두 사람에게 공손하게 예를 취했다.
창룡신검은 그에게도 소중한 친우였다.
지금까지 함께 혈교의 적들과 싸웠고,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과 전생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일에 대해서 조언해 주기도 한 고마운 조력자였다.
처음에는 그저 유용한 도구였고, 숙원을 이루기 위해 함께하는 관계였지만, 이제는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존재였다.
“꼭 다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백수룡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부탁에, 두 사람도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가 보겠네.”
풍월화공과 종리목이 먼저 떠난 후, 백수룡도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백수룡은 중간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흥분한 사람들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천무학관과 청룡학관 학생들 싸움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