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13
613화. 하지만 그 전에
용봉비무 첫날.
학생들이 비무대에 오르고 내려갈 때마다 관중석에서 환호와 응원, 아쉬움의 탄식이 교차했다.
“과연 천무학관의 후기지수들은 다르군! 벌써 몇 승째인가?”
“호들갑은. 진짜 용봉들은 아직 나서지도 않았소이다.”
“청룡학관에서는 헌원강, 위지천, 독고준. 이 셋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게요.”
“용봉 후보에 주작학관의 사마현, 연소하도 빼놓아선 안 되지.”
“다 필요 없네! 나는 소림신룡에게 전 재산을 걸었어!”
군중들이 흥분 섞인 목소리로 떠들며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닷새 중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벌써부터 용봉에 들 명단과 우승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러 후기지수의 이름이 언급됐다. 지난 나흘 동안의 대회에는 나서지 않았던 오대학관의 이름난 후지기수들도 용봉비무가 시작되자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주작학관 사 학년 연소하 학생과 백호학관 사 학년 소일지 학생은 올라오시오!”
용봉비무를 제패하고 천하제일후기지수로 인정받는 것.
오대학관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누구든 한 번은 꿈꾸는 일이었다.
때문에 만전의 몸 상태로 용봉비무에 나서기 위해, 다른 종목에는 일절 참가하지 않는 일이 흔했다.
주작학관에서는 연소하가 그런 경우였다.
“……져, 졌습니다.”
“양보해 줘서 고마워.”
승부는 순식간이었다.
싱긋 웃은 연소하는 검을 집어넣고 무당파와 주작학관을 향해 포권을 취한 후 비무대를 내려갔다.
다섯 초식 만에 승리를 거둔 것치고는 너무나 태연한 모습이었다.
“역시 주작학관이 아껴 둔 비밀병기답네.”
백수룡이 작게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검성의 제자이기도 한 연소하는 주작학관이 용봉비무를 위해 지금까지 숨겨 둔 비장의 한 수였다.
원래도 빛나는 재능을 가진 학생이었지만, 악가에서 전투를 경험한 이후로 더 큰 발전이 있었던 듯했다.
“연소하뿐만이 아니다. 용봉비무는 천하에서 가장 빛나는 재능들의 각축장이지. 방심하면 누구라도 패할 수 있다.”
남궁수는 그렇게 말하며 침착한 표정으로 용봉비무를 관전했다.
승자들은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당당히 비무대를 내려가고, 패자들은 아쉬움에 분루를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 모두가 승자일 수는 없지.”
백수룡은 고개를 숙이고 비무대에서 내려오는 목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집단전인 모의전투에서는 누구보다 큰 활약을 펼쳤지만, 용봉비무에서는 아쉽게도 첫 번째 비무에서 패배했다.
전날 모의전투에서 체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로는 목형우를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패배는 패배니까.
“죽어라 노력했어도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허무하게 질 수 있어. 노력에 대한 보상이 공평하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니까. 뭐, 그래도…….”
뒷머리를 벅벅 긁은 목형우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후배들에게 다가갔다.
장난과 위로를 건네는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이내 평소처럼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잘 털어 내면 돼. 천무제 말고도 앞으로 많은 기회가 있을 테니까.”
“…….”
남궁수는 그런 백수룡을 묘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불과 일 년 전, 청룡학관을 천무제에서 반드시 우승시키겠다고 선언하던 백수룡과 지금의 백수룡은 같지만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쉽지는 않나? 네 제자들이 모두 나섰다면 첫 경기의 대부분을 승리했을 텐데.”
남궁수의 시선이 용봉비무를 지켜보고 있는 거상웅, 야수혁, 여민을 향했다.
지난 대회들에서 큰 활약을 했던 세 명은 용봉비무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백수룡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자기들은 이미 충분한 결과물을 냈으니까, 나머지는 다른 애들한테 맡기고 편하게 구경이나 하겠다던데?”
“……뭐?”
이 역시 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과거의 백수룡이었다면 결코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제자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용봉비무에 나설 기회를 양보하는 것을 말이다.
남궁수의 표정이 더욱 묘해졌다.
저 말이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백수룡의 생각인지, 아니면 삿된 것의 장난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더 많은 학생들이 천무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용봉비무에서 우승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뜻인가?”
