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31
631화. 기회를 줄 테니
괴력난신(怪力亂神).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뛰어난 술법사들조차도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괴이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주르륵…….
검극을 아래로 한 채 허공에 떠 있는 창룡신검의 검신을 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깊숙이 찌른 듯한 형상이었다. 선명한 피를 머금은 검신이 살아 있는 것처럼 부르르 떨었는데, 두 술법사의 눈에는 그 위로 고통스럽게 몸을 떠는 현천신녀가 겹쳐 보였다.
“스승님!”
풍월화공이 급히 다가와 검신을 살폈다. 종리목은 창백한 안색으로 술법을 펼쳤다. 출혈을 멎게 하는 술법이었다.
그럼에도 검신을 타고 흐르는 핏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 술법가는 뒤늦게 그것이 진짜 핏물이 아닌, 현천신녀의 심상이 만들어 낸 환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우웅-!
그때 검을 중심으로 신령한 기운이 번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그 위로 반투명한 현천신녀의 형상이 맺혔다.
천천히 눈을 뜬 현천신녀가 힘겨운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춘삼이로구나. 목이도 왔느냐.]풍월화공이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렇게 불리기 싫었던 본명도 이 순간에는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예, 스승님! 저 춘삼입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부르셔도 되니까, 제발 사람 간 떨어지게만 하지 마십시오.”
[실없기는. 누가 들으면 네 스승이 죽은 줄 알겠다.]“육신도 버리시고 혼백만 둥둥 떠 있는 모습으로 그리 말씀하시면, 듣는 제자의 기분이 어떤지 아십니까?”
[껍데기가 뭐가 중요하겠느냐. 내 천명(天命)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아직은 인세를 떠날 때가 아니니라.]“거참, 말씀을 꼭 그렇게 하셔야…….”
“스승님.”
종리목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의 표정은 진중했으나, 눈동자에 비치는 염려는 풍월화공에 못지않았다.
“스승님의 혼백에서 삿된 기운이 느껴집니다. 단순히 원기가 상해 잠들어 계셨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현천신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천하제일의 술법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다.
게다가 천하에서 가장 신령해야 할 그녀의 혼백에 불온한 기운이 묻어나 있었다.
악가에서 역천의 힘과 맞섰던 싸움의 여파라기에는 무언가 이상했다.
[……역천의 힘을 몰아냈을 때, 나는 그 힘의 주인. 혈마가 남긴 심상세계를 엿보았다.]악가에서 혈마가 백수룡의 몸을 강탈하려 했을 때, 현천신녀는 혈마의 심상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원기가 다해 깊은 잠에 빠져들기 전, 마지막 남은 술법의 기운을 다해 그 속으로 침잠했다.
[그곳은 고금제일의 미치광이가 만들어 낸 거대한 지옥이더구나.]현천신녀는 오랫동안 그 안을 헤맸다. 그자의 진정한 목적과 계획, 그리고 그것을 막을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방법을 찾으셨습니까?”
풍월화공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끝내 찾지 못하였다.]고단함에 지친 얼굴로 고개를 젓는 현천신녀의 모습에, 두 제자가 안타까움에 탄식했다.
[허나…… 생각지 못했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너희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못하였을 테지.]“그들이라니요?”
현천신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술법으로 만들어진 별세계에서 무수한 별빛이 그들에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별을 보고 점괘를 치는 점성술사처럼 현기 어린 눈으로 하늘을 살피던 현천신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천하에 퍼져 있던 역천의 힘이 비로소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구나. 바로 이곳으로…….]현천신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역천의 힘이 세상에 퍼지는 것을 막고, 어그러진 천리(天理)를 바로 잡아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것.
자신의 소명을 떠올린 현천신녀는 굳은 표정으로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멸하려는 마(魔)가 다가오고 있다. 우선 그부터 막아야 할 것이다.]“저희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스스슷…….
