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58
658화.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생사신의는 부상자들에게 자신의 의술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는 스스로 호언장담했듯이 숨만 붙어 있으면 어떤 상처든 치료하고 살려 냈다. 수백 개가 넘는 금침과 은침이 스스로 움직여 다친 이들의 혈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내상이 심한 이들에게는 손톱만 한 환약을 먹였다.
창백했던 부상자들의 안색이 금세 편안해지고, 고통 어린 신음성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면 노인은 신의(神醫)라고까지 불리지 않았을 것이다.
“팔다리가 잘린 자들은 찾아서 들고 오너라.”
생사신의는 의술로 신선의 경지에 이른 존재이자, 십존으로 추앙받는 절세고수였다.
범인을 아득히 뛰어넘는 감각과 허공섭물, 수술용 소도(小刀)에 맺힌 예리한 강기, 삼매진화를 사용해 잘린 팔다리를 잇는 수술을 동시에 진행하는 모습에 절세고수들조차 감탄했다.
“평생 외팔이로 살게 될 줄 알았거늘…….”
“구명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많은 무인들이 그에게 구명의 은혜를 입었다.
허나 정작 생사신의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를 찾는 기색이었다.
“이 중에 청룡신협이라는 아해는 없는 듯한데……. 음?”
그 순간 생사신의의 시선이 허공에 흐릿하게 남겨져 일렁이고 있는 검흔을 향했다.
“설마…….”
남들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꿰뚫어 보듯, 푸른 안광을 띤 생사신의의 얼굴에 점점 놀라움이 어릴 때였다.
“신의님!”
백무흔이 생사신의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포권을 올렸다.
“염치없는 청인 줄은 알지만, 제 아들의 몸을 살펴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곧 돌아올 터인데……. 분명 많이 다쳤을 것입니다. 이렇게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백무흔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이들도 진중한 어조로 부탁에 동참했다.
“나 또한 신의께 부탁드리겠소. 청룡신협이 돌아오면 상처를 돌봐 주시오. 무당은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외다.”
“흑사련에서도 부탁하지. 원한다면 보은패를 만들어 주겠어.”
“청룡신협은 무림맹의 총사범입니다. 신의께서 상처를 돌봐 주신다면 맹에서 반드시 보은하겠습니다!”
“부디 개방의 형제를 도와주시구려!”
백수룡과의 인연이 있는 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청룡신협이 돌아오면 상처를 살펴봐 달라고 청해 오자, 생사신의는 놀란 것도 잊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 의원으로서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이렇게 많은 환자들이 본인의 상처보다 다른 이를 먼저 치료해 달라 부탁하는 것은 처음이다. 심지어 얼마나 다쳤는지도 정확히 모르지 않더냐?”
“볼 것도 없습니다. 그 녀석이라면 또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올 겁니다.”
백무흔의 한숨 섞인 푸념에 백수룡을 아는 이들이 한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갸륵한 마음에 생사신의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그의 시선이 백무흔의 허리춤에 매달린 창룡신검에게 잠시 향했다.
“내 제자에게 어느 정도 듣기는 했으나, 신녀가 역천의 대적자로 선택한 녀석이 인복이 많은가 보오.”
[물론이오. 스스로 가지고 태어난 운명을 개척할 만큼 강하고 대단한 인물이지.]긴 세월을 살아온 그들은 서로 구면이었는데, 자식 자랑이라도 하는 듯한 현천신녀의 대답에 생사신의는 그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의술로 신선의 경지에 이른 생사신의는 천기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한동안 속세를 떠나 있던 그가 이곳을 찾아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천하를 멸하고도 남을 거대한 역천의 기운을 느끼고 황급히 날아온 것이다.
하지만 생사신의가 전장에 도착해서 본 것은 이미 소멸하고 있는 역천의 기운과, 천기를 읽는 심안(心眼)으로 엿본 심상 세계의 단편이었다.
“다들 알면 놀랄 것이오. 하늘이 내린 천형을 스스로 극복한 것으로도 모자라 하늘을 겁박…….”
[신의. 그것은 우리만 아는 비밀로 합시다.]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생사신의는 다시금 허공의 투명한 검흔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곧 나오겠군.”
모두의 시선이 생사신의와 같은 방향을 향했다. 맑게 갠 새벽하늘 사이로 밝아 오는 주홍빛 여명이 그곳을 비췄다.
사아아악-
공간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백수룡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만신창이에 가까운 모습이었는데, 창백한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수룡아-!”