그러자 백수룡이 고개를 홱 돌려 남궁수를 똑바로 바라봤다. 남궁수는 그 눈을 유심히 살폈다.
“무슨 헛소리야?”
“…….”
“당연히 용봉비무도 우승해야지. 뭔가 오해한 모양인데. 내가 하려던 말은…….
백수룡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맺혔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에는 헌원강과 위지천이 있었다.
청룡오망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제자가 된 두 소년.
천부적인 자질과 감각을 타고난 데다 백수룡의 각별한 지도가 더해져, 지난 일 년간 무서울 정도로 성장한 천재들이었다.
먼저 비무를 끝낸 헌원강은 팽사혁을 노려보며 혼자서 눈싸움을 하고 있었고, 위지천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심호흡을 하는 중이었다.
“저 둘이면 충분하다는 뜻이라고.”
“…….”
제자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백수룡의 표정을 살핀 남궁수의 눈에 안도감이 번졌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군.”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해?”
백수룡이 씩 웃으며 묻자, 남궁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비무대를 살폈다.
오대학관의 후기지수들이 지난 일 년의 성취를 증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한쪽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대부분은 최소 수십 합에서 많게는 수백 합을 겨루었다.
무공의 고하는 상관없었다. 절세고수의 안목은 학생들의 땀방울에서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만약 누가 가장 열심히 노력했는지로 용봉을 가린다면, 너의 두 제자는 용봉에 들 확률이 높을 것 같군.”
“이게 남궁수식 응원인가 그거냐?”
“헛소리.”
백수룡의 장난 어린 질문을 일축한 남궁수는 다시 대회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일순간 위화감이 어린 장면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저건…….”
구파 출신의 천무학관 학생이 압도적인 내공으로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관중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남궁수의 시선은 점점 더 싸늘해졌다.
백수룡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아까부터 느꼈던 건데, 천무학관 학생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체내의 기가 불안정하고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저 정도 실력을 지닌 후기지수들에겐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마치…….”
남궁수가 차마 떠오른 가정을 말하지 못하자, 백수룡이 싸늘한 목소리로 대신 말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영약을 갑자기 복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
공교롭게도 그다음 차례가, 천무학관과 청룡학관 학생의 비무였다.
* * *
“청룡학관 일 학년 남궁석 학생과 천무학관 이 학년 종연 학생은 비무대 위로 올라오시오!”
두 소년이 동시에 비무대에 올랐다. 가벼운 발소리와 예법을 갖춘 몸짓이 명문의 교육을 받고 자랐음을 증명했다.
“남궁세가의 남궁석입니다. 창궁무애검법을 익혔습니다.”
“점창파의 종연입니다. 사일검법을 익혔습니다.”
마주 포권을 취한 두 학생은 검을 들어 기수식을 취했다.
후우-.
남궁석은 호흡을 고르며 정신을 집중했다.
상대는 쾌검으로 유명한 점창파의 후기지수로, 학년도 자신보다 높았다.
예전 같았으면 주눅부터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마음이 차분했다.
‘강해 봤자…….’
남궁석의 시선은 종연의 뒤편, 팔을 흔들면서 친구를 응원하는 위지천을 향했다.
자신보다 강한 또래와 싸우는 것은 익숙하다 못해 질릴 정도였다.
‘저 괴물 같은 녀석보다 강할 리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자 묘한 안도감이 듦과 동시에 긴장이 풀렸다. 남궁석의 입가에는 흐릿한 미소마저 맺혔다.
“청룡학관의 후배께서 자신감이 넘치는 모양이군?”
점창파의 종연이 싸늘하게 웃으며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남궁석은 굳이 말을 섞지 않았다.
용봉비무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였다. 무인으로서 최선을 다할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계속 말을 걸었다. 어설픈 도발이었다.
“미리 조언하는데, 내 검을 피하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가만히 있게. 어쭙잖게 움직였다간 크게 다칠 수 있거든.”
“점창파의 검이 그토록 빠르다던데, 말을 간결하게 하는 방법은 가르치지 않나 보네요.”
“감히……!”
남궁석이 가볍게 응수해 주자 종연이 빠드득 이를 악물었다. 이 정도 격장지계는 청룡학관 학생들에겐 기본 소양이었다.
