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50
650화.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백무흔은 자신을 뒤따라오는 청룡오망을 돌아보며 고함쳤다.
“지금이라도 돌아가거라!”
아들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전장을 향해 전력으로 경공을 펼치던 도중이었다. 등 뒤로 따라붙은 기척에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한 순간, 백무흔은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돌아가래도! 부탁이 아니라 학생주임으로서 내리는 명령이다!”
그러나 스승을 닮아 천하제일의 고집을 지닌 청룡오망은 백무흔의 거듭된 설득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에 겨운 얼굴들로 쫓아오며 반박했다.
“싫어요! 아까 선생님들이 하는 말 전부 들었거든요?”
“지금 백수룡 선생님이 위험한 거죠?”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어. 천무제 중간중간에 한 번씩 아련한 얼굴 같은 걸 하는 게 불안했다고.”
“죄송하지만 중간에 돌아갈 생각이었으면 쫓아오지도 않았습니다.”
“그 양반 혼자 두면 또 잔뜩 다쳐올 게 뻔하다고요!”
캬앙!
청룡오망과 그들을 따라온 은호까지.
하나같이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고집스러운 얼굴로 쫓아오는데, 백무흔은 과거 자신을 잡으러 다니던 매극렴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처음으로 헤아릴 수 있었다.
“이 미련한 녀석들. 대체 누굴 닮아서 고집이…….”
백무흔은 말을 하다가 말고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저 아이들이 닮을 만큼 미련한 스승은 세상천지에 하나뿐이었으니까.
청룡오망의 얼굴에서 백수룡을 향한 걱정과 불안을 읽은 백무흔은 차마 더 이상 돌아가라고 소리치지 못했다.
“……못된 아들놈 같으니. 늙은 애비를 고생시킨 죄는 나중에 볼기짝을 때려서 갚아 주마.”
[내가 도와주겠네. 내 검신에 술법을 걸면 속은 상하지 않게 하면서 몇 배로 아프게 때릴 수 있으니.]“예. 그때는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창룡신검과 백무흔이 잠시 한마음으로 후일을 도모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백무흔은 스스로 사지로 뛰어든 청룡오망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바라봤다.
억지로 떼어 낸다고 해도 저희들끼리 전장으로 달려갈 아이들이었다. 그렇다고 힘으로 제압해서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기에 학생들과 푸닥거리며 낭비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제압이 가능하리라는 보장도 없었으니까.
‘다들 절정의 경지는 진작에 넘어선 아이들이니…….’
청룡오망 개개인의 무공은 이미 후기지수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났다.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정사연합의 고수들에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천무제에 이어서 도시에서 벌어진 싸움으로 지쳤을 텐데, 다들 이상할 정도로 기운이 넘쳐 보였다. 역천의 기운이 넘쳐나는 전장에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호흡이 크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창룡신검이 그 이유를 설명하며 묘한 말을 남겼다.
[천하에 드문 신공절학으로 호흡하는 덕분일 것이다. 혹은…… 저 아이들을 지켜 주는 존재들이 있어서일지도 모르지.]결국, 백무흔은 청룡오망과 함께 전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가 속도를 조금 늦추며 청룡오망과 보조를 맞췄다.
“내 뒤를 따라오거라. 반드시 진형을 유지하고, 내 지시가 없으면 함부로 싸워선 안 된다. 모두 알겠느냐?”
“네!”
청룡오망이 하나 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백무흔과 청룡오망, 은호는 전장을 향해 내달렸다 그들의 신형이 지나간 자리에 한 줄기 바람이 남았다.
휘이이익!
경공을 펼치던 도중 백무흔은 멀리서 낯선 시선을 느꼈지만, 적대감이 느껴지진 않아서 무시하고 계속 달렸다.
스스스슷…….
전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역천의 기운이 다시금 짙어지고 있었다. 거듭된 기파의 충돌과 함께 고성과 비명, 코를 마비시킬 듯한 역겨운 혈향이 밀려왔다.
우웅-!
[……하늘이 열리고 개벽이 시작되면 천지간의 조화가 무너지리라. 시간과 공간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이제껏 알던 세상의 법칙들이 어긋나리니…….]예언과도 같은 창룡신검의 말이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
갑자기 창룡신검의 목소리를 듣게 된 청룡오망은 잠시 놀랐지만, 지난 일 년간 수많은 일을 겪은 탓에 금세 적응하고는 창룡신검의 말을 경청했다.
[모두 마음을 단단히 먹거라. 이제부터는 너희들 앞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터, 괴력난신이 출몰하고 사실과 허구가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저 하늘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더 심해질 게다.]꿀꺽…….
창룡신검의 섬뜩한 경고에 청룡오망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에도 다들 애써 태연한 척하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시작은 헌원강이었다.
