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29
629화. 간절함이 아니라
기묘한 광경이었다.
놀라운 검술을 보여 주며 맹렬하게 검을 부딪치던 두 천재 검객의 움직임이 점점 줄어들더니, 어느새 멈춰 서서 서로를 고요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
“…….”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잠시 숨을 고르려고 멈춘 것도 아니었다.
검을 휘두르지만 않을 뿐 눈으로는 쉴 새 없이 상대를 살피고, 검파를 쥔 손은 순간순간 파지법을 바꿔 가며 상대의 움직임에 미리 대응한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꿀꺽…….
극도의 긴장감에 비무장 일대가 조용해졌다. 웅성거리던 관중들도 뭔지 모를 분위기에 압도돼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하하하……!”
천무학관주만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만큼 보이는 것도 많았다. 그가 들뜬 음색으로 중얼거렸다.
“둘 다 연배가 믿기지 않는 성취다. 같은 나이의 검존이나 검성보다도 나을 터. 압도적인 재능과 신공절학, 뛰어난 스승을 만난 덕분이겠지. 여기에 약간의 운만 더 따라 준다면…….”
천무학관주는 자신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중얼거렸다.
젊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무인이 재능을 만개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은 그에게 있어 무엇보다 강렬한 쾌락이었다.
“올해는 정말이지…….”
절세의 경지에 오른 무인은 눈앞의 천재들이 보여 주는 찬란한 재능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천무학관주는 잠시 고개를 돌려 일각과 헌원강, 팽사혁, 사마현을 차례로 훑었다.
그러곤 진귀한 음식을 앞에 둔 미식가처럼 살짝 침을 삼켰다.
“군침이 흐를 정도로 풍성하구나.”
언젠가 저들의 무공이 완성되고, 그 완성된 극의를 직접 취할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서로 죽일 수 없다는 제약이 사라진다면 더욱 좋겠으나…….’
호적수를 만나 전력을 다하는 싸움에서 무인은 더욱 발전한다.
그것이 목숨을 건 사투라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이 자리에서 거기까지는 바랄 수 없을 터였다.
“……지금은 참아야겠지. 그런 날이 머지않았을 테니.”
천무학관주의 의미심장한 중얼거림에도 불구하고, 위지천과 연소하는 고개조차 들리지 않았다.
서로에게 완전히 몰입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에서 벽력탄이 터진다고 해도 그들의 집중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스윽.
그때 연소하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동시에 위지천의 팔이 흐릿해지며 검이 휘둘러졌다.
촤아아아악!
검기가 서로의 옆을 스치며 비무대 바닥에 선명한 검흔이 새겨졌다. 두 검객은 처음과 같은 자세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확히 한 걸음씩 옆으로 물러난 모습으로.
“…….”
“…….”
짧은 침묵. 이번에는 위지천이 먼저 움직였다. 쿵! 가벼운 진각과 동시에 일 보 전진. 단순하면서도 벼락같은 움직임이었다. 위지천의 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했다. 일검에 실린 검력이 어마어마했다. 연소하는 몸을 회전시키며 그 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콰콰콰콰콰!
두 사람의 검기가 뒤섞여 용권풍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그 장관에 관중들이 입을 떡 벌렸다.
“…….”
“…….”
두 검객은 다시 침묵했다. 호흡이 가빠진 탓에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이번에도 백중세(伯仲勢)였다.
‘이런 식으로는 끝이 안 나.’
‘결착을 내야 해.’
계속 이런 식이면 한 명의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비무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긴 사람도 탈진에 가까운 상태가 될 것이다.
둘 다 그런 상황은 원하지 않았다. 당장의 승부도 중요하지만, 용봉비무에서 우승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으니까.
‘다음 일 합으로 끝낸다.’
‘여기서 모든 것을 쏟아 내야 해.’
서로에게 암묵적으로 동의를 구한 그들은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일 합으로 비무의 결착을 내기로.
꽈악…….