현천신녀의 혼백이 흐릿해지더니, 다시 창룡신검 안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그들을 둘러싼 술법 공간이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나를 수룡이에게 데려가다오.]역천의 힘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쪽도 같은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천기를 읽는 눈으로도 읽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
그렇기 때문에 백수룡의 운명은 현천신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혈마의 심상세계에서 보고 겪은 것을 토대로 백수룡이 앞으로 겪게 될 미래를 짐작할 수는 있었다.
‘부디…… 네가 옳은 선택을 하길 바라마.’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는 천하제일의 술법가라고 불리는 그녀도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현천신녀는 백수룡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를, 그의 선택이 옳은 것이기를 빌었다.
* * *
“푸흐흐흐…….”
곤륜의 장문인은 주변을 둘러보며 넋이 나간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온통 시체로 가득했다.
곤륜파가 자랑하는 일대제자들, 수십 년간 무공에 정진한 장로들, 본산 무인들을 모시겠다며 따라온 속가의 무인들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죽였더냐……!”
곤륜의 장문인은 터져 나온 웃음 끝에 핏발 선 눈으로 적들을 노려봤다.
찢겨 나간 팔다리에서 핏물이 콸콸 쏟아지는 중이었지만, 무인의 강인한 생명력은 아직까지 그의 명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었다.
“장문인답게 생명이 질기군.”
“그래 봤자 반각도 살지 못할 텐데.”
“무림의 벌레들 중에선 구파가 유독 질기긴 하더군.”
붉은 운무와 함께 갑자기 나타난 고수들.
정체를 숨길 생각조차 없는지 하나같이 붉은 장포와 무복을 입고, 가공할 위력의 마공을 사용해 곤륜의 제자들을 잔인하게 죽인 자들이 주검을 짓밟고 서서 킬킬댔다.
“이 간악한 혈교 놈들-!”
곤륜 장문인이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그들은 더 이상 볼 이유가 없어진 천무제를 박차고 나와 본산으로 돌아가던 중 습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혈교의 선봉을 꺾어 누구보다 먼저 공을 세우고, 곤륜의 이름을 천하만방에 알려야겠다는 야심마저 품었다.
그것은 이유가 없는 오만이 아니었다.
“분명, 혈교의 주력은 대부분 청룡신협에게 죽었다고 들었거늘…….”
수십 년간 구파가 성세를 누리며 힘을 키우는 동안, 음지에서 아무리 발악해 봤자 한계가 명확했을 터.
청룡신협이 홀로 혈교의 장로 여럿을 죽이는 것으로 이미 증명하지 않았던가?
“헌데, 어째서 이토록…….”
곤륜이 자랑하는 검법과 운룡대팔식이 통하지 않았다. 장로들이 힘을 모아 합격진을 펼쳤음에도 적들은 간단하게 찢어발겼다.
그때 거구의 노인이 클클 웃으며 장문인에게 걸어왔다.
“벌레처럼 꿈틀대면서 비루먹은 개처럼 짖는구나. 그리 억울하더냐?”
주일천. 혈교 팔대가문의 가주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곤륜의 합격진을 선두에서 찢어 낸 장본인이기도 했다. 자전마공을 대성한 그의 무공은 명백히 절세지경에 닿아 있었다.
벌레 보듯 곤륜의 장문인을 내려보는 주일천의 입가에 조롱이 어렸다.
“본교의 장로 몇이 없다고 한들, 곤륜 따위가 막아설 수 있을 성싶더냐? 네놈이 청룡신협도 아니지 않더냐? 하수가 주제도 모르고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있었구나.”
치욕스러운 모욕과 조롱에도 곤륜의 장문인은 반박할 수 없었다. 주일천의 발이 그의 가슴을 지그시 압박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꾸욱…….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심장이 으깨질 터였다.
장문인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주일천을 바라봤다.
그는 비로소 끔찍한 재해와 마주했음을 깨달았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 왔다.
“구파는 퇴보했군.”
혀를 찬 주일천이 발에 힘을 줘 장문인의 심장을 으깨 버리려 할 때였다.
“재미없네.”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핏물을 밟으며 걸어왔다. 그 즉시 주일천은 옆으로 비켜서며 무릎을 꿇었다.
“너는…….”
