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71
외전 12화. 끝나고 한잔할까?
“너희들 왜 집에 안 가냐?”
백수룡이 자연스럽게 저희들끼리 새벽 수련을 준비하는 제자들에게 물었다.
청룡오망이 밤새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졸업식이 끝났다.
즉, 청룡학관은 이제 공식적으로 겨울 방학을 맞이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이니, 백수룡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냥 출근할 뻔했네.’
지난 학기에는 수학여행과 천무제를 비롯해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겨울 방학에는 제자들에게 수련의 목표나 과제를 내주지 않았다.
편하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다섯 명 중에 짐을 제대로 싸 둔 녀석이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헌원강이 헛둘헛둘 몸을 풀면서 백수룡에게 물었다.
“그러는 선생님은 고향에 안 가요?”
“나야 얼마 전에 다녀왔잖냐. 충분히 쉬었으니까 다시 일해야지.”
짧은 휴가를 다녀오면서 미뤄 둔 일이 산더미였다.
작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수많은 사건들 때문에, 업무를 정상으로 돌리려면 한동안 야근은 확정이었다.
백수룡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남궁수를 비롯해 자청해서 방학 기간에 학관에 남은 강사들이 여럿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며칠만 더 있다가 가려고요. 좀 늦게 간다고 뭔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확인할 것도 하나 있고…….”
팔다리를 쭉쭉 늘리던 헌원강이 어딘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흑룡편이 자석처럼 날아가 그 뒤통수에 달라붙었다.
따악!
백수룡이 냅다 후려갈겼다는 뜻이었다.
“악! 왜 때리는데!”
“불효자 녀석. 집에서 자식이 언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리실 부모님 생각은 안 해?”
“며칠 더 있다가 간다고 편지도 보내 놨거든요!”
헌원강이 씨근덕대며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백수룡은 다른 제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원강이는 그렇다고 치고. 너희들은?”
“지금 가 봤자 아버지랑 삼촌들은 산채에 없어서요. 그래서 수련이나 조금 더 하다가 가려고…….”
야수혁은 자기도 맞을까 봐 눈치를 보며 해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흑룡편이 움직이지 않았다.
“흐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아, 왜 맨날 나만 때리는데!”
녹림맹주 주표는 무림맹과 정식 동맹을 맺게 된 후, 사업을 제대로 확장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백수룡도 최근에 서찰을 받아 봐서 아는 내용이었다.
“저야 뭐, 집이 코앞이라서 방학이라고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습니다.”
금룡장주의 집이 지척에 있는 덕분에, 거상웅은 방학에도 학기 중과 다름없이 백룡장을 오갈 거라고 했다.
위지천은 애초에 백수룡과 함께 살고 있었으니 질문에서 제외되었고.
“민이 너는?”
백수룡의 시선은 집이 가장 먼 제자를 향했다.
이번 방학에 북해빙궁에 다녀와야 할 여민은 당장 움직여도 시일이 빠듯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민은 의외로 차분한 모습이었다.
“빈손으로 가긴 좀 그래서요.”
천무제에서 은휘령을 비롯해 북해빙궁의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정식으로 엄마의 고향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민은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천이네 할아버지께 선물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것만 완성되면 받아서 가려고요.”
“위지 노야에게? 시간이 제법 걸릴 텐데?”
“간단한 물건이라 며칠이면 된다고 하셔서요.”
“기특하네.”
백수룡은 여민이 준비한 선물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물었다.
“무림맹으로 가는 거지?”
“네. 거기서 만나서 같이 북해빙궁에 가기로 했어요.”
북해빙궁주 은휘령은 아직 무림맹에 남아 있었다.
전후 정리를 비롯해, 북해빙궁도 혈교와 얽힌 문제에 있어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을 터였다.
물론 거기에는 조카와 최대한 빨리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리라.
그때 헌원강이 눈치를 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방학 때 시간 되면 북해빙궁에 놀러 가도 돼?”
머릿속으론 이미 북해빙궁 사람들과의 만남을 상상했는지 헌원강이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여민도 좀 어색하게 반응했다.
“어? ……글쎄?”
사람들에게 헌원강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고민되는 눈치였다. 단순히 청룡학관의 선배라고 하기에는 미묘하게 더 가까운 것 같고, 그렇다고 연인이라고 소개하자니 아직…….