“들었지? 난 상관없지만 너희들은 쫄리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라고.”
“원강 선배. 지금 입꼬리가 떨리고 있는데요?”
“하여간 허세는…….”
“무서우면 선배나 돌아가슈. 앞으로 오십 년은 놀려 먹어 주지.”
“자자, 잡담은 그만하고 체력들 아껴라.”
백무흔은 그런 학생들을 대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무섭고 떨리지 않을 리 없었다.
제아무리 천무제를 제패할 만큼 뛰어난 무공을 지녔다 한들, 많아 봤자 약관에 불과한 소년소녀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두려워할지언정, 이 아이들은 스승을 구하기 위해서 멈추지 않았다.
“……수룡이 녀석. 제자 복 하나는 타고난 줄 알거라.”
백무흔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창룡신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전장이 가까워졌기에 곧 시작될 싸움에 대비했다.
콰콰콰콰콰콰콰-!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는 하늘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 바로 아래에 치열한 전장이 펼쳐져 있었다.
정사연합의 살아남은 고수들과 혈교도들이 섞여 들어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는데, 그중 일부가 백무흔과 청룡오망을 발견했다.
크르르르…….
캬아아아아!
실핏줄이 터져 눈이 시뻘겋게 변한 혈교도들, 탈혼마인들, 사라졌던 괴력난신들이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죽어야 마땅한 상처를 몸에 새기고도 다시 일어나서 싸우는 자들도 있었다.
윤회연옥진에서 새어 나오는 끔찍할 정도로 짙은 역천의 기운, 그리고 개벽의 영향으로 마(魔)의 기운이 극대화된 탓이었다.
[……죽어 쓰러져야 할 자들이 연옥에 갇혀 명부를 넘지 못했구나. 실로 끔찍한 일이다.]“지옥도 여기보다는 평화롭겠습니다.”
작게 중얼거린 백무흔의 눈빛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그 순간 창룡신검에 새파란 검강이 맺혔다.
가장 먼저 백무흔에게 달려든 마인은 그다음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푸화아악!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덩치의 마인이 둘로 갈라지며 핏물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백무흔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청룡오망에게 주의를 주었다.
“조심하거라.”
낯선 고수의 출현에 몰려들던 마인들이 움찔했다. 그 존재감이 정사연합을 대표하는 고수들과 비견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조차 잠시일 뿐, 이성을 잃은 마인들과 괴력난신들이 흉성을 폭발시키며 백무흔과 청룡오망에게 덤벼들었다.
“어찌 학생들이 이곳에!”
“돌아가거라!”
불존과 검성 등이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정사연합의 절세고수들은 팔가의 가주들과 장로들에게 붙들려 있었는데, 역천의 기운에 짓눌린 탓에 크게 쇠약해져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백무흔과 청룡오망이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방처럼 무모해 보였다. 특히 청룡오망은 아무리 뛰어난 후기지수들이라고 해도 이 전장에 참여하기에는 부족했다.
당사자들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누구보다 자신들의 능력과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부족한 건 알아. 그렇다고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청룡오망의 선두, 조금 전까지 애써 웃고 있던 헌원강이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흑도를 움켜쥔 손등에 핏줄이 잔뜩 불거졌다.
곁에서 함께하는 위지천도, 여민도, 거상웅도, 야수혁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무모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 전장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다시 또 선생님 혼자서 피투성이가 돼서 돌아오는 건 싫어요.”
“이럴 때를 대비해서 우리가 그동안 죽어라 수련한 거잖아?”
“각자 흩어져서 싸운다면 전장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다섯 명이잖수. 괜히 청룡오망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청룡오망의 생각이 일치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헌원강을 향했다.
마치 이건 네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피식 웃은 헌원강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흑도를 치켜세웠다.
“간다! 백수룡 조지기, 아니…….”
언젠가 그들의 스승에게 꼭 한 방 먹여 주겠다는 염원을 담아서 지은 합격진의 이름에, 헌원강은 처음으로 다른 소망을 담아서 말했다.
“백수룡 구하기. 개진(開陣).”
우우우우웅-!
네 가지 신공절학의 공력 기파가 서로 공명하며 서로의 기운을 북돋웠다. 일순간 형성된 푸른 기류가 청룡의 비늘처럼 다섯 명을 휘감은 것과 동시였다.
하나가 된 청룡오망의 신형이 빛살처럼 쏘아진 순간, 덤벼들던 혈교도의 몸이 핏물과 함께 분쇄됐다.
푸화아악!
흑도와 검혼의 궤적이 적들의 몸을 가르고, 빙백신공의 냉기에 몸이 얼어붙었다. 뒤이어 맹호투가 굳어 버린 적들을 그대로 으깼다. 그 모든 초식의 연계가 마치 한 명이 펼치는 것처럼 자유로웠다.
