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27
627화. 그것도 둘이나
독고준이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 그의 시야에 보인 건 낯선 천장이었다.
“…….”
자신을 덮치는 거대한 황금빛 손바닥을 향해 온몸의 기력을 쥐어짜 내 검을 휘둘렀던 것이 독고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순간이 떠오르자 전신에 통증이 느껴졌다.
“으윽…….”
“치료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아직은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당소소가 뚱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독고준은 여기저기가 아픈 와중에도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깨어나자마자 본 얼굴이 당소소이기 때문일까?
“회장. 혹시 너무 충격받아서 실성한 거 아니죠?”
‘수혈을 짚어야 하나?’라고 중얼거리며 장침 하나를 슬쩍 손에 쥐는 당소소의 모습에, 독고준은 급히 변명을 덧붙였다.
“멀쩡해. 그냥…… 좀 웃겨서.”
“뭐가 웃겨요? 같은 상대한테 부회장은 팔이 부러지고, 회장은 두들겨 맞아서 혼절까지 했는데. 청룡학관 학생회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요.”
묵직하게 뼈를 때리는 당소소의 말에 독고준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회장. 그게 비무에서 다치고 온 선배한테 할 말이야?”
“누가 다치랬나요? 무리인 거 알았으면 적당할 때 포기하는 것도 전략적인 판단인 거 몰라요?”
“부회장은 그렇게 전략을 잘 알아서 비무 시작 동시에 무리해서 만천화우를 펼치려다가 팔이 부러졌나?”
“지금 본인 상처를 치료해 준 고마운 후배를 비난하는 거죠?”
두 사람은 평소처럼 옥신각신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끄응.”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독고준은 자신의 전신을 둘둘 감고 있는 면포를 보고 당황했다.
이 정도면 거의 멍석말이 아닌가?
게다가 금창약 냄새까지 온몸에서 진동했는데, 다친 것에 비해서 과잉 치료를 한 듯했다.
누가 이렇게까지 했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독고준은 고마움을 담아 당소소에게 농담을 건넸다.
“부회장. 혹시 지난 일 년간 나한테 억하심정이 많이 쌓였어? 이 기회에 아예 묻어 버리려고 한 것 같은데.”
“물론 없지야 않지만…… 지금은 기억 안 나는 걸로 해 둘게요.”
마찬가지로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꾸한 당소소가 독고준에게 물었다.
“다 끝나니까 기분이 어때요?”
독고준은 잠시 멍하니 생각하다가 짧게 대답했다.
“후련해.”
천무제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지난 일 년이었다.
비록 일각과의 비무에서 패배했지만, 아쉬움보다 후련한 마음이 훨씬 컸다.
온 힘을 다해서 싸웠고, 독고구검으로 일각의 검을 부러뜨려 작년의 패배를 설욕할 수 있었으니까.
“이왕이면 비무도 이기고 싶었지만…… 조금 부족했던 모양이야.”
독고준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수련을 하며 찢어지고 다시 굳은살이 박이길 몇 번이고 반복한 거친 손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이 자랑스러웠다.
“……학생회는 이제 그만두는 거죠?”
“응.”
조금은 매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호한 대답.
독고준은 내년에 사 학년이 된다. 졸업을 앞둔 사 학년은 학생회에서 물러나는 것이 청룡학관의 전통이었고, 빈자리는 새로운 후배들로 채워질 것이다.
“소소. 너는 학생회에 계속 남을 거지?”
“당연하죠. 청룡학관이 천하제일학관으로 발돋움하는 영광의 시대를 열어야 하니까요.”
당소소는 그것이 다음 대 학생회장인 자신의 목표라며 팔짱을 꼈다. 독고준은 당선이나 되고 나서 잘난 척하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웃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함성에 독고준이 천막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용봉비무가 계속 진행 중일 터였다.
“지금 누가 비무 중이야?”
“헌원강 선배랑 천무학관의 취소옥 차례예요. 굳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부회장. 부축 좀 해 주겠나?”
“선배. 뭐 시킬 때 은근히 권위적으로 말하는 거 알아요?”
“억울하면 네가 회장 하든가.”
독고준은 투덜대는 당소소의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비무대 위의 두 후기지수가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쩌저저저정!
비무는 다소 일방적이었다.
앞선 비무에서 독고준이 일각에게 패배한 것을 설욕하기라도 하듯, 헌원강이 천무학관의 취소옥을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무당의 제자인 취소옥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수라혈천도의 섬뜩한 궤적이 지나갈 때마다 당황하면서 펄쩍 물러나는 것이, 오래 버티지 못할 듯했다.
반면 헌원강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역동적이고 호쾌한 움직임에 관중들의 탄성이 끊이질 않았다.
“원강이 녀석. 아주 신났군.”
친구의 활약에 독고준이 흐뭇하게 웃을 때였다.
천막 밖으로 나온 독고준을 본 사람들이 알은체를 해 왔는데, 그 수가 적지 않았다.
“청룡학관의 검룡. 비무 인상 깊게 봤네!”
“이길 줄 알았는데 아쉬웠어요!”
“독고세가가 오대세가의 한자리를 차지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소이다!”
“소협! 내년 용봉비무에도 꼭 나와 주세요! 응원할게요!”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응원과 박수에 독고준은 당황했다.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비무에서 진 자신을 기억해 준다는 것이 놀라웠다.
청룡학관의 검룡을 외치는 사람, 멋진 비무였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사람,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독고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독고준이 그동안의 천무제에서 기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동정이 아닌 동경의 시선들이었다.
