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51
651화. 그때가 된 것 같군
전장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던 청룡오망의 질주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적들로 인해 막히기 시작했을 때.
“너희들로서는 무리다! 정면에서 상대하지 말고 일단 뒤로 물러나거라!”
백무흔 또한 다른 적들의 집중 견제로 인해 잠시 손발이 묶여 있었다. 청룡오망의 합격진은 그조차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할 정도로 위력적이었고, 그 때문에 간격이 다소 벌어졌다.
쩌어엉!
헌원강의 도가 부러지는 광경이 보였다. 그 순간 백무흔은 창룡신검을 던져 헌원강을 구하려고 했다. 그 역시 위험한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당장은 학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백무흔이 검을 던지기 직전.
촤아아악!
헌원강을 노리던 적의 몸이 세로로 갈라지더니, 솟구치는 핏물 사이에서 한 사내가 불현듯 나타났다.
마치 피 웅덩이에서 태어난 듯 검붉은 장포를 두른 사내의 몸에서, 지독하리만치 정제된 살기가 예리한 칼날처럼 흘렀다.
“뭐……?”
넋이 나간 헌원강에게서 몸을 돌린 사내가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혈천의 수라가 주인의 의지에 따라 포효했다.
캬아아아아!
윤회연옥진에서 소환된 그 어떤 괴력난신보다 선명한 형상의 수라가 신명 나게 칼춤을 출 때마다, 사내의 앞을 막아선 모든 것이 갈라지며 피보라가 일었다.
“죽이러 오라고……?”
헌원강은 뺨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핏물을 피하지도 않고 사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얼굴도 목소리도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도 마주한 순간 이상할 정도로 울컥하는 감정이 끓어올랐다.
꿈에서도 그려 보지 못했던 수라혈천도의 완벽한 궤적을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헌원강이 부러진 흑도를 움켜쥐며 사내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그의 귀에 청룡오망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강 선배!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
“저 사람은 대체 누구야?”
청룡오망이 허겁지겁 헌원강을 끌어당겨 상처를 살폈다. 그 손길에 헌원강은 비로소 정신이 현실로 돌아온 느낌을 받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나도 모르겠어.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리고 그 순간, 청룡오망의 앞에 사도들이 무복을 펄럭이며 내려섰다.
“당신은!”
새하얀 눈보라를 휘날리며 사뿐히 내려선 이사도를 본 여민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해졌다. 놀라움과 경계심, 그리고 일말의 반가움이 표정에 전부 담겼다.
“……해치러 온 게 아니야.”
여전히 얼음처럼 서늘하지만,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놀랍도록 부드러워진 목소리에 여민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사저와 사매의 눈동자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제게 무극검의 비급을 건네준 사람, 맞죠?”
위지천은 일사도를 보자마자 상대가 자신에게 가짜 무극검을 익히게 한 사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년의 커다란 눈망울이 상처투성이인 사내의 얼굴을 빤히 올려봤다.
“은원은 나중에 청산하도록 하지. 그럴 기회가 생긴다면.”
일사도는 위지천에게 무심하게 대꾸한 후, 한쪽 어깨로 부축하고 있던 사곤을 흑백쌍웅에게 떠넘겼다.
“이 녀석은 너희가 맡아라.”
거상웅과 야수혁이 사곤을 건네받아 양쪽에서 부축했다. 피투성이가 된 사곤의 모습은 그들이 상상도 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사형…….”
“당신들 우리 사형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때 사곤이 두 사제의 어깨를 꽉 끌어안아 당기더니, 지친 표정으로 조용히 웃어 주었다.
고생했다, 이제 괜찮다.
마치 그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거상웅과 야수혁은 순간 말문을 잃고 사곤을 바라봤다.
“당신들은…… 수룡이 때문에 온 것이오?”
어렵게 포위망을 헤치고 온 백무흔이 청룡오망의 앞을 가로막으며 사도들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경계심뿐만 아니라 일말의 안타까움 또한 담겨 있었다. 그 기색을 눈치챈 일사도가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지?”
“……당신들과 내 아들 사이에 복잡한 은원이 얽혀 있다는 것 정도는.”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일사도는 백무흔의 손에 들린 창룡신검을 바라봤다.
그는 저 검이 혈마검 못지않은 신검이라는 것과 스스로 영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옛 스승이 허공에 남긴 저 일렁이는 검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옛 스승을 가장 많이 닮은 제자였으니까.
“우리는 스승을 만나러 왔다.”
그 한마디에 수많은 의미와 감정이 함축돼 있었다.
혼란스러운 전장 한가운데서 나누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얽혀 있는 이야기.