“그, 안 되려나?”
“안 될 것까진 없는데…….”
괜스레 얼굴이 살짝 붉어진 두 청춘남녀 사이에, 백수룡이 못마땅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원강아. 헛물켜지 마라.”
“……왜요? 방학인데 제 마음대로 놀러도 못 가요?”
울컥하는 표정으로 되묻는 헌원강에게, 백수룡은 흑룡편을 휘두르는 대신 코웃음으로 응수했다.
“방학 때 흑사련에서 특훈받기로 한 거 잊어먹었냐? 네가 직접 찾아가서 부탁해 놓고 안 가려고?”
“……!”
깜빡하고 있었던 듯, 헌원강은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며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혈교와의 전쟁이 끝난 후, 스스로의 실력에 부족함을 느낀 헌원강은 소지광을 찾아가 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내게 칼을 배우고 싶다고? 으하하! 얼마든지 가르쳐 주마! 그렇지, 올 때 네 친우인 팽가 아이도 데려와라!
팽가에서는 가문의 소가주가 사파로 도를 배우러 가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팽사혁도 쉽게 허락을 받아 냈다.
……그게 진짜 허락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천하제일도에게 도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인데. 가출을 해서라도 가야지.
그렇게 두 소년은 가문에 들렀다가 함께 흑사련으로 가서 특훈을 받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방학 일정이 꽉 차 있었다.
“……젠장. 지금이라도 팽사혁한테 혼자 가라고 할까? 나중에 가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짜악! 짜악!
“끄아악!”
결국 헛소리를 하다가 백수룡과 여민에게 등짝을 한 대씩 얻어맞은 헌원강이 펄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오늘도 시끌벅적한 선배들과 동기를 둘러본 위지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저희들이 아직도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자신을 갈고닦아 더욱 정진하고자 하는 건 흑사련에 배움을 청하러 가는 헌원강뿐만이 아니었다.
청룡오망 모두가 천무제 우승 직후 맞닥뜨린 혈교와의 전쟁에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혹독했던 전장에서 얻은 경험과 깨달음을 체화하고 갈무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청룡오망이 아직 백룡장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였다.
‘녀석들……. 너희들 나이를 좀 생각해라.’
제자들의 진지한 표정을 본 백수룡은 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대신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너희들 좋을 만큼 있어라. 오랜만에 한 명씩 자세 좀 봐줄까?”
“네!”
백수룡은 한동안 제자들의 동작을 꼼꼼히 봐주다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백룡장을 나섰다.
“다녀오세요, 선생님!”
“올 때 주전부리 사 오는 거 잊지 말구요!”
“저는 만두요!”
등 뒤로 울려 퍼지는 제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백수룡은 익숙해진 출근길을 걸었다.
평화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 * *
백수룡은 스물일곱 가을에 전생의 기억과 함께 깨어났고, 지난해 칠월에 스물여덟이 되어 혈교와의 전쟁을 치렀다.
그것도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해가 바뀌었으니 이제 몇 달 뒤엔 스물아홉이 될 것이다.
“……이러다 이립도 금방이겠군.”
길어도 이립을 넘기지 못할 거란 천음절맥의 천형(天刑)에서 벗어났다.
전생의 기억을 깨닫고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리며, 백수룡은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어떤 생각에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고 보니…….”
정신없이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새해가 되었으니 곧 다가올 명절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잘 넘겨야 할 텐데…….”
강호의 무인들이 늦게 혼인하는 경우가 많다고는 해도, 서른이 넘으면 본격적으로 노총각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명절날 가족의 잔소리는 천하제일인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
벌써 강호의 온갖 곳에서 청룡신협에게 매파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만큼 백수룡이 들어야 할 잔소리도 늘어나는 중이었다.
‘전날에 몰래 도망이라도 칠까?’
명절날 잔소리에 대비하는 천하제일인의 고민이 깊어져 갈 때였다.
“형님-!”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신연호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늘 붙어 다니는 명일오와 함께였다.
“웬일로 출근이 늦으셨네요?”
“애들 무공 좀 봐주고 오느라. 너희는 일찍 왔다?”
“흐아암. 신입 강사 면접 일정 짜느라고 며칠째 야근입니다.”
