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43
643화. 설령 하늘이
하늘에서 붉은 기운이 쏟아진 후, 지상의 전장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쿠구구궁……!
넓은 평야였던 전장이 기암괴석이 가득한 화산지대로 변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너희들의 피로써 하늘을 열리라.”
혈마의 음성이 거대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 직후.
그를 추종하는 광신도들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전부 다 마공을 익힌 혈교도들이었다.
캬아아아아아!
그워어어어어!
동시에 지금껏 본 적 없었던 괴력난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안개 너머에서, 땅거죽을 파헤치고 기어 나왔다.
“대체 이게 무슨…….”
“혈교의 사술이다! 환영에 불과하니 제자들은 당황하지 마라!”
“화, 환영이 아닙니다! 저 괴물들은 진짜입니다!”
“하늘! 하늘 위를 보시오-!”
황망한 와중에도 일부 무인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봤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콰콰콰콰콰콰-!
거대하게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을 따라서, 본 적 없었던 별들이 빛을 쏟아 내고 있었다.
“……!”
“……!”
칼끝에서 수없이 생사를 넘나든 무인들조차, 그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현상을 본 순간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
“개벽. 저것이 혈마가 바라 온 것인가…….”
술법사들과 함께 후방에서 전장을 지원하던 풍월화공이 넋을 놓고 탄식했다. 하마터면 그대로 정신을 잃을 뻔했으나, 간신히 의식을 붙들었다. 그 와중에도 화공의 눈은 다시는 보지 못할 지옥의 절경을 마음속 화폭에 담았다.
지독한 유황 냄새,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열기와 끈적끈적한 마기가 가득한 땅. 그 지옥도는 전장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기에 충분했다.
“크하하하하! 힘이 넘치는구나!”
“지존께서 베푸신 은총이다! 강호의 잡것들을 모두 찢어 죽여라!”
“혈마재림 만마앙복! 혈세천하-!”
정사연합이 선전하며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던 전장이, 마공을 익힌 혈교도들에게 유리하게 변화하면서 혈교가 거세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 땅에 지존께서 재림하셨다. 천하무림은 그분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걸해야 할 것이다!”
그 선두에 주일천이 있었다. 자전마공을 극성으로 익힌 대마두는 자줏빛 안광을 터트리며 정사연합의 무인들을 도륙했다. 정사연합의 절세고수들 대부분이 사도들에게 발이 묶인 탓에, 그를 막아서기 위해 구파일방의 고수가 수십 명씩 달려들어야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죽음을 향해 가는 불나방과도 같았다.
“크하하하!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그렇게 전장의 혼란스러움이 점점 극한으로 치달아 가는 와중에.
혈교의 네 번째 사도가 생사결 도중 갑자기 도주한 사실을 눈치챈 이는 많지 않았다.
“……궁귀. 왜 그냥 보내 줬나?”
소지광은 벌써 보이지 않게 된 사내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물었다. 내공이 없는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사라진 방향 정도였다.
혈교의 네 번째 사도는 말 그대로 갑자기 등을 돌려 도주했다.
싸움에서 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흑도맹의 최정예들이 그 한 명의 사내에게 밀리고 있었다. 희한할 정도로 사망자는 적었지만, 팔다리가 부러져 실려 간 자들이 속출하던 도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소지광이 궁금한 것은 사도가 갑자기 도망친 이유가 아니었다.
“저자가 도망친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행운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등을 보인 적을 그냥 두다니? 내가 아는 궁귀답지 않은 행동인데.”
추혼궁귀는 한 자루의 활로 십존의 한자리를 꿰찬 절세고수였다.
그녀 앞에서 등을 돌리고 도망친다는 것은 몸 어딘가에 구멍을 뚫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그런데도 혈교의 사도는 자신이 유리한 싸움에서 갑자기 등을 돌렸고, 추혼궁귀는 시위를 당기지 않았다.
추혼궁귀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도와달라고 해서.”
“……무엇을?”
