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03
603화. 어. 협박하는 거야.
대회장 밖에서 청룡학관 학생이 천무학관 학생을 폭행했다.
그것도 학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학생회장이 직접 손을 썼다.
바닥에 쓰러진 옥진은 혼절했는지 움직임이 없었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뻗은 독고준은 뒤늦게 아차 싶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옥진이 조금 무례하게 굴었기로서니,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폭행하다니!”
“대회에서 몇 번 이겼다고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출신이 천하니 행동도 천박할 수밖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천무학관 학생들이 독고준을 비난했다. 성정이 급한 자들은 병장기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소란스러움과 별개로, 천무학관의 학생회장인 소림신룡 일각은 굳은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방금 전…….’
일각은 독고준의 출수를 눈치채고 막으려 했었다.
당사자조차 의도하지 않은 충동적인 기습이었지만, 소림의 금강부동신법이라면 충분히 늦지 않게 막을 수 있었다.
아니, 단순히 막는 것뿐만 아니라 독고준의 팔을 붙잡아서 꺾어 놓을 요량이었다.
옥진이 무례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천무학관 학생을 해치려 한 행동을 좌시할 수는 없는 일.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학생회장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일각은 결국 발을 떼지 못하고 옥진이 얻어맞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움직였다면…… 베였다.’
일각의 시선은 독고준이 아니라 그 뒤편, 싱긋 웃고 있는 위지천에게 향했다.
소년은 검파 위에 손을 올린 채 일각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내가 위축됐다고?’
믿기 힘든 일이었다. 소림신룡 일각은 또래에 적수가 없다고 평가받는 후기지수였다.
소림제일. 그 말은 곧 정파무림의 천하제일을 뜻하기도 했다.
그런데, 청룡학관의 일 학년이 그를 꼼짝 못 하게 만들다니.
“……아미타불.”
웅혼한 내력이 담긴 소림신룡의 목소리에 주변의 잡스러운 소리들이 사라졌다.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들이 놀란 눈으로 학생회장을 바라봤다.
저벅.
앞으로 한 걸음을 걸어 나간 일각의 눈에는 불자다운 자비심 대신, 고요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가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독고준 시주. 지금 천무학관을 기만한 것입니까?”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던 독고준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기만이라니요?”
“옥진 시주가 술에 취해 실수를 한 것은 사실이나, 먼저 다툼을 매듭짓자고 하신 것은 독고준 시주였습니다. 양보해 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드렸지요. 그런데 갑자기 기습이라니…….”
화아아악!
일각의 승복이 부풀어 올랐다. 후기지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내력. 그가 딛고 선 자리를 중심으로 물결 같은 기파가 번지며 바닥이 진동했다.
“이것이 천무학관에 대한 기만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졸업한 청룡학관 선배들을 모욕한 것이 먼저였습니다. 여기 계신 모두가 들었을 텐데요.”
독고준은 자신이 주먹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으나, 일각은 그것은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천무학관 학생회는 청룡학관 학생회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합니다.”
쿵!
일각의 발구름이 오 층 건물 전체로 퍼져나갔다. 밖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서 바라볼 정도였다.
“이 자리의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십시오. 그리하시면, 천무제 진행위원회에 오늘 일에 대한 징계는 요청하지 않겠습니다.”
자신이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자비라는 듯, 일각은 독고준에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과하라고 압박했다.
동시에 천무학관 학생들은 세 사람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포위했다.
독고준은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뉘우치는 모습이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으라는 겁니까?”
“저희는 진심만을 원할 뿐입니다. 스스로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그리하셔야겠지요.”
일각은 다시 인자하게 미소를 띠었지만, 그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독고준은 그가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저지른 실수다. 무릎 한 번 꿇는 것으로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면…….’
독고준은 이를 꽉 악물었다.
천무제 진행위원회에게 오늘 일이 보고된다면, 이 자리에 있었던 세 사람 모두 징계를 피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혼자였다면 괜찮았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다른 학생들, 더 나아가 처음으로 우승을 노리고 있는 청룡학관에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분하고 화가 나지만, 그래도 청룡학관을 위해서라면……. 독고준은 무릎쯤은 얼마든지 꿇을 수 있었다.
굳게 마음을 먹은 독고준이 앞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새끼들이 지금 뭐라는 거야! 밥 먹으러 온 사람들한테 먼저 무례하게 군 건 너희들 아니야?”
독고준의 어깨를 홱 잡아챈 헌원강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독고준의 왼편에 나란히 섰다.
“술에 취해서 내공도 담기지 않은 주먹 하나 피하지 못한 무인, 그게 더 부끄러운 것 아닌가요?”
위지천은 독고준의 오른편에 섰다. 평소의 천진난만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웃는 얼굴로 독설을 내뱉은 모습은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독고준은 고개를 저어 두 사람을 만류했다.
“너희들은 나서지 마라. 여긴 내가 알아서…….”
퍼억!
얼얼한 표정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매만지는 독고준에게, 헌원강은 쯧쯧 하고 혀를 찼다.
“독고. 이 순진한 자식아. 징계는 뭐 우리만 받냐?”
“……뭐?”
헌원강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달렸다. 그의 스승을 꼭 빼닮은 모습이었다.
“지천아. 예전에 선생님이 했던 말 기억 나냐? 남이 깔아 놓은 판에 휩쓸리면 삼류, 판을 흔들면 일류……. 어쩌고 그거.”
“정확히는 남이 깔아 놓은 판에 휩쓸리면 삼류, 판을 이용하면 이류, 판을 장악할 수 있으면 일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위지천도 싱긋 웃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포위한 천무학관 학생들을 둘러보는 눈만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너희를 포위했다는 듯한 여유마저 보였다.