백무흔이 가장 먼저 아들에게 달려가고, 곧바로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몰려갔다. 금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백수룡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허어, 이거 참…….”
생사신의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심상 세계를 열고 나타난 다른 기운을 느꼈으나,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품 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그의 제자인 자현이 백수룡의 천음절맥을 고쳐 주고 받은 청룡패였다.
“기껏 보은패를 가져왔는데, 되레 내가 보은을 해야 할 분위기로군.”
말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생사신의는 보은(報恩)이라는 두 글자가 적힌 청룡패의 뒷면에 망설임 없이 자신의 별호를 새겨 넣었다.
“저 사내가 구원한 수많은 사람들과 천하를 대신해서 말이야.”
신선 같은 노인의 눈가에 부드러운 잔주름이 접혔다.
* * *
혈교와의 전투가 끝난 후.
전후(戰後) 정리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림맹의 귀빈용 숙소에서 강제로 절대안정을 취하게 된 인물도 있었다.
“이제 진짜 안 먹어도 괜찮다니까요!”
“신의께서 직접 처방해 주신 탕약이다. 고마운 마음으로 먹지 못하겠느냐?”
“그럼 개방에서 보낸 보약이라도 좀 빼고…….”
보약을 먹기 싫다는 이유로 방에서 아버지와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백수룡은 어느 순간 익숙한 기척을 느끼곤 입을 다물었다.
드르륵!
아니나 다를까. 매극렴이 귀신같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서슬 퍼런 눈으로 손자를 노려보았다.
“수룡아. 혹시 탕약이 먹기 싫다고 떼를 쓰고 있었더냐?”
“그, 그럴 리가요. 이 귀한 보약을 대체 누가 거부하겠습니까. 하하하.”
외조부의 인자하면서도 섬뜩한 눈빛에, 백수룡은 얌전히 생사신의가 처방해 준 탕약과 개방의 보약을 함께 들이켰다.
“크으-!”
백수룡은 그 미묘한 맛에 있는 대로 미간을 찌푸렸다.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아들에게 당과를 챙겨 준 백무흔이 물었다.
“몸은 좀 어떤 것 같으냐?”
“신의께서 돌봐 주신 덕분에 이제 다 나았습니다.”
“흐음…….”
“진짜라니까요?”
백수룡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변해 보았으나, 그의 부친과 외조부는 어림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장인어른. 아무래도 달포는 더 가둬 두고 요양만 시켜야겠습니다.”
“뺨 홀쭉한 것 좀 보거라. 밥은 제대로 챙겨 먹이고 있는 게냐?”
“하루에 여섯 끼씩 먹이고 있습니다만…….”
“어허! 한창 클 나이에 그거 가지고 되겠느냐?”
“할아버지, 아버지, 제발……!”
이 정도면 두 사람이 일부러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지만, 지은 죄가 많은 백수룡은 순순히 업보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몸 안에 있던 역천의 기운이 전부 빠져나가면서 천음신맥으로 변했던 기의 균형이 크게 무너졌는데, 다행히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생사신의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대가로 역천신공을 다시는 익히지 못하는 몸이 됐지만.’
혈마를 없애 버린 대가라기에는 너무 가벼웠다.
아니,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역천신공 따위가 없어도 그에겐 사부들의 무공이 있었으니까.
한동안 쉬면서 정양하면 몸도 예전처럼 완벽하게 회복될 터였다.
허락 없이는 외출도 못 해서 좀이 쑤신다는 것 외에는, 정말 아무런 불편함도 없는 시간이었다.
백수룡은 슬쩍 두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말을 꺼냈다.
“오늘은 사부들을 뵙고 오려고 하는데…….”
그가 외출을 허락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용건을 꺼내자, 매극렴과 백무흔은 미간을 구긴 채 고민에 빠졌다.
“아직 몸이 성치 않아 걱정이 좀 된다만…….”
“어쩔 수 없지. 다녀오너라.”
은근히 같이 가고 싶어 하는 눈치인 두 사람에게, 백수룡은 사부들에게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며 설득한 끝에 겨우 떼어 놓고 나올 수 있었다.
숙소 밖을 나선 이후에도 한동안은 뒤통수에서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어휴…….”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지금쯤 사곤과 함께 천하를 주유하고 있을 건환, 감윤, 이신도 이렇게까지 과보호를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사곤 이 녀석. 서찰은 제때 부치겠지?’
그 순간,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두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백수룡이었다.
* * *
백수룡이 도착한 곳은 혈교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무인들의 위패를 모신 전각이었다. 그 앞을 지키는 수위무사들이 백수룡을 알아보고 절도 있게 포권을 올렸다.