위지천은 검파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검을 휘두르면서 이토록 답답함을 느낀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벽이었다. 눈앞에 마주한 벽이 너무 높고 단단해서 화가 날 정도였다.
우웅-!
검혼이 주인의 감정에 공감해 부르르 떨었다. 무극검의 주인에게서 후대로 전해진 보검에는 검존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 검이 소년에게 속삭였다.
넘어서라고.
“……그래야겠어.”
소년의 천부적인 재능과 간절함, 처음 느껴 보는 호적수에 대한 투쟁심이 그전까지는 허락되지 않았던 경지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우우우웅-!
검혼의 검신을 도도하게 타고 흐르던 푸른 검기가 서서히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선명함을 넘어 형태를 이루는 찬란한 기의 결정(結晶).
무인들이 먼저 그 정체를 깨닫고 경악성을 터트렸다.
“검강(劍?)……!”
흐릿하고 어설프지만 검기성강(劍氣成?)의 발현이었다. 즉시 고요한 분위기가 깨지고 관중석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이런 세상에!”
“저 연배에 강기를 발현한다고?”
“저기 보시게! 연소하의 검에도 검강이!”
위지천이 발현한 검강에 자극이라도 받은 것처럼, 연소하의 검에서도 은은하게 검강이 피어났다.
서로를 반드시 이기고자 하는 집념이, 두 천재를 잠시나마 한계를 넘어선 경지로 이끈 것이다.
“……!”
천무학관주조차 말이 나오지 않는지 눈을 부릅떴다. 푸들푸들 떨리는 입매가 그의 격정적인 감정을 보여 주고 있었다.
비무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무인들을 충격과 절망에 빠뜨리는 재능이었다. 일부 검을 패용한 자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내 평생 검을 들었건만, 스스로가 이토록 초라해질 줄은 몰랐군.”
“검을 꺾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입니다.”
“허, 허허허…….”
차라리 청룡신협이나 검성과 같은 고수가 검강으로 비무대를 두 조각 냈다면 감탄만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지천과 연소하, 저 둘은 약관도 되지 않은 후기지수들이었다.
아직 입문(入門)의 경지라고 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강기를 다루는 검객을 후기지수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었다.
“남궁수. 만약 상황이 위험해질 것 같으면 연소하는 네가…….”
신중한 표정으로 비무를 지켜보던 백수룡이 남궁수에게 연소하를 부탁하려 할 때였다.
휘리릭!
검성이 도포를 펄럭이며 백수룡의 옆에 내려섰다.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제자는 내가 지켜볼 테니, 자네는 자네 제자가 다치지 않게 잘 살피게.”
“…….”
힐긋 검성을 바라본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검강을 바라보던 위지천과 연소하의 시선이 천천히 서로를 향했다.
“시작할까요?”
“얼마든지.”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쇄도했다. 검강이 깃든 검을 서로에게 겨눈 채였다.
백수룡과 검성을 비롯해, 극히 일부의 초고수들에게는 그 순간이 마치 시간이 늘어난 것처럼 느리게 보였다.
“……그것이 당신의 무극인가.”
일사도는 검과 혼연일체가 된 위지천의 모습을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 위로 겹쳐 보이는 다른 누군가의 모습과 함께.
그가 위지천을 처음 본 장소는 천무제가 아니다.
위지천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흑립을 눌러쓰고 잘못된 무극검의 비급을 건네던 낯선 사내를.
“심마에 집어 삼켜지거나 내 후인이 될 줄 알았는데.”
대체 어떤 기연이, 혹은 기적이 있었기에 너는 옛 스승의 제자가 되었을까.
일사도는 궁금증을 띤 눈으로 위지천의 검을 끝까지 지켜봤다.
그에게는 익숙하고도 어설픈 궤적이었다.
하지만 저 나이쯤의 자신보다는 나을지도 몰랐다.
“무극검으로…….”
검에 한해서, 일사도는 옛 스승조차 이제는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처음부터 이 비무의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꺾지 못할 검은 없다.”
일사도의 말이 끝나는 순간, 비무대 중앙에서 위지천과 연소하의 신형이 서로 교차했다.
