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20
620화. 이 학생들이 바로
천무학관주 진량은 백수룡을 만난 후 곧바로 지하 연공실로 향했다. 새로운 절세고수와의 만남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자칫했으면 한쪽의 죽음으로 끝났을지도 몰랐기에 더욱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손속을 나누지는 않은 터라, 진량은 해소하지 못하고 쌓이기만 한 욕구를 연공실에서 풀어낼 참이었다.
“생각보다 멀쩡하군.”
이미 선객이 있었다. 방심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까지 가까운 거리를 허용할 만큼 대단한 고수. 천무학관주는 입가에 짙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천무결 선생. 말투가 꼭 내가 죽기라도 바란 것 같군?”
잠시 후, 천무결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며 빈정거렸다.
“적어도 사지 육신 가운데 하나는 찢겨서 돌아올 줄 알았지. 발정 난 개처럼 뛰어가던데……. 그런 것치곤 무사해 보여서 말이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모욕이었으나 진량은 오히려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무공에 미친 사내는 자신이 존중할 만큼 무(武)를 쌓아 올린 이에게는 무척이나 관대한 사람이었다.
“그래. 하마터면 목이 잘릴 뻔했지. 그저 조금 자극했을 뿐인데, 일검에 내 수급을 벨 수 있을지 가늠하는 눈치더군. 고작 일검으로 말이야.”
천무학관주는 자신의 목을 만지작거리며 피식피식 웃었다.
다시 한번 그때의 섬뜩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마치 사냥감이 된 듯한 느낌. 평생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한 진귀한 감각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역천신공의 계승자는 과연 다르더군. 나 만병제 진량이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네.”
당장에라도 그의 무공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간신히 인내심을 발휘해 억눌렀다.
역천신공은 아직 세상에 드러날 때가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난세가 흐드러지게 만개하려면, 상황이 조금 더 무르익어야 했다.
완성된 역천신공을 직접 견식하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하아- 천무학관주가 충혈된 눈으로 달뜬 숨을 뱉어 내며 말했다.
“오늘만큼 몸이 달아올라서 참기 힘든 적이 없었다네.”
눈앞의 광인을 혐오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천무결이 물었다. 그에게는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강했지?”
천무학관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청룡신협 백수룡의 진정한 정체와 전력을 일부나마 엿본 절세고수는 입가에 파르르 떨리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현 무림의 천하제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어쩌면 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는 정파의 위선자였지만, 무공에 대해서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는 사내였다.
그만큼 가까이에서 마주한 청룡신협의 기도는 소름이 끼치도록 강했다.
내면에서 비집고 나오려는 무언가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음에도.
만약 그것조차 풀어놓는다면, 현 무림에서 홀로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적어도 천무학관주가 아는 인물 중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천하제일이라…….”
무림을 충격에 빠뜨릴 만한 대답이었으나, 천무결은 달리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지?”
“혈교를 몰락하게 만든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네. 전에 자네에게도 해 준 적 있는 그 ‘교관’에 대해서 말이야.”
천무학관주는 순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는 듯이.
사라진 혈교의 역사에 존재하는 교관이라는 존재.
지난 전쟁에서 포로가 된 혈교도들을 고문해 알아낸, 도저히 믿기 힘든 내용인 탓에 깊은 곳에 봉인되었던 기록들.
천무학관주는 어렵게 찾은 그 기록을 통해 교관이라는 사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훗날 청룡신협에 대해 알게 되면 될수록, 오랫동안 자신에게 궁금증을 일게 했던 그 사내의 모습이 겹쳐졌다.
단순히 무공에 미친 자의 직감인지도 몰랐다.
“잠깐이지만 둘이 동일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네. 환생이라거나……. 환혼대법이라거나 말이야.”
“광증이 골수까지 번졌군.”
천무결이 가볍게 혀를 차자 천무학관주가 피식 웃었다.
사실 그들의 무공이 맞닿아 있는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천무학관주가 원하는 것은 청룡신협의 정체에 숨겨진 비밀이 아니었으니까.
“그 교관. 살아남았다면 무림을 구한 영웅이 되었거나 고금제일마라 불렸을 텐데. 혈교 출신인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결국 내 손에 죽었겠지.”
“하하하하! 내가 이래서 자네를 좋아한다니까!”
천무학관주가 알기로, 천무결은 현 무림에서 혈교와 역천신공에 관해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아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비슷한 목표를 가졌기에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 동맹은 의미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천무학관주는 천하를 뒤덮을 난세와 그곳에서 꽃피울 절세신공들을, 천무결은 복수를 원했다.
두 사람의 목적이 모두 가까워진 지금, 그들은 오늘이 마지막 만남임을 알고 있었다.