백무흔의 표정이 순간 흐려지고, 창룡신검의 검신이 우웅- 하고 떨렸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것은 백수룡의 제자들인 청룡오망이었다.
“스승이라고……?”
“그럼 당신들이 전부…….”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그게 가능한…….”
그들 중 누구 하나 천부적인 감각을 가지지 않은 이가 없었다.
더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낸 일사도의 감정, 표정과 말투, 호흡까지도 모든 것이 그 말이 진실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인과관계를 뛰어넘어 듣는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때문에 머리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이 진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곳의 모두가 깨달았다.
잠시 말문이 막힌 백무흔과 청룡오망을 대신해 창룡신검이 말했다.
[……함께 가자꾸나. 수룡이도 분명 너희를 반길 것이야.]그녀는 백수룡의 현생과 전생에 대해서 누구보다 상세하게 알았다.
‘지금 수룡이에겐 너희의 도움이 꼭 필요할 것만 같구나…….’
사도들이 백수룡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또한 그들의 심장에서 혈마의 술법이 사라진 것을 감지했기에, 그녀는 사도들을 그들의 스승에게 데려다주기로 결심했다.
[앞에서 길을 열어 주겠느냐? 심상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다. 서둘러야 할 것이야.]“어렵지 않지.”
고개를 끄덕인 일사도는 이사도와 함께 몸을 돌렸다.
덤벼드는 괴력난신들을 혼자서 베어 넘기고 있던 삼사도가 다가오는 일사도를 힐끗 돌아봤다.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몇 마디로 잘도 설득했군. 일호 네가 어릴 때부터 말주변이 좋긴 했지.”
“너는 어릴 때처럼 말이 많아졌다. 술법이 풀린다고 다 좋은 게 아니군.”
“시비 거는 거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지은 일사도가 앞으로 나서고, 그의 좌우로 이사도와 삼사도가 서며 쐐기꼴 모양을 이뤘다.
“최단 거리로 돌파한다.”
그 직후부터.
청룡오망은 자신들이 익힌 신공절학이 극의(極意)에 이르면 어떠한 신위를 떨칠 수 있는지 견식할 수 있었다.
쾅-!
하나처럼 울린 세 개의 울림. 사도들이 동시에 밟은 대지가 굉음을 토해 내며 주저앉고. 폭발하듯 터져 나간 나선형의 기파가 대지를 할퀴며 사방으로 뻗어 나감과 동시에.
사도들은 혈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도륙하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드득!
괴력난신과 마인들, 죽지 않는 혈교도들로 이루어진 적들이 수백 줄기의 궤적에 갈라지고 터져 나갔다. 일부는 선 채로 얼어붙었다가 산산이 깨져 나갔다.
쩌어억! 푸화악! 퍼버버벙!
폭발과 굉음이 사도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그들이 지나간 흔적을 뒤따르며 연달아 터졌다. 천재지변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청룡오망과 백무흔은 간신히 그 뒤를 쫓아가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게 우리가 익힌 것과 같은 무공이라고?”
“우리는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던 거야.”
“너무 까마득해서 가늠도 안 돼. 대체 얼마나 차이가 나는 건지…….”
각자가 익힌 신공절학에 있어서는 백수룡조차 뛰어넘은 절세고수들.
더 나아가 자신들만의 영역을 개척한 사도들이 보여 주는 무공의 정수에, 청룡오망은 경외감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앞에서 길을 열어 주는 사도들의 등을 바라보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저곳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구나.”
헌원강의 중얼거림에 모두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무흔은 그런 학생들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며 곁에서 묵묵히 함께했다.
캬아아아아!
크아아아악!
마기가 골수까지 치밀어 더 이상 인간다운 이성이 남아 있지 않은 마인들조차, 사도들의 무지막지한 기세에 놀라 돌아보았다.
“더러운 배교자들을 죽여라-!”
그때 불존과 검성을 억지로 떨쳐 내고 온 주일천이 사도들의 앞을 막아섰다.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팔가의 가주들, 혈교의 장로들, 역천의 기운을 받아 더욱 강해진 마인들이 모조리 사도들을 가로막았다.
“감히 지존을 배신하고 적도들에게 붙다니!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주일천은 자줏빛으로 물든 눈에서 광망을 터트렸다. 두 손에서는 강기를 줄기줄기 뿜어 냈다. 역천의 기운과 윤회연옥진의 마기로 인해 기존의 경지를 몇 번이나 뛰어넘은 모습이었다.
쿠구구궁……!
무시무시한 압력이 발생해 일대의 공간을 통째로 짓눌렀다.