명일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했다. 눈 밑이 거무스름한 것이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신입 강사 면접? 아, 그거 너희들 담당이었지?”
벌써 새로운 강사들을 뽑을 때가 되었다.
사건 사고가 많았던 탓에 작년보다 일정이 늦춰졌지만, 오히려 지원자의 수는 몇 배로 늘어난 상황.
덕분에 일차적으로 지원자들의 서류를 살피고 면접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두 사람은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었다.
“원래는 형님도 신입 강사니까 같이 해야 하는 일인데…….”
“미안한데 내가 공사다망해서 말이다.”
신연호와 명일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백수룡을 째려봤지만, 그 이상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백수룡은 청룡학관에서 손에 꼽을 만큼 업무가 과중했다.
생활지도부 업무에, 올해에도 진행될 보충학습반을 구성해야 하고, 신설되거나 변경될 학과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신입 강사 면접 날에도 당연히 심사관으로서 참여할 예정이었다.
“오라버니드을…….”
그때 죽어 가는 목소리와 함께 제갈소영이 나타났다. 비칠비칠 걸어오는 모습이 명가의 규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거듭된 야근으로 머리는 여기저기 뻗치고, 눈은 죽은 생선처럼 퀭했다.
“죽겠어요. 저 좀 살려 주세요…….”
본래도 하얀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는데, 신연호나 명일오도 그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소영아. 너 집에 우환이라도 있냐?”
“일이, 일이 너무 많아요. 남궁수 선생님이…….”
제갈소영의 사수가 누구인지 생각하면 그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궁수가 일을 떠넘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업무를 분담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갈소영도 야근의 화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으하하! 다들 여기에 모여 있었구먼!”
기운찬 목소리에 모두가 같은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작년과 비교하면 몰라보게 살이 빠진 신입 강사가 허리춤에 두 팔을 척하니 얹고 있었다.
백수룡이 그에게 알은체했다.
“곽일도?”
“……곽두용이다! 일부러 틀리는 거 다 아니까 그만두시지?”
발끈하는 곽두용의 반응에 백수룡은 큭큭 웃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잘못 불렀는데, 이제는 놀리는 맛이 있어서 계속하고 있었다.
“곽 선생은 제법 멀쩡해 보인다?”
“멀쩡하긴. 상담이 쉬운 일이 아니야. 다들 흉험한 걸 너무 많이 봤으니…….”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곽두용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악가혈사 이후 곽두용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의 상담역을 자처했는데, 실제로 학생 시절 자신들과 비슷한 일을 겪었던 곽두용의 상담에 학생들이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다들 고생이 많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청룡학관의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제법 어른스러워진 동기들을 둘러보며 백수룡이 씨익 웃었다.
“다들 오늘 일 끝나고 저녁에 술이나 한잔하는 건 어때? 내가 살 테니까.”
“저는 좋아요!”
다 죽어 가던 표정의 제갈소영이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대답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청룡학관의 손에 꼽는 주당이 술자리에 빠질 리가 없는 것이다.
“늦게 가도 되는 거라면…….”
“시간이 조금은 있을 것 같긴 한데.”
신연호와 명일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오랜만에 동기들끼리 술자리를 벌일 생각에 조금이나마 기운이 나는 듯했다.
“흠흠. 시간을 내기가 쉽진 않지만…… 가능하면 참석하도록 할까.”
곽두용도 은근슬쩍 참석 의사를 비쳤다. 백수룡은 좋을 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들 이따가 백룡객잔에서 보자고. 일 끝나고 편할 때 와. 먼저 도착하면 비싼 걸로 시켜 놓고.”
“네!”
동기들의 기대감 어린 대답을 들은 백수룡은 느긋한 걸음으로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아참.”
그러다 무언가 말해 주는 걸 깜빡했다는 듯, 뒤를 돌아보며 아직 흩어지지 않은 동기들에게 말했다.
“별일 없으면 이따가 남궁수도 데려간다.”
그 순간 신입 강사들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설마…….’
‘지, 진짜로 오시려나?’
‘편하게 마시고 싶은데…….’
다들 어색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 남궁수와 친한 신연호만 즐거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네! 궁수 형님도 꼭 데려오세요!”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눈치라곤 약에 쓰려 해도 없는 신연호에게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