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10
610화.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지
천무학관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용봉비무에 참가할 제자들을 제 거처로 보내 주십시오.”
천무학관주가 떠난 후, 장문인들은 회의에 함께 참석한 자파의 장로들과 짧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영약을 복용할 제자들을 선별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본문이 보유한 영약의 수가 얼마나 됩니까?”
“시간이 짧습니다. 용봉에 들 가능성이 큰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이 좋을 테지요.”
불존과 검성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정파무림의 두 거인은 무언가 깊은 고민이 있는 듯, 주름진 미간에 근심이 어려 있었다.
구파의 장문인들이 모두 떠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텅 빈 회의장을 둘러본 불존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빈승은 천무학관주의 의중을 모르겠습니다. 용봉비무를 앞두고 자신의 무공을 학생들에게 한 수 가르치겠다라…….”
“광인(狂人)의 생각을 어찌 알 수 있겠소.”
검성이 냉소적인 어투로 말했다.
천무학관주, 만병제 진량이 무공광이라는 사실은 유명했다.
천하에서 가장 많은 무공을 견식할 수 있는 자리라는 이유로 천무학관주가 된 사내가 아니던가.
범인의 기준으로는 그의 생각을 알 수도, 행동을 예측할 수도 없었다.
천무학관주의 기행은 두 절세고수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지게 만든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혹여나 위력을 대가로 부작용을 앓는 무공을 가르치진 않을지……. 빈승의 걱정이 지나친 것이겠지요.”
불존은 차마 마공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못했다.
천무학관주가 기인(奇人)이긴 하나,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파무림의 수많은 후기지수들을 양성해 온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감히 그런 짓을 하겠소? 장문인들도 그 정도는 생각하고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오.”
천하무림의 이목이 집중된 자리다.
아무리 천무학관주가 십존일지라도, 혹여 학생들에게 마공을 가르쳤다가 발각되는 날엔 목이 날아갈 것이다.
그조차 감수할 만큼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불존과 검성도 거기까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미타불. 저희가 유심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지요.”
“헌데 아무리 그래도 구파의 장문인이란 자들이……. 세 치 혀에 휘둘려 이리저리 부화뇌동하기는.”
검성은 천무학관주에게 휘둘리는 장문인들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하지만 천무학관주의 제안보다 나은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다.
청룡신협에게 구파의 지휘권을 내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는 아니다. 제자들의 목숨을 외부인에게 맡긴다는 의미였다.
적어도 불존과 검성. 두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아미타불. 처음부터 내기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미안하외다. 그땐 내가 경솔했소.”
검성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당시 청룡신협의 내기를 받아들이자고 한 것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청룡학관 학생들이 구파의 후기지수들이 주축인 천무학관을 능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젊은 절세무인의 패기가 마음에 들었고, 산동악가에서 제자가 목숨을 빚졌기에 한 손 거들어 주고자 그랬을 뿐이었다.
불존은 당시에도 내기에 반대했지만, 그 또한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제자들이 용봉비무에서 활약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요.”
“불존은 용봉비무의 결과를 어찌 보시오?”
“소림에서는 일각이 나설 것입니다.”
불존은 그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천무학관 학생회장 일각은 모의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
전날 밤 청룡학관과의 싸움을 중재하지 못한 벌로 하루 동안 면벽 수행을 명받았는데, 꼼짝도 하지 않고 벽만 바라보며 번뇌를 씻는 과정에서 심신이 많이 안정되었다고 했다.
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동심을 되찾은 소림신룡이라면 능히 용봉비무 연패(連?)를 노려 볼 만하지.”
“검성께서는 누구에게 기대를 걸고 계십니까?”
“무당은 취소옥과 연소하. 두 아이가 출전할 것이외다.”
“취소옥이란 아이의 성취는 모의전투에서 보았습니다. 뛰어나더군요. 그리고 연소하란 아이는 검성의 제자이지요?”
“맞소. 주작학관 소속이지만……. 능히 우승을 노려 볼 만하외다.”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과 무당의 제자들.
