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37
637화. 충분한 자격폐허로 변한 비무대 위.
사생결단을 낼 기세로 맹렬하게 칼을 부딪치던 두 도객이 결착을 냈다.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은 비무의 승자뿐.
그 승자인 헌원강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팽사혁을 내려보며 묘하게 웃고 있었다.
“…….”
기이하게도 함성이 울리지 않았다. 언제나 승자에게 열렬한 환호성을 보냈던 관중들이 긴장된 적막 속에서 침을 삼켰다.
일부는 마치 봐선 안 될 것을 목격한 것처럼 옆 사람과 소곤거렸다.
“설마…….”
“주, 죽은 것 아닙니까?”
“방금 비무대가 둘로 갈라졌는데…….”
“상대를 저 꼴로 만들고 웃고 있어요.”
흥건한 핏물과 완전히 두 동강 난 비무대가 생사결을 방불케 했던 혈투를 증언하고 있었다.
싸움이 워낙에 거칠고 흉험했던 탓에, 조마조마하게 비무를 지켜본 관중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팽사혁이 죽은 게 아니냐고 오해하고 있었다.
“조금 전의 일격…….”
“검재와 비견할 후기지수는 더 이상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또 청룡학관이란 말인가.”
비무 결과를 발표해야 할 천무학관주를 비롯한 고수들은 여운에 잠겨 침묵하거나 멍하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들의 진지한 표정도 관중들의 오해를 더하는 데 한몫했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헌원강이 쓰러진 팽사혁의 몸을 발로 툭툭 찼다.
“야. 죽었냐?”
딴에는 피식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한 말이었지만, 적막해진 비무대 주변은 헌원강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저런 천인공노할!”
그 모습에 안목은 조금 부족하지만 정의감만은 넘치는 정파의 무인들이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고인을 능멸하다니……!”
“비무대회에서 사람을 죽이고도 반성은커녕 어찌 모욕을 더한단 말인가!”
“심성이 흉악하기가 그지없구나!”
팽사혁과의 비무에 집중하느라 주변의 분위기를 알아채지 못했던 헌원강은 비로소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뭐, 뭐야? 죽긴 누가 죽어요? 이 자식 살아 있는데요? 야! 빨리 일어나 봐!”
헌원강이 기절한 팽사혁을 퍽퍽 걷어차며 강호인들의 공분을 더하고, 저 소악인을 무림공적으로 지정하자는 외침이 나올 때쯤.
“끄응…….”
팽사혁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천무학관주가 나서면서 소요사태는 진정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겐 어색하고 누군가에게는 억울했을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비무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청룡학관 삼 학년 헌원강 학생의 승리를 선언하겠습니다.”
용봉비무에 오른 천무학관 최후의 학생이 패배했음에도, 그 결과를 선언하는 천무학관주의 표정에서는 아쉬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와아아아-
뒤늦게 승자를 향한 축하와 박수가 쏟아졌지만, 이미 열띤 분위기가 지나간 관중들의 환호성에선 어색함이 잔뜩 묻어났다.
“왜 나한테만 이래? 위지천이 이겼을 땐 함성에 도시가 떠나갈 것 같더니.”
“등신.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큭큭 웃은 팽사혁이 비무대에서 먼저 내려가고, 비무대에 남은 헌원강이 억울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관중들에게 포권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할 때였다.
“대단하다!”
내공이 담기지 않았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짝짝짝짝짝!
천하제일도 소지광이 자리에서 일어나 뜨겁게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향하는 군중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감상평을 쏟아 냈다.
“둘 다 후기지수라 믿기 힘들 만큼 뛰어난 도법을 보여 주었다. 하북팽가의 오호단문도는 강맹하고 힘이 넘치지.
반면 헌원세가의 수라혈천도는 거칠고 사나우면서도 정교한 무학이다. 가슴에 도를 품은 자들은 오늘 두 후기지수의 대결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을 것이다.
무공의 성취를 칭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이 있겠군. 두 젊은 도객이 보여 준 기백과 상처를 두려워 않는 정신. 무릇 진정한 도객이라면 상대의 칼에 맞아 가면서 성장하는 법인데…….”