“총사범을 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백수룡은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무림맹주와 불존을 비롯해, 전장에서 스러진 무인들의 별호와 이름이 적힌 위패들이 보였다.
“……오랜만이오.”
백수룡은 그들의 위패 앞에서 잠시 묵례를 한 후, 발소리를 내지 않는 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쳐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네 사부의 위패가 한곳에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검존(劍尊) 모용혼
녹림투왕(綠林鬪王) 맹호악
파천도(破天刀) 헌원후
빙월신녀(氷月神女) 은예린
오십여 년 전, 혈교와의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무림영웅들의 위패가 놓인 장소였다.
백수룡에 의해 네 사부의 존재가 알려진 후, 무림맹에서 늦게나마 그들의 위패를 이 안에 마련해 주었다.
“사부들. 제자가 왔소.”
백수룡은 사부들의 위패에 조금씩 쌓인 먼지를 손으로 툭툭 쓸어 내린 후, 가져온 선물들을 그 앞에 하나씩 꺼내 놓았다.
청룡학관으로 돌아가기 전에 건네주고 싶은 것들이었다.
“헌원 사부. 이건 팽가에서 담은 술이오.”
파천도 헌원후의 위패 앞에는 하북팽가에서 담근 술, 그리고 잔 두 개를 내려놓았다.
헌원 사부의 친우였던 하북팽가의 옛 소가주의 유언대로, 두 사람이 하늘에서 술잔을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다.
“은 사부. 풍월화공을 보채서 그림을 받아 왔소. 특별히 두 사람을 함께 그려 달라고 했지.”
빙월신녀 은예린의 위패 앞에는 은 사부와 문율이 마주 보고 있는 그림을 놓아두었다. 풍월화공이 술법을 걸어 둔 그림은 서서히 투명해졌는데,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모용 사부. 검혼이 사부를 많이 그리워했던 모양이오. 천이가 며칠을 엉엉 울더니 사부 곁으로 보내 주고 싶다고 하더군.”
검존 모용혼의 위패 앞에는 그의 애검이었던 검혼을 두었다. 혈마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수명이 다한 검신에는 수많은 실금이 가 있었다.
“맹 사부. 무림맹에서 녹림맹을 동맹으로 인정한다는 정식 서류요. 잘하면 이곳 호북 무한에 녹림이 지부를 낼지도 모르겠소.”
녹림투왕 맹호악의 위패 앞에선 무림맹주의 직인이 찍힌 서류를 팔랑거리며 보여 주었다.
잔뜩 신이 났을 맹 사부의 얼굴을 떠올리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백수룡은 사부들의 위패에 가져온 선물을 놓아두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조만간 청룡학관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소. 전후 정리도 얼추 된 것 같고, 어쨌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슬슬 내년 학기도 준비해야 하고…….”
백수룡은 시야에 네 사부의 위패를 동시에 담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말하는 내내 그의 표정은 평온했고, 말투도 담백했다.
“앞으로 종종 오겠소. 사부들도 가끔은 내 꿈에 나타나 얼굴이나 비춰 주시오. 그렇다고 너무 자주 오지는 말고. 꿈에 귀신이 자꾸 나오면 심란하거든.”
장난스럽게 사부들에게 인사를 건넨 백수룡은 피식 웃고는 돌아섰다.
어느새 나타난 것인지, 천무결이 기척도 없이 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문보다 더 건강해 보이는군.”
천무결이 무림맹 한복판에 들어올 때까지 아무도 그의 침입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백수룡은 놀라지 않았다.
상대의 실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너도 생각했던 것보다 멀쩡하군. 한참 보이지 않길래 천무학관주와 동귀어진이라도 한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은 자연스레 함께 걷기 시작했다. 천무결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말했다.
“저승 가는 길에 여한은 없어 보이더군.”
확실하게 천무학관주의 명줄을 끊었다는 뜻이었다. 백수룡은 그 말이 진실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천무결이 백수룡을 묘한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로 역천신공의 기운이 전부 사라졌군.”
“왜? 아직 역천신공이 남아 있으면 혹시 모를 후환까지 제거하려고?”
백수룡이 서늘하게 웃으며 묻자, 천무결은 부정하지 않고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군. 쓸데없는 곳에 힘을 낭비하지 않는 주의라.”
둘 사이에 생겨난 팽팽한 긴장감이 조금 옅어졌다. 백수룡이 다시 물었다.
“나도 하나만 묻지. 네가 익힌 무공. 천마신공이 맞나?”
