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72
외전 13화. 뭐 해요!
고요한 아침의 사무실.
남궁수는 청룡학관에서 보내는 하루 중 이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
가볍게 우려낸 차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아침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
환기를 위해 열어 놓은 창으로 시원한 겨울 공기가 스며들고, 은은한 햇살이 그의 책상에 드리웠다.
‘좋군.’
최근 이런저런 일로 복잡했던 머리가 잠시나마 가벼워지고, 심신이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그러했는데.
“……음.”
남궁수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며 사무실 문을 노려봤다. 정확히는 그 너머에서 성큼성큼 사무실로 다가오는 존재 때문이었다.
“며칠간 편안했는데…….”
얕은 한숨이 섞인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백수룡이 문을 드르륵 열어젖히며 거침없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좋은 아침!”
조심성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경박한 언행에, 고요했던 찻잔의 찻물이 남궁수의 명경지수와 함께 흔들렸다.
“나 없는 동안 잘 지냈냐?”
씨익 웃는 백수룡의 장난스러운 인사에 남궁수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은은한 미소가 감돌던 입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딱딱하게 굳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군. 강호에서 작은 위명을 얻더니 선후배 간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범절조차 잊어버렸나?”
남궁수의 금안이 번뜩였다. 어느 정도 그에게 익숙해진 청룡학관의 강사들도 목을 움츠릴 만큼 매서운 눈빛.
그러나 상대는 다름 아닌 백수룡이었다.
“예예. 남궁수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이 부족한 후배가 없는 동안 업무는 적잖이 처리하셨습니까?”
백수룡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곤 남궁수의 맞은편 책상에 털썩 앉았다. 그가 어깨를 으쓱이곤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무슨 선후배를 따져? 같은 청룡학관 일타강사끼리.”
“……같은 일타강사?”
남궁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백수룡은 개의치 않고 집에서 들고 온 봇짐을 풀어헤쳤다.
그 안에서 두툼한 찬합을 꺼내 뚜껑을 열자 먹음직스럽게 생긴 월병이 가득했다.
“선물로 간식도 가져왔으니까 하나씩 먹으면서 일하자고.”
“혼자 많이 먹도록. 영양소가 불균형한 주전부리를 내가 함부로 섭취할 것 같나?”
냉기가 뚝뚝 묻어나는 말투에 백수룡이 멋쩍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일하면서 먹으라고 직접 만들어 주신 건데…….”
“……학생주임 선생님께는 따로 감사 인사를 전하도록 하지.”
남궁수가 마지못해 손을 뻗어 찬합에서 월병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는지, 잠시 미간을 찌푸렸던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괜찮지? 많이 가져왔으니까 실컷 먹고 남으면 집에도 좀 가져가.”
“…….”
백수룡도 월병 하나를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업무를 시작했다.
원래도 넉살이 좋고 느물거리는 성격이었지만, 혈교와의 전쟁이 끝난 후 백수룡은 훨씬 더 부드러워진 모습이었다.
‘처음 청룡학관에 왔을 때의 날카롭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군.’
남궁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하긴, 바뀐 것은 백수룡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청룡학관의 학생들과 강사들, 그리고 학관 밖의 수많은 사람들이 백수룡이 끼친 영향으로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남궁수 스스로도 자신이 일 년 전과는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무위가 높아지고, 세간의 평가가 바뀐 것만이 아니라 강사로서도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늘 혼자서 일하던 그가 이제는 다른 강사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함께 일하는 경우가 늘었다.
작년부터 부사수로서 일을 도와주는 제갈소영은 물론이고, 바로 앞에 있는 백수룡과도 많은 일을 나눠서 협업하고 있었다.
보다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사무실까지 함께 사용하면서…….
“……백수룡.”
불현듯 강한 의문점이 생긴 남궁수가 고개를 홱 들어 백수룡을 노려봤다. 지금까지 너무 자연스러워서 놓치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어? 왜?”
“대체 언제까지 내 사무실에 붙어 있을 생각이지?”
청룡제 당시 불의의 사고로 백수룡의 사무실이 부서진 이후, 두 사람은 남궁수의 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시일이 꽤 지났다.