화아아악!
관중들이 예상한 굉음은 없었다. 두 사람의 검강은 충돌과 동시에 한순간 강렬하게 번쩍이고 흩어졌다. 마치 처음부터 신기루였던 것처럼.
“…….”
“…….”
서로를 스치듯이 지나친 위지천과 연소하가 천천히 돌아섰다. 둘 다 겉보기에는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이번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주륵…….
연소하의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소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등으로 핏물을 닦아 내며 투덜거렸다.
“쳇. 종이 한 장 차이였어.”
위지천 또한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내상을 입었지만 연소하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제가 조금 더…… 간절했던 것 같아요.”
위지천은 나름대로 상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 것이었지만, 그 말에 오히려 연소하의 눈썹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성큼성큼 위지천에게 걸어온 그녀가 손가락으로 소년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지금 내 간절함이 너보다 부족했다는 뜻이야?”
“죄, 죄송해요! 그런 뜻이 아니라…….”
뒤늦게 말실수를 깨닫고 어쩔 줄 모르는 위지천의 모습에,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연소하는 이내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그냥 심술 한번 부려 봤어.”
“네……?”
연소하는 당황하는 소년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키는 거의 비슷했지만 엄연히 이쪽이 선배였으니까.
“내가 진 건 간절함이 아니라 실력 탓이야. 위지천, 오늘은 네가 나보다 강했어. 축하해.”
“가, 감사합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한테도 승자가 누군지 알려 줘야겠지?”
송문검을 허리춤의 검집에 넣은 연소하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인 관중들을 돌아보며 절도 있게 포권을 취했다.
“주작학관의 연소하. 패배를 인정하고 비무대에서 내려가겠습니다!”
연소하의 패배 선언에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소하는 당당한 걸음으로 비무대에서 내려갔다.
비무대 위에 남은 후기지수제일검에게 뒤늦게 어마어마한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용봉비무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크고 열광적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
그 환호성을 뒤로한 채, 비무대에서 내려간 연소하는 주작학관 진영으로 돌아갔다.
주작학관의 학생들과 강사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소하는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곤 머리를 긁적였다.
“멋지게 이겨서 우승까지 차지하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나빴지 뭐야?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린애한테 질 줄은 몰랐어. 으음, 조금만 더 열심히 수련할 걸 아쉽기도 하고…….”
그때 사마영이 다가와 연소하를 덥석 끌어안았다.
“고생했어. 소하야.”
“…….”
장난스럽게 웃던 연소하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눈매가 일그러지고, 꽉 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 눈물이 맺혔다. 연소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울먹였다.
“진작 더 열심히 할걸……. 다들 열심히 노력했는데……. 나만, 항상 나만 이렇게…….”
주작학관의 게으른 천재.
한때는 그런 호칭이 은근히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남들만큼 수련하지 않아도 훨씬 강했고, 적수를 찾기 힘들었으니까.
천무제에서 용봉이라고 으스대는 후기지수들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따라잡을 자신이 있었다.
연소하는 그렇게 생각했던 지난날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만회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관주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깨달았다.
주작학관이 자신에게 정말로 소중한 곳이라는 걸.
그제야 비로소 피가 나도록 검을 쥐었고, 처음으로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몇 살이나 어린 소년보다 단단하지 못한 손바닥의 굳은살이 부끄러웠다.
연소하의 지난 사 년은 위지천의 일 년보다 치열하지 못했다.
“선배! 안 어울리게 질질 짜고 그래요?”
“어이구. 주작학관 망나니가 어쩌다가 이런 울보가 됐냐.”
“진짜 멋있었어요. 그러니까 눈물 뚝!”
그럼에도 이들은 웃으며 자신을 반겨 주었다. 지난 사 년 동안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연소하는 충혈된 눈을 비비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뭘 구경났다고 우르르 몰려와? 선배가 우니까 재밌냐? 이 자식들이…….”
주작학관 사 학년, 연소하의 마지막 천무제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