매년 용봉비무의 우승을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청룡신협의 제자들……. 하나같이 빼어나더군요.”
“맞소이다. 하나같이 천하에 보기 드문 절세신공을 익혔더군.”
“…….”
“…….”
같은 것을 생각하는 듯, 두 사람은 잠시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검성이었다.
“대사께서도 느끼셨소?”
“예. 희미하지만 분명…….”
불존이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누군가가 회의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고집스런 인상의 노도사였다.
검날에 베인 흉터가 얼굴을 사선으로 깊게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살아남은 것이 기적처럼 보일 정도였다.
“현양자가 어찌? 거처로 돌아간 게 아니었소?”
현양자는 점창파의 태상장로로, 구파 수뇌부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인물이었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두 분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다시 왔습니다. 내 일천한 안목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 말입니다.”
불존, 검성과 같은 세대의 인물이기도 한 그는 얼굴의 끔찍한 흉터를 꿈틀대며 말을 이었다.
“청룡학관의 학생들이 사용하는 무공 중 일부가……. 어딘가 익숙하지 않습니까?”
“…….”
“…….”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불존. 검성. 현양자.
그들에겐 비슷한 연배라는 것 외에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역시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게지요? 청룡학관 학생들 중 일부가 익힌 무공…….”
바로 과거 혈교와의 전쟁에 참전했었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 처절했던 그 전장에서 마주한, 가장 끔찍했던 적들.
그들을 떠올리며 현양자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사도들의 무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쉽게 속단할 일이 아닙니다.”
불존이 목소리를 낮추어 단호하게 말했다.
섣불리 추측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
그 때문에 불존과 검성은 위화감을 느끼고도 어디에도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조금 더 두고 봅시다.”
검성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두 소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헌원강과 위지천.
청룡신협의 수제자들이라고 들었다.
아직 천무제의 그 어떤 종목에도 나서지 않았지만, 지난밤 객잔에서 천무학관 학생들과 어울려 싸우는 모습을 잠시 볼 수 있었다.
공교롭게 현양자도 그곳에 있었다.
“그들이 익힌 무공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검성은 빈 소매가 펄럭이는 자신의 오른 어깨를 바라봤다. 수십 년 전에 잘려 나간 오른팔에서 은은한 통증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지.”
겨울바람을 타고 스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내게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두꺼운 근육질의 몸에서 새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조금 전까지 수련 중이었는지 웃통을 벗어 던진 채였는데, 겨울의 싸늘한 날씨임에도 팽사혁의 주변은 열기로 후끈했다.
“예. 천무학관주께서 직접 소가주님을 지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은 하북팽가의 무인이 조심스럽게 천무학관주의 제안을 전했다.
소가주의 몸 곳곳에 멍이 든 흔적이 보였으나, 무인은 그것을 애써 모른 척하며 말을 이었다.
“자신의 거처로 찾아오면 소가주님께 어울리는 무공을 한 가지 전수하시겠다고……. 천무학관주께서 직접 쓰신 서찰입니다.”
팽사혁은 가문의 무인이 건네준 서찰을 받아 빠르게 읽었다.
평소에 눈여겨보고 있던 후기지수 중 하나였으며, 자신이 아는 여러 가지 무공 중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것 하나를 전수해 줄 테니 거처로 찾아오라는 내용의 짧은 글이었다.
“용봉비무에 참여하는 천무학관 후기지수들 중 상위권을 노리는 학생들의 대다수가 거처를 찾아갔다고 들었습니다.”
팽가의 무인은 천무학관주의 거처를 찾아간 후기지수들이 하나같이 희열에 찬 표정으로 나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소가주께서도 분명 가시겠지.’
천무제가 시작된 이후, 팽사혁은 단 하루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 낡은 장원을 하나 구해 그곳에서 두문불출하며 폐관수련을 하다시피 했다.
용봉비무 우승에 대한 욕심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였다.
때문에 팽가의 무인은 소가주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했다.
“필요 없다고 전해.”
