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65
외전 6화. 그래도 오늘만큼은
졸업생들 사이에 섞여 있던 거상웅이 단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묵직했다. 무복으로 가려지지 않는 넓은 어깨와 거대한 등 근육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새삼스럽지만…….”
“말도 안 되는 몸이라니까.”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졸업생들이 감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압도적인 체격과 근골의 청년.
그 덕분에 신입생 때부터 큰 주목을 받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절망했던 나날들.
그리고 절망을 떨치고 일어나 다시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거상웅의 지난 사 년의 시간은, 오랫동안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내고 날아오른 청룡학관과 닮아 있었다.
“허허. 아주 헌앙하구나.”
“눈빛이 좋습니다.”
단상에서 물러난 노군상과 매극렴이 거상웅을 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헌앙한 외모와 정돈된 몸가짐은 이미 한 명의 당당한 무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상웅은 두 사람에게 절도 있게 포권을 취한 후, 단상 위로 성큼 올라갔다. 넓은 단상이 단숨에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거상웅입니다.”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방백현이 두 손을 모아서 힘껏 외쳤다.
“권패 거상웅! 청룡학관의 자랑!”
방백현뿐만이 아니었다. 사 학년 졸업생들은 물론이고 후배들까지 거상웅에게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졸업생 최강의 남자 거상웅 선배다-!”
“빨리 박수 쳐라, 이 자식들아!”
“재, 재력과 무력을 모두 갖춘 최고의 선배님!”
특히 헌원강, 야수혁, 위지천은 서로 경쟁하듯 목소리를 높여 거상웅을 치켜세웠다.
차마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여민은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상웅 선배였으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왔을 거야…….”
다행히 거상웅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후배들의 수치심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듯 유들유들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넘겼다.
“환호가 조금 부족한 것 같은데, 오늘 밤 금룡상단에서 여러분의 음주가무를 책임져 준다고 하면 좀 커지려나?”
잠시 후, 청룡학관이 떠나갈 것처럼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권패! 권패! 권패!
자신의 별호를 연호하는 졸업생들 앞에서 거상웅은 씨익 웃어 보였다.
권패(拳覇).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될 별호였다.
과거 그의 모든 것을 빼앗은 상대를 꺾고 쟁취한 별호였으니까.
한때 무공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청룡학관의 문제아는, 이제 권법과 외공으로 천하에서 가장 주목받는 후기지수 중 한 명이 되었다.
“허. 이놈들이…….”
매극렴이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버려 두었다.
자신의 취임식과 달리, 지금 이 순간은 오롯이 거상웅에게 주어진 시간이었으니까.
자연스럽게 환호성이 잦아든 후, 거상웅이 조금 진지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먼저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해 주신 관주님과 선뜻 자리를 양보해 준 동기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제가 졸업생 연설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거든요. 제가 신입생일 때 연설은 저기 있는 방백현이 했었습니다. 그때 되게 부러웠는데…….”
잠시 말을 멈춘 거상웅이 방백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도발했다.
“어때? 아래에서 올려다보니까 그때 내 기분을 좀 알겠냐?”
와하하하!
좌중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방백현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졸업생들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놀리는 것에 동참했다.
“사실 졸업생 연설에서 하고 싶은 말을 잔뜩 쓰면서 달달 외울 때까지 연습했는데…… 지금은 머릿속이 뒤엉켜서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제가 말에 두서가 없더라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상웅은 자칫 엄숙해질 수 있는 졸업식을 유쾌한 분위기로 바꿔 나갔다. 대상인의 아들로서 타고난 언변과 기질이었다.
“우선 못난 자식을 사 년 동안 믿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멀리서 금룡장주가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과 눈이 마주친 그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더 고맙다.’
그 입 모양을 본 거상웅은 조금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곳에 와 주신 모든 부모님들. 여러분의 아들딸을 대신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치 그 말이 기폭제가 된 것처럼, 다른 졸업생들도 목소리를 높여 부모님에게 감사 인사를 외쳤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엄마 사랑해요!
아버지 고맙습니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자식들의 뜻밖의 인사에 부모들은 하나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또한 길을 잃고 방황하던 저를 포기하지 않고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거상웅의 시선은 졸업생들의 뒤편에 서 있는 강사들을 향했다.
이렇게 보니, 마치 그들이 학생들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처럼 보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든든하게 학생들을 지켜 주었던 사람들.
평생의 은사인 백수룡을 만나기 전에도, 많은 강사들이 거상웅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었다.
-거상웅 학생.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내 수업에 나오도록.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하거라.
그들이 내밀어 준 도움의 손길을 피하고 도망 다닌 것은 자신이었다.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청룡학관에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거상웅은 못내 부끄럽고 죄송했다.
“혈교와의 싸움으로 비어 버린 선생님들의 자리도, 저희 졸업생들은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분위기가 잠시 숙연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선생님들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게 졸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약소하지만 금룡상단에서 연회를 준비했으니, 참석하셔서 마음껏 즐겨 주십시오!”
청룡학관의 강사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거상웅의 의도를 눈치챘기에 더욱 밝은 모습으로 박수를 치고 유쾌하게 웃었다.
강사들을 둘러보던 거상웅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백수룡에서 멈췄다.
제자와 눈이 마주친 백수룡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저었다.
-내 얘기는 가능하면 하지 마라.
어젯밤, 함께 백룡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백수룡이 그렇게 부탁했다.
자신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면 졸업식의 본래 취지를 해칠 수 있으니, 되도록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거상웅은 스승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말로는 어차피 다 못 하기도 하고요.”
작게 중얼거리며 거상웅이 씩 웃었다. 그리고 백수룡의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후배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헌원강, 야수혁이 눈물 콧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위지천은 소매로 촉촉해진 눈가를 훔쳤다.