비무를 시작해도 좋다는 감독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종연이 비무대 바닥을 박차고 날 듯이 쇄도했다.
쐐애애액!
점창파의 검은 빠르고 매섭다. 후예가 활을 쏘아 해를 떨어뜨렸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사일검법이 공간을 빛살처럼 갈랐다.
‘빨라.’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남궁석은 창궁무애검법을 펼쳤다. 푸른 하늘을 품은 남궁세가의 검로는 올곧으면서도 무한히 자유로웠다.
만약 누가 어떻게 두 가지 성질이 공존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남궁수와 백수룡. 두 사람에게 지도를 받은 결과라고 말할 것이다.
까앙!
상대의 첫 공격을 쳐 낸 남궁석은 자신감이 붙었다.
사일검법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첫 번째 초식이다.
면면부절 연환식으로 이어지는 다른 구파의 무공에 비해, 점창파의 무공은 단기에 승부를 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제 내 차례다.’
전력을 다한 쾌검이 막힌 상대는 빈틈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남궁석은 그 순간을 노릴 자신이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상대에게 성큼 거리를 좁혔다.
그 순간, 이를 악문 종연이 전신에서 가공할 공력을 뿜어냈다.
화아아아악-!
동시에 종연은 손목을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어서 튕겨 나간 검을 회수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검로로 날아오는 공격에 남궁석이 눈을 부릅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스앗!
검에 베인 무복 앞섶이 벌어지며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친 남궁석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쿨럭…….”
입가를 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베인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하지만 검을 타고 들어온 상대의 들끓는 공력이 내부를 진탕시켰다.
남궁석의 패배였다.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해 수많은 의문이 남았지만, 남궁석은 따지는 대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승자에게 포권을 취했다.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더욱 정진하면 내년에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걸세.”
상대의 뻔뻔한 덕담에, 남궁석은 이를 꽉 악물고 비무대에서 내려갔다.
그 비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백수룡과 남궁수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다.
“확실하지?”
“…….”
남궁수는 무언으로 긍정했다.
점창파의 후기지수는 영약을 복용해 내공을 급격하게 늘렸다.
그 자체가 규정에 어긋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적인 경우, 영약을 복용하면 그 기운을 충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함부로 무공을 펼치지 않는다.
단시간에 증가한 내공은 통제하기가 힘들뿐더러, 자칫하면 주화입마에 들 위험도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본적인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남궁수는 비무대회에서 이기기 위해 후기지수들에게 위험을 감수시키는 문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명문대파의 심법은 안정성이 높아 주화입마에 들 가능성이 현저히 낮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점창파의 종연은 주화입마에 들지는 않았지만, 무리하게 폭증한 내공의 운용으로 안색이 창백했다.
“당연히 알고도 그냥 한 거지.”
백수룡은 냉소를 띤 얼굴로 천무학관주를 바라봤다. 누가 이런 일을 주도했을지 뻔한 일이었다.
게다가 영약을 복용해 폭증한 내공만 문제가 아니었다.
‘마지막에 손목을 꺾어서 펼친 초식.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었어. 몇 번은 괜찮겠지만 계속 사용하면 결국에는 손목이 손상되고 사일검법의 속도마저 줄어들겠지.’
아무리 용봉비무에서 이기고 싶어도 사문에서 제자에게 저런 수법을 가르칠 리 없었다. 천무학관주의 짓이 분명했다.
그러나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여기서 따져 봤자 패자의 구차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테니까.
“이런 식으로 꼼수를 쓰시겠다?”
천무학관주를 노려보는 백수룡의 입매가 섬뜩한 호선을 그리자, 남궁수가 우려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분하지만 용봉비무의 규칙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오늘 경기가 끝난 후에 정식으로 항의를…….”
“항의를 왜 해?”
누가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줄 아나.
꼼수에는 꼼수로 상대해 줄 의향이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저들은 이깟 꼼수가 통하지 않는 상대가 이쪽에 있다는 걸 먼저 알게 될 것이다.
“청룡학관 일 학년 위지천 학생과 천무학관 사 학년 종진 학생은 비무대로 올라오시오!”
공교롭게도 다음 비무도 천무학관과 청룡학관의 맞대결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