수학여행과 천무제, 혈교에 대한 대비 등으로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은 계속 사무실을 함께 사용했다. 확실히 그편이 더 효율적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일들이 마무리된 지금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백수룡을 노려보는 남궁수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새겨졌다.
“네 사무실 수리. 진작 끝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서 차일피일 미뤄지는 거지?”
납득할 만한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듯한 기세에, 백수룡이 깊게 생각하는 듯하더니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여기가 더 편한데, 그냥 계속 같이 쓰면 안 되냐?”
대충 정리해 놓고 퇴근해도 다음 날 출근하면 종이 한 장까지 정리정돈되어 있는 사무실은 여기가 유일할 텐데……. 백수룡이 그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릴 때였다.
파지지직-!
남궁수의 몸에서 튀어 오른 뇌전이 백수룡의 자리를 침범했다. 곧바로 손을 뻗어 보호하지 않았다면 서류들이 홀라당 타 버렸을 것이다.
“미쳤어? 간신히 정리해 둔 서류를……!”
“백. 수. 룡…….”
남궁수가 한 자 한 자 끊어 말하며 벼락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는데, 그 순간 백수룡은 혈마에게 몸을 지배당했을 때 보았던 남궁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백수룡. 이빨 꽉 깨물어라. 나는 네가 정신 차릴 때까지 멈추지 않을 생각이니까.
뇌기를 두른 저 주먹에 두들겨 맞았던 기억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백수룡이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하하. 농담도 못 해? 안 그래도 새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만 여기서 지내고 나갈 생각이었다고.”
비로소 남궁수도 천천히 기세를 거둬들였다.
팔짱을 끼고 잠시 백수룡을 노려보던 남궁수가 마지못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양보해 주지.”
“혹시나 아쉽진 않고?”
“당장 내쫓기기 싫다면 그때까지 최대한 조용히 지내도록.”
백수룡은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새 학기부터는 진짜로 이곳에서 나가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가 사무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여기도 꽤 정이 들었는데, 나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쉽네.”
“헛소리 그만하고 집중하도록. 그리고 아쉬워할 것 없다.”
“……왜?”
남궁수가 턱짓으로 백수룡이 보고 있던 서류를 가리켰다. 두 사람이 함께 작성하고 있는 신규 교육과정 강의계획서였다.
“앞으로 업무상 필요할 때마다 불려 오게 될 테니까.”
응당 후배가 선배의 사무실로 와야지, 작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남궁수식 농담에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청룡학관 일타강사가 이렇게 꼰대여도 되는 거야?”
“사담은 그만하지. 이제 일에 집중하도록.”
“……참나.”
그리고 두 사람은 거짓말처럼 각자의 일에만 열중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사무실에는 한동안 종이 넘기는 소리, 붓으로 무언가를 적는 소리만 들렸다.
둘 다 청룡학관에서 제일가는 일 중독자들답게, 아침에 시작된 업무는 오후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잠깐의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두 사람은 얼굴 한번 마주 보지 않고 일을 했다. 종종 업무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급한 일부터 우선적으로 끝낸 백수룡이 기지개를 켰다. 그는 두 시진 전과 똑같은 자세로 일하고 있는 남궁수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소영이 봤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더라.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냐?”
“……강제로 야근을 시킨 적은 없다. 퇴근하라고 몇 번 말했는데도 듣지 않더군. 그것까지 말릴 수는 없지.”
말은 그렇게 해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지, 남궁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웠다.
그 모습을 본 백수룡이 가볍게 혀를 찼다.
“그 범생이 성격에 사수가 남아서 일하고 있는데 잘도 일찍 퇴근하겠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언제 부를지 몰라서 눈치 보고 있었을걸?”
“…….”
서류를 넘기는 남궁수의 손이 조금 느려졌다.
백수룡이 생각하기에 남궁수는 훌륭한 강사였지만, 여전히 고지식하고 꽉 막힌 구석이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여러 면에서 많이 바뀌었지만, 그 점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무림십존이자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는 지위는 다른 강사들로 하여금 그를 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으로 만들고 있지 않나 싶었다.