여민마저 괜찮은 척하면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하하하……!”
거상웅은 그 모습이 우스워서 껄껄 웃었다. 그림으로라도 남겨 놓고 싶은 장면이었으니까. 너무 웃겨서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힐 정도였다.
“일 년 동안 지겹도록 부대껴 온 후배들아! 형제가 없이 자란 내게 너희들은 피붙이와 같았다.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부탁하마.”
짧은 인사말에 헌원강이 결국 몸을 돌려 어깨를 들썩였다. 야수혁은 은호를 손수건처럼 들어서 눈물을 닦았다. 위지천도 꺼이꺼이 울었고, 평소 가장 침착한 여민마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였다.
못난 자식들…….
피식 웃은 거상웅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함께 졸업하는 동기들을 바라봤다.
모두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아쉬움과 후회, 시원섭섭함과 후련함 등의 감정들.
이제는 전부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거상웅은 졸업생 연설을 마무리할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발을 굴렀다.
콰앙-!
각자의 감상에 빠져 있던 졸업생들의 시선이 단숨에 그에게 집중됐다. 거상웅은 활짝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함께 졸업하는 동기들아. 그간 다들 고생 많았다! 우리 나가서도 잘하자-!”
졸업생들이 큰 소리로 호응했다. 각자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를 전하거나, 졸업 후 포부를 밝히거나, 혹은 꼭꼭 숨겨 둔 속마음을 용기 내 고백하는 모습도 보였다.
거상웅은 단상 위에서 잠시 그들을 둘러보다가, 그 순간 즉흥적으로 떠오른 말을 내뱉었다.
“끝으로 졸업 후 저의 목표를 밝히면서 연설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단상에서 한 걸음 물러난 거상웅이 후읍-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눈치가 빠른 이들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거나 내공으로 귀를 보호했다.
곧이어 가슴이 시원해질 만큼 쩌렁쩌렁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청룡학관 졸업생 거상웅! 언젠가 천하제일권이 되어 돌아오겠다-!”
와아아아아아!
그날은 청룡학관 역사상 가장 떠들썩한 졸업식으로 남았다.
* * *
졸업식이 끝나고 다음 날.
지난밤 도시의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 성대한 축하연이 있었음에도, 청룡오망은 습관처럼 새벽에 일어나 연무장에 모였다.
“한 명이 빠졌다고 왜 이렇게 넓어 보이냐…….”
하기야 덩치가 오죽 컸어야지, 헌원강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풀었다.
이제는 그가 백룡장의 최고 선배이자 사 학년이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 헌원강은 후배들에게 말했다.
“다들 정신 차리고 수련하자!”
“네…….”
“그럽시다.”
평소보다 풀이 잔뜩 죽은 위지천과 야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밤에 거상웅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한 탓에, 둘 다 눈이 팅팅 부어 있었다.
“바보들. 초상이라도 났어? 다신 못 볼 사이도 아니고 겨우 졸업한 거 가지고…….”
남자들보다 조금 늦게 밖으로 나온 여민이 후배들에게 핀잔을 주었으나.
“여민 선배?”
“와, 눈이 너무 부어서 못 알아볼 뻔했네.”
“……닥쳐.”
여민이 눈을 흘기며 노려봤지만, 잔뜩 부은 눈으로 그래 봤자 전혀 무섭지 않았다.
잠시 티격태격한 네 사람이 몸을 풀며 새벽 수련을 준비할 때였다.
“어?”
“음?”
문 바깥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척과 발소리에, 네 명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수련 아직 시작 안 했지?”
태연하게 문을 밀고 들어온 거상웅이 후배들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 순간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거상웅을 바라봤다.
헌원강이 모두의 심정을 대표해서 물었다.
“선배가 왜 왔어?”
“내가 뭐 못 올 곳이라도 왔냐?”
“아니, 그게 아니라…… 강호행을 떠나는 거 아니야?”
바로 어제, 거상웅은 모두의 앞에서 ‘천하제일권이 되어 돌아오겠다!’ 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다들 강호행을 떠나 세상을 견식하러 가는 줄 알았는데…….
거상웅은 그게 뭐 어쨌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당장이라고 했냐? 언젠가라고 했지. 아직 배울 게 산더미인데 가긴 어딜 가.”
“어?”
“뭐?”
“예?”
“장난해?”
바보 삼형제처럼 입을 벌리는 사내 녀석들과 배신감에 치를 떠는 여민의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거상웅은 태연하게 헛둘헛둘 몸을 풀었다.
“뭐, 종종 아버지를 따라 상행에 나설 때는 자리를 비우긴 하겠지만, 당장 멀리 떠날 생각은 없다. 왜 멋대로 오해들을 하고 그래?”
거상웅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백룡장에 머무르면서 선생님께 무공을 배울 거다. 천하제일의 스승이 이곳에 계시는데 내가 왜 떠나겠냐?”
비로소 사태를 파악한 후배들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거상웅이 졸업과 동시에 백룡장에서도 나가는 줄 알고 훌쩍였던 지난밤의 기억이 떠올라, 다들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야, 이…….”
“선배!”
“그런 건 진작 말했어야지!”
“진짜로!”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진 후배들을 바라보며 거상웅은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그하하하!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귀여운 후배들아!”
거상웅은 후배들을 양손으로 끌어안으려고 했지만.
“문답무용! 일단 조져!”
헌원강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가 거상웅을 응징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기쁘게 맞아 주마! 어제는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당장 저 입부터 막아!”
졸업식이 끝났지만, 백룡장의 하루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시끌벅적하게 시작됐다.
#졸업식 이후의 외전 이야기는 시간순대로만 진행되지 않으며, 다양한 공간과 시간대를 자유롭게 오가며 다룰 예정입니다.
이 점 독자님들의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