천무학관주가 붉어진 안광으로 천무결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렇게 헤어지려니 아쉽군. 마지막인데 가볍게라도 나와 손속을 나눠 보겠나?”
“관심 없어.”
천무결은 코웃음을 쳤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다 들었다는 듯,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천무학관주는 그 뒷모습에 대고 작별인사를 전했다.
“다음에 만날 땐, 서로의 명줄을 끊기 위해 전력을 다해 보세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픽 웃은 천무학관주는 연공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 천무학관의 지하 깊은 곳에서 무거운 진동이 울려 퍼졌다.
* * *
용봉비무의 둘째 날이 밝았다.
첫날 비무에서 승리한 서른두 명의 학생들은 오늘 최대 두 번의 비무를 치를 예정이었다.
두 번의 비무에서 모두 승리하면, 올해의 용봉이라는 명예를 얻는다.
때문에 학생들은 물론이고 강사들도 긴장감 가득한 표정으로 한 경기, 한 경기를 지켜봤다.
그러나 모두가 대회에 집중한 것은 아니었다.
“……백수룡.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도록.”
남궁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백수룡을 노려봤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네가 무슨 우리 아버지냐?”
“학생주임 선생님께선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바쁘시다. 장성하고도 품행이 단정치 못한 아들까지 챙길 여력은 없으시겠지.”
“하여간 잔소리는…….”
남궁수가 스윽 다가와선 목소리를 낮췄다. 어느새 두 사람의 주변에는 기막까지 둘려 있었다.
“또 무슨 흉계를 꾸미는 거지?”
그 단호한 눈빛에 백수룡은 다소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꾸미긴 뭘 꾸며? 그냥 지인들한테 안부 인사 좀 하고 다니는 건데.”
“그 지인이라는 사람들이 무림맹주, 북해빙궁주, 흑사련주와 같은 무림의 핵심인사들인 이유는 뭐지?”
백수룡은 용봉비무가 시작되기 전부터 남궁수가 언급한 인물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눴다.
심히 수상쩍은 그 행동에 남궁수가 미간을 모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뭐 못 만날 사람들 만났냐? 전부 다 내 지인인데?”
물론 맞는 말이긴 했지만, 남궁수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고를 칠 예정이라면 미리 말하도록.”
“딱히 사고 칠 생각은 없는데.”
피식 웃은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천무학관주를 바라봤다.
지난밤 천무학관주와의 만남은 불쾌한 기억이었지만, 그가 해 준 경고만큼은 분명하게 새겨들었다.
“그냥 조금 대비를 해 뒀을 뿐이야. 저쪽에서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백수룡이 서늘하게 웃으며 말하자, 남궁수는 못마땅한 듯 미간을 좁히면서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마침 천무학관주도 백수룡의 시선을 느끼고 이쪽을 바라봤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본 남궁수가 표정을 굳혔다.
“천무학관주와 관련된 일인가?”
“아니, 그쪽 말고 저쪽.”
고개를 저은 백수룡은 구파 수뇌부의 관전석을 바라봤다.
표정이 굳은 구파의 고수들이 하나같이 싸늘한 시선으로 비무대를 내려보고 있었다.
첫날의 용봉비무에서 천무학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승리해 올라갔음에도, 그들은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는 백수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서른두 명 안에 들어갈 녀석들은 많지만, 정작 용봉에 들어갈 만한 실력은 몇 명 보이지 않으니 똥줄이 탈 수밖에.”
마침 비무대 위에서 위지천의 이름이 불렸다.
상대는 종남파의 아무개라고 했는데, 백수룡은 대충 흘려들었다.
곧 퇴장할 녀석에게 관심을 주기엔 그의 집중력이 다른 곳에 상당 부분 쏠려 있었다.
“자네는 제자가 비무에 나서는데 신경도 안 쓰이나 보군?”
옆에 있던 노군상이 짓궂게 웃으며 묻자,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긴장할 만한 상대가 나와야 긴장이 되지 않겠습니까?”
“자신감이 넘치는구먼. 이번 비무는 몇 초식이나 갈 것 같나?”
“글쎄요. 천이가 하고 싶은 만큼 하고 끝내겠지요.”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비무가 끝났다.
위지천은 둘째 날 첫 번째 비무에 이어 오후에 진행된 두 번째 비무에서도 가볍게 승리했다.
헌원강, 독고준, 유이란도 모두 오전의 첫 번째 비무에서 수월하게 승리를 거두고 두 번째 비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청룡학관에서 한 손에 꼽히는 후기지수들이 백수룡의 도움을 받아 영약을 흡수하고, 남궁수에게 추궁과혈을 받았다.
