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68
외전 9화. 모든 곳에 있구나
“여긴 어째 하나도 안 변했네요?”
“십 년이 더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게다. 시골 마을의 좋은 점이지.”
며칠간 눈이 쌓여 하얗게 변한 마을의 모습이 세 사람의 시야에 들어왔다.
백수룡은 일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다.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몇 년 만에 돌아온 기분이네.”
“이 녀석아. 네가 너무 정신없이 살아서 그렇지.”
두 사람의 뒤에서는 매극렴이 뒷짐을 진 채 조용히 걸어오고 있었다. 딸이 남편과 함께 정착해서 아이를 낳고,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마을을 둘러보는 노인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좋은 마을이구나. 공기가 맑고 기운도 깨끗한 것이, 그 아이가 좋아했겠어.”
“사람들도 좋습니다. 다들 선하고 잔정이 많지요. 장인어른도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세 사내가 마을에 가까워지자, 이른 아침부터 일하러 나온 사내와 아낙들이 그들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저어기 백무관 사부님이 아닌가! 다시 돌아온 게요?”
“그 옆에는 수룡이 아니우? 세상에나! 너무 훤칠해져서 못 알아볼 뻔했네!”
“뭐라고? 백씨네 부자가 돌아왔어?”
어느새 우르르 몰려나온 마을 사람들이 부자를 환대해 주었다. 백무흔이 밝은 표정으로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잘 지내셨습니까?”
평소 백무흔은 마을에서 평판이 좋기로 유명했다.
그는 빠듯한 백무관 살림에도 항상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고 호신공을 가르쳐 주었고, 웬만한 의원 못지않은 지식으로 동네 의원 노릇도 맡았다.
그러니 마을 사람 중에 그에게 신세 한번 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수룡아! 너 큰 도시에 가서 무공 선생 하겠다고 떠나지 않았었니?”
“갈 때는 몇 년은 집에 돌아오지 않을 얼굴이더니……. 어찌 일 년 만에 왔어?”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백수룡에게 다가와 알은체를 했다.
“하하. 그게…….”
그러나 백수룡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몇몇 마을 사람들이 안타까운 표정이 되었다. 눈치 없이 그런 걸 묻냐는 듯 옆 사람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이도 있었다.
“아이고……. 취업이 쉽지가 않지?”
“하긴 도시에 나가서 먹고사는 게 오죽 어렵겠느냐. 사기꾼은 또 어찌나 많다고 하던지!”
지레짐작한 마을 사람들이 백수룡에게 괜찮다며 위로를 건네고, 고향에 잘 돌아왔다며 반겨 주었다.
“몸도 약한 녀석이 객지 나가서 고생했겠구나…….”
“하여간 잘 돌아왔다. 잘 돌아왔어!”
“역시 고향이 최고지!”
졸지에 취업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이 되었지만, 백수룡은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도시 생활이 정말 쉽지가 않더라고요.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고생도 많이 했죠…….”
천하제일인이 된 청룡신협의 소문이 닿기에는 너무도 외진 시골 마을.
이곳 사람들에게 백수룡은 여전히 몸이 병약한 청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인석아. 어른들한테 장난치지 말고 챙겨 온 선물이나 하나씩 나눠 드려라.”
아들에게 핀잔을 준 백무흔은 마을 사람들에게 매극렴을 소개시켜 주었다.
“저의 장인어른이십니다. 장인어른. 다들 마을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들입니다.”
매극렴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포권을 취했다.
“매극렴이라고 하외다. 부족한 사위와 손주 녀석을 잘 대해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오.”
벼린 듯 날카로운 매극렴의 인상에 마을 사람들이 잠시 눈치를 살폈지만, 단정하게 의복을 차려입고 깍듯이 예의를 갖춘 노인의 태도에 금세 순박하게 웃으며 반겨 주었다.
“자자, 먼 길 오느라 노곤할 텐데 들어가서 쉬게 비켜 주십시다!”
마을 촌장이 세 사람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을 물러나게 했다. 백무흔과 동갑인 그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흔이. 어서 들어가서 쉬게. 내 이따가 떡이라도 들고 가지.”
“고맙네. 나중에 이야기하세나.”
그렇게 잠시간의 소란이 있고 난 뒤, 세 사내는 겨우 마을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리저리 바쁘게 흩어지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매극렴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순박한 사람들이구나.”