간신히 명줄을 붙든 곤륜의 장문인이 다가오는 사내를 바라봤다.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이 혈향과 함께 흩날렸다.
적발 사이로 드문드문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섞여 있는데, 그를 감싸듯 일렁이는 어둠이 사내의 모습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발걸음에 따라 붉은 운무가 출렁였다.
“너는…… 혈마인가?”
참았던 숨을 토해 내듯 묻는 말에 사내가 천천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비슷한 거라고 해 두지.”
모호하게 대답을 한 사내는 주위를 둘러봤다.
백여 구가 넘는 시체들이 만든 둔덕과 그 아래에 생긴 피 웅덩이.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로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혈교도들.
“살아남은 장로들. 팔가의 가주들. 쓸 만한 놈들은 전부 데려왔는데…… 이만하면 문전박대는 안 하겠지?”
킬킬 웃으며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럼에도 혈교도들은 사내 앞에서 고개조차 함부로 들지 못했다.
“설마…… 천무제를 찾아가는 것이냐?”
적발의 사내는 나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과 사내를 가리지 않고 홀릴 법한 미소였으나, 악에 받친 곤륜의 장문인에게는 가증스럽게만 보일 뿐이었다.
“천하무림이 그곳에 모여 있다! 너희가 아무리 강대하다 한들, 감히 그곳을 도모할 수 있을 성싶더냐!”
회광반조라도 일으킨 것일까, 곤륜 장문인이 안광을 시퍼렇게 빛내며 원수들을 노려봤다.
적발의 사내, 흑야마제는 천천히 몸을 숙여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어?”
“하! 오만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혈마여! 내 저승에서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지켜볼 것이다! 네가 파멸하는 모습을……!”
곤륜의 장문인은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어차피 곧 죽을 몸이기에 두려울 것도 없었다.
키득.
단 하나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눈앞의 사내가 상상 이상의 미치광이라는 점이었다.
“왜 저승에서 지켜봐? 가까이에서 직접 지켜보면 될 텐데.”
흑야마제가 곤륜의 장문인에게 손을 뻗었다.
“무슨 짓을…….”
스르륵 움직인 붉은 운무가 장문인의 상처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쏟아지던 피가 멎었다. 뿐만 아니라 죽어 가던 몸에 기력이 돌아왔다.
“자, 기회를 줄 테니 나와 함께 가자.”
흑야마제는 그에게 직접 목줄을 매달았다.
뒤늦게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곤륜파 장문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차라리 죽여라! 어찌 무인에게 이런 모욕을 준단 말인가! 날 죽이란 말이다!”
흑야마제가 목줄을 잡아당기자, 팔다리가 잘린 몸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혀를 깨물어 자결하려 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어떤 불가해한 힘이 그가 죽는 것을 막고 있었다. 죽여 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버둥대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죽여라! 죽이란 말이다! 제발, 제발…….”
죽여 달라고 울부짖는 곤륜파 장문인의 모습에 혈교도들조차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혈교의 새로운 지존은 진정으로 공포스러운 인물이었다.
“……지존이시여. 하명하신 대로 벌레 하나는 놓아주었나이다.”
주일천이 흑야마제에게 다가가 보고하자, 흑야마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잘했어.”
저 멀리 곤륜의 도복을 입은 젊은 무인 하나가 죽기 살기로 도망치고 있었다.
경공 하나는 쓸 만했다. 저 정도 속도면 몇 시진도 안 돼 도착할 것 같았다.
“축제에 초대도 받지 않고 가는 길인데, 소식 정도는 미리 전해 줘야지. 그래야 대접할 음식이라도 준비할 거 아니야?”
“지존의 말씀이 옳습니다.”
키득 웃은 흑야마제는 주일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후 앞장섰다. 그의 뒤로 혈교도들이 따라나섰다.
“제발, 제발, 죽여다오! 부탁이다! 부디 자비를…….”
곤륜의 장문인이 목이 쉬어라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소리를 음률 삼아, 흑야마제는 경쾌하게 걸음을 옮겼다. 혈교도들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우리도 축제를 즐기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