그러나 주일천을 향해 내달리는 일사도는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의 무심한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났다.
“감히 누구에게 배교를 운운하는 거지?”
중단으로 들어 올린 검신 위로 의념으로 빚어 낸 신검이 덧씌워졌다.
뒤쪽에서 흡! 하고 숨을 들이켜는 위지천의 기척을 느끼며, 일사도는 오만하게 미소 지었다.
“고작해야 내가 쌓아 올린 모래성을 걷어차는 것일 뿐이다.”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서 죽여 주마! 이 더러운 배교자!”
빛살처럼 쏘아진 일사도와 주일천의 신형이 서로에게 쇄도했다.
흐릿해진 두 신형이 찰나에 수백 합의 손속을 섞으며 궤적을 겹쳤고.
툭. 데구르르-
몸뚱이를 잃은 주일천의 수급이 바닥을 굴렀다. 그제야 귀청이 찢어질 듯한 천둥 같은 굉음이 연달아 울렸다.
“쿨럭…….”
일사도가 울컥 피를 토했다. 최대한 빠르게 주일천을 처리하기 위해 무리해서 공력을 운용한 대가였다.
“일호. 괜찮나?”
“그럭저럭.”
이사도와 삼사도 또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그들은 거듭해서 혈투를 벌였고, 수십 년간 새겨 왔던 심장의 술법을 끊어 내면서 몸에 적지 않은 반동이 있었다.
그럼에도 사도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밀려드는 적들을 참살하며 질주했다.
우우우우웅!
투명한 검흔이 허공에 일렁이는 장소가 이제 곧이었다.
백수룡이 심상 세계를 열고 들어간 균열.
창룡신검의 조급한 목소리가 사도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된다. 곧 내가 술법으로 틈을 벌릴 테니…….]술법의 기운이 창룡신검을 휘감고, 백무흔이 정신을 집중해 검을 그어 내릴 준비를 마친 순간이었다.
“피해라.”
일사도의 나직한 경고와 함께, 이사도와 삼사도가 동시에 뒤로 물러나며 청룡오망을 보호했다.
콰콰콰콰콰콰쾅!
조금 전까지 사도들이 서 있던 자리에 무지막지한 폭격이 쏟아졌다. 하나하나 강기가 실린 공격으로, 여전히 허공에 일렁이는 검흔을 제외하고는 그 일대에 아무것도 남아나지 못했다.
하하하하하하하!
귓가를 괴롭히는 웃음소리와 함께, 흙먼지를 헤치고 봉두난발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일렁이는 검흔의 앞을 정확하게 가로막고 서 있었다.
“천하에서 가장 고강한 무인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살육전을 벌이다니! 과연 천하무림의 대축제인 천무제의 마지막 날이구나!”
천무학관주 진량이었다.
혈마에게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완전히 적발적안으로 물든 모습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전보다 더 강해진 기파가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데, 그가 서 있는 주변이 왜곡돼 일그러져 보일 지경이었다.
“자, 이제 가려 보자꾸나! 천하의 무인들이 각자의 생명을 걸고 무(武)를 꽃피울 난세! 내가 바라 왔던 무릉도원에서 천하제일을 겨루는 거다!”
급격하게 받아들인 역천의 기운이 골수까지 치밀어 완전히 미쳐 버린 것이 분명했다. 광기 어린 진량의 웃음에 소용돌이치는 하늘의 기세가 더욱 거세졌다.
콰콰콰콰콰콰-!
천지에 가득한 역천의 기운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혈마와 백수룡이 심상 세계에 갇힌 지금, 천무학관주 진량은 이 장소에서 가장 전능한 존재였다.
“……저건 없애려면 고생 좀 하겠군.”
입가의 핏물을 닦아 낸 일사도가 덤덤히 뇌까리며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다른 사도들도 각자 공력을 끌어 올리며 싸울 준비를 했다.
그러나 사도들이 진량과 싸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누구든 좋으니 덤비시게. 몇 명이든 상대해 주…… 음?”
문득 고개를 치켜든 진량이 멍청한 소리를 낸 순간.
꽈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충격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진량의 신형이 무형의 포탄에 얻어맞은 것처럼 수십 장을 튕겨 날아간 것과 동시였다.
휘익!
잠시 후 바닥에 내려선 사내가 컥컥거리며 피를 게워 내는 진량에게 말을 걸었다.
“……지난번에 네가 이렇게 말했지. 다음에 만날 땐, 서로의 명줄을 끊기 위해 전력을 다해 보자고.”
천무결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진량의 적발적안을 응시하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가 된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