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12
612화. 봤냐?
“맛있군. 하나 더.”
“…….”
사곤은 미간을 구기며 들고 있던 월병을 자신의 품 안으로 당겼다. 벌써 세 개째였다.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손을 뻗는 삼사도를 노려봤다.
‘더는 못 준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확고한 뜻이 전해졌다. 삼사도의 눈매가 사납게 휘었다. 그는 월병의 부스러기가 묻은 손가락을 혀로 핥으며 으르렁거렸다.
“고작 그거 하나 못 주겠다는 거냐? 수십 년간 서로에게 등을 맡겨 온 우리의 관계가 겨우 이 정도였나?”
“…….”
“그러니까 하나만 더.”
손을 내미는 삼사도의 표정은 진지했으나, 사곤은 어림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곤 보란 듯이 월병 하나를 집어 들어 자신의 입 안에 넣었다.
“이, 치사한 자식이…….”
삼사도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사곤을 노려봤지만, 혈교도들을 벌벌 떨게 만들던 눈빛도 수십년지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삼사도가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다. 내가 사 오지. 그거 어디서 파는 거지?”
“…….”
사곤이 수어로 위치를 알려 주려는 순간, 이사도가 벼락같은 금나수로 사곤이 무릎에 놓아둔 월병을 전부 빼앗아 갔다. 찰나의 방심을 노린 기습이었다.
“둘 다 눈에 띄는 짓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
사곤이 충격받은 얼굴로 이사도를 바라보고, 삼사도는 꼴좋다는 듯 비웃음을 지었다.
그때 용무가 있어 그들보다 늦게 도착한 일사도가 자리에 착석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삼사도가 빠르게 말했다.
“일호. 들어 봐라. 사호 이 자식이 주전부리 하나 가지고 유세를 부리는군. 맛대가리도 없는 만두를 사흘이나 먹게 해 놓고 이제 겨우 먹을 만한 걸 가져와서는…….”
“교에서 매일 올라오던 보고가 끊겼다.”
일사도의 한마디에 사도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들에게 지난 며칠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던 나날이었다.
다양한 볼거리와 수많은 사람들.
그 안에 부대껴 도시를 돌아다니고, 천무제를 구경하고, 시답잖은 장난도 치면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사도를 통해 전해진 혈교의 소식은 사도들을 순식간에 현실로 데려왔다.
“무림맹에서 눈치챈 건가?”
이사도가 한 입 먹은 월병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삼사도의 얼굴에서는 표정이 사라졌다.
“…….”
사곤은 무거운 표정으로 그런 친우들을 바라봤다. 그가 몇 번인가 입술을 달싹였으나, 사도들은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무림맹은 아니다. 문제가 생긴 건 본교 쪽이다. 내부에 문제가 생겼거나, 반란이 일어났거나……. 둘 다일 수도 있겠지.”
일사도는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사도들의 주변에는 기막이 둘러 쳐져 있었다.
“돌아가야겠군.”
차갑게 내뱉는 삼사도의 몸에서 혈향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반란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혈교에서는 몇 차례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사도들은 항상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눌렀다.
그리고 삼사도는 배교자와 적들을 누구보다 많이 벤 칼이었다. 그가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렸다.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는 짐승들 같으니. 고작 며칠이나 자리를 비웠다고…….”
“반란이라면 필시 팔가의 가주들이겠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늙고 욕심은 많아졌어. 주일천 그 노괴가 주도했을 거야.”
이사도 또한 냉기를 풀풀 풍기며 교의 상황을 예측했다.
주변을 의식해 내공을 끌어 올리지는 않았지만, 그 의지만으로도 주변에 부는 겨울바람이 더욱 매서워진 듯했다.
그러나 둘의 반응에도 일사도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본교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째서?”
일사도는 대답 대신 용봉비무를 준비 중인 청룡학관을 바라봤다.
비무에 나설 학생들이 몸을 풀고 있었고, 강사들은 가볍게 대련을 해 주거나 자세를 봐주며 조언을 건네고 있었다.
백수룡은 헌원강과 위지천의 자세를 봐주고 있었다.
한 손에 든 도는 헌원강의 도를 쳐 내고, 다른 한 손에 든 검으론 위지천의 검을 쳐 냈다.
일사도는 그 모습을 수십 년 전의 누군가와 겹쳐 보았다.
“……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뭐?”
“교가 중요하지 않다니?”
혈교를 재건하는 데 누구보다 열의를 갖고 평생을 바쳐 온 일사도의 입에서 나온 말에, 사도들이 당혹스럽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나를 기다려라
그 한마디를 듣고 수십 년을 기다려 온 삶이었다.