잠시 말을 멈춘 소지광은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관중들을 스윽 둘러보곤 혀를 찼다.
“천하의 후기지수들은 둘을 본받도록 해라. 지금이라도 잡스러운 병장기는 버리고 도를 손에 쥐는 것이……. 궁귀?”
어느새 소지광의 옆에 조용히 내려선 추혼궁귀가 그의 귓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다.
그 내용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직후 소지광의 표정이 썩 좋지 않게 변한 것은 모두가 보았다.
“……흠흠. 나중에 흑사련에 한번 놀러 오거라.”
소지광은 헌원강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긴 후, 추혼궁귀에게 얌전히 이끌려 흑도맹 진영으로 돌아갔다.
천하제일도였던 사내의 감상평을 들으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 천무학관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헌원강 학생은 비무대에서 내려가지 말고 잠시만 기다리게.”
“……왜요?”
천무학관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관중석을 둘러보았다. 이내 시선이 한 곳에 멈추고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넓게 울려 퍼졌다.
“이로써 용봉비무 결승전에서 만날 두 명의 후기지수가 결정됐습니다. 위지천 학생. 비무대로 올라올 수 있겠나?”
운기조식으로 내상을 다스리던 위지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년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 후, 더 이상 비무대라고 부르기 힘들 만큼 초토화된 자리에 헌원강과 위지천이 나란히 섰다.
관중들은 용봉비무 결승전만을 남겨둔 두 후기지수를 한눈에 담았다.
청룡학관의 위지천.
청룡학관의 헌원강.
두 소년은 서로를 보고 피식 웃더니,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에 포권으로 화답했다.
“저 녀석들…….”
“정말 위지천과 헌원강이…….”
“용봉비무 우승을 놓고 싸운다고…….”
그 순간 청룡학관의 모든 학생들, 강사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훌쩍이는 이도 있었고, 그저 흐뭇하게 웃으며 열심히 손뼉을 치는 이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묘한 감정을 느꼈다.
“천무제의 마지막 비무는 청룡학관이 장식하겠군.”
“마지막 비무뿐인가? 칠 일 동안 진행된 모든 대회를 청룡학관 학생들이 장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지난 십 년간 꼴찌였던 학관이……. 허어. 단체로 기연이라도 얻은 겐가.”
“청룡신협의 말을 듣지 못했소? 기연이 아니라 기적이라고 하더군.”
무림인들의 비무를 구경하러 온 양민들, 축제에서 한몫 단단히 챙기고자 온 상인들, 그리고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고수들까지.
이 순간에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올해 천무제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청룡학관이며, 그들에겐 충분한 자격이 있노라고.
“아미타불.”
불존의 따뜻한 음성이 스며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향하자, 그가 자애롭게 웃으며 천무학관주에게 물었다.
“관주께서 한 가지 잊으신 것이 있지 않습니까?”
“무슨…….”
불존의 말에 천무학관주는 얼굴에 의아함을 띠었다가,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군요. 그것부터 말해야 했는데.”
다시금 모두의 시선이 천무학관주에게 향했다.
십 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우승을 놓쳐 본 적이 없었던 천무학관의 주인.
때문에 스스로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던 결과를, 자신의 입으로 발표했다.
“……결승비무의 결과와 상관없이, 올해 천무제의 종합우승은 청룡학관이 차지하였음을 선언하겠습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청룡학관의 우승을 선언한 순간, 청룡오망을 필두로 청룡학관의 모두가 비무대로 달려 나왔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학생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헌원강과 위지천을 번쩍 들어 올려 헹가래를 치고, 눈물을 꾹 참던 독고준도 학생회에 붙잡혀 하늘로 던져졌다.
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신연호와 명일오, 제갈소영은 학생들을 끌어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백무흔은 소매로 연신 눈물을 찍었고, 매극렴은 붉어진 눈시울로 하늘을 올려봤다.
곽철우는 조카인 곽두용의 등을 두드려 주며 수고했다 말했고, 노군상은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
남궁수조차도 다소 멍한 표정으로 서서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을 눈에 담는 가운데.
백수룡은 그보다 몇 걸음 뒤에서 불존에게 묵례를 했다.
‘고맙소. 불존.’