‘쯧쯧. 내가 아니면 누가 챙겨 주겠냐.’
예의범절은 바르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친구를 위해, 백수룡은 기꺼이 나서기로 했다.
“너 다른 강사들하고 일 말고 사적인 얘기는 거의 안 하지?”
“주제넘은 참견이군.”
남궁수가 ‘한 마디만 더 나불대면 베어 버리겠다’로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은 눈빛으로 쏘아보았으나, 백수룡은 그것이 민망함을 감추려고 하는 행동임을 알았다.
‘눈깔을 왜 그렇게 뜨냐고 할 수도 없고.’
애초에 남궁수가 금안이 된 데에는 백수룡도 책임이 있었다.
저 서슬 퍼런 금안으로 노려보는데 쫄지 않을 사람은 무림에서도 손에 꼽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인간관계가 부족한 남궁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정작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서 말인데, 오늘 퇴근하고 강사들끼리 술 한잔하는 거 어때?”
그러자 남궁수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여유가 넘치나 보군. 할 일이 태산인데 술자리라니.”
“끝나고 잠깐 정도는 괜찮잖아. 숨 좀 돌리자고. 강사들끼리 허심탄회하게 얘기도 좀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거지?”
“각자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싶어 하는지, 청룡학관에 뭐가 가장 필요한지 같은 거? 공적인 자리에서는 말하기 힘든 이야기도 술자리에선 쉽게 나오는 법이니까.”
“……술 마시자는 핑계도 가지가지군.”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남궁수는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백수룡의 말이 충분히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대부분의 강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크게 상관하지 않기도 했지만…….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는 편이, 장기적으로 업무 능률도 오를걸?”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짧은 고민을 끝낸 남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보고 있는 서류만 끝내고 가도록 하지.”
“나도 좀 남았으니까. 서둘러서 끝내고 가자고.”
한동안 다시 두 사람은 말없이 일에 집중했다.
백수룡은 서류를 넘기는 남궁수의 손길이 평소보다 조금 더 빨라진 것을 눈치채고는 속으로 웃었다.
‘자식. 지도 술 먹으러 가고 싶었으면서 아닌 척은.’
* * *
청룡학관의 야근 중독자들이 백룡객잔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형님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안 오시는 줄 알고 그냥 갈 뻔했다고요.”
객잔 앞에서 찬 바람을 쐬고 있던 신연호가 두 사람을 발견하곤 달려왔다. 그 모습이 꼭 주인 마중 나온 강아지 같았다.
“많이 기다렸냐?”
“흐흐. 형님 오늘 술값은 각오하셔야 할걸요.”
장난스럽게 웃는 신연호의 얼굴이 붉게 상기돼 있었다. 술기운이 제법 올라온 듯했다.
신연호가 객잔 안으로 두 사람의 등을 떠밀며 재촉했다.
“빨리 올라가세요. 다들 기다린다고요.”
“이 자식 취했는데?”
“……음.”
객잔 안에 들어가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들 이미 술을 한잔 걸치고 집에 들어갔을 만큼 늦은 시간이었던 탓이었다.
남아 있는 이들은 늦은 시간에 객잔을 찾은 손님들과 부어라 마시는 주당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저기,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의 주당이 있었다.
“어? 오라버니들 오셨어요~?”
취해서 혀가 꼬부라진 제갈소영이 두 사람을 반겼다.
한 손에는 자기 얼굴만 한 술병을 통째로 들고 있었는데, 그 주위로 빈 술병들이 신묘한 진법을 이루듯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명일오와 곽두용이 패잔병처럼 탁자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백수룡이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저기 있는 술병의 절반은 소영이가 비웠을걸요?”
“아이고…….”
백수룡은 이마를 감싸 쥐었고, 남궁수는 명문세가의 소가주로서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광경에 조용히 침묵했다.
“남궁수 오라버니! 아니, 남궁수 선생님!”
그때 제갈소영이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탕탕 내리쳤다. 오랜만에 마신 술에 한껏 흥이 오른 모습이었다.
“뭐 해요!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요!”
“음…….”
심기가 영 불편해 보이는 남궁수의 모습에, 제갈소영을 제외한 모두가 좌불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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