“…….”
천무결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백수룡에게는 그것으로도 충분한 답이 되었다. 그가 놀람을 숨기지 않으며 다시 말했다.
“수백 년 전에 사라진 천마신공의 계승자라……. 게다가 역천신공을 익히지 않았는데도 개벽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고 있었지. 넌 대체 정체가 뭐지?”
하늘을 열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려 했던 혈마의 숙원.
백수룡도 혈마에게 정신을 몇 차례 빼앗기고 나서야 정확히 알게 되었던 그 계획을, 천무결은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전해 듣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만 묻겠다고 하지 않았나?”
피식 웃은 천무결은 전각 안에 있는 위패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별다른 의미가 있는 행동 같지는 않았다. 백수룡은 잠시 그의 입이 다시 열리길 기다렸다.
“전에 말한 적 있었지. 내게도 단 한 사람, 은인이 있다고.”
“…….”
“혈교를 탈출한 후 복수심에 미쳐 세상을 방황할 때 그분을 만났다. 내게 복수 외에도 삶을 살아갈 이유를 찾으라고 말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지.”
천무결이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백수룡은 그 사람이 천무결의 스승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늘을 넘으면 별처럼 많은 세상들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드넓은 우주에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존재들이 종종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혈마가 그런 존재다. 놈들을 때려잡는 게 내가 하는 일인데…… 그때마다 숨어 버리니 성가셔 죽겠다.”
누군가가 해 준 말을 그대로 흉내 내는 듯, 천무결은 평소와는 다른 귀찮음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큭큭 웃어 버렸다.
“……그래서 그 은인은 지금 어디 있지?”
“어딘가 다른 세상에서 괴력난신을 때려잡고 계시겠지. 드넓은 우주에서 가장 바쁜 대인(大人)이시니까.”
천무결은 자신의 은인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백수룡도 굳이 묻지 않았다.
그때 천무결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흥미롭지 않나? 저 하늘 너머에 이곳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은근슬쩍 떠보지 마. 난 다른 세상 따위엔 흥미 없으니까.”
“그런가?”
“지금 발 디딘 세상만으로도 차고 넘치거든.”
“…….”
그 대화를 끝으로, 백수룡은 천무결이 자신을 찾아온 용무가 완전히 끝났음을 깨달았다.
잠시 말이 없던 천무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두 사람 간에 처음으로 아무런 의도도 없는 잡담이었다.
“세간에서 널 부르는 말이 많더군. 고금제일인, 청룡무신, 천하를 구한 영웅……. 밖에 나가면 거리의 꼬마들이 널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는 걸 질릴 정도로 듣게 될 거다.”
“뭐, 칭찬에는 익숙한 편이라.”
백수룡이 뻔뻔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자 천무결이 큭큭 웃었다.
“천하에서 가장 좋은 별호는 다 가지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으시다?”
“그중에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말이지. 차라리 내가 직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백수룡은 전각 밖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척들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일타강사. 그렇게 불리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은데.”
“하여간 별종이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천무결은 나타났을 때처럼 스르륵 종적을 감췄다.
“누가 할 말을.”
백수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전각 밖에서 서성이는 인기척들을 향해 조용히 다가갔다.
자신이 오랜만에 외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르르 몰려온 모양인데, 사부들과의 시간을 방해할까 봐 들어오지는 못하고 밖에서 저희들끼리 소곤거리고 있었다. 또 뭔가 장난을 꾸미는 것이 분명했다.
“이 녀석들!”
그때 백수룡이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오자, 얼굴을 맞대고 스승을 놀라게 할 계획을 꾸미던 청룡오망이 깜짝 놀라서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선생님!”
“아침 수련은 제대로 끝내고 온 거냐?”
백수룡이 제자들을 향해 씨익 미소 지었다.
일타강사 백사부 완결.
작가 후기 및 외전 안내
안녕하세요. 간짜장입니다.
2020년 10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일타강사 백사부의 본편이 오늘로써 이렇게 끝맺게 되었습니다.
구상과 준비 기간까지 생각하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백사부 하나만 보고 달려왔네요.
제 작가 경력에서 가장 긴 기간이었고, 장담컨대 가장 많은 희노애락을 느끼게 해 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마침표를 어떻게 찍을까 겁도 나도 고민도 많았는데, 부디 독자님들의 기억에 좋게 남는 완결이면 좋겠습니다.
처음 백사부를 쓰기 시작할 때는 지금과는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막연히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이야기를 써 보자’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글을 적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