“처음 정착하려고 했을 때는 텃세도 조금 있었습니다만……. 뭐, 약빙이 단숨에 휘어잡았지요.”
“아무렴. 그러고도 남았겠지.”
장인과 사위는 옛 추억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걸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백무관이 보였다.
힘이 넘치면서도 정갈한 글자가 새겨진 현판 위로, 며칠 사이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저 글씨……. 약빙이 쓴 것이구나.”
매극렴이 현판을 올려보며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옆에서 백무흔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휘두르듯 단숨에 휘갈겨 썼습니다. 아직도 필체가 살아서 꿈틀대는 것 같지 않습니까?”
“누구 딸인데.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비상해서 검부터 시작해 못하는 것이 없었다.”
“죄송한데, 요리엔 소질이 없어서 항상 밥은 제가 했습니다만…….”
“산통 깨지 말고 닥치거라.”
잠시 후,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마찬가지로 소복이 눈이 쌓인 연무장이 보였다.
사박사박.
세 사내는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백무관을 한번 둘러본 백무흔이 말했다.
“마당에 쌓인 눈부터 좀 치워야겠습니다. 수룡아. 창고에서 빗자루 좀 가져오너라.”
“나도 도와주랴?”
“됐습니다. 장인어른은 저쪽에 앉아서 가만히 쉬고 계십시오.”
백무흔과 백수룡이 눈이 소복하게 쌓인 연무장을 비질로 쓸어 냈다.
무공을 익힌 장정 둘이 익숙한 듯 빠르게 움직이니, 마당에 쌓인 눈이 금세 치워졌다.
“…….”
매극렴은 마루에 걸터앉아 사위와 손자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모습이 자신은 모르는 두 사람의 일상이었을 터.
그는 손으로는 마루를 찬찬히 손으로 쓸어 보고, 눈으로는 백무관을 살폈다.
볼수록 묘하게 집의 모습이 익숙했다. 매극렴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허허…….”
그의 아내가 반위로 세상을 떠나기 전, 그리고 약빙이 아주 어렸을 적, 세 식구가 함께 살던 집과 짜임새가 거의 비슷했다.
“온통 너의 흔적이 남아 있구나. 모든 곳에 있어.”
매극렴은 허허롭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린 매약빙이 마당에서 뛰어놀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그 조그맣던 딸이 성장하여 반려를 만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이곳에서 살았을 모습이.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살았던 집을 똑같이 따라서 지으면서, 언젠가는 아버지를 초대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을까…….
그 순간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버지. 저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매극렴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행복하게 지냈을 딸아이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상상했다.
그때였다.
“사부니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소년의 목소리였다.
곧 백무관 밖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아이 하나가 굴러 들어왔다.
“쯧쯧. 넘어진다. 조심해라.”
“진짜 사부님이 왔구나!”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려온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소년이 백수룡에게 덥석 매달렸다.
물론 수백 장 밖에서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백수룡은 놀라지 않고 웃으며 소년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장이 요 녀석. 일 년 만에 제법 자랐구나?”
“당연하죠! 엄청 열심히 수련했거든요! 밥도 많이 먹고 잠도 잘 자고요!”
칭찬받은 게 기분 좋은 듯 장이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래 봤자 아직 백수룡의 가슴팍에도 오지 못했지만.
“사부님?”
“진짜 돌아오셨다!”
“아버지 말이 정말이었구나!”
장이가 가장 빨랐을 뿐, 다른 소년소녀들도 하나둘 백무관에 찾아왔다.
모두 이곳에서 무공을 배우던 마을 아이들로, 부모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온 듯했다.
개중에는 부모가 급히 손에 쥐여 준 보따리에 음식이나 주전부리, 술을 들고 온 아이들도 여럿이었다.
“엄마가 이것 좀 드시래요.”
“저희 할아버지가 갖다주랬어요.”
오랫동안 사람이 없어 휑해 보이던 백무관이 금세 다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백무흔이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거라. 수룡아. 가서 아궁이에 불 좀 지펴라.”
“장작이 없던데요?”
“그 잘난 무공은 어디다 쓰려고? 삼매진화로 지피면 될 거 아니냐.”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니까…….”
결국 백수룡이 구시렁거리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세 사내는 마을 아이들과 함께 크게 둘러앉아서 간단히 요기를 때웠다.