“너희들…….”
백무흔은 자신을 지나쳐서 적진을 돌파하는 청룡오망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긴 꼬리의 기파를 남기며 질주하는 모습이, 거대한 파도를 거슬러 오르는 듯한 형상을 닮아 있었다.
[저곳이다!]창룡신검의 목소리에 백무흔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검성과 불존, 추혼궁귀 등이 혈교의 팔가주, 장로들과 맞붙고 있는 일대.
가까이 접근하는 것만으로 숨 막히는 기파가 연신 충돌하고 있었는데, 창룡신검은 그곳에 백수룡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백무흔의 눈에는 어디에도 백수룡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수룡이가 어디에 있단 말씀입니까?”
[저 너머에, 스스로 만들어 낸 심상 세계에……. 혈마와 함께 자신을 가두었구나. 어찌 이런 일이…….]물결처럼 일렁이는 대기에 흐릿한 검흔이 새겨져 있었다.
양측의 최고수들이 하필 그 주변에서 싸우는 것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았다.
백무흔은 청룡오망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고 창룡신검에게 물었다.
“심상 세계라면……. 저희가 어찌할 수 있는 겁니까?”
창룡신검은 백수룡이 정확히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며, 그가 스스로를 희생하려고 한다는 것쯤은 능히 짐작하고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다오. 내가 심상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겠다.]창룡신검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수룡은 결국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혈마를 죽이겠다는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파멸에 가까워진 천하를 구하고, 개벽을 막을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창룡신검, 아니 현천신녀는 그 결과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백수룡의 현생과 전생을 모두 지켜본 존재로서 가진 책임이었다.
[가서 그 못된 녀석을 끌고 나오자꾸나.]그러나 적들도 그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갑자기 전장에 난입한 백무흔과 청룡오망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을 벌이리라는 것을 직감한 듯, 점점 더 많은 혈교도와 괴력난신들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누구도 지존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지 못한다! 단목 가주! 가서 놈들을 막아라!”
혼자서 쇠약해진 검성과 불존을 몰아붙이던 주일천이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을 쏟아 내자, 그의 명령을 받은 팔가의 가주 중 하나가 직접 청룡오망을 막아서기 위해 나섰다.
“크윽……!”
“조금만 더 가면 돼!”
“어떻게든 버텨!”
막아서는 적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청룡오망의 합격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합격진의 선두를 맡은 헌원강의 몸에 상처가 순식간에 늘어났다.
끔찍하도록 짙은 역천의 기운이 숨을 쉬기 힘들게 만들고, 사방에서 짓쳐 드는 마인들은 지금껏 싸워 본 적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합격진이 없었다면 한 명 한 명도 상대하기가 버거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헌원강은 멈추지 않았다.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며 흑도를 휘둘렀다. 거의 무아지경이었다.
쩌어엉!
거듭된 충격에 흑도가 갑자기 부러진 순간에도 헌원강은 멈추지 않았다. 칼이 짧아지면 짧아진 대로 싸울 수 있었다. 합격진이 멈추는 것보단 그게 나으니까.
“원강아!”
“원강 선배!”
바로 뒤에서 청룡오망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들려왔지만 헌원강은 개의치 않았다. 소년의 눈동자가 활활 타오르며 눈앞의 적을 노려봤다.
“핏덩이 주제에…….”
헌원강의 칼을 부러뜨린 단목 가주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시커먼 마기를 두른 칼은 헌원강의 명줄을 끊기 위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 위로 윤회연옥진의 힘을 빌려서 빚어 낸 강기가 맹렬하게 불타올랐다.
“크하하하! 죽어라!”
단목 가주가 광소를 터트리며 헌원강의 가슴을 둘로 가르려는 찰나.
검붉은 하늘이 한순간 핏빛으로 물들었다.
캬아아아아아!
핏물로 흠뻑 적신 듯한 수라의 형상이 나타난 순간, 히죽거리던 얼굴이 그대로 둘로 쪼개졌다.
푸화아악!
흩어지는 핏물 사이에서 나타난 사내가 헌원강을 섬뜩한 눈으로 응시했다.
“방금 그거…….”
헌원강은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사내를 바라봤다. 조금 전 그가 보여 준 도법의 궤적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다시 그려지고 있었다.
“수라혈천도.”
짧게 대답한 사내가 등을 보이며 돌아섰다.
“잘 봐둬라. 그래야 나중에 날 죽이러 올 수 있을 테니까.”
헌원강이 이해하지 못할 말을 남긴 채 돌아선 사내가 휘두른 칼에, 앞을 가로막은 모든 것이 쓸려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