“하하…….”
“계속 바보처럼 웃고만 있을 거예요?”
당소소가 옆구리를 쿡 찌르자, 독고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청룡학관 학생들의 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계속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익숙한 기척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시주.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소림신룡 일각이었다.
그는 검을 들었던 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는데, 그 외에는 부상이 그리 심해 보이지 않았다.
독고준은 절도 있는 자세로 돌아서며 부드럽게 웃었다. 누가 봐도 잘 교육받은 명문가의 자제였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아미타불.”
일각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독고준을 바라봤다. 어딘가 경계하는 것도 같았다.
“왜 그렇게 보시는지……?”
“시주께서 비무대 위에서 보여 주신 모습과 너무 달라서…….”
거칠고 사나운 낭인 같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명문정파의 도련님이 반듯하게 웃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독고구검을 펼치는 것에 미숙하여, 정신을 다잡고자 기합을 넣는다는 것이 너무 과했던 모양입니다.”
“……그게 기합이었다고요?”
“그,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독고준이 민망한 듯 뺨을 긁적이며 사과하자, 일각도 경계심을 조금은 누그러뜨렸다.
“독고구검을 견식 하며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검의 묘리를 터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 앞에서는 당해 내지 못하겠더군요. 모두 제 오만이었습니다.”
입에 발린 겸양이 아니었다. 일각은 잠시나마 독고구검의 기백에 눌렸고, 그 순간 스스로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달았다.
“하여 용봉비무에서 더 이상 검을 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예?”
“독고 시주께서 제 검을 부러뜨리지 않으셨습니까. 한동안 그 광경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아, 검은 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
그 말을 듣는 순간, 독고준의 얼굴에 숨기지 못한 기쁨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혼자서 맞수라 여겨 온 상대에게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비무에서 이긴 것만큼이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부드럽게 웃어 보인 일각이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자, 독고준도 포권을 취했다.
“스님께서도 후회 없는 비무를 펼치시길 바라겠습니다.”
차마 무운(武運)을 빈다고는 하지 못했다.
소림신룡 일각은 자신이 후기지수제일이라는 것을 이미 증명한 천재였고, 여전히 용봉비무에서 우승할 확률이 가장 높은 인물이었다.
자신의 오만을 모르던 천재가 이제 겸손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일각과 다음에 싸우게 될 사람은 더 힘든 싸움을 하게 될 터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보중하시길.”
그런데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던 일각이 잠시 멈춰 서더니, 고민 끝에 다시 돌아섰다.
독고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저는…… 대머리가 아닙니다.”
“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독고준이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나 일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서로 검을 부딪칠 때보다 지금이 더 진지한 것 같았다.
“불가에서는 번뇌를 없애기 위해 삭발을 하지요. 결코 머리카락이 빠져서가 아닙니다. 머리를 미는 행위는 몸과 정신을 깨끗이 하는 것으로…….”
몇 번이나 대머리라고 놀림당한 것이 많이도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단숨에 쏘아 내듯 할 말을 마친 일각이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독고준은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사, 사과드리겠습니다. 다시는 스님의 머리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미타불.”
비로소 후련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는 일각의 등 뒤로, 당소소의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자발적 대머리란 거네…….”
자신의 팔을 부러뜨린 상대에 대한 당소소의 작은 복수에 일각이 움찔했지만, 작게 한숨만 내쉴 뿐 다시 돌아보지는 않았다.
독고준이 엄한 표정으로 그런 당소소를 나무랐다.
“소소.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 행동은 학관의 모범이 되어야 할 학생회에서 해선 안 될 짓이다. 앞으로 자중하도록.”
“회장이 할 말이에요?”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당소소는 이내 계략을 꾸미는 음흉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소림신룡이 위지천이나 헌원강 선배하고 붙게 됐을 때, 우리가 동시에 대머리라고 외치면…….”
“소소. 그런 끔찍한 계획은 제발 그만둬. 청룡학관의 명예가 실추될 수도 있다고!”
두 사람이 다시 티격태격하는 동안, 헌원강과 취소옥의 비무가 끝났다.
“……기권, 하겠습니다.”
취소옥이 해쓱해진 얼굴로 기권했다. 힘겹게 숨을 헐떡이는 무당파 소년의 무복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는데, 적지 않은 핏물이 배어 있었다.
“이겼다아아-!”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헌원강 또한 멀쩡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아직 체력이 남아도는지 도를 들어서 팽사혁을 겨누며 도발했다.
“팽사혁! 다음 무대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
팽사혁은 물론이고 청룡학관의 모든 학생들마저 그 도발을 외면했다.
다행히 분위기가 더 어색해지기 전에, 천무학관주가 헌원강에게 내려가라고 지시했다.
비무대를 내려온 헌원강이 백수룡에게 쥐어박히는 모습을 지켜보던 독고준이 피식 웃었다.
“그래. 덕분에 조금도 아쉽지 않아.”
“……뭐가요?
“내가 아니더라도 청룡학관을 빛내 줄 녀석들이 있으니까.”
헌원강을 바라보던 독고준은 고개를 돌려 다시 비무대를 바라봤다.
지금 막 호명된 위지천과 주작학관의 연소하가 비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독고준의 시선은 위지천의 모습을 쫓았다.
“그것도 둘이나.”
저 둘이 있기에, 독고준은 이제부터 마음 편하게 용봉비무를 즐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