무너진 혈교를 재건하고, 언젠가 돌아올 지존을 맞이하기 위해. 그것은 사도들이 살아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교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불신과 의문이 담긴 두 사람의 눈빛에, 일사도는 피식 웃었다. 한껏 작위적인 미소였다.
“기억하고 있겠지. 옛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청룡신협이 정말 옛 스승의 환생이라면…….”
일사도는 친우들과 한 명씩 눈을 맞춘 후 말을 이었다. 입가에 맺힌 미소가 섬뜩하게 일그러졌다.
“우리의 무공뿐만 아니라, 역천신공 또한 익히고 있을 것이다.”
“……!”
“……!”
사도들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충분히 예상했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사곤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아예 믿지 않았기에 생각하지 못했고, 나중에는 자신들의 무공을 익힌 학생들을 보고 놀라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혹은 그냥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혈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사도들에게 무공을 가르친 자.
역천신공을 익힌 절세고수.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너무나 상징적이었으니까.
이사도와 삼사도가 넋이 반쯤 나간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지금까지와는 달라진 시선이었다.
“설마…….”
“너, 저자를…….”
일사도가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복잡하게 얽힌 은원과 증오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으니까.
“그래. 청룡신협은.”
일사도가 말을 멈췄다. 가슴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머리는 어느 때보다 차갑고 냉철했다. 그가 하얀 숨결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지존이 될 수도 있는 존재다.”
무겁게 침묵하는 두 사람을 내버려 두고, 일사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짧은 말을 남겼다.
“기회를 봐서 청룡신협과 접촉하겠다.”
“……일호.”
사곤이 그를 막아섰다. 육성으로 전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기회를 사용해, 간절한 표정으로 친우를 바라봤다.
그러나 일사도는 자신을 막아선 사곤을 똑바로 마주 보며, 차분한 음색으로 말했다.
“사호. 놀이는 끝났다.”
“…….”
사곤은 자신의 곁을 지나치는 친우를 끝내 붙잡지 못했다.
* * *
용봉비무 예선이 시작되었다.
오대학관에서 각각 선발된 열두 명, 그리고 전년의 용봉비무에서 최종 4인에 든 네 명을 포함한 총 예순네 명의 학생들이 사흘 동안 천하제일후기지수의 자리를 두고 무공을 겨루게 될 터였다.
우와아아아아아!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관중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그만큼 용봉비무에 대한 관심이 어마어마했다.
“올해는 구파가 전부 후기지수를 출진시켰다면서요?”
“곤륜과 청성은 빠졌답니다. 둘 다 그 망신을 당했으니…….”
“그래도 어느 해보다 많이 참석시킨 것은 사실 아닙니까?”
“천무학관도 이제는 필사적인 게지요. 용봉비무에서마저 청룡학관에게 밀린다면 망신이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요.”
관중들은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올해는 특히 볼거리가 많았다. 구파의 후기지수들이 어느 해보다 많이 참석한 것은 물론이고, 청룡학관이 천무학관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탓이었다.
청룡학관이 용봉비무마저 석권해 말 그대로 화룡점정을 완성할지, 아니면 용봉비무에서만큼은 천무학관이 자존심을 지킬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었다.
“천무학관에서 용봉비무 우승자가 나오면 결국 종합순위가 바뀌지 않습니까?”
“청룡학관이 용봉을 셋 이상 배출하면 또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셋이나?”
“청룡신협의 제자들에 대해서 아직 들어 보지 못한 거요? 권패. 맹호권. 빙백린. 모두 청룡신협에게 독문무공을 전수받은 학생들이란 말이외다! 헌데 다섯 중에 둘은 아직 나서지도 않았단 말이지.”
관중석에서 위지천, 헌원강의 이름이 심심찮게 오르내렸다.
청룡학관이 믿을 수 없는 활약을 보여 주면서 청룡오망의 명성도 덩달아 높아진 탓이었다.
그 당사자들인 위지천과 헌원강은 나란히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릎 위에 검혼을 올린 위지천이 심호흡을 깊게 하며 말했다.
“서, 선배님. 저 지금 너무 긴장돼요…….”
“겨우 이 정도로? 자식. 하여간 검만 잘 휘두르지 아직 애라니까.”
선배답게 긴장한 후배의 머리를 흐트러뜨리는 헌원강의 옆에서, 거상웅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원강아. 긴장 안 했다면서 아까부터 다리는 왜 이렇게 떠냐? 누가 보면 각법 연습하는 줄 알겠다.”
“……닥쳐.”
그렇게 앞선 몇 번의 비무가 지나가고, 헌원강의 긴장을 한순간에 날려 버리는 이름이 호명되었다.
“천무학관 삼 학년 팽사혁 학생은 올라오시오!”