그는 불존이 굳이 이 자리에서 청룡학관이 천무제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을 짚어 준 이유를 알고 있었다.
‘폐회식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뜻이겠지.’
백수룡은 관중석 한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옛 제자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바닥 위에는 익숙한 필체로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혈교가 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대피시키십시오.
그것은 사곤이 전하고 간 경고였다.
* * *
스스스슷…….
전진하던 붉은 운무가 멈칫했다. 축지와 은신의 술법을 동시에 펼친 것처럼 혈교의 병력을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시켜 주던 괴력난신이 무언가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호오.”
흑야마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작은 점 몇 개가 급격하게 커지며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그의 입술이 비틀린 호선을 그렸다.
“생각보다 빨리 반겨 주네?”
촤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붉은 운무를 찢어발기며 일사도가 바닥에 내려섰다. 거의 동시에 그의 좌우로 다른 사도들도 도착했다.
고작 네 명이었다. 그러나 저 넷이 가진 압박감은 천하와 싸우러 온 혈교를 막아서고도 남을 것처럼 강대했다.
혈교의 사도들.
지난 수십 년간 혈교의 절대자로 군림해 온 이들과 마주한 순간, 팔가의 가주들과 살아남은 장로들 대부분이 시선을 회피했다.
“내 허락 없이 멋대로 병력을 움직였군.”
싸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막아선 일사도가 입을 열자, 혈교도들의 불안한 시선이 흑야마제를 향했다.
그러나 그 순간, 흑야마제보다 먼저 움직인 자가 있었다.
“죽여 주시오! 날 좀 죽여 주시오! 제발……!”
목줄에 묶인 곤륜의 장문인이 벌레처럼 꿈틀대며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그가 일사도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자비였다.
“더럽다.”
미간을 찌푸린 일사도가 손을 휘젓자 곤륜 장문인의 머리가 둘로 쪼개졌다.
쩌억!
곤륜의 장문인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죽었다.
그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본 흑야마제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조금 더 데리고 놀다가 죽일 생각이었는데.”
“오장로. 네가 멋대로 병력을 움직였나?”
흑야마제는 대답 대신 일사도를 위아래로 살피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핏물이 번진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내 검은 어디 있어?”
“…….”
나른한 목소리로 혈마검을 찾는다. 응당 자신이 취해야 할 물건이라는 듯이.
그 말의 뜻은 명백했으나, 일사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음?”
흑야마제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천흑야마경의 기운이 이제는 눈동자뿐만 아니라 머리카락까지 피처럼 붉게 물들였다.
스스스슷…….
시커먼 어둠과 피처럼 붉은 기운이 뒤섞여 장막처럼 펼쳐진다. 피부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가공할 기세. 그럼에도 그와 마주한 사도들의 표정은 무심했다.
“그토록 원하던 혈마를 만났는데 왜 무릎을 꿇지 않는 거야? 당신이 그 누구보다도 기다렸던 상황이잖아?”
진심으로 궁금한 기색이었다.
흑야마제는 일사도의 맹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십 년이 넘도록 혈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려 온 사내.
자신이 역천신공을 완성한다면, 그 목숨조차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다고 약속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자신 또한 이 만남을 누구보다 고대해 왔는데…….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내 발등에 입을 맞춰야 하잖아. 희열에 들떠서 눈물을 흘려야 하잖아. 왜냐면…… 너희는 그러기 위해서 살아온 거니까!”
광소를 지으며 자문자답하는 모습이 미치광이가 따로 없었다.
일사도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도들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적대적인 시선으로 흑야마제를 노려봤다.
“…….”
칠 주야 전이었다면, 흑야마제가 생각하는 광경이 그대로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칠 일간 사도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천무제에서 조우한 만남과 인연들은 수십 년간 그들을 옭아맨 술법을 조금씩 헐거워지게 했고, 사도들이 평생 지켜 온 가치관과 신념도 뒤흔들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미치광이는 우리의 지존이 될 자격이 없다.’말로 하지 않아도 네 명의 생각이 일치했다.
그리고 모두를 대표해 일사도가 입을 열었다.
“잡종이로군.”
“……뭐라고?”
“네 역천신공은 지저분한 잡종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것이 사도들의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