“너희들. 내가 떠난 이후에도 열심히 수련했나 본데?”
백수룡이 아이들의 몸 상태를 살펴보곤 조금 놀랐다.
하나같이 나이대에 맞지 않게 근골이 튼튼해져 있었는데, 그가 떠나기 전에 가르친 기초공을 열심히 수련한 것이 분명했다.
‘며칠도 못 가서 힘들다고 포기할 줄 알았는데…….’
특히 백수룡의 자칭 수제자, 장이의 발전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지금처럼 기초를 계속 쌓으면 열다섯 살에는 정말 청룡학관에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심 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장이가 백수룡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사부님이 청룡신협 맞죠?”
“……음?”
마을 어른들의 반응을 보고 소문이 전혀 닿지 않은 줄 알았는데, 장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냐?”
청룡신협이 자신임을 인정하는 듯한 백수룡의 반응에, 눈이 커진 장이가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전에 마을에 보부상이 왔다 갔을 때 들었어요! 청룡학관 신입 강사가 악인곡의 마두들을 무찌르고 별호를 얻었다고요! 어른들은 말도 안 된다고 했는데, 저는 듣자마자 사부님이라고 생각했다니까요? 맞죠? 그렇죠?”
“악인곡……. 거기까지가 최신 정보인 모양이구나.”
옆에서 듣고 있던 백무흔이 웃으며 말했다. 매극렴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장이가 백수룡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게 된 건 가짜 남궁세가 행세를 하던 조무래기 사파 무인과 싸웠을 때였다. 사실 진짜 마두는 그 옆에 있던 노인이었지만.
‘사칭하던 놈 이름이 남궁욱이었나?’
하여간 놈들을 쓰러뜨린 후, 장이는 백수룡이 실력을 숨기고 은둔한 천하제일고수라고 믿었다.
‘이제는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지만.’
씩 웃은 백수룡은 장이의 귀에 대고 진지하게 속삭였다.
“이건 무인과 무인의 비밀로 해야 한다. 알겠지?”
“……넵!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 안 할게요!”
백수룡은 사뭇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장이의 볼을 죽 잡아당기며 말했다.
“칼이 들어오면 말해도 돼.”
“……헤헤. 사부님! 다시 무공 가르쳐 주실 거죠?”
장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백수룡을 올려보았다. 다른 아이들도 말은 안 하지만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백수룡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백무흔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백무관은 정리할 생각이란다.”
“네……?”
“왜요……?”
“무공 더 배우고 싶은데…….”
크게 실망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특히 장이는 하늘이라도 무너진 표정이었다.
다들 어찌나 안쓰러워 보이는지, 보다 못한 매극렴이 부자에게 말했다.
“어차피 한 이틀은 이곳에 머물러야 하니, 그동안이라도 무공을 좀 봐주는 것이 어떠냐?”
잠시 고민하던 백무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할 짐이야 애초에 많지 않았고, 그 역시 이 마을에 정이 많이 들었으니까.
“그리하겠습니다. 무공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내일 아침에 백무관으로 오너라.”
우와아아- 아이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백수룡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청룡학관의 일타강사도 특별 과외를 해 주지. 당장 무공을 배우고 싶은 녀석 있냐?”
“저요! 저요!”
장이가 번쩍 손을 들자, 백수룡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소화시킬 겸 마보 한 시진부터 시작하자.”
“치사하게 맨날 마보만 시키고!”
찬 바람이 부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백무관에 따스한 온기가 돌았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에도 마을 사람들이 한 번씩 와서 떡이며 주전부리, 술과 안주를 가져다 놓고는 돌아갔다.
백무흔이 점점 쌓이는 음식을 보며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이틀 안에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걱정이더냐. 수룡이한테 먹이면 될 것을.”
“……음식 사절이라고 벽보라도 붙여 놓고 올까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에서야 백무관에 인기척하는 발걸음이 줄어들었다.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보낸 하루였다.
겨우 대문을 잠그고 온 백무흔이 매극렴에게 물었다.
“장인어른. 이제 약빙을 만나러 가실까요?”
“그러자꾸나.”
매극렴이 몸을 일으켰다. 딸이 어떻게 살았을지 조금이나마 엿보았기 때문일까. 그의 발걸음은 마을에 들어올 때보다 한결 가벼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