천무학관 진영에서 거구의 학생이 몸을 일으켰다. 그를 알아본 관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사혁이다!”
팽사혁이 올라오자 비무대가 단숨에 꽉 차 보였다. 덩치보다 더욱 거대한 존재감 탓이었다.
“어이-! 팽사혁!”
팽사혁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힐긋 돌아봤다.
헌원강이 히죽 웃으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름 방학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두 소년이었다. 헌원강은 주변의 시선도 무시하고 두 손을 모아 소리쳤다.
“수련은 많이 했냐! 이번에야말로 각오해라! 아주 묵사발을 내 버릴 테니까!”
“미친놈.”
코웃음을 친 팽사혁은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헌원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새끼가?”
“원강 선배. 지금 완전히 무시당한 거 아니우?”
“원강아. 선전 포고를 그렇게 하면 나 같아도 모른 척하겠다.”
야수혁과 거상웅이 낄낄거리고, 여민은 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셋 다 용봉비무에는 참가하지 않는 탓에, 지금은 속 편하게 구경하는 입장이었다.
“천무학관 사 학년 위진양 학생은 올라오시오!”
팽사혁의 상대가 호명되자, 천무학관 진영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첫날부터 천무학관 학생들 간의 비무가 결정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삼 학년과 사 학년.
용봉비무의 상위권을 노려볼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천무학관 사 학년, 공동파의 위진양입니다. 복마검법을 익혔습니다.”
비무대로 올라온 말쑥한 인상의 청년이 관중석을 향해 몸을 돌려 포권을 취했다. 그 이름을 익히 들어 본 관중들이 환호를 보냈다.
“……천무학관 삼 학년 팽사혁. 팽가의 오호단문도를 펼칠 거요.”
팽사혁은 귀찮다는 듯 도를 뽑으며 말했다. 빨리 비무나 시작하자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위진양은 시작해도 좋다는 사회자의 말에도 일부러 천천히 검을 뽑으며 팽사혁에게 말을 걸었다.
“사혁 후배. 내 전부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는 지난밤 공동파의 장문인에게 영약을 받아 복용했고, 천무학관주의 거처에 들러 한 가지 무공을 전수받았다.
‘작년에는 아쉽게 용봉에 들지 못했지만, 올해는 가볍게 올라갈 것이다.’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막대한 양의 내공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주었고, 천무학관주에게 전수받은 비장의 무공은 겸손을 잠시 거두게 만들었다.
“자네에게 천무학관의 이름을 쓸 자격과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위진양은 평소 팽사혁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명문정파 출신답지 않게 예의 없게 구는 것도 그러하고, 편입생 주제에 자신감이 지나친 모습 또한 탐탁지 않았다.
하여 이번 기회에 천무학관 학생회 소속으로서, 건방진 후배를 교육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팽사혁이 피식 웃으며 빈정거렸다.
“내가 편입생이라 마음에 안 드셨나 봐. 진작 말씀을 하시지.”
“우선 그 말버릇부터 고쳐 주겠네. 선배로서 삼 초를 양보해 줄 테니…….”
위진양은 말을 잇지 못했다. 순식간에 짓쳐 든 팽사혁의 도가 눈앞에서 시퍼런 날을 번쩍이고 있었으니까.
쩌엉!
첫 일격에 위진양이 크게 밀려나고, 두 번째 공격을 막다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세 번째 공격을 막기 위해 검을 들었다가 검이 둘로 부러지고, 네 번째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나려타곤으로 바닥을 굴렀다.
압도적인 싸움이었다. 위진양은 간밤에 복용한 영약의 내공으로 무언가를 해 볼 틈도, 비장의 무공을 펼쳐 볼 기회도 잡지 못하고 구석으로 몰리기만 했다.
“그, 그만!”
정확히 십 초식 만에 팽사혁의 칼이 위진양의 목에 닿았다.
칼날에 맺힌 핏방울을 본 위진양이 창백해진 얼굴로 스스로 패배를 시인했다.
“……졌습니다.”
칼을 거둔 팽사혁은 위진양을 쳐다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비무대에서 내려갔다.
비무대에서 내려가기 직전, 헌원강을 힐긋 돌아본 팽사혁의 입꼬리가 오만하게 호선을 그렸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팽사혁의 오만한 미소에 헌원강도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리고 또 몇 번의 순서가 지나간 후, 헌원강의 이름이 불렸다. 상대는 주작학관의 사 학년이었다.
싸움은 길지 않았다.
쩌저저저정!
헌원강은 순식간에 상대를 몰아붙여 승부를 결정지었다.
팽사혁보다 정확히 한 초식을 덜 사용한 아홉 초식 만에 거둔 승리였다.
“봤냐?”
어깨에 도를 척 걸친 헌원강이 팽사혁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