최고의 몸 상태로 나선 청룡학관 최고의 후기지수들은 상대를 압도하며 승리를 거뒀다.
쩌어엉-!
두 번째 비무를 펼치던 독고준의 검이 상대의 무기를 두 조각으로 부러뜨렸다. 공동파의 후기지수가 낭패한 기색으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청룡학관 삼 학년! 독고준 학생의 승리를 선언하겠소!”
덤덤한 표정으로 패배한 상대에게 포권을 취한 독고준은 비무대에서 내려가는 길에 소림신룡 일각을 노려봤다.
“아미타불……?”
청룡학관의 학생회장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위협적인 행동을 해 보임으로써, 천무학관의 학생회장을 당황하게 했다.
“청룡학관 삼 학년! 헌원강 학생의 승리를 선언하겠소!”
“아싸아아아!”
헌원강도 두 번째 비무에서 쉽게 승리했다.
수라혈천도가 펼쳐진 순간 상대는 전의를 상실했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밀리며 뒷걸음질 치다가 비무대 끝에서 떨어졌다.
청룡학관 학생들 중 무려 셋이 용봉에 드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두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천무학관 삼 학년. 팽사혁 학생의 승리를 선언하겠소!”
팽사혁의 승리가 선언된 순간, 청룡학관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의 상대가 유이란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이란은 두 번째 비무에서 팽사혁을 만났고, 접전 끝에 패배했다.
초반에는 팽팽한 접전을 펼쳤으나, 오십 초식을 넘어가면서 우위를 빼앗겼다.
백 초식을 넘게 겨룬 끝에 유이란이 피를 왈칵 토하자, 내상을 염려한 감독관이 비무 종료를 선언했다. 팽사혁의 승리였다.
“팽사혁 저 녀석. 많이 늘었네.”
백수룡은 도를 집어넣고 비무대에서 성큼성큼 내려가는 팽사혁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잠깐을 제외하곤 백수룡의 시선은 거의 비무대를 향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관중석에 들어선 무인들의 배치와 묘하게 달라진 공기를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대적으로 변하는 분위기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피식.
“결국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백수룡의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가 맺혔다.
그렇게 둘째 날의 용봉비무가 전부 종료되었다.
하지만 관중들은 대회가 전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학생들의 별호와 이름을 쉬지 않고 연호했다.
아직 용봉비무 둘째 날의 중요한 행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껏 들뜬 분위기 속에서, 자리에서 일어난 천무학관주가 말했다.
“비무에서 승리한 후기지수들은 비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여덟 명의 후기지수들이 비무대에 올라가 일렬로 섰다.
천무학관의 일각. 취소옥. 팽사혁.
청룡학관의 위지천. 독고준. 헌원강.
주작학관의 사마현. 연소하.
치열했던 세 번의 비무에서 모두 승리한 여덟 명의 후기지수들.
그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한 천무학관주가 관중들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이 학생들이 바로 올해의 용봉들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열렬한 환호와 박수가 후기지수들에게 쏟아졌다.
이 자리에 올라온 것만으로도 그들은 앞으로 큰 명성을 떨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누구도 용봉이라는 호칭으로만 만족하지 않았다. 후기지수들의 눈이 하나같이 빛났다.
“내일은 드디어 후기지수제일의 자리를 두고 겨루게 될 것입니다. 과연 이 중에 누가 최고가 될지…….”
데엥-!
그 순간, 거대한 종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며 천무학관주의 말을 끊었다. 놀란 관중들이 고개를 돌려 종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불존이 은은한 황금빛 기운을 드러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마치 생불(生佛)이 현현한 듯했다. 뜨거웠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아미타불. 천무학관주께 청하겠습니다. 빈승에게 잠시만 시간을 양보해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천무학관주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시선이 순간 백수룡을 향했지만, 백수룡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미타불.”
표홀한 신법으로 비무대 중앙에 한 폭의 그림처럼 내려선 불존이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비무가 진행되는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특히 위지천과 헌원강이 비무대에 올라올 때면, 마음속의 번뇌와 싸우듯 몇 번이고 불호를 외웠다.
고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혈교와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이것을 확실하게 확인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묻겠습니다.”
소림의 십팔나한과 무당의 팔검선.
그밖에도 구파의 중견고수들이 어느새 비무대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이 은은하게 무형의 기세를 뿜어내자, 비무대 위의 후기지수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청룡학관은 헌원강, 위지천 이 두 학생이 익힌 무공의 연원을 밝혀 주시길 바랍니다.”
청룡학관을 말하고 있으나, 불존의 시선은 명확히 백수룡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