팽사혁이 서찰을 둘로 찢어 버린 순간, 팽가 무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소, 소가주님? 진심이십니까?”
팽사혁은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듯 둘로 찢은 서찰을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다시는 이깟 하찮은 일로 수련을 방해하지 마라. 경고는 한 번뿐이다.”
“예, 예! 죄송합니다.”
가문의 무인을 돌려보낸 팽사혁이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선 천무결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한번 가 보지 그래? 용봉비무에서 우승할 수 있는 절세신공을 전수해 줄지도 모르는데.”
팽사혁은 대답 대신 거치대에 놓아둔 도를 들었다. 날카롭게 벼린 칼날이 달빛을 받아 은은한 푸른빛을 띠었다.
“못 들었어? 필요 없다고 했을 텐데.”
“하기야.”
큭큭 웃은 천무결은 날이 뭉뚝한 가검을 들고 팽사혁과 마주 섰다.
“가진 것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욕심을 냈다간 가랑이가 찢어지기 마련이지. 그래도 네 주제는 아는구나.”
그 순간, 기습처럼 달려든 팽사혁의 칼날이 공간을 찢어발기고 천무결의 목덜미를 노렸다. 부르르 진동하는 칼날에서 맹호의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렸다.
지금의 하북팽가를 있게 한 오호단문도였다.
그러나 강호의 일절로 불리는 절세도법으로도 천무결의 몸에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가볍게 모든 도초를 피한 그는 허점을 드러낸 팽사혁의 몸에 사정없이 공격을 꽂아 넣었다.
퍼억! 퍽퍽퍽!
둔중한 소리를 내며 팽사혁의 몸이 몇 번이고 들썩였다. 일방적이고도 무자비한 공격이었다. 외공의 고수라도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러나 팽사혁의 입에서는 신음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 핏발 선 눈으로 천무결을 노려보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촤아악!
천무결은 그 회심의 반격조차 허무하리만치 쉽게 피했다.
“몇 번이나 말했지. 넌 그럭저럭한 재능을 가진 수많은 놈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죽어라 노력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그래 봤자 승산은 절망적이다만…….”
카악- ?.
바닥에 핏물을 뱉어 낸 팽사혁의 눈빛은 여전히 굶주린 맹수처럼 사나웠다.
“실컷 빈정대. 그 입을 뭉개 줄 테니까.”
“고작 그 실력으로?”
“지금이라고는 안 했어. 언젠가 말이야.”
팽사혁의 되바라진 대답에 천무결이 큭큭 웃었다.
필요에 의해서 천무학관의 강사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에게 곱게 자란 정파 도련님들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비하면 팽사혁은 독기 하나는 마음에 드는 놈이었다.
어떻게든 강해지려고 아득바득 발버둥 치는 모습이라니.
그래서 소일거리삼아 가르쳐 보기 시작했는데, 제법 잘 따라오는지라 나중에는 꽤 이것저것을 가르치게 되었다.
유일하게 ‘적당히’가 아닌 ‘제대로’ 가르쳐도 따라오는 놈.
몇 번이고 주저앉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같은 말만 반복하는 고집불통.
“한 번 더.”
팽사혁의 전신에서 굶주린 맹수와 같은 기도가 흘러나왔다.
천무결은 비릿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날 죽일 각오로 덤벼라. 덩치만 큰 애송아.”
“걱정하지 말라고. 항상 그랬으니까.”
팽사혁이 히죽 웃으며 천무결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수련은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아올 때까지도 계속됐다.
* * *
혈교의 지하뇌옥, 그 가장 깊은 곳에서 진동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누구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약했다. 그러나 점점 커지기 시작한 진동은 지하를 뒤흔들 정도의 지진으로 변했다.
쿠구구궁……!
동시에 스멀스멀 올라온 어둠이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 어둠은 서서히 위로 향하며 지하뇌옥에 갇힌 죄인들을 집어삼켰다.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스러졌다.
그리고 그 심연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크크크…….”
흑요석 같은 새카만 눈동자 속에, 지옥의 겁화를 심어 놓은 듯한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