십존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힐 만큼 뛰어난 안법을 수련한 추혼궁귀였다. 그녀는 치열한 전투 중에도 사곤이 입 모양으로 ‘도와주시오.’라고 말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서 제대로 알아듣진 못했지만……. 누굴 구하러 가야 한다는 것 같았어. 날 죽이려 들지도 않고, 화살만 연달아 부러뜨리면서 제법 간절한 눈빛으로. 싸움을 시작했을 때부터 말이야.”
“흐음…….”
소지광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는 혈교의 네 번째 사도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형산에서 벌어진 사파회합에서는 오로지 삼사도와의 생사결에 집중했으니까.
하지만 혈교의 세 번째 사도가 자신에게 같은 부탁을 했다면 어땠을까?
칼날이 스친 자신의 가슴을 내려보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사내를 떠올리며, 소지광은 중얼거렸다.
“……이왕이면 구했으면 좋겠군.”
“관심 없어. 우리로선 적이 하나 줄어들었으니까 됐지.”
현실적인 성격인 추혼궁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녀는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흑사련의 무인들에게 명령했다.
“지금부터 빌빌대는 정파무림인들을 지원한다! 다 쉬었으면 움직여라!”
술법진의 영향으로 혈교도들은 더 강해졌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괴력난신들과 탈혼마인들마저 전장에 합류했다.
그러나 추혼궁귀와 소지광은 태연하게 전장을 누볐다. 흑사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들에게 피 냄새 나는 싸움은 익숙했다.
“꽤나 끔찍하네. 인세에 지옥이 펼쳐졌다면 이런 모습일까?”
“그대와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그럭저럭 살 만할 것 같은데.”
순간 흠칫한 추혼궁귀가 징그럽다는 듯 소지광을 째려봤다.
“그딴 수작질은 누구한테 배워 온 거야?”
“……흑도맹주가 가르쳐 줬는데. 별로였나?”
“배울 놈한테 배워야지. 그리고 내공도 없으면서 자꾸 앞으로 나서지 마.”
“궁귀. 정인을 너무 구박하지 말게.”
촤아악!
“이래 봬도 어지간한 놈은 아직 상대할 수 있거든.”
덤벼드는 마물을 베어 넘긴 소지광은 유쾌하게 웃었다. 지옥으로 변한 전장도 그에게서 여유를 빼앗지는 못한 듯했다.
* * *
‘사곤?’
구름을 뚫고 치솟아 오른 사곤의 얼굴을 본 순간, 백수룡은 정신이 혼미해서 헛것을 본 줄 알았다.
몸속에서는 역천신공이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처럼 날뛰고 있었고, 귓가에는 혈마의 음성이 속삭이는 와중이었다.
[수룡아! 정신을 잃어선 안 된다! 마음을 굳건히 해야 한다!]현천신녀가 술법의 기운으로 몸 안에서 역천신공이 날뛰지 못하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검을 꽉 쥔 백수룡의 손등에서 핏줄이 터질 것처럼 불거졌다.
그런데 그 순간 눈앞에 나타난 사곤이, 혼란에 빠진 스승을 향해 웃어 주었다.
씨익.
마치 자신을 믿어 보라고 말하는 듯.
그 미소와 마주한 순간, 백수룡은 사곤이 어떤 각오를 했는지 느꼈다.
“안, 돼…….”
백수룡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곤이 두 팔을 뻗어 혈마를 등 뒤에서 단단히 끌어안고, 몸을 아래로 뒤집어 지상으로 낙하하기까지 그야말로 찰나였다.
쐐애애애액―!
하늘에 거의 닿을 만큼 드높은 위치에서 시작된 추락이었다. 한 줄기의 유성이 된 두 사람의 몸이 붉은 기파에 휩싸였다. 순식간에 가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붙었다.
“―이건 예상 밖이구나.”
혈마의 나른한 음성에 처음으로 불쾌감이 섞였다.