“청룡신협의 제자라면 판을 새로 깔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죠.”
“너희들 설마…….”
독고준은 불안한 표정으로 청룡오망과 함께 치렀던 중간고사, 그리고 기말고사 대난투를 떠올렸다.
청룡학관 학생이라면 모두가 아는 청룡오망의 특기.
바로 판을 아예 엎어 버리는 것.
씨익.
헌원강은 자신들을 둘러싼 천무학관의 포위망을 스윽 둘러봤다.
“만약 청룡학관 세 명과 천무학관 수십 명이 여기서 패싸움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
“무슨 소리를…….”
“장담하는데, 여기 있는 놈들 중 누구도 징계를 피할 수 없을걸. 게다가 보통은 숫자가 많은 놈들이 나중에 진술할 때 불리하기 마련이거든? 게다가 너희는 술까지 마셨네? 우린 입도 안 댔는데.”
헌원강은 소싯적에 온갖 징계란 징계는 다 받아 본 망나니였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징계를 받을지 계산이 나왔다.
“여기 있는 놈들 전부 징계를 받아서 다음 경기에 출전 못 하면 누가 이득일까? 너희들 중에 몇이나 용봉비무에 나갈 수 있을까?”
“……지금 저희를 협박하는 겁니까?”
일각은 싸늘한 시선으로 헌원강을 노려봤다.
그러나 헌원강은 콧방귀를 뀌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어. 협박하는 거야.”
일각의 눈썹이 크게 꿈틀댔다. 나지막하게 불호를 외운 그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말했다.
“시주들께서 저희를 상대로 소란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을 제압하는 데 반 각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동시에 일각의 몸에서 황금빛 신공의 기운이 번졌다.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들도 굳은 표정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경고의 의미였다.
하지만 헌원강은 그 경고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목을 좌우로 꺾었다.
“아, 충고하는데 쇠붙이는 쓰지 마라. 이런 데서 함부로 휘둘렀다간 나중에 진짜 감당 못 한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더 이상 경거망동했다간……!”
휘익!
일각이 말하든 말든, 헌원강의 신형은 포위망을 구성한 학생들 중 한 명에게로 쏘아졌다. 아까 ‘출신이 어쩌고’ 했던 자식이었다.
“뭐, 뭐야!”
그는 헌원강이 갑자기 달려들자 깜짝 놀라서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일부러 상대의 주먹을 얼굴에 맞아준 헌원강은 그 모습 그대로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네가 먼저 쳤다?”
“무, 무슨 억지를……!”
곧바로 반격이 날아갔다. 헌원강의 주먹이 복부에 꽂히고, 허리가 꺾인 상대의 얼굴을 무릎으로 찍어 올렸다. 쌍코피가 터진 녀석이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물러섰다. 헌원강이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어디 자신 있으면 덤벼 봐, 새끼들아!”
위지천도 헌원강과 동시에 움직였다. 소년은 작고 날랜 몸을 이용해서 탁자 밑으로 파고들었고, 당황한 적들에게 검혼을 검집째로 휘둘렀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잡아! 탁자 밑이다!”
“이 자식이 비겁하게!”
난전이 펼쳐졌다. 헌원강은 쓰러뜨린 상대를 방패 삼아 싸우길 주저하지 않았고, 위지천은 마치 살수처럼 조용히 움직여 천무학관 학생들의 간담이 섬뜩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상대에게 포위되지 않도록 영리하게 움직였다.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약해 보이는 상대부터 하나씩 쓰러뜨렸다.
전부 지난 일 년 동안 백수룡에게 배운 싸움법이었다.
“이, 이, 무슨 행패를……!”
천무학관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종류의 싸움에, 일각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부르르 떨었다.
수십 명이 뒤엉켜 싸우기에는 좁은 장소였다. 함부로 검기를 피우거나 장력을 쏟아 낼 수도 없었다. 제대로 초식을 겨루는 비무가 아닌, 주먹다짐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의미였다.
천무학관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종류의 싸움이었다.
“파락호들의 싸움이 아닌가!”
갈등이 생기면 응당 시간과 날짜를 정해 비무를 벌이는 것이 정상이지, 이렇게 객잔 한복판에서 주먹질을 하는 건 천무학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가게 안에서 수십 명이 마구잡이로 치고받았다. 뒤엉켜 싸우는 헌원강과 위지천의 무복도 금세 엉망이 되었다. 천무학관 학생들의 실력도 결코 만만치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지형지물을 활용한 싸움은 청룡오망에게 훨씬 더 익숙했다. 실전경험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전부 비켜라!”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일각이 싸움에 참여했다. 황금빛으로 물든 그의 주먹이 헌원강의 등을 노렸다.
쩌엉!
검집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아 낸 독고준이 작게 한숨을 내쉬곤 일각에게 물었다.
“작년 용봉비무. 기억하나?”
“……무슨 소리를?”
“역시 기억 못 하는군.”
어차피 수습하기는 틀려먹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독고준은 개인적인 목표에 충실하기로 했다.
“기억이 안 나면 지금부터 기억나게 해 주지. 대머리.”
“……!”
소림의 승려가 되고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도발에 일각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도시로 외출했던 청룡학관 학생들도 싸움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만사를 제쳐 두고 달려왔다.
“이 새끼들이!”
“전부 죽여!”
“아니! 죽이진 말고!”
소란이 점점 커지면서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길을 지나던 행인들, 무림맹의 무인들, 기감이 예민한 고수들이 싸움 구경을 하기 위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망나니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뒤늦게 그곳에 도착한 백수룡은 가장 한복판에서 신나게 날뛰고 있는 헌원강을 보곤 헛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