오랜 시간 외공을 극한까지 단련한 네 번째 사도에게 붙들린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혈마는 겨우 한 손을 뻗어 소용돌이치는 하늘을 가리켰다. 순식간에 그는 하늘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거의 다 닿았건만……. 어째서 다시 끌어내리려는 것이냐?”
사곤은 대답하지 않았다. 혈마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그의 눈에 진득한 살기가 흘렀다.
‘죽인다.’
무림맹주와 혈마의 싸움을 유심히 지켜보며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혈마를 죽일 수 있을지 무수한 방법을 떠올리면서.
일격에 머리를 부수거나 심장을 터트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림자 같은 호신강기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탓이었다.
게다가 한 번에 죽이지 못하면 순식간에 상처를 재생한다. 심장이나 머리를 다쳐도 회복할 가능성이 컸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일격에 산산조각 낸다. 흔적도 남지 않게 만들어서 재생하지 못하도록.’
우선 맹호군림의 압력으로 혈마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억눌렀다.
그것으로는 부족할지 몰라 강건한 두 팔로 직접 몸뚱이를 붙들었다.
-……말했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쓰러뜨리겠다고.
사곤은 문득 그날을 떠올렸다.
옛 제자를 끌어안으며 심장에 검을 밀어 넣어야 했던 스승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분명 지금의 자신보다 더 큰 각오가 필요했을 것이다그와 비교하면, 이 정도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지상과 충돌하면 너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 것이냐?”
사곤은 자신할 수 있었다. 이 상태에서는 천하의 그 누구라도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고.
남은 것은 혈마를 호신강기째로 산산조각 내 버릴 만한 강력한 충격이었다.
사곤―!
옛 스승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아스라이 들려왔지만, 사곤은 돌아보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용천혈에서 기를 뿜어내 더욱 빠르게 가속했다.
쐐애애애애액-!
지면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사곤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 순간 그는 천하에서 가장 강건한 육신을 만들어 준 무공과, 그것을 익히게 해 준 스승에게 감사했다.
“설령 하늘이 또다시 나를 외면한다고 해도…….”
혈마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앙―!
충돌의 순간,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천지를 떨어 울릴 듯한 굉음과 함께 반경 수백 장에 달하는 지면이 갈라지며 주저앉고, 피어오른 흙먼지가 수십 장 높이까지 치솟았다.
“콜록! 콜록!”
“미친…….”
“하, 하하하……. 이대로 천하가 멸망하려는가?”
그 여파에 주저앉지 않은 무인들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일시적으로 모든 싸움이 멈췄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지상에 생겨난 거대하고 깊은 구덩이로 향했다.
“지존…….”
“사호……?”
압도적인 신위로 정사연합의 절세고수들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던 사도들의 무표정한 얼굴에도 조금씩 균열이 일어날 때였다.
폭발이 서서히 가라앉은 자리에서, 피투성이가 된 손 하나가 불쑥 구덩이를 기어 올라왔다.
뼈마디가 조각조각 난 손가락이 스스로 재생하고 있었다.
이내 다른 팔이 구덩이를 짚고, 상반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다시 저 하늘로 기어오르리라.”
완전히 혈인이 된 모습의 혈마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허리에는 의식을 잃은 사곤이 두 팔을 감은 채 매달려 있었다.
하아아-
길게 숨을 내뱉자 서서히 혈마의 모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듯한 재생의 공능. 이내 의복까지 완전하게 갖춘 혈마가 자신의 허리에 매달린 사곤을 옆으로 떼어 냈다.
“놀랍구나.”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숨결이 희미한 사곤을 물끄러미 내려보는 핏빛 보석안이, 미미하게 경이를 품고 있었다.
“이곳이 윤회연옥진 안이 아니었다면, 너의 계획이 성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켜보는 수많은 무인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말이었다. 동시에 혈교도들을 전율에 떨게 만드는 말이었다.
“허나 어리석은 사도여. 이 안에서 나는 전능한 존재이니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수룡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